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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 Christ (계1:9-10)
(요한계시록 1:9)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아멘.
8절까지 요한계시록의 서론이 끝나고, 요한은 본격적으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2장부터 써 내려갑니다. 그 전에, 1장 9절부터 20절가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요한은, 먼저 교회에게 자기의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를 가리켜,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이렇게 자기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요한의 소개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성도란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그런 말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모두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라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형제’라는 말과,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본문 9절에 있는 ‘예수의’라고 번역에 된, ‘엔 크리스토’라는 말은, ‘엔 크리스토’라는 말은 원래,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에요.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예수의 환란과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서, 인 크리스토’ 하면은, 생각나는 교리가 있죠?
바울 신학의 백미이죠? 그리스도와의 연합!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입니다.
여러분이‘유니온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성경 절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상당히 공감하기가 힘든 부분이지만, 이 유니온 크라이스트를 알지 않고는,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이 유니온 크라이스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그것으로 오늘 9절을 한 번 풀어봅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을 말씀하는 부분이있는데 한 군데만 보지요. 로마서 6장 3절입니다.
(로마서 6:3-5)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그러죠?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그리스도의 연합!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죽었고, 장사되었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서 부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면서, ‘세례(洗禮)’라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물을 뿌리거나, 물에 잠그는 그런 세례는 다 잊어버리세요.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는,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례(割禮)가 구원의 조건입니까? 아니죠?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먼저 ‘의롭게 여기심을 받았다.’ 그래요. 구원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창세기 17장에서, ‘할례를 받아라!’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할례라는 것은, 구원 받은 자의 ‘싸인(sign) 표시’이지, 구원받는 자의 조건이 아니에요.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거 아니에요.
가톨릭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영세를 받아야,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 거 아니에요.
세례는, 성령 세례를 받은 자! 거듭난 자로서, 그것을 자기의 신앙을 세상에 공포하고 선포하는 것을, 우리가 ‘세례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냥 성령 세례를 받은, 거듭난 자들의 상징적인 의식이며, 선포일 뿐이에요.
할례가 그냥 하나님 백성의 표시이듯이!
성경이 말하는 세례는, 다른 아주 깊은 의미가 있어요.
먼저 ‘물에 담그다’라고 그렇게 번역이 되는, 헬라어의 단어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밥토’라는 말이고, 하나는 ‘밥티조!’ 성경에 나오는 말이죠.
‘밥티조’라는 말이에요. 두 단어가 있다고요. 밥티조는 단순히 물에 담그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행위에 의해서, 어떤 수단에 의해서 일어나는 변화! 즉 어떤 방법을 가해서, 사물의 본질이나, 성격이 변하는 것을 뜻하는 게, ‘밥티조’예요.
예수께서 오시기 한 200년 전에, 기원전 2세기경에, 헬라 사람들이 피클을 만드는 방법을 써 놓은, 그러한 책이, 파피루스가 발견이 됐는데, 거기 뭐라고 써있냐 하면은, ‘피클을 만들 때, 오이를 더운물에 담갔다가, 식초 용액에 담가야 된다.’ 이런 말이 있어요. 뜨거운 물에다가 담갔다가가, ‘밥토’예요. 그러나 식초 용액에 담궈서, 이제는 피클이 본질과 그 성분이, 완전히 변해버리는 거를, 우리가 ‘밥티조’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헬라 사람이 이 피클 만드는 방법을 썼을 때, 뜨거운 물에 담근다는 것을, ‘밥토’라고 썼고, 식초 용액에 담그는 것을, ‘밥티조’라고 썼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요걸 잘 연상을 하고 계세요. 여러분이 요 피클 만드는 방법만 머릿속에 갖고 계셔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뭔지, 금방 이해를 하시게 될 겁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세례! ‘밥티조’는 물에 담근다는 그런 의미보다는, 담가서 변화된다는 데에, 더 강조점이 있는 거예요. ‘밥티조’라는 것은! 세례라는 것은요!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가 푹 잠겨서, 뭔가 새로운 존재로, 그 성분과 본질이 변화되어져 버린 것을, 우리가 ‘세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잠겨서, 연합되어서, 그 성분이 변화된 것을, ‘세례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례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렇게 같이 띄워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례와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를 좀 더 쉽게, 설명을 한 구절이 있죠? 고린도전서 10장 1절로 가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받았다 그래요.)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래요. 유니온 크라이스트! 연합(聯合)과 세례(洗禮)를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홍해를 건넌 것을 성경은, ‘이스라엘의 세례’로 이렇게 표현한다고요. 여기서도 우리는 세례가 단순히 물에 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발도 물에 안 젖었어요. 마른 땅처럼 건넜다 그러잖아요? 진짜 물에 젖은 사람들은, 애굽 사람들이죠?
지금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 왕의 노예로 있다가, 애굽 왕의 노예로 있다가, 홍해에 빠져서, 그 애굽 왕의 종들인 이스라엘은 다 죽고, 뭔가 새로운 자들이, 탄생되어서 올라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새로운 자로, 탄생이 되어서 올라왔냐면, 이들이 완전히 바뀐 게 아니라, 여전히 불가능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택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모세’라는 그 종 안에 들어가서, 그 모세화 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이스라엘 백성을, 여전히 불가능하고 불순종하는데, 그들을 ‘모세’로 봐주시는 거예요. 그것을 세례라고 하는 거예요. 피클을 자꾸 떠올리시란 말이에요. 피클을!
