해설: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넘어 새로운 항로를 찾아낸다. 그는 스페인에서 출발해 출항 약 두 달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는다. 바다의 장벽을 만나 새로운 세계, 이 만남은 지금까지 세계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35번째 역사저널 그날입니다. 오늘은 대항해 시대하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그 인물, 콜럼버스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는데요. 신대륙이 발견된 해는? 이시원/배우: 1492년! 최원정: 참! 잘 했어요. 이시원: 1492년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영화 <1492년 콜럼버스> The Conquest of Paradise 이거든요. 또 영화 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우~우~ 음악소리 우~우~ 영화의 OST <Conquest of Paradise>, 콜럼버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영화의 OST 라서 굉장히 웅장해요. 허준/방송인: 그 배경 음악은 월드컵에 많이 들었거든요. 2002 월드컵 8강전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너뜨리고 준결승! 이 무적함대라는 뜻이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무적함대의 꽃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최원정: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꽃 길을 열어주었다면 우리 프로그램에 꽃 길을 열어줄 분 김동환 소장님! 김동환/대안금융 경제연구소 소장: 안녕하세요? 최원정: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세계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죠? 김동환: 1492년부터 17세기까지 유럽으로 유입된 금의 양이 181t 이래요. 금괴 하나가 1kg 이라고 하면 약18만개의 금괴가 새로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막대한 금은이 신대륙으로부터 유럽 대륙으로 유입되었으니까 fundamental 자체를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봐야죠. 김대륜/대구경북 과학기술원 기초학부 교수: 아주 긴 호흡으로 보면 역사가들은 보통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분기점 이라고도 하죠. 근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여러 대륙과 문명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서로 교류하고 부딪히고 갈등하는 과정들을 이야기 하는데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함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콜럼버스 얘기를 하는데 오늘은 정말 재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콜럼버스의 삶 자체를 추적해 본다면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항해술을 배웠죠. 다시 스페인에서 지원 받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넜죠. 이 복잡다단한 삶을 오늘 들여다 보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믿고 보시라! 100% 재미있습니다. 최원정: 우리가 어렸을 적에 위인전은 한 권씩 읽어봤잖아요.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이시원: 저는 초등학교 때 콜럼버스 전기를 읽었는데 어떻게 바다를 향해서 나아갔을까 굉장히 용감한 사람~ 최원정: 혁신가~ 최태성: 저희들 어렸을 때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영웅이었는데 요즘 와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어요. 미국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공휴일로 기념하는데 대통령들도 그에 대해서 평가를 해요. 트럼프 대통령은 뭐라고 평가를 했느냐면 콜럼버스는 정말 용맹무쌍한 사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의 한 탐험가가 원주민 공동체에 잔혹한 행위를 가했던 날! 이시원: 완전 극에서 극이네요. 최원정: 역사관이 완전 다르네요. 최태성: 그러네요. 김동환: 저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해 봤거든요. 왜 신대륙인가? 원래부터 거기에 대륙이 있었고 사람도 살고 있었는데~ 오히려 신대륙이란 말, 원주민이란 말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쓰잖아요.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역할을 한 사람인데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역사의 시작~ 허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콜럼버스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 그 유명한 사람이 어느나라 출신이냐에 의해서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최근에 스페인은 DNA 검사도 했어요. 최원정: 자기네 사람이라고~ 최태성: 중요한 건 뭐냐면 그 콜럼버스의 유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 DNA 기사를 아까 말씀하셨는데 2021년 5월에 봤거든요. 사실 요즘 DNA 검사하면 오래 안걸려요. 지금까지도 몇 개월이 지났는데 얘기가 없는 것 보면 결과가 안 좋은 거야~ 김대륜: 역사학자들은 대개는 콜럼버스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은 맞다. 어렸을 적부터 제노바에서 선원생활을 했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최태성: 제노바 (Genova)는 이탈리아에 있는 도시잖아요. 김대륜: 제노바 위치를 확실히 아시나요? 제노바의 위치는 지중해변에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항해와 무역에 익숙했던 곳이고 조선업이 발달했던 곳이죠. 김동환: 저 제노바를 중심으로 해서 동서양 혹은 아프리카 이런 쪽의 물건들을 많이 들여오고 나가고 했던 기록을 갖고 있는데 각각 사고파는 화폐가 있었을텐데~ 거기에 이탈리아 화폐도 있었을 거고 혹은 동양의 화폐도 유통이 되었을 거란 말예요. 환전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지 않고 벤치에 앉아서 그 일을 했다는 거예요. 지금 은행을 Bank 라고 하죠. 그 Bank의 연원이 Bench에서 나왔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최태성: 이탈리아어로 Banca(은행)로 불렸을 거예요. 탁자를 의미하거든요. 이시원: 벤치에 앉아서 돈 버는 거잖아요. 교역을 통해서 이렇게 부를 쌓을 수 있구나 이걸 콜럼버스가 딱 깨우치지 않았을까요? 최원정: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바다와 무역에 눈을 뜬 콜럼버스인데 그의 활동 무대는 이탈리아가 아니었죠. 해설: 1476년 어느날 콜럼버스가 올랐던 제노바의 어느 상선이 해적의 공격을 받았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해적의 맹렬한 공격에 결국 콜럼버스가 탔던 배는 침몰하고 그는 포르투갈의 어느 해안까지 떠밀려 오게 된다. 우연히 닿게 된 낯선 타국,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시원: 운명적으로 신항로 개척을 하라고 해적들 만나고 포르투갈로 떠밀려갔나보다. 최원정: 비자발적인 유학이긴 했지만 잘 됐네요. 허준: 마르코 폴로의 기질이 있었다면 여기서 돌고래가 밀어줬다라는 기가 막힌~ 최태성: 어쨌거나 콜럼버스가 포르투갈로 넘어간 이야기는 콜럼버스가 직접 기록하거나 이야기한 건 아니고 그의 아들에 의해서 남겨진 거예요. 그래서 이게 어느 정도 과장된 것인지는 지켜봐야 되는데~ 어쨌거나 그 과정을 거쳐서 포르투갈에 도착한 건 맞아요. 김대륜: 정확하게 얘기하면 해적은 아니구요. 사략선(私掠船) 이라고 있습니다. 사략선이라는 말이 사적으로 약탈을 하는 배란 말이잖아요. 원래 무역을 하는 사람들한테 나라에서 공인을 해주는 거에요. (사략선(私掠船)-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시에 적선을 공격할 권리를 받은 배). 최원정: 나라가 강도 짓을 인정한다는 얘기예요? 김대륜: 그렇죠, 왜냐면 아직 해군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어선이나 무역선을 전함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사적으로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다가 대포를 싣고 돌아다니면서 적국의 배를 공격해서 재물을 취하기도 하죠.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해적들을 공인했다 라는 그런 예에 해당이 됩니다. 김동환: 드레이크인가? 허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과 만화 <원피스> 등이 전부 드레이크가 모티브가 되다보니까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영국의 해적, 군인, 탐험가, 영국인 최초 세계일주 달성 1581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 이 사람은 유명한 해적이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영국 제독이 돼요. 