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2)
3. 정조 효행 길과 겹치는 수원 백의종군길
8월 16일(수), 아침에 밖을 살피니 비가 그쳐 마음이 놓인다. 6시, 승합차에 가방을 올려놓고 숙소부근의 식당으로 향하였다. 전날저녁도 먹은 대중식당, 이른 시간인데도 찾는 이들이 제법 많다. 단골로 이용하는 듯.
식사 후 전날 도착지였던 안양시 동안구 갈산주민센터에 이르니 7시, 오늘은 대원 8명의 단출한 일행이다. 출발에 앞서 주민센터 앞의 전봇대에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라 새긴 스티커와 리본을 붙였다. 곧바로 2일차 대행군에 나선다. 잠시 후 안양교도소 옆을 지나 의왕시에 접어든다. 걷는 도중 틈틈이 적당한 곳에 백의종군길 리본을 거는 일로 손발이 분주하다.
갈산동주민센터에 붙은 스티커와 리본
촘촘히 들어선 아파트촌을 지나 중심가로 나오니 서울-수원 8차선의 대로가 나타난다. 지지대고개까지 밋밋한 오르막길의 바람결이 시원하다. 고개에 이르니 8시 40분. 프랑스 참전 기념비와 정조대왕상을 지나 걷는 효행공원의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효행공원 정자에서 잠시 휴식 후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장안로에서 만난 시 한 수가 반갑다. 김경은 시인이 쓴 행궁길 들꽃, 전문을 살펴본다.
행궁길 들꽃
돌담길 우체통에
빈 엽서 부쳐 놓고
어두움을 걸어 나와
승차권을 받은 하루!
설렌 적 많았다.
행궁길 걷다보면
마음결 오선지에
매달린 음표처럼
너와 나 하나 되어
들꽃을 피워보자
잔바람 부는 날엔
광장에 연을 띄워
팔달산 높이 올라
가슴 열고 날아 보자
숲길 벗어나 큰 성당과 높은 아파트 촌 지나니 서호천 개천 길로 들어선다. 전날 많은 비가 내린 탓인가, 수량이 넘치고 오리와 물고기가 떼 지어 노니는 모습이 한가롭다. 한데 모여 놀다가 일행을 보며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이 대행군의 장도를 축하하는 듯. 개천 길을 벗어나니 화산교, 우측으로 어기산 공원을 지나 10시 40분 쯤 서둔로 상점가에서 음료를 들며 숨을 고른다. 쉬는 동안 배준태 단장에게 걸려온 전화, 해군 OCS장교단 엡에 백의종군길 대행군에 대한 응원 글이 쇄도한다는 전언이다.(배 단장은 해군 제독 출신)
휴식 후 잠시 걸으니 꽤 유명한 오리전문음식점이 나타난다. 아침을 일찍 먹은 터라 그 집으로 들어가니 1시간 여 기다려야 한단다. 오래 기다리기는 무리, 근처의 추어탕전문점(어천추어탕)에서 점심을 들기로.
이른 점심을 들고 12시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숲이 울창한 서울대학교 수목원 길을 거쳐 좁은 길을 따라가니 다시 서호천에 이른다. 뚝방을 따라 걸으니 이순신 장군이 나룻배로 내를 건넜다는 배양리까지 제방공사 중, 비포장도로에 빗물이 고여 신발에 흙이 많이 들어붙는다. 새로 건설한 배양대교는 아직 개통하지 않은 듯. 다리를 건너자 반가운 인사가 일행을 맞는다. 예비역 해군장교인 정영화 교수, 배 단장과의 친분으로 이번 행사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오후 1시 반, 배양2리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순신이 백의종군길 수원에서 묵은 것으로 추정(수원에서는 부사의 수하 집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되는 옛 수원읍성(네거리 도로변에 기념물 제93호로 수원고읍성이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고 지금은 그 일대에 융건릉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지역을 거쳐 용주사로 향하였다. 2일차 목적지인 용주사에 도착하니 오후 2시 45분, 25.6km를 걸었다. 집행부의 의견, 3일차 행로가 30km가 넘는데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이기도 하니 내친김에 3~4km를 더 걸으면 좋겠다. 모두들 동의.