이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이 연합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그 예수 안으로, 인 크리스토! 그 안에다가 던져 넣어버리신다고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불가능하고, 불순종하는 모습인데, 하나님은 인제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를 보신다고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언제 십자가에서 죽었어요? 언제 우리가 부활했습니까? 언제 우리가 율법을 지켰어요? 하나도 한 게 없어요. 여러분! 어제도 죄를 짓고, 오늘도 죄를 짓고, 우리는 내일도 죄를 지을 거예요. 그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를 통해서만 보신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이 모습들은, 지금 하나님의 눈에는 없는 것으로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코 정죄함이 없어요. 결코 정죄함이 없어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삶이 조금씩 변화되어져 가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에요.
말이 안 되죠?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오셔서 하신, 그 모든 행위에 연합이 되어서, 그게 다 우리께 되냐 말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 실감하고 자각을 한 사람은,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방법밖에 없어요! 저도 어제 오늘, 저에 대해서 그냥 아주, 낱낱이 하나님이 벗겨서 보여 주셨어요. 도대체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그 위로가 그거예요. ‘나는 너를 보고 있지 않아! 원래 너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나는 예수를 통해서 너를 볼 수밖에 없어!’ 그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으로 숨지 않으면, 절대 가망이 없는 자들이에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시도하고 노력해서 된 게, 뭐가 있어요? 담배도 하나 못 끊어요. 우리는요! 우리의 힘과 노력은, 그렇게 연약한 거예요. 예수를 알아가는 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개선하고 고쳐서 쓸 수 있는 종자들이 아니에요. 완전히 바꿔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라고요. 로마서 6장 8절 보세요.
(로마서 6:8-11)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언제 우리가 죽었고, 언제 우리가 살아났죠?)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음에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 크리스토!)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 하! 이런 데 밑줄을 그으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레컨(reckon)! 로기조마이!’ 그렇게 여겨주신다는 거예요. 우리는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잘난 척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여겨주신다는 거예요. 로기조마이! 레컨(reckon)! 우리가 다 한 걸로 여겨주신다는 거예요. 감당할 수가 없죠? 그 은혜를 어떻게 감당해요? 우리가? 도대체 나를 보면, 우리 자신을 보면, 이건 뭐 백번 죽어 마땅해요. 능지처참! 부관참시! 그 걸로도 부족해요.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허락하셔서, 그렇게 여겨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여겨주세요. 그게 기독교예요.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지옥에 못 가세요. 그래 여러분 수요일날 수요 성경공부하고, 주일날 계시록 설교를, 같이 들으면서 오셔야 돼요. 제가 지금 의도적으로 이렇게 집을 짓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느 하나만 빠뜨려도, 여러분이 제 말을 다 이해를 못하세요. 수요 성경공부를 다 들으신 분만 이해를 할 수 있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3장 27절 보세요.
(갈라디아서 3:27)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옷 입었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군복을 입으면, 나찌의 군복을 입으면, 그 사람은 나찌예요. 그죠? 우리가 예수의 옷을 입으면, 우리는 예수로 보여지는 거예요. 예수로! 그리스도로 우리는 옷을 입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옷만 보세요. 그 안에 시커멓고 더러운 우리를 보지 않으신다고요. 이게 신비(神祕)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그러는 거예요. 말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도대체! 그래서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말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를 그렇게 만드시고 만다는 거예요.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몽땅! 옷을 입게 되는 거예요.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제가 설명을 해드리면, ‘접붙임’이라는 거 아십니까? 여러분? 접붙임! 어떤 나뭇가지를 꺾어서, 원 가지 나무에다가, 표피를 벗기고, 갖다가 끼워 넣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무는 곧 이 원래의 이 커다란 이 나무! 그 나무와 생명을 같이 하게 돼요. 모든 생명의 현상을 같이 하게 돼요. 같이 바람에 흔들리게 되고, 같이 꽃을 피우고, 같은 열매를 맺어요. 그 나무가 죽으면, 얘도 죽어요. 가지도 죽어요. 접붙임을 당한 가지도! 살면 같이 사는 거예요. 나무가 땅에 묻히면요, 같이 묻히는 거예요. 한 인생이 되는 거예요. 한 일생이 되는 거예요. 로마서 11장 17절 보세요.
(로마서 11:17)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내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자,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설명하는 것인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해를 좀 쉽게 해드리기 위해서, 인용을 한 거예요.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다가 갖다가 접붙임을 하면, 이 돌감람나무가 이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함께 공유하게 돼서, 애가 참감람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 안에 접붙임을 딱 받게 되면, 그 안에 연합(聯合)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가 되는 거예요. 잘 이해하시고 가셔야지, 또 밖에 나가셔서, ‘우리 목사가 우리가 다 예수랜다.’ 그러면, 금방 이단 되는 거예요. 우리를 예수로 취급해 주신다니깐요. 예수로 여겨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구원 받는 거예요. 여전히 이 모양인데! 여전히 이 모양인데! 예수가 되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예수! 그게 기독교예요. 그래서 기독(基督)! 크라이스트! 기독교예요.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보세요.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그냥 두 줄 걸러 한 번씩 나오죠?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그게 아니면, 우리는 도대체 감당할 수 없어요. 그냥 우리 자신을 보세요. 우리 자신을 보세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여러분!
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여러분들이 지금 계속 죄 짓고, 실패하고, 그러는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사시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지 않아요. 그런 모습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육신의 모습이에요. 새로 태어난, 하나님과 관계있는 여러분의 영은, 이제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육신! 이 플레쉬(flesh)! 이 죽을 몸뚱아리를 같이 갖고 계시다고요. 그 몸은 죽을 거예요. 인제! 그 몸이 뭐냐면, 거듭나기 전에 그 옛 사람!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도록, 열심히 훈련되어지고 길들여진, 그러한 습관(習慣)! 경향(傾向)! 이것을 ‘죽을 몸! 옛사람’이라 그런다고요. 그게 아직 붙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를 지어요. 그런데 이건 여러분께 아니에요.