기사 작위를 받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오~ 나의 해적 이렇게 불렀어요. 최태성: 아마도 콜럼버스에게 당시의 그날, 몇 장면을 한번 꼽아 보세요. 사략선을 만나가지고 엄청난 고생 끝에 포르투갈에 나타난 그 순간, 왜냐면 이 당시 포르투갈이 어떤 곳이었냐 하면 항해술이 발달되어 있었잖아요. 거기에 간 거예요. 운명적인 거죠. 김동환: 지금으로 보면 어떤 벤처기업이 실리콘벨리에서 탄생한 집적의 효과를 본 거죠.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도 마찬가지고 대체로 실리콘 벨리의 자본과 인적 인프라를 이용한 회사들이죠. 그들의 창업자를 보면 연배가 비슷하고 태생지도 그쪽에서 나오거든요. 최태성: 포르투갈 리스본이 대항해의 플랫폼이죠. 마스쿠 다 가마가 왔다갔다한 그런 곳이에요. 이시원: 이런 거 같애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가 아니라 친구 따라 신대륙간다. 허준: 정말 맹자 엄마가 대단하신 게 주변이 어떠냐에 따라서 많이 바뀌는 거잖아요. 콜럼버스 주변에 마스쿠 다 가마라든지 마르코 폴로 이야기를 읽었으니까 이런 걸 했지~ 예를 들어서 주변에 누가 코인해서 잘 됐다더라 그러면 코인하는 거에요. 이시원: 콜럼버스가 이탈리아에서 자랐는데 포르투갈까지 가 가지고 갑자기 말을 하는 게 신기하거든요. 김대륜: 콜럼버스는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으니까 주로 독학으로 책을 통해서 모든 걸 익혔습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지적인 욕구가 강했던 모양이에요. 당시에는 책이란 게 비싼 물건이었거든요. 인쇄술이 발달되었기 전이었기 때문에 책 한 권 가격이 지금으로 따지면 50만원 이었고 50만원이 넘는 고가의 책들을 콜럼버스가 구입했고 그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시원: 굉장한 열정 청년이네요. 요즘 우리 세대로 하면 혼자서 영어 공부해서 내가 한번 세계를 제패해보겠다 라는 그런 느낌이에요. 김대륜: 언어만 공부한게 아니라 천문학, 지리학 등을 하게 되고 또 콜럼버스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여행기입니다. 최원정: 신항로를 개척한다는 게 근거리 항해와는 다른 거잖아요. 지식이 많이 쌓여야 내 목숨도 지킬 수 있는 건데 콜럼버스의 운명을 좌우했던 공부법을 오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광용/아나운서: 여러분, 2022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수능이 이제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 맘 때면 나~ 어떡하지~ 공부 안 했는데 어떡 하지~ 하지~ 너무 공감하는 표정이에요. 지금 그래서 수능특집으로 특별한 분(김도윤/작가)을 모셨습니다. 역대 수능 만점자 30명을 최초 인터뷰해서 책을 낸 김도윤 작가입니다. 이광용: 작가님, 웬지 수능 만점자들은 눈빛부터 다르지 않나요? 김도윤: 이 친구들이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 공부가 가장 좋았어요 그렇게 해서 수능을 만점 받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는데~ 보통이라고 말한 친구가 36%가 되고요. 이광용: 좋아하지 않았는데 잘 한다는 게 핵심인데~ 사실 10대 후반에 그 친구들은 그 분야에서 1등을 한 거잖아요. 학교 공부를 솔직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하고 싶었던 분들 계셨나요? 다들 하기 싫어할 때 해야 하는 일을 한 친구들이란 말에요. 논법은 다르지 않았지만 나이는 측정할 수 없었다. 최태성: 자기를 절제하고 억제하는 것들을 스스로 아는 거죠. 이광용: 오늘 아이템 콜럼버스~ 오늘은 수능특집으로! 지금 수능 D-5이니까 수능 만점자들이 이거는 꼭 하더라~ 김도윤: 사실 많이 있는데 시간상~ 하나만 얘기하자면~ 단권화 라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 안에 교재나 문제집에 자신이 알고 있었는 데 모른 거라든가 추가로 알아야 될 것들을 요약해 놓는다라는 건데 실제로 제가 말씀을 드리면 많은 분들은 수능 만점자가 노트 필기를 열심히 했을 것이고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실 거잖아요. 노트를 필기한 사람은 실제 16.7% 밖에 안돼요. 필기를 하더라도 어디다 하느냐면 교재~ 이광용: 이거는 꼭 하더라~ 김도윤: 자기가 수업을 듣고 있는 교과서에다 필기 교재에다 선생님 말씀하신 것 중에 모르는 것 알아야 될 것만 추가로 적는 거죠. 이 단권화가 어떻게 좋은가 하면 우리가 문제집을 풀 때 한 권만 풀지 않잖아요. 수권에서 수십권 정도를 푸는데 사실 우리가 복습할 과정이 필요한데 그걸 다 볼려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거죠. 한 권의 교재 풀면서 모르는 거 다른 교과서에서 모르는 걸 모우다 보니까 복습시간이 굉장히 효율적인 거죠. 이광용: 한 권에 다 담는 거군요. 최태성: 제가 지금 이게 제 책인데요. 여기에 약점 단권화 노트라고 있어요. 진짜 요거예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시간을 좀 줄이기 위해서 이런 약점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거에요. 김도윤: 선생님이 이 시간 조차도 자기 교재를 홍보하시네. 오늘의 주제인 콜럼버스도 이 단권화를 했다는 거죠 (방대한 문장 등장). 콜럼버스기 읽었던 피에르 다이이의 이마고 문디의 내용인데요. 가운데 있는 부분이 교과서에 있는 본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마고 문디(1410)-프랑스 신학자 피에르 다이이가 저술한 책 천문 및 지리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음). 이광용: 잠깐만요 가장 자리에 있는 것은~ 김도윤: 본문 보다 더 많아 보이는 콜럼버스의 주석들입니다. 허준: 주석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김도윤: 이마고 문디에 콜럼버스가 단 주석이 898개 입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독학으로 고급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던 거는 단권화가 큰 역할! 이시원: 저 정도 주석을 달면 속편을 써도 되는 수준아닌가요. 이광용: 주석이 거의 책 한 권이에요. 그런데 콜럼버스가 특히 어떤 내용에 주목을 했을까요? 김도윤: 콜럼버스가 주목한 것은 지구는 둥굴다 그리고 지구는 생각보다 작다 라는 내용이 있고 특히 지구의 7분의 1이 대륙, 그리고 7분의 1이 바다라고 나온 부분에 공감하면서 많은 주석을 달았다고 합니다. 이광용: 잠깐만~ 거기서 공감을 하면 안 돼죠! 김도윤: 사실은 거기에 반대죠. 단권화 교재 선택시 정규 교과과정이 고르게 담겨 있는지 확인 최태성: 그래서 제 교재가 잘 나갑니다. 이광용: (홍보차단) 역사는 큰 별 쌤이지만 큰 별 쌤만 믿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방송에서도 크로스체크 더블체크 이거 꼭 해야 되거든요. 어느 하나의 정보만으로 일반화를 시키다 보면 틀릴 수가 있어요. 김도윤: 왜냐면 사실 콜럼버스가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바로 바다와 육지의 비율을 정확하게 쓴 책들이 있었거든요. 콜럼버스가 잘못된 내용들만 보고 공부를 해나갔던 거죠. 이광용: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5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수험생들을 위해서 전문가 입장에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도윤: 첫번째는 이제 남은 날이 5일이잖아요. 여기서 뭔가 더 알려고 더 풀려고 제발 하지 마세요. 지금은 더 늘려가는 과정이 아니라 더 줄여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러니 본인이 틀렸던 예전문제들을 복습한다고 생각하면 되고요. 두번째는 수능시험이라는 게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것 보다 훨씬 더 떨리잖아요. 그러면 우황청심환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은 그날 처음으로 청심환을 먹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황청심환을 평소에 한번도 안 먹었는데 먹는 건데 먹었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줄을 몰라요. 김도윤: 수능 시험장에서는 실전 테스트만 끝난 것만 해야 된다. 이광용: 진짜 꿀팁이네요. 하던대로~수능시험 치르는 수험생들 파이팅! 이고요. 지금까지 콜럼버스 시험을 치르고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들을 수능버스로 환승시킨 김도윤 작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원정: 비록 잘못된 정보를 얻긴 했지만 혼자 공부해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건 대단한 거네요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죠. 최태성: 호기심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애요. 호기심에 입각해 가지고 열공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김동환: 콜럼버스를 우리가 모험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대판으로 보면 벤처기업가로 볼 수도 있죠. 모험 자본을 가지고 신대륙에 가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람이니까요. 제 주변에 벤처기업가가 큰 투자를 성공적으로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하면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이분들은 정보에 민감하다는 거예요. 