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국립공원 가야산(1430m)
(경상남도 합천군, 경상북도 성주군)
2004년 11월 14일(일) 맑음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 불끈 치솟은 암봉이 으뜸인 산!
1972년 10월 13일 국립공원 9호로 지정된 가야산은 덕유산이나 수도산에서 바라보면 한 송이 만개한 연꽃의 형상으로 떠오르고 있어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룬다. 예로부터 한국 8승지 중 하나로 유명한 가야산은 1751년 이중환이 쓴 우리나라 지리서 택리지에 바위들이 날카롭게 잇따라 있어 마치 불꽃 같으며 공중에 따로 솟은 듯하여 극히 높고 또한 수려하다. 또 산의 모습은 천하에서 으뜸이라 적고 있다.
가야산은 상왕봉, 칠불봉 등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산 병풍을 두르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판(국보 제32호),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만물상과 홍류동 계곡 등의 명승고적과 수려한 풍광이 보석처럼 빛을 내고 있다. 특히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대장경판은 2007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을 얻고 있다.
가야산의 명칭은 합천지방에서 자리 잡은 가야국의 제1봉이기 때문에 가야산이라는 설과 인도의 불교 성지인 부다가야에 있는 가야산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설이 있다. 인도 가야산 정상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가야산은 불교가 전해지기 전에도 우두(牛頭)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불교 범어에서 가야는 소를 뜻하는데 가야산은 불교 성지란 의미가 있다.
가야산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에 솟아있는 대덕산(1290m)부터 시작된다. 대덕산 정상 남쪽의 남봉(1150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간 가야 지맥 산줄기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가르며 약 6.3㎞를 달려나가 국사봉(875m)을 빚어 놓는다. 이어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 가야 지맥 산줄기는 약 6.6㎞를 뻗어 나가 우두령에 가라앉은 다음 산세를 높여 수도산(1317m)을 솟구친다.
수도산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 가야 지맥 산줄기는 단지봉(1327m), 좌일곡령(1258m) 등을 일으키며 장쾌하게 뻗어 나가 대덕산 남봉부터 약 32Km 거리에 두리봉(1133m)을 솟구친다. 가야 지맥 산줄기는 두리봉서 약 3.4Km를 더 뻗어 불끈 치솟아 가야 지맥의 맹주인 가야산을 일으키며 웅장한 산악미를 뽐낸다. 가야산을 솟구친 가야 지맥 산줄기는 계속해서 경상남북도의 도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가산(690m) 북두산(688m) 미숭산(735m)을 빚어 놓는다. 산세가 낮아진 가야 지맥 산줄기는 완만한 산세로 뻗어 나가 가야산부터 약 25㎞ 거리에 구미산(121m)을 빚고 난 다음 남은 여맥을 낙동강의 지류가 되는 가야천에 가라앉힌다.
산객들을 태운 차는 김천IC를 빠져나와 3번 도로를 달린다. 대덕초등학교에서 좌회전하여 30번 도로로 방향을 바꾼 버스는 오른쪽으로 웅장한 수도산 산줄기의 위용을 보여주며 가래재에 이르러 절정을 나타낸다. 이제 내리막길로 차는 달린다. 산 대신에 아름다운 대가천이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차창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계류와 어우러진 널찍한 반석들은 환상적인 경관이다. 차가 성주호를 휘감으며 59번 도로로 전환하자 하늘에 닿을 듯 웅장하게 솟아있는 멋진 모습을 하는 가야산이 시야에 들어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등산이 시작되는 백운동 지구에 들어서자 가야산은 안개가 피어나고 있어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차에 내려 가야산을 바라보니 바위 봉우리들이 불꽃같이 타오르는 듯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하여(10:15)
7분쯤 포장도로를 따라 나아가 매표소에 이른다(10:22). 백운교를 건너자 그 앞으로 넓게 조성된 야영장이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 오름이 시작됐다. 용기골 계곡 옆에 나 있는 길을 따라 돌들이 박혀있는 산길은 급하지도 않고 완만하지도 않은 평범한 길이었다. 백운동 계곡 위에 나 있는 다리를 번갈아 건너기도 하고 이따금 산죽이 나타나는 길로 올라가 백운 암자 터에 닿는다(11:06). 절터라곤 하지만 잡목이 우거진 공터라 볼거리가 없다.
상왕봉 2㎞, 칠불봉 1.8㎞, 백운동 2.3㎞라고 쓴 이정표 팻말이 서 있다. 이어서 제법 가팔라진 길을 따라 16분쯤 올라가 시야가 트이는 서성재에 닿는다(11:22).
서성재서 왼쪽 길로 나아가면 기암 전시장인 만물상 능선을 타게 된다. 서성재엔 많은 산객이 휴식하고 있고 상왕봉 1.4㎞라는 팻말도 서 있다. 이제부턴 능선을 타고 산에 올라가게 된다. 나무 계단 길로 3분쯤 올라가자 부드러운 흙길이 되더니 금방 너덜지대가 나타난다(11:25). 상왕봉 1.1㎞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너덜 능선이 끝나고(11:31) 사다리 철 계단길이 나타난다.