이 신분(身分)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셔야 돼요. 그래야, ‘아! 감사하다! 어떻게 내가 오늘도 이렇게 죄를 졌는데, 이게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것은, 오직 내 안에서 사시는 예수의 삶만 보시는구나!’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거예요. 우리의 이 불가능한 실존을, 하나님은 이제 보지 않기로 결정하셨어요. ‘로기조마이’! 이 신분을 계속 확인하셔야 돼요. 이 신분을 확인하셔야, 여러분은 변화될 수 있어요.
데이빗 브레이너드의 그 책을 보면, 한국말로 아직 번역은 안 됐는데, 그 데이빗 브레이너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뭐냐면?
우리의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그 예수가 여러분께 행하신 일만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을 바꿔갑니다. 그 신분을 확인하시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 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습니까?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예요 그러나 사랑하신 예수를 아십시오. 그러면 그 사랑하신 예수가, 당신을 사랑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매일 매일 그 신분을 확인하십시오.
그런다고요. 이게 복음(福音)이라고요.
그 웨일즈의 왕이었던 윈저공 있죠? 1970 몇 년에 죽었죠? 그러니까 웨일즈에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빠리에서 죽었다고요. 그 아버지가 윈저공한테 뭐라고 그랬냐하면, ‘윈저야!’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하여튼, ‘아들아! 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누구인지 늘 생각해라! 네가 누구인지 늘 생각해라! 너는 왕이다! 지금 네가 쫓겨나 있어도, 너는, 네 신분은, 너는 왕이다!’ 그 사람의 회고록에 그 말이 적혀있는데,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같더라고요.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지금 네 모습에 실망하지 말어!’ 그 신분을 계속 확인하면, 우리는 그 신분에 맞게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분을 확인하세요. 여러분! 신분을 확인하세요!
21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령이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만지는 순간! 여러분은 오이가 식초 용액에 담겨서, 영원히 본질과 성분이, 피클로 변하듯이, 새 사람으로 바뀌어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은 새 사람이에요. 인제 새 사람!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에요. 연합이 되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만 연합이 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고것만 자기 걸로 취하려고 한다고요. 예수님의 삶의 전 영역! 그 모든 삶에 여러분은 연합된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다 가셨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환란(患亂)의 삶을 살다 가셨어요. 배신(背信)과 따돌림과 조롱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그 사도 요한도 예수님과 똑같은 환란을 당하고 있었어요. 포악하기로 이름난,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서, 밧모섬에 가서, 그 연로한 나이에, 노인이었어요. 요한은요! 거기에서 광산에서 부역을 했다고요. 밧모섬에서! 고난이죠? 왜 그랬을까요? 왜요? 예수님 때문에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이 환란의 삶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다!’라고, 지금 요한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너희 형제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환란에 동참하는 자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환란에 동참하고 있으면서, ‘이건 우리에게 당연한 거야!’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9절에서!
이 환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뜰립시스’라는 말이에요. 이 말은 억압 뭔가를 꼭 누르다 압제 이런 말이거든요 영어로는 ‘트리불레이션(tribulation),’ 라틴어로는 ‘트리불룸’이라는 말인데, 이게 ‘탈곡기’라는 말이에요. 탈곡기 아세요? 여러분? 막 이렇게 돌리면, 막 돌아가면서, 거기다가 이렇게 짚단을 딱 놓으면, 달달달달 돌아가면서, 알곡만 떨어지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즉시, 여러분은 그 탈곡기에 던져지는 사람들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여러분! 그 탈곡기에서 덜덜덜덜 돌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가야 된다니깐요. 그게 기독교예요.
누가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병 다 낫고, 누가 부자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까? 성경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어요? 그런 기독교는 없어요. 여러분! 그들은 다 가짜예요. 다 가짜예요! 여러분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모습이라고요. 거기에서 덜덜덜덜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거예요. 탈곡기처럼! 예, 환란(患亂)이라는 것은 그런 거예요. 그만큼 환란당하고 계세요? 여러분?
그런데 그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은 당연히 예수의 환란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환란의 삶에도, 동참해야 된다니깐요. 요한복음 16장 33절 보세요.
(요한복음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환란을 당할 지도 모르나’예요. 환란을 당하지만, 너희들은 평안해라 그러는 거예요. 환란을 당한다. 내가 거기서 건져줄게. 아니에요. 환란을 당한다. 그러나 평안해라! 왜? 저 소망을 보고. 평안해라! 그게 기독교예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는 말은 뭐예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내 안에서 너희도, 나와 연합된 자기 때문에, 너희도 이길 거라는 거예요. 이길 거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금 당할, 뭔가가 있다는 거예요. 너희가 이겨야 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환란(患亂)이에요. 트리뷸레이션(tribulation)! 사도행전 14장 22절 보세요.
(사도행전 14:22)
22 …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위 머스트 고우 스루 매니 하드쉽스(We must go through many hardships)! ‘위 머스트(we must)’라 한다고요. 머스트(must)! 디모데후서 3장 11절 보세요.
(디모데후서 3:11-12)
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에브리원 후 원츠 투 리브 어 갓들리 라이프 인 크라이스트 지저스 윌 비 펄스큐티드(Everyone who wants to live a godly life in Christ Jesus will be persecuted)! 당연한 거라는 거예요. 당연한 거라는 거예요! 환란과 핍박이 없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1장 5절
(고린도후서 1:5-9)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란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죽고 싶었다는 말이에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다는 거예요. 계시록 2장 8절.