콜럼버스가 그 때만 하더라도 인도로 갈려면 쭉 동쪽으로 갈려고 생각했는데 포르투갈 도선사가 뭘 보여 준거예요. 나무 조각으로 된 것을 거기에 문양을 보니까 유럽에서 만든 것 같은 게 아닌 거죠. 그리고 바람이나 파도를 봤을 때 이건 서쪽에서 왔을 것이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서항로를 개척하겠다 라고 생각을 했다는 거죠. 이건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성이죠. 그게 사실은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시작,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는 거죠. 최태성: 그래서 드디어 역사적 만남, 1485년에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를 만납니다. 당시 포르투갈에는 유명한 수학자 항해사들이 많찮아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모아 가지고 특별위원회를 만듭니다. 콜럼버스의 의견을 검토 좀 해봐달라 특별위원회 검토결과는 불가능~ 최원정: 거절 당한 거예요? 최태성: 네~ 이시원: 제가 초등학교 때 읽은 그 당시의 전기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지구가 둥근게 아니라 바다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혹시 실패한 건가요? 김대륜: 그거는 잘못된 정보고요. 워싱턴 어빙이 지어낸 내용이구요.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다 알고 있었죠. 허준: 콜럼버스하면 우리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하는 혁신은 달걀 한번 세워봐라 탁 깨어가지고 세우니까 그건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 누구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지~ 그걸 실행한 게 바로 나야. 김대륜; 그것도 지어 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야기는 16세기에 콜럼버스가 죽은 이후에 한참 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똑 같은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도 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조르조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 (1550) 이라는 책에서 이탈리아의 건축가 브루넬레 스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똑같이 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도 지어낸 가능성이 높지만 기본적으로 콜럼버스기 명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겠죠. 최원정: 그런데 당시 좋은 얘기들로 콜럼버스는 영웅화가 되었네요. 포르투갈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왜 거절을 한 거죠? 김대륜: 콜럼버스가 기본적으로 독학으로 익힌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완전하지 못했던 거죠.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구의 7분의 1만이 바다이다 항해거리를 짧게 밖에 할 수 없는 거죠. 서쪽으로 갔을 때 유럽에서 중국까지 5680km 정도 가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제 거리의 3분의 1 밖에 안 되는 것이거든요.(스페인-중국(17075.44km). 그러니까 특별위원회가 생각할 때도 너무 짧은 거리다 생각을 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불가능 하다고 판단을 내린 거죠. 최태성: 저는 이쯤되면 포르투갈이 나름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애요. 앞에서 이야기 했잖아요. 대항해 시대 1편에서 막연한 바다의 공포 속에서도 물이 막 끓고 있어 하지만 도전하잖아요. 이쯤되면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되니까 콜럼버스가 이야기 한 것에 굳이 계산법도 아주 이상했고 여기다 도박을 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애요. 허준: 근데 나중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잖아요. 그때 분명히 찬성한 사람도 포르투갈에 있었을 것 같애요. 거봐요 내가 투자하자 했잖아요. 반대한 사람 다 나오라고 그래요. 최원정: 주식 할 때 자주 투자하라고 할 때 살 걸~ 김동환: 근데 그런 거 같애요. 그때 당시 포르투갈은 인도로 간 항로를 개척한 아주 좋은 찬스를잡았고 그걸 가지고 굉장히 융성한 나라였기 때문에 기득권이 있었죠.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굳이 내가 왜? 대체로 투자의 세계, 기업을 운영하는 스토리를 보면 그런 걸 놓쳐서 땅을 치는 케이스들이 나오 거든요. 여러분, 핸드폰 보면 안드로이드 OS있잖아요. 그 안드로이드 창업자가 우리나라 S사 핸드폰 만드는 대표에게 와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이걸 사지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죠. 이시원: 그때 그걸 샀어야 되는데~ 김동환: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개발한게 아니고 그 회사를 샀죠. 그래서 오늘날의 구글이 싯가총액이 2천조가 나간데요. 최태성: 안드로이드=콜럼버스? 김동환: 정말 잘 나가는 회사들은 M&A (기업합병) 시장에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우리가 흔히 쓰는 유튜브도 구글에서 산 거잖어요.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서 산 거고~ 그러니까 그런 시너지가 창출되는 좋은 투자를 M&A를 통해서 획득하고 기업의 부가가치를 크게 만드는 유용한 수단으로 쓰죠. 아마도 당시의 포르투갈은 그런 측면에서 콜럼버스 라는 엄청난 기회를~ 최원정: 그때 포르투갈이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고 후원을 했더라면 세계역사가 달라졌을까요? 허준: 그런 의미에서 소장님, 뭐 좀 살까요? 일동: 웃음~ 김동환: 고급 정보는 방송 끝나고~ 최원정: 절대 얘기 안 하신다~포르투갈에게 거절은 당했지만 콜럼버스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대서양 진출이 간절했던 또 다른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스페인입니다. 해설: 일년 내내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 플라멩고와 투우, 그리고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들까지 화려하게 이색적인 볼거리가 가득한 이 나라에 유독 눈길을 사로 잡는 성이 있습니다. 바로 그라나다에 위치한 알람브라 궁전,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성이 가톨릭의 중심지 스페인에 지어진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음악-알람브라 궁전의 추억-플나시스코 타레가). 최원정: 음악 감상의 시간도 있고 좋네~ 이시원: 음악도 아름답고 궁전도 아름답고~ 최원정: 저기 이슬람 문화가 섞여 있어서 알람브라 궁전이 더 돋보이는 것 같애요. 독특하잖아요. 우리 알람브라 궁전하니까 추억이 있으신 분이 있잖아요(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시원씨가 아니 현빈씨 한테 왜 그러셨어요? 이시원(당시 현빈 前부인役):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그때의 추억~) 허준: (기억 난다!) 그땐 이런 이미지 아니었어! 이시원: 그땐 어떤 이미지였는데요? 저는 사실은 실제 현지 촬영을 그라나다가 아니고 바르셀로나에서 하기로 했는데~ 스페인에 이슬람 문화가 녹아 있는게 너무나 좋아가지고~갔었거든요. 그런데 갈 때마다 이게 이슬람 문화가 왜 여기 스페인에서 보이는 거지 항상 궁금 했어요. 최태성: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그 지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정복당했기 때문에~ 무려 718~1492년까지 약 800년간이나, 그러니 당연히 이슬람의 문화흔적이 남아 있게 되는 거죠. 스페인 사람들은 무려 8~15세기에 걸쳐서 이슬람 교도에게 정복당했던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하기 위해서 전쟁을 계속 이어가던 중이었어요. 이걸 뭐라고 하냐면 레콩키스타라고 합니다. 국토재정복 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 축출을 위해 붙인 국토재정복 운동). 몇 백년 동안 전개하는데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처음 찾아 갔을 때가 어떤 단계 였느냐면 마지막 남은 곳이 그라나다 하나 남아 있는 막바지 단계였거든요. 이시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가톨릭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문 앞에 있는 거네요. 허준: 놀라운 건 아직은 아니라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회사가 어디에 지금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걸 만약에 투자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 하는 상상만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콜럼버스가 이걸 제대로 밀면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를 열 것이고 나는 여기 가서 브리핑을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이건 엄청난 선견지명인데요. 