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른 자녀의 종원 자격을 놓고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차제에 종중(宗中)과 족보(族譜)의 순혈성(純血性)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종중(宗中)이란 무엇이며, 또 족보(族譜)란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종중(宗中): 성(姓)이 같고 본(本)이 같은 한 겨레붙이의 문중.
족보(族譜):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
다시 말해서, 종중은 같은 겨레붙이의 모임이고, 족보는 그 겨레붙이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혈통(血統)', 즉 '같은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종중은 같은 핏줄의 모임, 즉 순혈(純血) 집단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피가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혈통을 유지해야 진정한 의미의 종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같은 핏줄'은 100% 동질성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같은 핏줄'이란, 특정 인물을 기점(정점)으로 하여 후손들이 그의 유전자(일부)를 서로 공유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종중은 특정인의 유전자(일부)를 공유하는 자연발생적, 생물학적 구성체입니다. 이 구성체의 '순혈성(純血性)'이란 바로 이런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宗中과 族譜의 순혈성(純血性)은 입양제도가 도입되면서 무너졌습니다. 예를 들면, 7世 부윤공(경주공: 휘 萱)의 장손 단양공(휘 季老)은 아들이 있었으나 무후(无后)하여 7世 세양공(휘 薑)의 증손 찰방공(휘 謇)을 양자로 들여 그 후손들이 부윤공파의 종중원(宗中員)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윤공 종중을 순혈 종중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남박씨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와 유사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반성부원군파 종중, 활당공파 종중 등등. 반성부원군파 종중에는 반성부원군의 피[血]를 이어받은 종원이 단 한 분도 안 계십니다. 활당공파 종중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때로는 아들이 멀쩡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자라는 이유 하나로 자신의 핏줄이 아닌 사람을 입양하여 후세에 내부 갈등의 요인을 제공하고, 자신이 속한 종중의 순혈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경우도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러한 경우들은 그래도 대종중이라는 넓은 차원에서 본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즉, 맨 처음 출발 기점을 시조(1세) 호장공으로 한다면 다 같은 혈족으로 볼 수 있으니 순혈성이 유지된 셈입니다.
그러나 족보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사리에 맞지 않는 세계(世系) 연접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결과적으로 공인된 입후(立後) 절차 없이 환부역조(換父易祖)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는 것이지요[註]. 두말할 것도 없이 순혈성이 훼손된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드문 일이기는 하겠지만) 호장공의 후손이 아닌 이들이 들어와 대종중 전체의 순혈성마저 의심 받게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민망하고, 외람되고,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과거 수보(修譜)에 관여하신 분들의 관심 부족과 관리 부실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명백한 오류는 수정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족보 등재 과정을 좀 더 엄밀하게 규정하고 철저한 (2중, 3중) 검증과 확인을 통해 오류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족보 편찬에 관여하시는 분들께서는 우리 족보(임오보에서 임진보까지)를 찬찬히 살펴보시고, 무엇이 잘되어 있고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세밀하게 연구해 보시는 것도 믿을 수 있는 족보(세보)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족보의 오류는 곧 역사의 오류가 됩니다. 역사의 오류를 그대로 뒷사람들에게 전승(傳承)하는 행위는 비판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족보에 오류가 자꾸 나타나면 그 족보의 신뢰도는 점점 떨어져 종국에는 분명한 사실도 믿을 수 없는 거짓으로 보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대종중 전체의 순혈성이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급적이면 소종중의 순혈성도 함께 유지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족보(세보)와 관련되는 일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헌신과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頓首
[註]
따지고 보면, 입양도 일종의 환부역조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 경우는 모두가 인정하는 관습 또는 규정(법)에 의한 것이니 문제 삼지 않을 뿐입니다. 본래 아들이 없는 자가 가계를 이을 목적으로 양자를 들이는 것[입후(立後)]에 대해 『경국대전』 예전(禮典)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嫡·妾俱無子者告官, 立同宗支子爲後。(적처(嫡妻)와 첩(妾)에 모두 아들이 없는 자는 관(官)에 신고하여 동종(同宗)의 지자(支子)를 세워 뒤를 잇게 한다.)(支子: 적장자(嫡長子) 외의 여러 아들. 즉 차자(次子) 이하의 아들을 말함)
이 규정에 의하면, 가계를 잇는 순서는 원칙적으로 적자(嫡子)→첩자(妾子)→양자(養子) 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반들은 첩자가 있더라도 무시하고 양자를 들였는데 때로는 아주 먼 촌수(寸數)에서 들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결국 자신이 속한 종중의 순혈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로 인해 때로는 "◇◇공파(◇◇公派)" 종손(宗孫)이 "◇◇공"의 혈손이 아닌 경우가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아예 혈손이 전혀 없는 파계가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속된 말로, "붕어 없는 붕어빵", 또는 "무늬만 붕어빵"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윤리 의식이 그랬습니다.
첫댓글 <종약 제2조(구성)이 종중은 반남박씨 시조 호장공의 후손인 성년남녀의 자연 발생적 구성체이다.>
우리의 종약만을 잘 이행하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입양제도를 반대(폐지)하는 것입니다.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이니 지금 와서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새로운 족보 기록 방식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
즉 양자 위주 기록 방식이 아니라 혈자(血子) 위주 기록 방식을 택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미 존재하는 족보(세보)는 그대로 인정하고요.)
그리고
제가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계(世系) 연접 자체를 잘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대종중 전체의 순혈성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