(요한계시록 2:8)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우리 서머나 교회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네 환란과 궁핍을 하나님이 지금 알고 계시다는 거예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너 그 환란과 핍박을 받으면서,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것을 허락하세요?’ 그렇게 짜증내고, 실망하고, 자포자기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부요(富饒)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축복(祝福)이라는 거예요. 그게)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그래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고난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10일이라는 것은 완전수라 그랬죠? 딱 열흘이 아니라, 고난을 받을 만큼 받는다는 거예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너 이제, 죽도록 고생할 거다. 환란 속에 던져질 거다. 핍박받을 거다. 내가 구해줄게 그러시나요? ‘참아라!’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안 건져 주신다고요. 거기서 참아라! 그래요. 이유가 있다고요. 성경은, 예수 믿으면, 환란이 피해가고, 문제가 해결 되고, 병이 낫고, 그렇게 된다고 한 군데서도 이야기한 적 없어요.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고 이야기한 곳은, 한 군데도 없어요.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가난한 것도 죄다.’라고 얘기했다. 그러더라고요. 목사가! 천만에요. 그 사람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가짜예요. 그거는 버젓이 그런 사람들이, 몇 천 명 되는 큰 교회 목사로 설교하고 있다고요.
아니에요. 예수를 믿으면 오히려, 환란과 핍박으로 하나님이 던지신다, 그런다고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왜 환란과 핍박에다가 던지실까요? 우리에게 유익이 있어서 그래요. 보세요. 로마서 5장 3절 보십시오.
(로마서 5:3)
3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을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죠?)
3절에,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 그러죠? 그래서 ‘즐거워한다’는 것은, 막 기쁘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환란이 오고, 핍박이 오고, 고난이 오는데, 막 즐거워하면, 그건 정신병자죠? 그거는 여기서, ‘즐거워하다’는 말은, ‘카오카오마이’라는 거예요. ‘자랑하다, 뽐내다’라는 뜻이에요. 환란이 왔는데, 어떤 무리는 그것을 자랑하더라는 거예요. 어떤 자들이에요? 무엇을 아는 자들이, 그 환란을 자랑하더라.
4절 보세요. 무엇을 앎이로다. 그러잖아요? 그 내용이 뭐냐 말이에요? 그 뭐를 알면, 우리가 그 환란을 자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뽐낼 수 있다는 거예요. ‘너 환란 있어? 없구나! 나는 있다!’ 이게 된다는 거예요. 그 환란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가 연단을 이루고,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것을 아는 자들은, 그것을 자랑한다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환란은 결국 소망을 이루는 길이다.’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 난 정말 그리스도인 맞구나!’ 하고 자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3절에서, ‘환란이 인내를 이룬다’ 그러죠? 여기에서 이 ‘인내(忍耐)’라는 말, ‘휘포모네’라는 말은, 단순히 ‘꾹 참는 거’ 아니에요. 그 환란이, 그냥 ‘꾹 참는 인내를 만든다.’ 이 말 아니라고요. 꾹 참는 인내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잘 해요. 환란이 없어도! 그거는 이를 악물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잘 참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휘포모네’는, 단순히 그냥 꽉 참는 것이 아니라, 정절을 지키면서, 변치 않고, 어디에 굳게 서 있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환란이 옴에도 불구하고, 정절을 지키면서, 변치 않고 어디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인내! 휘포모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자에게 있어서 이 환란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굳게 서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환란이! 그러니까 이 환란이 오면, 환란을 겪으면서, 막 힘들어하죠? ‘와! 진짜 못 참겠다!’ 때려 부수죠? 그러면서 ‘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는 놈 아니구나!’ 깨닫는 거예요. 환란이 오면은, ‘이 세상에서 정말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구나!’라는 것을 또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 하나님! 정말 하나님 당신밖에 없군요.’라고 더욱 더 굳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거! 그것을 휘포모네! ‘인내를 이룬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좀 전에 읽었던 고린도후서 1장 8절 9절에서 뭐라 그랬어요? 바울이 산 소망이 끊어지도록, 아주 죽고 싶을 정도로, 환란을 받은 이유가, 뭐라 그랬어요? ‘나를 의뢰하지 않고, 그분을 더 의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환란을 허락하셨다.’라고 바울이 고백하잖아요? 예, 그 이야기예요. 그게 바로, ‘인내(忍耐)’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만드는 거예요. 환란이! ‘환란이 인내를 이룬다’라는 말은, 그 뜻이라고요. 그냥 무조건 꽉 참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유익이 있단 말이에요. 우리에게!
그리고 신자의 환란은, 새로 거듭난, 자기 안에 공존하는 이 죽을 몸! 이 옛 몸을 자꾸 무력화시켜요. 자꾸 무장해제를 시킨다고요. 여러분이 지금 실감하고 체감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의 옛 몸뚱아리예요. 이 웬수 같은 몸뚱아리는,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와 주지를 않아요. 그런데 그 환란이, 무장해제 시켜준다고요.
어떻게 이 옛 몸뚱아리를 무장을 해제시켜 가냐면은, 제가 예전에 대학교 때, 고등학교 때까지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하는 바람에, 대학교 들어가서, 들어가자마자 열심히 놀기 시작했죠. 그래서 매일 매일 돈 천원을 갖고, 나이트클럽에 갔다고요. 친구들하고! 그때는 천원 내면은, 콜라 한 병 째그만 거 주고, 마음대로 놀게 했어요. 그래서 아주 재미가 들려서, 제가 이래봬도 옛날에는 한 춤 했다고요.