김대륜: 콜럼버스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굉장히 미묘한 관계는 맞거든요. 14세기부터 아프리카 연안의 몇 개 섬들을 두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경쟁관계가 있었죠. 콜럼버스 처지에서는 포르투갈이 이미 아프리카를 타고 내려가는 항로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조바심을 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는 있었겠죠. 이시원: 그렇다면 일단 운이 얻어 걸린 계기네요. 지금 타이밍도 그렇고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김동환: 저는 꼭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데요. 나라를 넘어서 정부에 왕에게 가서 자기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거잖아요. 벤처는 그냥 사업계획서만 가지고 있는 거거든요. 난 기술이 있고 이 기술을 어떻게 개발해서 어떻게 상업화해서 큰 돈을 벌 테니까 나한테 투자해 달라고 하는 건데~ 그 프리젠테이션을 얼마나 잘 했을까 ---------------이광용: 여러분, 오늘 정말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께 대박의 기회를 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콜럼버스 대서양 항로개척 사업설명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동: 박수~ 오늘 콜럼버스 선생님께서 직접 오셨는데요. 우리 말이 좀 서툴러서 제가 대신 여러분께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노바 출신 -포르투갈 유학파 -이마도 문디 완독 -마르코 폴로 여행기 섭렵 -항해 자격증 다수 보류 -서항로 최고 권위자 이광용: 여러분께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원정: 그런데 저분 포르투갈에서 거절 당한 그 사람인 거 같은데요. 이광용: 잠깐만~ 거절당했다니~ 지금 포르투갈이 부자가 될 절호의 기회를 자기 발로 걷어찼다는 거 아세요. 모두 아시다시피 지구는 둥글어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는 게 아니라 스페인에서 배를 띄워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 후추와 금이 차고 넘치는 인도에 도착한다는 거죠. 허준: 둥그니까 삥 돌면~ 이광용: 아니 서쪽으로 가면 인도가 나온다는 거 아닙니까? 허준: 아니 저기 포르투갈에서 보니까 희망봉까지 가는데 80년 걸렸다는 데 뺑 돌아서 가면 늙어 죽어요. 이시원: 내가 살아 생전에 금과 후추는 못 보겠구나 이광용: 자, 이 분이 누굽니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선생님이에요. 이분은 차원을 달리하시는 분입니다. 이 지도를 보세요. 이게 무슨 지도냐 이탈리아 지도입니다.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토스카넬리(1397~1482)께서 만든 지도입니다. 이쪽이 스페인이에요.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그러면 여기 뭐라고 되어 있어, 지팡구 영어로 Japan 여기서 바로 엎어지니까 일본으로 가네. 이게 며칠 걸리냐 우리 콜럼버스 선생님의 계산법에 따르면 5주 만에 아시아에 도착합니다. 최태성: 지도가 정확하긴 한 거야? 이시원: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가까운 것도 가까운 거지만 아무것도 없어요. 너무 휑해요. 이광용: 당연히 휑하죠. 아무 것도 없어요.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가 나오는 거예요. 지금은 15세기예요. 유럽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미래에서 오셨습니까? 여러분께서 믿고 맡겨 주시면~ 여기 있는 콜럼버스 선생님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여러분께 안겨드릴 것입니다. 아시아로 항해하는 이 서항로 개척사업에 투자하시고 인생역전 한번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허준: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광용: 잠깐만요~ 매진임박이라구요. 시간 관계상 제 설명은 여기서 마치고요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1544-콜럼버스로 전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펼쳐집니다. 누구와 함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함께! 고맙습니다. 콜럼버스(서양인 代役): (모자벗고 말 없이) 함께 해요! 최원정: 어떠세요, 여러분은? 최태성: 본인은 토스카넬리 지도, 그리고 실력있는 항해사, 저 정도면 한번 항해에 투자해 볼 만 할 것 같애요. 이시원: 이거 투자를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근데 돈 빌리는 사람보다 돈 벌게 해준다는 사람이 더 무섭다던데~ 겁나는데요. 최원정: 저는 김동환 소장님이 투자하시면 전 할게요, 하시겠어요? 김동환: 당연히 하죠! 결과를 아는데! 그런데 이게 사실 벤처투자 같은 거거든요. 모험자본이라고도 하는데 한 종목 한 회사 한 프로젝트에 내 돈에 올인하는 거는 정말 위험한 거지요. 근데 아마 당시 스페인에서도 콜럼버스한테만 투자하지를 않았을걸요.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 여러군데에 투자를 했을 거예요. 근데 보세요. 이거는 성공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한 스무군데 투자했다고 해요. 열아홉 군데가 망해도 콜럼버스 성공만으로 다 보상받고도 더 벌 수 있는 프로젝트란 말예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만들고 또 뭐를 만들었죠? 일동: 스페이스 엑스! 김동환: 화성간다는 거잖아요. 처음에 얘기했을 때 저거 나사가 할 일을 왜??~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일론 머스크의 말을 믿고 스페이스 엑스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이미 대박이죠. 그게 테슬라에 반영이 되어있기도 하고 화성에 간다는 게 이제는 꿈 같은 일로 안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시원: 소장님, 그럼 지금이라도 테슬라에 들어가야 되나요? 김동환: 거참 최원정: 오늘 뭔가 하나는 주고 가세요! 김동환: 방송국에서 만드는 분은 정말 똑 같은 거 같애요. 지금 들어가요 마요? 최태성; 화성 이야기 했을 때 제가 머스크 기사를 봤거든요. 너무~ 최원정: 약간 사기꾼 같잖아요. 콜럼버스도 그렇고~ 최태성: 콜럼버스=일론 머스크, 똑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애요. 사실 당시 콜럼버스가 이런 얘기 했을 때 아까 우리 봤잖아요. 포르투갈 특별위원회에서는 거부 했잖아요. 스페인 신하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그라나다와 전쟁이 막바지에 와있기 때문에 전쟁은 재정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재정을 또 써? 고민이 됐던 거예요. 그런데 1492년 1월에 드디어 레콩키스타 국토재정복운동,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전쟁이 완전히 종료가 된 상황이 된 거예요. 고민 끝에 이사벨라 여왕은 투자를 결심합니다. 이시원: 지금으로 치면은 이사벨라 1세 여왕은 엔젤 투자가잖아요.. 최태성; 포르투갈에는 엔히크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이사벨라가 있는 거죠. 이시원: 그런데 이사벨라 여왕은 왜 어떻게 보면 허무 맹랑한 것일 수도 있는데 콜럼버스의 주장에 따른 거지요? 최태성: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스페인이 국토재정복운동 소위 말하는 레콩키스타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구요. 또 다른 한편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사벨라 여왕이 자기 돈을 들인 것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스페인의 한 도시가 자본을 전담합니다. 최원정: 왕실재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김대륜: 왕실 재정이 아닙니다. 이시원: 나도 내돈 아니니까 막 뿌릴 것 같애~ 최태성: 그러면 각서를 써야죠. 이게 유명한 산타페 각서라는 건데요 (산타페 각서(1492년 4월 17일)-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가 서명한 콜럼버스 1차 항해의 조건이 제시된 문서, 1. 성공하면 탐험대의 해군 제독으로 임명하겠다, 2, 콜럼버스를 신대륙의 부왕 겸 총독으로 임명한다, 3. 콜럼버스는 신대륙에서 획득한 금 은 등 광물의 1/10을 소유한다, 4. 신대륙과 스페인 사이 소송이 일어날 경우 콜럼버스기 재판장과 재판권을 갖는다, 5. 이 권리와 명예를 콜럼버스의 자손 대대로 물려받는다. 일동: 파격조건 이네요. 최원정: 이거 어떻게 줄 수 있죠? 김대륜: 다 받아들이죠. 놀랍게도 모두 수용한 이사벨라 1세, 이걸 다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별로 기대를 안 했다는 얘기입니다. 성공을 할 것이라고 자신을 할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 받아들입니다. 다 받아 주고 일단 콜럼버스가 성공을 하고 나니까 이게 상황이 복잡해 진 거죠. 