용주사에 도착한 일행, 핼멧을 쓴 이는 자전거를 타고 찾아온 정영화 교수
계속 걷기에 나서니 용주사 대로변에 걸린 현수막에 눈길이 간다. 용주사 주지는 파계승의 후예이니 유전자 검사에 응하고 주지 직에서 사퇴하라는 내용, 사회가 혼탁한 것도 안타까운데 등불이 되어야 할 종교계에 번진 이전투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용주사를 벗어나 잠시 걸으니 안녕리가 나타난다. 도로변에 안녕리의 유래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성의 안녕을 중요시한 정조가 이곳에 서린 안녕의 풍조를 가상히 여겨 마을 이름을 안녕으로 지어주었다는 내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핵 위협이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때 나라의 안전을 지킨 이순신 백의종군길에서 만나는 안녕의 의미가 뜻깊다.
40여분 걸으니 한신대학교 앞, 추가걷기를 이곳에서 마무리하였다. 시간은 오후 3시 40분, 총 29.5km를 걸었다. 이곳에서 승합차에 올라 병점역 앞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여장을 푼 후 서울에서 내려온 정영화 씨와 이른 저녁(메뉴는 감자탕)을 들고 2일차 일정을 무사히 끝냈다. 일행 모두 첫날의 폭우 속 강행군이 힘들었는데 2일차 행군이 순조로운 것을 기뻐하며 감사!
* 첫 숙소의 여주인이 친절하게 대해주어 감사하다. 비에 젖은 옷가지를 정성들여 세탁하고 잘 건조하여 준다. 음료와 커피도 성심으로 서비스 해주고. 선상규 회장이 호의에 감사하여 사례하려 하니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더라고 말한다.
4. 평택으로 가는 길에 만난 원균묘와 갈원(葛院)
8월 17일(목),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맑은 날씨다. 아침 6시, 숙소 인근의 식당(무지개 한식전문)에서 된장찌개로 아침을 들고 승합차에 올라 3일차 출발장소인 한신대학교 앞으로 향하였다. 오전 7시에 한신대학교를 출발, 오늘의 목적지는 평택이다. 아침걷기가 쾌적하다. 속도를 내어 걸으니 물향기수목원과 오산대학교 역을 거쳐 오전 9시 쯤 오산역에 이른다.
오산은 공군 비행장이 있는 곳, 해전으로 나라를 지킨 임진왜란 때와 달리 지금은 미사일과 핵, 전투기 등 공중전이 대세를 가른다. 전날 수원을 지날 때도 전투기의 굉음이 요란하였다. 이 소리를 들으며 장군의 소회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세 시간여 열심히 걸어 오산 시계를 벗어나 평택 시계로 접어든다. 오전 11시 좀 지나 진위면소재지에 도착, 면사무소 앞 깔끔한 식당(도원)의 점심 메뉴는 생고기 김치찜이다. 점심을 맛있게 들고 12시 15분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검은 구름이 드리우더니 빗방울이 떨어지다 이내 그친다. 두 개의 오르막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국립 사회복지대학교, 건물 안의 화장실을 이용한 후 시원한 음료와 냉수로 목을 축인 후 내쳐 걷는다. 10여분 걸으니 원균장군묘라 써 붙인 화살표가 눈에 띤다. 그 옆으로는 원주 원씨 세거비 표시가 있고. 이순신과 악연인 원균묘를 백의종군길에서 만나는 느낌이 묘하다. 이승의 인연은 이미 끝난 일,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현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살핀다. 오후 2시 15분 경 송탄동주민센터를 지나 잠시 걸으니 갈원(葛院)이라 표기된 쉼터에 이른다. 갈원은 관원들이 출장길에 묵었던 삼남대로의 중요거점, 인조가 이곳에서 옥관자를 붙이고 갔대서 옥관자정이라고 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새마을 가꾸기 사업용으로 시맨트 335포를 하사하여 준공하였다고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일행들은 충무공도 이곳에서 묵었겠다고 추측하기도.
평택은 평야지대, 짙푸른 논에 벼이삭이 튼실하고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다. 평안한 마음으로 행군하며 목적지인 평택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40분, 29km를 걸었다. 일행 모두 3일차 행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짬 모텔)에 돌아와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니 더위에 지친 피로가 가신다. 오후 5시 반, 인근의 식당에서 닭볶음탕으로 저녁을 들고 7시부터는 행로를 점검하는 회의를 갖는 등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듯한 일정이다. 푹 쉬고 내일 또 열심히 걷자.
오르막길 따라 평택으로 가는 발걸음
* 출발 전에 다친 늑골의 통증이 심하여 평택의 병원에 다녀왔다. 정형외과 의사는 크게 문제는 없으나 통증이 2주 정도 지속된다며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준다. 작은 상처도 고통스러운데 더 큰 고초를 겪는 이들의 처지를 체감하며 스스로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