그래서 그날도 그 재미를 좇아 나이트클럽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웅성웅성, 웅성 하는 거예요.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전파사 앞에 가서 봤더니, 북한에서 미그기 하나가 넘어왔어요. 그 민방위 훈련하는 아나운서가, ‘국민 여러분! 지금 북에서 미그기가 넘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곧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너무 가서 막 놀 생각에, 막 즐거웠던 제가, 다리의 힘이 쫙 풀리는 거예요. 가긴 어딜 가요? 빨리 집에 가야지! 그런데 진짜 걸음을 못 걷겠더라고요. 무서워서!
예, 우리가 너무 너무 좋아서, 너무 너무 익숙해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들이, 이러한 어떤 환란이나, 이런 핍박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그것들이 자꾸 힘을 잃어 가는 거예요. 힘을 잃어가는 거예요.
월남 국수집에 가면은, 사리를 다섯 개씩 시켜먹는, 석진이가, 하린이 같은 애가, 환란이 오니까, 집이 어려워지니까, 밥을 안 먹더라니깐요. 밥맛이 없는 거예요. 그것처럼, 무력화시키는 거예요. 옛 몸뚱아리! 환란은 그런 역할을 한다고요.
주일날 매일 골프를 친다고,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 골프 치느라고 교회를 못 오던 분이, 50에 낳은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이 골반 밑으로 두 개가 딱 잘렸어요. 그 다음부터 이 사람이 골프를 어딜 치러가요? 아무 것도 재미가 없더라는 거예요. 아무 것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내 아들이 저렇게 되고 나니까, 뭘 해도 재미가 없더라는 거예요. 환란이라는 것은, 핍박이라는 것은, 우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 옛 재미! 쾌락! 이런 것들을 자꾸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닥친 환란으로, 여러분들이 끊어버린 것이, 유익이 분명히 있다니깐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냥 놔두시는 거예요. 우리에게 유익해요. 욥기 42장 5절 보세요.
(욥기 42:5)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뵙옵나이다
환란을 다 통과하고 나니까, 이제는 듣기만 했던 주님을, 눈으로 뵈옵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인내! ‘휘포모네’란 뜻이에요. 더욱 더 정절을 잃지 않고, 거기에 굳게 서게 되는 게, 이 환란의 역할이라고요. 힘들지만 참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당연히 가야할 길이에요.
그리고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그러죠?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 여기서 ‘연단’이란 말은, 단순히 ‘두들겨서 단단하게 만든다’가 연단이 아니에요. 연단이라는 말, ‘도키메’라는 이 말은, 어떤 목적에 부합하도록, 질이 검증된 것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어떤 목적에 부합하도록 질이 검증된 거!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철도를 만들 때, 이 철로에 쓰일 철은, 수십 톤의 하중에 견뎌야 돼요. 그죠? 그러니까 철로를 놓기 전에, 이 철을 미리 미리 검증하고 시험한다고요. 그래서 떨어지면? 안돼요. 검증됐을 때, 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 철로로 쓰이는 거예요. 그걸 ‘도키메’라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환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휘포모네’에 서게 된다고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검증이 된다는 거예요. 그게 ‘연단을 낳는다’는 말이에요. 검증이 되는 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검증이 되면, 도키메! 검증이 되면, 우리는 소망을 더욱 더 붙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환란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말의 뜻이라고요. 그러니까 이 환란은 뭐예요? 유익(有益)이라고요. 우리에게! 야고보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죠? 1장 12절 보세요. 야고보서!
(야고보서 1:12)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은, ‘페이라스모스, 역경(逆境), 환란(患亂)’이라는 뜻이에요. 시험을 참는 자는 뭐예요? 휘포모네!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뭐예요? 도키메! 연단이란 말이에요.)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이 환란은 당연히 거쳐 가야할 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에, 예수를 믿고 환란이 없다면, 여러분은 다시 생각해 보셔야 돼요. 여러분은 그냥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그냥 재미있게 살다 가세요. 어차피 지옥 갈 거예요. 그 사람은요!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만사형통합니다.’라는 것은, 이단 중에 이단(異端)이에요. 거기에 넘어가시면 안돼요. 여러분!
그러니까 환란은 우리의 소망을 굳게 붙들게 만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래서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환란 하는 자들아! 기뻐하라! 하나님의 축복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는 데 들어보셨어요? 환란을 이야기 하는 종교는, 아무 데도 없어요. 기독교조차도, 이단들은 환란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참 기독교만 환란을 이야기해요. 예수 그리스도만 환란을 이야기한다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 해줘서, 긁어모으려면, 이런 설교하면 안 되죠? ‘예수 믿으면 환란에 빠집니다!’ 그러는데 누가 오겠어요? 그런데 사실인 걸 어떻게 해요? 사실인 걸! 그거 모르고 가면, 죽을 때까지 예수 믿다가, 지옥 갈 걸! 어떻게 이 얘기를 안 하냐 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환란이기 때문에, 환란을 말려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환란이 왔을 때, 신자들아! 기뻐해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신자들아! 기뻐해라! 즐거워해라!’ 이렇게 명령하시는 거예요. 야고보서 1장 2절 보세요.
(야고보서 1:2)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베드로전서 4장 12절.
(베드로전서 4:12)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페이라스모스! 불시험)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당연한 거라는 뜻이에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에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됐으니까)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 뒤에는 기쁨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의 삶에, 환란을 허락하신 거예요. 말려주지 않으세요. 빌립보서 4장 6절 보세요.