나중에 계약조건을 두고 큰 다툼을 벌이게 돼서 실제로 자손들 대에 이르면 스페인 왕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게 됩니다. 이 소송이 18세기 중반까지 갑니다. 허준: 계약서는 잘 썼는데 약속을 안 지켰잖아요! 이시원: 이사벨라 여왕으로서는 설마 이게 되겠어~ 해볼만큼 해봐~ 근데 딱 된 거잖아요. 최태성: 이제 계약서 쓴단 말에요. 콜럼버스가 신났어 자기 사비를 보태가지고 범선 3척을 구합니다. 그 유명한 산타마리아 호입니다. 요 배가요 실제 크기는 23m이구요, 너비가 7,5m인데 느낌이 거의 테니스코트 크기에요. 혹시 여수 가보셨어요? 여수가면 거북선 있죠? 그 거북선 모형보다 작은 크기예요. 김동환: 그렇게 큰 배는 아닌데~! 김대륜: 지난 시간에 얘기했던 카라벨 배를 타고 간 거죠. 크지는 않고 기동력은 좋은~ 이시원: 그런데 저게 범선이잖아요. 바람을 이용해서 가는 배인데 대서양을 범선을 이용해서 건너기가 쉽지는 않을텐데~ 엔진도 없잖아요. 최원정: 나 같으면 저기 안타~ 허준: 요즘은 게임에서 많은 것들을 실제 역사를 토대로 해서 만들거든요. 어떻게 선원을 모집하느냐 하면 술집에서 모집해요. 딱 술을 삽니다. 술을 짝 사면 사람들이 우아~할 것 아녜요 나랑 같이 탐험갈 사람! 이렇게 간다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아무래도 술집에 모여 있는 사람이다 보니까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잖아요. 교수님, 이게 어느 정도는 맞죠? 김대륜: 실제로 선원을 모집하는데 굉장히 어려웠다고 그래요. 어려워서 처음에는 죄수들을 활용해 보려는 생각도 했다고 그러죠. 그래서 이사벨라 여왕이 이 배에 오르면 죄를 사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딱 4명이 지원했다고~ 이시원: 다들 감옥에서 살고 말지~ 김대륜: 실제로 한 항구도시에 가서 잘 알고 있던 어느 신부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겨우 겨우 선원을 구했는데 대부분의 선원들은 경험이 많은 선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딱 90명을 모아가지고 출발을 하죠. 해설: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 항을 떠나 아시아로 향한 콜럼버스 선단, 그러나 곧 아시아 대륙에 닿을 것이라는 부푼 꿈에 비해 항해는 쉽지 않았다. 콜럼버스의 처음 계산과는 달리 길어지는 항해와 열악한 뱃 생활에 선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폭동의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던 때 1492년 10월 12일 새벽, 저 멀리 드디어 육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최원정: 우리가 아까 우려했잖아요. 항로계산 오류가 문제 지금 나온 거예요. 이시원: 5주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망망대해야~ 이거 폭동이 일어나고도 남을 거예요. 최태성: 굉장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니까 콜럼버스가 이제 계산적으로 볼 때는 다 온 거 같은 데라고 이야기 하면서 동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하죠. 허준: 보통 우리가 음식 안 올 때 왜 이렇게 안 와요 하면 거의 다 도착했어요. 최태성: 어쨌던 간에 콜럼버스가 거짓말로 다 왔어~ 다 왔어~ 하면서 도착한 곳이 어딘가 하면 지금의 바하마 제도입니다 (바하마 연방-중앙 아메리카 카리브 해에 위치한 영국 연방의 섬나라). 아까 기억나요? 토스카넬리의 지도에 뭐가 없었죠? 아메리카 대륙이 없었잖아요. 없으니까 쭉 가니까 뭐가 나왔죠? 인도~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거예요. 지금 여기 원주민들이 나왔을 것 아닙니까? 야~ 이 사람들이 인도사람들이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때 그들을 뭐라고 불렀냐 하면 Indians 이라고 불렀죠. 거기서 인디안이 나온 것이죠. 이시원: 이거 분명히 진짜 였을까요. 그래도 사료를 통해서 많이 받고 전해들은 것도 있었을텐데~ 딱 봐도 누가 봐도 인도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인디안 이라고 생각했을까 최원정: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인도 변방의 어디 섬으로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이제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발견이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최태성: 다른 피부색, 언어 등 전에 본적이 없는 존재가 등장~ 이시원: 마치 지구를 찾은 외계인의 느낌~ 그때 굉장히 무서울 것 같애요. 진짜 중요한 거, 이 사람들이 과연 친구냐 적이냐 허준: 외계인 들어온 것을 가정하는 많은 영화들이 그 상상력을 발휘한 거잖아요. 지금 원주민들은 그 상황에 맞닥드린 거죠. 이시원: 그럼 원주민들이 그래도 조심스러우니까 경계를 했을 것 같은데~ 김동환: 그런데 여기서 이제 콜럼버스가 정말 잘 했던 것 같애요. 적의를 보이거나 그러지를 않고 갖고 갔던 유리 구슬과 모자를 선물로 줬다는 거죠 (1492년 10월 15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원주민에게 챙 없는 붉은 모자를 씌워주고 조그마한 녹색 유리구슬 몇 개를 꿰어 그의 팔에 걸어주었다). 원주민들이 봤을 때 이게 엄청 신기한 거예요. 처음 본 거고 이 안에 도대체 다른 세계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신기했을 거에요. 김대륜: 원주민 처지에서는 불행의 씨앗이라고 나중에 했을지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죠. 1492년 아메리카 문명과 유럽 문명이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굉장히 유순했다고 콜럼버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1492년 10월 15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내가 그들에게 칼을 보여 주었을 때 아무 것도 모른 채 칼날 쪽을 잡았다가 손을 베기도 했다). 칼을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자 아무 생각없이 칼날을 잡아서 손을 베었다. 그들은 무기를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멘트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한 50명 만으로도 이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시킬 수 있다. (1492년 10월 14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50명 만 동원하면 그들(원주민) 모두를 복종시킬 수 있고 또 뭐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라고 얘기를 하니까 굉장히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최원정: 우리가 시키면 저들은 뭐든지 한다 약간 비극의 전주 같은 게 오싹하게 느껴지는~ 최태성: 콜럼버스가 전쟁에 나간 거 아녜요. 콜럼버스는 돈 벌러 간 사람이니까 쭉 보니까 일단 딱 보여진 외모 속에서 보니까 코, 손 이쪽에 금~ 이걸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 본 지금 이거 금 어디있어? 원주민들이 남쪽으로 가면 되는데~ 그래 가지고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금을 찾으러 갑니다. 거기가 지금의 어디냐 하면 쿠바에요. 이시원: 근데 대단하다 포르투갈어도 독학으로 했는데 원주민 말도 금새 독학으로 습득했어요? 최태성: 어떻게 알아들었을까? 최태성; 보디 랭귀지로 다 돼요. 최원정: 그럼 한번 해보세요. 금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 주세요. 최태성: (이시원씨에게) 손가락으로 코 만지면서 어깨 으쓱~ 두 손으로 이시원: 코? 코? 아~ 병원! 최태성; 안 되네~ 허준: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줬잖아요. 그들은 온순하고 유순하고 적대적이지 않찮아요. 그러면 우리가 뭔가 주고 싶어 할 거 아녜요. 그러면 뭘 막 주면 그거 말고 손가락으로 코에 금 장식물을 가르키면서~ 그거~ 그거 저기 가면 많어 이렇게 하겠지~ 김대륜: 1493년 3월 15일에 다시 팔로스 항으로 되돌아옵니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나죠. 콜럼버스가 처음 와서 한 일은 이사벨라 1세(카스티야 왕) 여왕과 베르난도 2세 (아라곤 왕) 두 왕이 바르셀로나에 있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로 찾아가죠. 거기서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이광용: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철석 같이 믿었던 그 곳에서 심사숙고 끝에 챙겨온 물건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시원: 삼국시대 편에 왔던 이슬이 아닌가요? 이슬아~ 이슬아~안녕~ 언니 예뻐~ 이슬이(앵무새): 언니 예뻐~ 일동: (놀람) 오~오~ 이시원: (다시) 이슬아~ 언니 예뻐~ 이광용: 일단 스페인 국왕들이 그렇게 바라맞이 안았던 금과 은, 하지만 첫탕이라 그런지 양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선 볼 수 없었던 허브와 약초가 옆에 놓여 있습니다. 당시 유럽 에서는 앵무새를 볼 수가 없었죠. 그래서 이 녹색 앵무새를 콜럼버스가 데리고 다녔을 거 아네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엄청나게 환호를 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최원정: 지금 콜럼버스는 인도를 갔다 온 거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기대한 후추는 어디 있어요? 