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 정희연
이것은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미국에는 3대 트레일이 있다. 애팔레치안 트레일 (Appalachian Trail, A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PCT) 그리고 콘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 (Continental Divide Trail, CDT)이다. 그 중 하나인 피씨티(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는 멕시코 국경 캄포(Campo)에서 캐나다 국경 만닝파크(Manning Park)에 이르는 4285km의 길을 일컫는다.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가정폭력, 엄마의 죽음, 가족들과 흩어지고, 불륜, 마약, 남편과 이혼으로 인생 나락으로 떨어진다. 삶은 엉망진창이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십 번 이상 왜 이 여행이 의미가 있는지 자문했고, 이 도전에 적합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답을 되풀이하며 여행을 시작한다.
글을 쓴다. 개발새발이다. 띄어쓰기, 맞춤법, 문법 모든 것이 엉망이다.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전을 찾고 문법에 이상이 없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노력과 정성 없이 쓰다 보니 주제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잘 보이려고 멋있게 쓰려고 욕심을 부리다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 글을 써 왔는지 글쓰기를 배우고 알았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부끄럽다. 삶과 글을 같이 보자면 주인공 셰릴과 나는 다를 바가 없었다.
아내가 독서모임(단체 카톡 방)을 만든다고 한다. 적극 추천하며 나도 가입해 줄 것을 청했다. 오전 여섯시부터 추천 도서 5~10 페이지를 읽고 노트 1장에 좋은 글, 느낀 점을 적어 올리면 된다. 에스엔에스(SNS, Social Network Service)에서 비대면으로 이루어져 시간도 절약되고 좋았다. 모이지 않아도 돼 1년 365일 쉬지 않고 계속 하기로 했다. 바쁜 일이 있으면 미리 써 놓고 시간이 되면 올린다. 몇 달이 지난 후, 읽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 한 권에서 두 권으로, 시간도 한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늘려 여러 사람이 참여 할 수 있도록 했다. 2023년 2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했더니 아내는 내게 ‘반장’칭호를 주었다.
처음에는 자기계발서 위주였다. 7월 키다리 아저씨(지은이 진 웹스터), 8월 식물적 낙관(지은이 김금희), 9월은 와일드(지은이 셰릴 스트레이드) 등 소설 수필 에세이 등으로 늘려가고 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접하니 친숙하게 다가오고 이해도 빠르다. 500페이지가 넘는 것도 있지만 보통 200에서 300페이지 되는 책을 30페이지 내외로 필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느낀 소감을 적어 올렸다. 반응은 좋았다. 지금은 30일에 두 권의 책을 만난다. 매 달 새롭게 노트도 준비한다. 0.1%의 성장을 바라며 꼼꼼히 정리한다. 며칠 지나면 잊히던 내용이 읽고, 쓰고, 올리기를 반복하니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서 셰릴은 멕시코 국경을 출발해 사막을 만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밀림을 지나고. 방울뱀과 곰을 맞닥뜨리고. 눈으로 뒤덮여 길도 보이지 않는 고산지대를 거치고, 숲속에서 길을 찾지 못해 하루 종일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참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적응하는 것이 전부다. 혼자의 몸으로 발은 이리저리 찢기고 등도 피가 날 정도로 살이 벗겨졌다, 몸무게의 절반 이상이 되는 짐을 짊어지고 그는 거친 야생의 길을 걷는다.
2021년 하반기에 시작해 4학기를 시작한다. 3년째다. 3일, 3주, 3개월, 3년이 고비라고 하는데 이제 마지막 능선에 서 있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나도 가능성이 있는 걸까? 글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 굳은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해서 일순간에 결과가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다.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도 마감 시간에 겨우 마무리 한다고 하고, (강원국 지음, 「대통령의 글쓰기」 메치 미디어)에서도, 단 한 번에 통과된 글은 없고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씩은 폭탄(대통령이 고쳐보려 했지만 어찌 손을 댈 수가 없을 때 직접 녹음해서 테이프를 내려 보내는 일)이 터졌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 용기를 내자.
피씨티(PCT)는 길이 어떤 의미인지 가르쳐 주었다. 어느 길을 만나든 그 앞에서 겸손해졌다. 기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욱 겸손해졌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견디고 살아나가야 한다. 나는 발걸음이 느립니다. 그렇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와일드」 나무의철학)
글쓰는 일은 삶을 가꾸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 이것도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동감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주제에 맞게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읽는 이가 공감하지 못하면 그것 또한 잔재주에 불가하다. 2023년 하반기 또 글을 쓴다. 시작은 백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길을 그리고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선다.
첫댓글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마무리 하셨네요. 가을 학기에도 화이팅하세요.
심지현.
고맙습니다. 글을 같이 시작 했는데 올 가을에는 얼굴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하하!
@정희연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황선영.
고맙습니다.
벌써 4학기를 시작하시는군요. 저는 처음 글을 올리고 정말 민망하네요. 따라가겠습니다.
송향라.
고맙습니다.
벌써 4 학기네요. 그래도 훌륭합니다. 더군다나 독서 모임까지.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고지에 오를 때가 있을 겁니다. 최미숙
많이 배웁니다. 낙오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압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독서 토론하면 책을 더 깊게 읽게 되더라고요. 하시는 일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랄게요.(황성훈)
고맙습니다.
부지런하시네요. 감사 기간이라더니 언제 또 글을 쓰셨대요.
삶을 가꾸는 풍요로운 글쓰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조미숙)
눈치 봐 가며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를 받고 있는 중에도 이렇게 열심히 지내시는군요.
저는 사는 대로 생각하는데 삶을 가꾸고 있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한권종)
9월 26일까지 입니다. 이상 없이 잘 지나가기를 바라봅니다. 고맙습니다.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면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하반기도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 꾸준함으로 이번 학기도 파이팅하시게요. '와일드'는 교수님이 수업 중에 추천해 주셔서 저도 재밌게 읽었답니다.
맞습니다. 저번에 교수님께서 추진해 주신 책, 봄에 읽고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30페이지로 요약해 놓아 이제 내 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늘 백지에서 시작한답니다. 독서에 대해 관심있게 공감하며 잘 읽었네요. 역시 다릅니다.
어제도 엄청 꾸지람 들었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좀 나아졌네요. 다시 힘을 냅니다. 고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