(빌립보서 4:6)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가 와요. 환란이 와서 염려가 와요. 그러면 기도와 간구를 하래요. 그러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거기서 내가 건져줄게!’ 그러는지 한 번 보세요.)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를 하면, 내가 고쳐줄게! 건져줄게! 해결해 줄게!’가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도 너희가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내가 생각을 지켜줄게!’ 그런다고요. 이게 기독교라고요. 그 상황 안에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평강을 유지하고 있는 게, 기독교예요. 문제가 해결되는 게 기독교 아녜요. 그것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죽은 거 아니에요. 여러분! 환란은 그렇게 우리에게 유익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아울러,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이 환란이 필연적(必然的)이냐? 왜 필연적이냐? 세상과 원수인 예수 그리스도에 증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에, 마귀와 세상은, 당연히 우리를 공격하게 되어 있다. 그래요. 9절을 한 번 다시 읽어 보세요.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밧모라 하는 섬에 갇혔다
거기 귀향 간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예수의 증인으로 산 그 삶 때문에, 이 사람은 환란 속에 던져지게 된 거예요.
여러분은 이제 사탄의 나라에서 탈출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 분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딱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요. 그러니 사단이 자기의 옛 종을, 가만 놔두겠어요? 옛날에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척척했던 그 종이, 뭔가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데, 가만 놔두겠냐고요? 사도 요한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나는 밧모라 하는 섬에 갇혀서, 이 환란을 당하고 있는데, 그건 당연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계시록 20장 4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20:4)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
뭐 때문이에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전부가 다! 언제 우리가 목 베임을 받았어요? 예수 믿으면 다 목 베임 받나요? 그만큼 힘들다는 거예요. 그만큼 힘들다는 거예요! 우리를 그래서 다 순교자(殉敎者)라고 그래요. 계시록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자를, 다 순교자라 그래요. 우리는 목 베임을 받은 자예요. 그만큼 힘들어요. 예수 믿는 거 쉽지 않아요. 누가 예수 믿는 거 쉽다 그래요? 쉽지 않아요. 어려워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목 베임을 받는 것과 같은, 고통(苦痛)에 던져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에 유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의 삶에, 유익한 것으로 바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사탄 마귀도. 하나님의 그냥 수단일 뿐이에요. 뭘 위해서?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에요. 이 세상은 커스믹 트라블(cosmic trouble)이라고 하지만, 악(惡)과 선(善)의 대결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탄을 이용해서, 우리를 지금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고 있는 것뿐이지! 얘는 죽었어요. 그 현실을 여러분이 자각하고 계셔야 되는 거예요.
어떠세요? 여러분! 이렇게 말씀드렸는데도, 여러분의 환란(患亂)이 두려우십니까? 환란을 당하고 있는 여러분이, 그렇게 못나 보이세요? 환란을 당하고 있는 내 형제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입니까? 그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할 수 있어요? 그들이 제대로 잘 가고 있는 거예요. 환란을 당하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이 잘 가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환란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나라’에도 동참하고 있다 그래요. 하나님나라에도! 그죠?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해서. 우리는 그 나라에 동참해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에요. 6절을 공부할 때, 우리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랬죠? 거기서 쓰인 ‘포이에오’가 과거라 그랬어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에베소서 말씀처럼, 나라로 지어져 가요. 그리고 우리는 지어질 거예요. 이 세 시제를 여러분은 늘 갖고 계셔야 돼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되었어요. 골로새서 1장 13절 보세요.
(골로새서 1:13)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과거예요. 나라로 옮기셨어요. 여러분은 인제 하나님의 나라로 가서, 그 하나님나라가 되었어요. 야고보서 2장 5절 보세요.
(야고보서 2:5)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유업으로 너희는 이미 받았다 그래요. 유업으로 이미 너희는 받았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하나님나라에 동참한 자들이 되었어요. 우리 자체가 이제 하나님나라가 된 거예요. 그 나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어요. 아노뗀! 위로부터 거듭난 자들! 이제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관계가 없어요.
아담의 후손으로 난 여러분은, 예수께서 아담의 후손으로 오셔서, 여러분을 품에 안고 죽어버렸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인 여러분은 없어졌어요. 인제 예씨 가문에서 하나가 나온 거예요. 여러분이 나오시는 거예요. ‘예’씨로 나오시는 거예요. 여러분이요!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이에요. 여러분들은 인제! 응 마대 제품이에요. 여러분은 위로부터 이제 나신 분들이에요. 이 세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인제! 여러분이 짓는 그 죄도, 여러분과 관련이 없어요. 이 신분(身分)을 매일 매일 확인하세요. 그 나라에 이미 동참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요, 그 하나님나라에, 동참한 자들에게, ‘환란과 참음’이 요구되고 있어요. 그죠? 그러면 이 구절만 봐도, 후천년설하고 전천년설주의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죠? 그들은 환란과 핍박이 없는, 천년왕국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왕국에, 그 나라에 동참한 우리에게, 환란이 있다고 그런다고요. 참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틀린 얘기잖아요? 그 천년왕국! 그 하나님나라에는, 이 가시적 이 땅에서 우리가 겪어내는, 살아내는, 그 하나님나라에는 환란이 있어요. 시험이 있어요. 원수가 있다니깐요. 시편 110편 1절 보세요.