이광용: 인도가 아닌데 후추가 있겠어요 콜럼버스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여기가 뭔가 다른 신대륙이 맞습니다 라는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뭔가를 배에 실었습니다. 이슬이도 지금 궁금한 거예요. (인디안 원주민 3명 등장) 신대륙에서 만났던 원주민들 3명을 배에 실어서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김동환: 자기가 인도 갔다 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원주민들을 배에 태워서 왔다는 건데 본인 입장에서는 개운치 않네요. 최원정; 저 친구들 (원주민 세명)에게 우리 유럽여행 한번 같이 가 볼래 이러고 데려 오지는 않았을 거 아녜요. 당연히 강압적이었겠죠. 최태성: 중요한 거는 저 사람들을 바라봤을 유럽인들의 시선이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볼 때의 시선으로 봤을 거예요! 이광용: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낯선 땅에 와서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어요. 그 부분도 우리가 간구할 수 없는 부분이구요.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들을 콜럼버스가 싣고 와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스페인 국왕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겠습니까. 아~ 이 항해가 성공적이었구나. 내 투자가 틀리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각서를 썼잖아요. 콜럼버스와 산타페 각서의 내용대로 크리스토퍼 대양 제독 인도(신대륙)에서 발견된 섬들의 부왕이자 총독이라고 콜럼버스를 부르게 됩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후에 꽃길만 걸을 것 같던 콜럼버스, 정말 콜럼버스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졌을까요. 최원정: 콜럼버스가 원주민을 기념 챙겨오듯이 데려와서 유럽인들에게 소개했다는 것은 진짜 계속 마음이 불편하네요. 하여튼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저 순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일 것 같애요. 김대륜: 실제로 왕은 콜럼버스에게 평생 동안 연금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또 더 나아가서 왕의 문장 가운데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실제로 레온 왕국의 사자-문양, 카스티야 왕국의 성채-문양을 콜럼버스의 문장에 쓸 수 있게 합니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콜럼버스가 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콜럼버스가 제노바의 이름없는 선원으로 출발해서 스페인 귀족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겠죠. 최태성: 콜럼버스는 어떤 사람이냐면 인도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에요. 최초의 발견자 라고 이 당시의 사람들이 인정을 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어깨는 완전히 빵빵해 졌겠어요. 이시원: 선구자죠, 선구자~ 앵무새도 데려오고 사람도 데려오고 그러면 콜럼버스의 성공으로 유럽인들은 신대륙이 기회의 땅이라 생각을 해서 신대륙 광풍이 불었을 것 같애요. 최원정: 러쉬가 시작되었겠지요. 김동환: 어떻게 보면 돈맥, 금맥을 발견한 거죠. 새로운 큰 비즈니스를 발견한 거니까 지금 부터는 콜럼버스가 어떻게 하는 지를 보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는 생각은 다 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우리가 2000년대 초반 정말 정보통신 혁명이 엄청 일어나니까 그때는 닷컴 이런 것에 어마 어마한 돈이 거기로 몰렸잖아요. 그런데 사실 거기에 투자했던 분들 치고 제대로 회수한 분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최태성: 딱 듣고 들어간 순간 끝물이더라구요. 김동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엄청난 금맥을 발견한 거죠. 그런데 사실 콜럼버스 이후에 모든 대항해가들 탐험가들 다 성공 했을까요. 일동: 아니겠죠, 그건 아니죠. 김동환: 그렇죠, 그걸 잘 보는 정말 자격 있는 사람들만 비즈니스 모델에서 성공하고 거부가 되는거죠. 김대륜: 문제는 콜럼버스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아시아의 끝자락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말을 스페인의 국왕이나 귀족들이 믿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그 이후에 계속해서 항해를 떠나게 되는데 그 항해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죠. 그건 다음 번에 얘기를 해봐야 되겠습니다. To be continued~ 최태성: 다음 번 예고까지 해주셨어요. 최원정: 오늘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을 봤잖아요. 어떠셨는지? 허준: 콜럼버스 처럼 뭔가 나한테 주어졌을 때 주저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구나 그래서 기회가 오기만 하면 무조건 잡고 전진해야지 나는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돼요. 최원정: 그 동안 안 하고 있었어요? 허준: 좀 나태했어요. 최원정: 이제 알면서 긴장하세요. 허준: 귀찮아~ 김동환: 콜럼버스가 제안을 했을 때 이사벨 여왕이 그 제안을 받아 드리잖아요. 그건 정말 개방성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호방하게 개방할 수 있는 그런 문화, 그런 것들이 우리를 부국으로 이끌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최태성: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그 힘은 바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때 그 힘이 생긴다고 들었어요. 최원정; 다음 시간에는 모험과 도전의 상징이었던 콜럼버스의 항해가 어떻게 변질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KBS 역사저널 그날 335회 대항해 시대 [제2편] 콜럼버스,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다 에서 정리).
① 1492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넘어 새로운 항로를 찾아낸다. 그는 스페인에서 출항해 약 두 달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딛는다. 바다의 장벽을 만나 새로운 세계, 이 만남은 지금까지 세계질서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1492년부터 17세기까지 유럽으로 유입된 금의 양이 181t 이다. 금괴 하나가 1kg 이라고 하면 약18만개의 금괴가 새로 들어왔다. 막대한 금은이 신대륙으로부터 유럽 대륙으로 유입되었으니까 유럽경제의 fundamental 자체를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분기점 이다. 근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여러 대륙과 문명들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서로 교류하고 부딪히고 갈등하는 과정들을 이야기 하는데 콜럼버스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함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시작되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출신에다 포르투갈에서 항해술을 배웠고 스페인에서 지원 받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은 10월 둘째 주 월요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공휴일로 기념한다. ② 이탈리아 제노바는 지중해변에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항해와 무역에 익숙했던 곳이고 조선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제노바를 중심으로 해서 동서양 혹은 아프리카 이런 쪽의 물건들을 많이 들여오고 나가고 했던 기록을 갖고 있는데 각각 사고파는 화폐가 있었을텐데~ 거기에 이탈리아 화폐도 있었을 거고 혹은 동양의 화폐도 유통이 되었을 거다. 환전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지 않고 벤치에 앉아서 그 일을 했다. 은행이 Bank 라고 Bench에서 나왔다. 이탈리아어로 Banca(은행)가 탁자라는 뜻, 1476년 어느날 콜럼버스가 올랐던 제노바의 어느 상선이 사략선(私掠船)의 공격을 받았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사략선의 맹렬한 공격에 콜럼버스가 탔던 배는 침몰하고 그는 포르투갈의 어느 해안까지 떠밀려 왔다. 우연히 닿게 된 낯선 타국,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렸다. 운명적으로 신항로 개척을 하라고 해적들 만나고 포르투갈로 떠밀려갔다. 사략선은 사적으로 약탈을 하는 배다. 원래 무역을 하는 사람들한테 나라에서 공인을 해주었다. 사략선은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시에 적선을 공격할 권리를 받은 배다. 