뒤돌아보니 산 아래 풍광은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구간은 험한 능선이지만 위험한 곳엔 철 계단이 놓여있고 막힘없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을 선사하는 기분 좋은 구간이었다. 조금 후 환상적인 바위 봉우리에 올라선다(11:52). 상왕봉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고 휘둘러보는 조망은 탄성이 연발되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상왕봉 0.5㎞ 칠불봉 0.3㎞란 팻말도 서 있다. 환상의 암봉과 작별하고 잠시 내려가서 바위를 타고 오른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고 능선에는 얼음이 얼려있다. 가야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칠불봉(1433m)에 올라선 후(12:05) 암릉을 타고 조금 더 나아가 고스락(정상)인 상왕봉을 밟는다(12:12).
고스락의 조망은 일망무제의 감동이 밀려온다. 비 온 뒤의 날이라 사방팔방 막힘없이 시야를 따라 굽이치는 장쾌한 능선의 물결에 정신없이 취해본다. 우선 먼저 남쪽으로 매화산을 비롯한 암봉들을 줄줄이 꿴 기암 능선이 첩첩하다. 남서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부터 만복대까지 산줄기가 하늘선을 이루고 서쪽으로 가까이 남덕유산부터 덕유산 향적봉까지 산줄기가 뚜렷하다.
덕유산 오른쪽으로 대덕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그 옆 북서쪽으로 민주지산 산줄기도 선명하다. 날카롭게 솟은 석기봉과 피라미드와 같은 두 봉우리의 각호산과 오른편으로 영동의 삼봉산도 시야에 와 닿는다. 북으로 눈을 돌리니 금오산과 팔공산이 반겨준다. 이 아름다운 산세를 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하산은 해인사로 나아간다(12:35). 조금 내려서니 해인사 4.5㎞란 팻말이 서 있고 뒤돌아본 상왕봉은 소의 얼굴과 비슷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불끈 솟아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상왕봉을 우두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분쯤 내려오니 기묘한 바위가 눈길을 끌고 그 아래 널찍한 반석에서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솟아있는 바위 봉우리를 바라본다. 돌출한 바위 봉우리는 자연미의 극치를 나타낸다. 잠시 산길을 벗어나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보물 264호인 석조여래 입상이 반긴다. 석조여래 입상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초기로 짐작된다고 한다. 석조여래 입상에서 10여 분쯤 간식을 먹은 다음 산에서 내려간다.
해인사로 내려가며 바라본 풍광
철 계단길이 나타나고(13:22) 얼마 후 삼거리 길목에 닿는다(13:42). 길목에는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마애불상을 갈 수 있는 왼쪽 길을 선택한다. 조금 내려서니 마애불 0.4㎞ 해발 960m라고 쓴 팻말이 달려있다. 이어서 나무계단길이 나타나고 금방 계단길이 끝나면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마애불 0.3㎞란 팻말이 달려있다. 계곡을 건너 가파른 쇠사다리를 올라간 후 걷기 편한 참 좋은 길로 진행해 마애불에 닿는다(13:53). 마애불상은 소나무가 울창한 평화로운 분위기의 능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애불상은 높이 7m쯤 되는 바위 면에 6.5m 높이로 꽉 차게 불상을 부조해 두었다. 경건하게 참배한다. 이정표 팻말에는 해인사 2.7㎞라고 쓰여 있다. 이제 한결 좋아진 산길이 나타나고 내려가는 산길 곳곳에는 잘생긴 큰 소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이정표 팻말에 해인사 2.4㎞, 해발 880m라고 쓰여 있는 곳을 지나 계곡에 이른다. 오른쪽 계곡과 벗 삼아 극락골로 하산이 시작된다.
심산유곡의 계곡 물
계류를 건너 계곡 왼쪽으로 산에서 내려간다(14:10). 조금 후 다시 계류를 건넌다(14:20). 이제 계곡 오른쪽 길로 산에서 내려간다. 백련암 능선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건너자(14:25) 산길은 넓어진다. 산비탈에 산죽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고 한 아름드리 장송들이 나타난다(14:27). 계곡에 걸쳐놓은 긴 목재 구름다리를 건너자 토신골 산길과 만난다(14:33).
이어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고(14:37) 응탑선원에 이른 다음(14:40) 바로 해인사에 닿는다(14:43). 해인사는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된 우리나라 삼대 사찰의 하나인 법보 사찰이다. 해인사란 이름은 해인삼매, 곧 깨달음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조 세조는 해인사를 천하 명산 생불주처 라고까지 극찬했다.
해인사 구경은 일주문부터 시작됐다. 일주문을 지나 아름드리 노거수가 우거진 길을 거슬러 오르자 1400년 된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봉황문과 해탈문은 보수공사 중이라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우회하여 넓은 뜰에 이르니 왼쪽에 종각이 반긴다. 위로 올라가 구광루를 지나니 큰 법당인 대적광전 앞뜰이다. 보물 254호인 3층 석탑이 돋보인다. 대적광전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한 후 대적광전 뒤로 돌아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을 관람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말로만 듣던 대장경판을 친견하니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마음의 평화까지 얻는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어머니께서 생전에 나와 같이 걸어갔을 길을 생각해본다. 대전에서 가장 큰 절인 고산사 신도회장을 역임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 싶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해인사를 샅샅이 살펴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십 여 분간 해인사에 머무른 다음 차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15:05). 15분쯤 걸어 치인리 도로 옆 주차장으로 내려가 행복한 가야산 산행을 마친다(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