(시편 110:1-2)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그래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데, 원수 중에서, 우리를 다스린다니깐요. 환란이 없고, 핍박이 없다고 누가 그래요? 천만에요! 원수와 함께 우리는 공존(共存)해요. 그래서 괴로워요. 힘들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 천년왕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천년왕국을, 이 ‘교회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세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7년 대환란이 바로, 이 시기예요. 뭐 환란이 여러분에게 같이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은 또 왕이에요. 왕 노릇 하고 계시잖아요? 왕 노릇에 대해선 제가 설명해드렸잖아요? 예? 이 현실을 좀 잘 파악하고 계셔야 돼요.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 하나님나라는, 가시적으로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하나님나라를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라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도 아니고, 영토도 아니라, 그랬습니다. ‘누가 다스리느냐?’ 그 통치권! 주권(主權)이라 그랬어요.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통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란 말이에요.
그러나 거기에 원수들, 대적들이 함께 공존을 해요. 그래서 그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나라들에게는, 환란이 있어요. 그런데 그 환란은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돼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것일 뿐이에요. 그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나라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나 아직 가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참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미 이루어졌어요. 올레디 낫 옛(already not yet)! 여러분이 항상 머릿속에 두고 계세요. 이미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이제 가시적으로 오는 그 날까지는, 우리에게 참음이 요구되고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가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말은, 산모가 애를 낳을 때까지, 그 고통을 겪으면서 기다리는 것을, 바로 그 탄식(歎息)이라 그러거든요. 그런 힘든 어려움이 있다고요. 우리는! 그래서 그날을 기다리면서 가는 거예요. 그게 소망이잖아요?
아직 가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그 나라를 보면서,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인내하면서, 각인의 눈이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바로 그날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이 구절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이에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聯合)이 되어서, 그 환란에 동참하고, 그 나라에 동참하며, 예수님의 참음에 동참해요. 그러나 예수님과만 연합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머리로 연합이 되어 있고, 접붙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끼리도 연합이 된 거예요. 이제는 한 영이 흐르고, 한 피가 흘러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9절에서, ‘나는 너희의 형제다!’ 그러는 거예요. 형제(兄弟)라는 건 뭐예요? 피를 나눈 사람들을 ‘형제’라 그래요. ‘나는 너희의 형제다!’ 우리는 우리끼리도 이렇게 연합이 된 거예요. 한 아버지를 둔, 한 맏형을 둔, 피붙이라고요. 자, 로마서 8장 29절이요.
(로마서 8:29)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은 차남, 삼남, 차녀, 삼녀,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맏아들이 예수님이고! 우리는 형제가 됐어요. 인제 여러분 우리가 형제예요. 우리가 가족이에요. 진짜 가족이에요. 진짜! 히브리서 2장 11절 보세요.
(히브리서 2:11-12)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누구죠? 예수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누구예요? 교회죠?) 다 하나에서 난지라 (다 하나에서 낳았대요. 우리보고!)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그러죠?)
교회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형제들이에요.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한 하나님! 이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에서 났다는 거!
이 시대의 교회를 보세요. 그런데! 그들이 정말 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나요? 정말 한 아버지를 섬기고 있는 형제들 맞아요? 교회들 한 번 보세요.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나, 가톨릭에서 부르는 하나님과, 제가 섬기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른 분이에요. 아무리 공부해 봐도, 다른 아버지예요. 그건! 저는 그들과 한 형제 아니에요.
심지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만들었다고,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존경하는, 그분이 만들어 놓은, ‘어찌 하나님이 아니 계시고야, 저렇게 큰 교회가 될 수 있느냐?’라고 사람들이 입에 침을 튀기면서, 칭찬하는, 그분이 섬기는 하나님과도, 저는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아무리 공부를 해봐도, 그분이 이야기하는 하나님하고, 우리 아버지하곤 달라요. 제가 아무리 양보를 하고, 공부를 해봐도, 달라요. 저는 그 분들하고는, 다른 곳에 갈 거예요. 확신해요! 우리 아버지가 아니에요! 저는 그 분들하고 형제 아니에요.
그리고 ‘어찌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겠느냐?’ 그러면서, 불교, 원불교, 가톨릭이 모인 곳에 가서, 윤리 강연, 도덕 강연, 사회정화 이런 거 강연하고 다니는, 그 유명한 원효대사를 존경한다는, 그 목사님이 섬기는 아버지하고도, 우리 아버지는 달라요. 저는 그분하고 딴 곳에 갈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아니에요.
형제라는 것은, 한 아버지예요. 한 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다른 아버지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교리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한 교리! 바른 교리 아래에서, 바른 아버지! 바른 하나님을 믿고 가는 것이 형제예요.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 신앙고백을 하는 거예요. 한 신앙고백! 한 아버지에 대한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인이에요. 우리의 신분이에요. 여러분!
요한이 그 이야기 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는 이렇게 한 형제입니다. 한 핏줄이에요. 우리는 이 땅과, 이 세상과, 이 하나님의 나라가 오버랩 된, 이 공존하는 교회시대! 아주 특이한 교회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이 세상 가족들에게,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이 친구들에게, 최선을 다 하셔야 돼요. 직업에 최선을 다하셔야 돼요. 공부도 열심히 하셔야 돼요. 그렇지만 진짜 여러분의 가족은, 이제 영원히 함께 살 가족들은 여러분이에요. 이중에도 아닌 사람 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러분의 형제예요. 진짜 형제예요. 그들이 그게 바로 교회(敎會)라고요. 고린도전서 12장 25절 보세요.
(고린도전서 12:25-26)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우리가 진짜 교회라면, 우리의 영이 한 영이 흐르기 때문에, 서로 알아볼 수 있어요. 아십니까? 우리는 한 영이 흐르기 때문에, 서로 알아볼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하면서, 끝까지 같이 갈 수밖에 없다니깐요. 그게 교회예요.