아직 해군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어선이나 무역선을 전함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사적으로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거기다가 대포를 싣고 돌아다니면서 적국의 배를 공격해서 재물을 취하기도 하였다.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1596)는 영국의 유명한 해적이었는데 나중에 제독이 되고 1581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당시 포르투갈 리스본은 대항해의 플랫폼이었다. 마스쿠 다 가마가 왔다갔다한 곳이다. 콜럼버스는 정규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고 주로 독학으로 책을 통해서 모든 걸 익혔다. 콜럼버스는 지적인 욕구가 강했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었기 전이었기 때문에 책 한 권 가격이 지금으로 따지면 50만원 이었고 50만원이 넘는 고가의 책들을 콜럼버스는 구입했고 열심히 읽었다. ③ 콜럼버스는 언어뿐만 아니라 천문학, 지리학 등도 공부했고 또 콜럼버스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여행기이다. 신항로 개척은 근거리 항해와는 다르다. 지식이 많이 쌓여야 내 목숨도 지킬 수 있는데 콜럼버스의 운명을 좌우했던 공부법을 알아보자. 콜럼버스기 읽었던 피에르 다이이의 이마고 문디의 내용이다. 이마고 문디(1410)는 프랑스 신학자 피에르 다이이가 저술한 책 천문 및 지리에 대한 책이다. 본문 보다 콜럼버스의 주석이 더 많다. 이마고 문디에 콜럼버스가 단 주석이 898개다. 콜럼버스는 독학으로 고급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굴다. 지구는 생각보다 작다. 지구의 7분의 1이 대륙, 7분의 1이 바다라고 나온 부분에 공감하면서 많은 주석을 달았다. 사실 콜럼버스가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바로 바다와 육지의 비율을 정확하게 쓴 책들이 있었다. 콜럼버스는 잘못된 내용들만 보고 공부를 해나갔다. 잘못된 정보를 얻긴 했지만 혼자 공부해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건 대단한 집념이다. 호기심이 정말 많았다. 열공한 사람이다. ④ 콜럼버스를 모험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대판으로 보면 벤처기업가로 볼 수도 있다. 모험 자본을 가지고 신대륙에 가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람이다. 벤처 기업가들의 공통점은 정보에 민감하다. 콜럼버스는 인도로 갈려고 생각했는데 포르투갈 도선사가 뭘 보여 주었다. 유럽에서 만든 게 아니고 바람이나 파도를 봤을 때 이건 서쪽에서 왔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서항로를 개척하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성, 그게 사실은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시작,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드디어 1485년에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를 만난다. 당시 포르투갈에는 유명한 수학자 항해사들이 많았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모아 가지고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콜럼버스의 의견을 검토결과는 불가능하였다. 콜럼버스가 기본적으로 독학으로 익힌 지식이 완전하지 못했다. 지구의 7분의 1만이 바다이다. 항해거리를 짧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서쪽으로 갔을 때 유럽에서 중국까지 5680km 정도 가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제 거리의 3분의 1 밖에 안 되었다. 특별위원회가 생각할 때도 너무 짧은 거리다. 그래서 불가능 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포르투갈은 자신감을 가졌다.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 1편에서 보면, 막연한 바다의 공포 속에서도 도전하여 항해지식을 많이 쌓았다. 어느 정도 파악이 되니까 콜럼버스의 계산법도 이상했고 도박을 걸 필요가 없었다. ⑤ 근데 나중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였다. 당시 포르투갈은 인도로 간 항로를 개척한 나라였고 그걸 가지고 융성한 나라가 되었고 기득권이 있었다. 콜럼버스가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투자의 세계, 기업을 운영하는 스토리를 보면 그런 걸 놓쳐서 땅을 치는 경우들이 나온다. 핸드폰 보면 안드로이드 OS가 있다. 그 안드로이드 창업자가 우리나라 S사 핸드폰 만드는 대표에게 와서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사지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구글이 안드로이드 회사를 샀다. 오늘날 구글이 싯가총액이 2천조가 나간다. 안드로이드=콜럼버스, 잘 나가는 회사들은 M&A (기업합병) 시장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유튜브는 구글에서 산 거고,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서 산 거다. 시너지가 창출되는 좋은 투자는 M&A를 통해서 획득되고 기업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유용한 수단이다. 당시의 포르투갈은 그런 측면에서 콜럼버스 라는 엄청난 기회를 놓쳤다. 그때 포르투갈이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고 후원을 했더라면 세계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포르투갈에게 거절은 당했지만 콜럼버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왜냐면 대서양 진출이 간절했던 다른 국가가 있었다. 바로 스페인이다. 무려 718~1492년까지 약 800년간이나, 스페인 사람들은 이슬람 교도에게 정복당했던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하기 위해서 전쟁을 계속 이어가던 중이었다. 이걸 레콩키스타, 국토재정복 운동이라 부른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에 처음 찾아 갔을 때가 마지막 남은 곳이 그라나다 단계였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가톨릭 국가를 재건할 수 있는 직전이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미묘한 관계는 맞다. 14세기부터 아프리카 연안의 몇 개 섬들을 두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경쟁관계였다. 콜럼버스 처지에서는 포르투갈이 이미 아프리카를 타고 내려가는 항로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조바심을 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⑥ 콜럼버스가 왕에게 가서 자기의 사업계획을 발표하였다. 벤처는 사업계획서만 가지고 있다. 난 기술이 있고 이 기술을 개발해서 상업화해서 큰 돈을 벌 테니까 나한테 투자해 달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노바 출신, 포르투갈 유학파, 이마도 문디 완독, 마르코 폴로 여행기 섭렵, 항해 자격증 다수 보류, 서항로 최고 권위자, 스페인에서 배를 띄워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 후추와 금이 차고 넘치는 인도에 도착한다. 포르투갈에서 희망봉까지 가는데 80년 걸렸다.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토스카넬리(1397~1482)께서 만든 지도다.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지팡구 영어로 Japan 일본이다. 콜럼버스의 계산법에 따르면 5주 만에 아시아에 도착한다. 유럽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콜럼버스는 투자하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안겨드리겠다고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이게 벤처투자다. 모험자본이다. 한 종목 한 회사 한 프로젝트에 내 돈에 올인하는 거는 위험하다. 아마 당시 스페인에서도 콜럼버스한테만 투자하지를 않았을거다.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 여러군데에 투자를 했을 거다. 이거는 성공하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거다. 한 스무군데 투자했다고 하자. 열아홉 군데가 망해도 콜럼버스 성공만으로 다 보상받고도 더 벌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를 만들고 스페이스도 엑스 만들었다. 화성간다는 거다. 처음에 얘기했을 때 저거 나사가 할 일을 했다. 그때 일론 머스크의 말을 믿고 스페이스 엑스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이미 대박이다. 화성에 간다는 게 이제는 꿈 같은 일로 안 느껴진다. 화성 이야기 했을 때 사기꾼 같았다. 콜럼버스도 그렇다, 콜럼버스=일론 머스크, 똑 같은 느낌이다. ⑦ 당시 콜럼버스가 이런 얘기 했을 때 포르투갈 특별위원회에서는 거부 했다. 스페인 왕의 신하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그라나다와 전쟁이 막바지에 와있기 때문에 전쟁은 재정이 많이 들어간다. 고민이 됐다. 