여러분! 생명이 잉태되어서, 이 생명이 자라나야 되잖아요? 어디서 자라죠?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자라잖아요? 그 자궁에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예요. 교회 안에서만 자랄 수 있어요. 여러분은요! 서로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해주면서, 또 시금석이 되어주면서, 이 교회 안에서 자랄 수 있다니깐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신분을 자각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자라날 수가 없어요. 교회 안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끼리, 부딪히면서 자라날 수 있어요. 그래서 교회가 모이는 게 중요한 거라니깐요 그래서 성경에서도, ‘모이기를 힘써라!’ 그러는 거예요. 모이기를 힘써라!
그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신분도, 이제 운명적으로 결정이 되어져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요. 그죠? 환란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참음이 요구되는 거예요. 잘 참으세요! 잘 참으세요! 그리고 서로 서로 모여서. 형제끼리 모여서. 자매끼리 모여서. 자라 가세요! 자라 가세요! 그러면 조금 조금 더 힘을 얻을 수 있어요. 마태복음 10장 22절 보세요.
(마태복음 10:22)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나중까지 견뎌야 구원을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는, 당연히 견딜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형제들이 있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4절을 보십쇼.
(로마서 8:24-25)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온통 이 교회라고 간판을 건 곳에서, 이 땅에 보이는 것을 소망으로 제시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망이냐?’ 그러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게 소망이지, 그게 무슨 소망이냐?’ 다 뜯어 고쳐야 돼요. 다 뜯어 고쳐야 돼요. 얼마나들 잘못 배우고, 잘못 가르쳐 놨는지, 다 뜯어고쳐야 돼요. 완전히 다 무장해제하고, 바닥부터 다시 쌓아 올라가야 돼요. 30년, 40년, 예수 믿었다. 다 필요 없어요. 다 깨버리셔야 돼요. 얼마나 엉터리로 가르쳐 놨는지 말이에요. 기독교! 그런 기독교가 없어요!
기독교의 역사를 한 번 보세요. 한 번 공부해 보세요. 어디 그런 기독교가 있었어요? 잘못 갔던 기독교! 하나님이 깨신 거는 있어요. 그 이단들을 보면, 전부 그거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이렇게 내려오고 있다고요. 환란과 핍박을 견디면서, 소수로! 순 가짜들! 순 가짜들! 계시록 3장 10절 보세요.
(요한계시록 3:10-11)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인내하라고 한 그 말을 네가 지켰은즉 이런 말이에요.)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 마지막 심판 때를 면하게 해준다는 거예요. 그 참은 자들은요! 참은 자들은! 그러니까 뭔가 참을 게 지금 있다는 거예요. 인내해야 할 게 지금 있다는 거예요.)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계시록의 주제(主題)가 뭐라 그랬죠? 그렇죠? ‘이겨라!’ 이럴 때 참 목사로서의 … 흐흐흐. ‘이겨라!’ 예수님이 이기신대요. 그분이 다시 오신대요. 왕으로 다시 오신대요. 이게 계시록의 주제예요. 왜 그렇게 강조를 해야 됐을까요? 왜 그렇게 강조를 해야 됐을까요? 그때 그렇게 종이가 부족했던 그때 당시에, 종이가 없어서, 성경을 한 권을 파피루스에 쓰면, 그게 집 한 채 값이었대요. 그렇게 귀한 종이에다가, 왜 이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이겨라! 이겨랴! 이겨라!’ 써놨을까요? 뭔가 이겨야 할 게 있다는 거예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는요!
그걸 잘 참고 이기셔야 돼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셨다면서요? 그분이 잘 참아내셨어요. 우리는 그분처럼 참지 못하지만, 그분의, 그 환란에,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그 영광스러운 사실을, 여러분에게 환란이 닥쳤을 때, 인지하시고, 자각하시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신 게 아니에요. 여러분을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지금 아주 세밀하게, 여러분의 삶에 간섭하고 있는 게, 여러분의 환란이에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계신, 교회인 여러분! 정말 그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여러분 지금 살고 계세요? 나라에 동참했다면서요? 그 통치에 순종하느라고, 환란을 당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증인으로 사는 삶 때문에, 환란을 당하고 계세요? 그 환란을 당하면서, ‘아! 나는 그리스도인이구나! 진짜 그리스도인 맞구나!’ 그렇게 그 환란을 자랑하고 계십니까? 힘들지만 소망을 바라보면서 잘 참고 계세요? 정 힘들면, 옆 사람을 보세요. 잘 참아내고 있는, 그렇게 가물에 콩 나듯이 잘 참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보면서, 참으시란 말이에요. ‘저게 바른 길이다! 저들도 참고 있다!’ 힘을 얻으세요.
그리고 여러분도 환란 속에서, 다른 형제들에게, 사도 요한처럼 그렇게 외치세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9절 말씀이, 바로 이 이야기에요. ‘나 김성수는,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사도요한이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은 나의 형제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환란과, 그분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참음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늘 은밀하게 교제하면서, 그분의 응원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요. ‘이겨라! 이겨라! 그 내 이야기를 좀 전해다오!’’ 저는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게 바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1장 9절의 말씀이에요. 여러분! 사도들을 대단히 여기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들이에요. 여러분도 동일한 고백을 하실 수 있어야 돼요. 여러분도 사도 요한과 동일한 고백을, 세상을 향해 던지십시오. 잘 참으세요! 잘 이겨내십시오! 제대할 날은 곧 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