그런데 1492년 1월에 드디어 레콩키스타 국토재정복운동,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전쟁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고민 끝에 이사벨라 여왕은 투자를 결심한다. 포르투갈에 엔히크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이사벨라가 있다. 그런데 이사벨라 여왕은 어떻게 보면 허무 맹랑한 것일 수도 있는데 콜럼버스의 주장에 따랐다. 여기에 두가지 원인이 있다. 스페인이 국토재정복운동 소위 말하는 레콩키스타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사벨라 여왕이 자기 돈을 들인 것이 아니란다. 실제로 물주는 스페인의 한 도시가 자본을 전담했다. 그러면 각서를 써야한다. 유명한 산타페 각서다. 1492년 4월 17일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가 콜럼버스 1차 항해의 조건이 제시된 문서에 서명했다. 1. 성공하면 탐험대의 해군 제독으로 임명하겠다, 2, 콜럼버스를 신대륙의 부왕 겸 총독으로 임명한다, 3. 콜럼버스는 신대륙에서 획득한 금 은 등 광물의 1/10을 소유한다, 4. 신대륙과 스페인 사이 소송이 일어날 경우 콜럼버스가 재판장과 재판권을 갖는다, 5. 이 권리와 명예를 콜럼버스의 자손 대대로 물려받는다. 파격조건이다. 다 받아들인다. 놀랍게도 모두 수용한 이사벨라 1세, 이걸 다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별로 기대를 안 했다는 얘기다. 미지의 세계라 성공을 할 것이라고 자신을 할 사항이 아니었다. 다 받아 주고 일단 콜럼버스가 성공을 하고 나니까 이게 상황이 복잡해졌다. 나중에 계약조건을 두고 큰 다툼을 벌이게 돼서 실제로 자손들 대에 이르면 스페인 왕실을 대상으로 소송을 하게 된다. 이 소송이 18세기 중반까지 갔다. 이제 계약서 쓰고나서 콜럼버스가 사비를 보태가지고 범선 3척을 구한다. 그 유명한 산타마리아 호다. 배는 실제 크기는 23m이구, 너비가 7,5m이다. 여수 가면 거북선 모형보다 작은 크기라고 한다. 카라벨 배다. 크지는 않고 기동력은 좋다. 그런데 범선이다. 바람을 이용해서 가는 배인데 대서양을 범선을 이용해서 건너기가 쉽지는 않았다. ⑧ 실제로 선원모집하는데 어려웠다. 처음에는 죄수들을 활용해 보려고 했다. 이사벨라 여왕이 이 배에 오르면 죄를 사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4명이 지원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한 항구도시에 가서 잘 알고 있던 어느 신부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겨우 겨우 선원을 구했는데 대부분의 선원들은 경험이 많은 선원들이었다. 90명을 모아가지고 출발하였다. 1492년 8월 3일, 스페인 팔로스 항을 떠나 아시아로 향한 콜럼버스 선단, 곧 아시아 대륙에 닿을 것이라는 부푼 꿈에 비해 항해는 쉽지 않았다. 콜럼버스의 처음 계산과는 달리 길어지는 항해와 열악한 뱃 생활에 선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폭동의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던 때 1492년 10월 12일 새벽, 저 멀리 드디어 육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다. 도착한 곳이 지금의 바하마 제도다 (바하마 연방-중앙 아메리카 카리브 해에 위치한 영국 연방의 섬나라). 토스카넬리의 지도에 의하면 아메리카 대륙은 없었다. 쭉 가니까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거다. 여기 원주민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인도사람들이겠다 생각을 하고 그들을 Indians 이라고 불렀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인도 변방의 어디 섬으로 생각을 했겠다. 그런데 콜럼버스 입장에서는 발견이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다른 피부색, 언어 등 전에 본적이 없는 존재가 등장하였다. 마치 지구를 찾은 외계인의 느낌, 그때 굉장히 무서울 것 같았다. 진짜 중요한 거는 이 사람들이 친구냐 적이냐. 여기서 콜럼버스가 정말 잘 했다. 적의를 보이거나 그러지를 않고 갖고 갔던 유리 구슬과 모자를 선물로 줬다. (1492년 10월 15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원주민에게 챙 없는 붉은 모자를 씌워주고 조그마한 녹색 유리구슬 몇 개를 꿰어 그의 팔에 걸어주었다). 원주민들이 봤을 때 이게 엄청 신기한 거다. 처음 본 거고 이 안에 도대체 다른 세계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신기했을 거다. 원주민 처지에서는 불행의 씨앗이라고 나중에 했을지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다. 1492년 아메리카 문명과 유럽 문명이 처음으로 만난 순간이다. 원주민들은 굉장히 유순했다고 콜럼버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1492년 10월 15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내가 그들에게 칼을 보여 주었을 때 아무 것도 모른 채 칼날 쪽을 잡았다가 손을 베기도 했다). 칼을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자 아무 생각없이 칼날을 잡아서 손을 베었다. 그들은 무기를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멘트가 의미심장하다. 한 50명 만으로도 이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시킬 수 있다. (1492년 10월 14일 콜럼버스 1차 항해일지中-50명만 동원하면 그들(원주민) 모두를 복종시킬 수 있고 또 뭐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라고 얘기를 하니까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⑨ 콜럼버스는 전쟁하러 나간 게 아니고 돈 벌러 간 사람이다. 원주민들의 외모 속에 코, 손에 금을 갖고 있다. 물어 보니까 남쪽으로 가면 되는데 거기가 지금의 쿠바다. 1493년 3월 15일에 다시 팔로스 항으로 되돌아왔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콜럼버스가 처음 와서 한 일은 이사벨라 1세(카스티야 왕) 여왕과 베르난도 2세 (아라곤 왕) 두 왕이 바르셀로나에 있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로 찾아갔다. 거기서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철석 같이 믿었던 그 곳에서 심사숙고 끝에 챙겨온 물건들은 앵무새와 약초였다. 당시 앵무새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고 엄청나게 환호를 했다. 일단 스페인 국왕들이 그렇게 바라맞이 안았던 금과 은은 첫탕이라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콜럼버스는 인도를 갔다 온 거로 생각하는데 모두가 기대한 후추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도가 아니라 후추가 없어서 콜럼버스가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신대륙이라는 걸 보여주기위해서 원주민 3명을 배에 실어서 데리고 왔다. 자기가 인도 갔다 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스페인 국왕들은 이 항해가 성공적이었다. 내 투자가 틀리지 않았다 라고 생각을 했다. 콜럼버스와 산타페 각서의 내용대로 콜럼버스는 부왕이자 총독이 되었다. 왕은 콜럼버스에게 평생 연금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더 나아가서 왕의 문장 가운데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실제로 레온 왕국의 사자-문양, 카스티야 왕국의 성채-문양을 콜럼버스의 문장에 쓸 수 있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콜럼버스가 귀족의 일원이 되었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콜럼버스는 대서양 항해로 제노바의 이름없는 선원에서 스페인의 영광스러운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⑩ 콜럼버스는 최초로 인도를 발견한 사람이다. 당시의 사람들이 인정을 했다. 콜럼버스의 성공으로 유럽인들은 신대륙이 기회의 땅이라 생각을 했다. 신대륙 광풍에 러쉬가 시작되었다. 돈맥, 금맥 발견에 새로운 큰 비즈니스를 발견한 거다. 콜럼버스가 어떻게 하였는 지를 보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엄청난 금맥 발견이었다. 그런데 콜럼버스 이후에 모든 대항해가들 탐험가들이 다 성공 했을까. 그건 아니다. 그걸 잘 보는 자격 있는 사람들만 비즈니스 모험에서 성공하고 거부가 된다. 문제는 콜럼버스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아시아의 끝자락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말을 스페인의 국왕이나 귀족들이 믿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그 이후에 계속해서 항해를 떠나게 되는데 그 항해에서는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아드린 이사벨 여왕 개방성,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귀를 기울일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호방하게 개방할 수 있는 그런 문화 그런 것들이 우리를 부국으로 이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 힘이 생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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