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말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때와 상황,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말은 아이에게 힘이 되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국어교사로서는 아이들이 쓴 글을 보고 종종 감탄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서 우러난 "글에서 이 부분이 참 좋은데?"라는 격려 한 마디가 아이가 글을 쓰는 힘이 될 때도 종종 있더군요. 교사들은 가르치는 학생 뿐 아니라 수많은 관계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학교의 리더십, 동료와 선후배 교사, 제자, 학부모. 그래서 교사들은 다양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지금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신규교사 시절부터, 저도 때마다 말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깊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데까지는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수업은 교사에게 일상이기에 늘상 말하고 듣던 습관으로 수업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수업이라는 공적인 상황이었지만 제가 평소에 하던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던 잡담을 많이 했었죠. 매일 수업을 계획하긴 했지만 수업 시간에 사용할 언어를 찾는 노력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미리 생각해둔 말이 없으니 수업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 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수업의 흐름이 잘 그려지지 않았던 것은, 할 말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가르침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주며,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원하는 교사라면 할 말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고민에 힘을 쏟은 교사의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의 표현도 그렇겠지만, 언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긴 생각의 깊이가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그 진심이 이어져 듣는 이의 내면의 변화를 만듭니다. 그래서 매 수업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떠올리고, 가르칠 것을 만나고, 내 삶의 메시지를 건져내는 과정이 있어야 교사의 말이 탄생합니다.
할 말이 생길 때까지 고민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배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입니다. 학교의 행사 때, 아이들이 준비한 'last dance'라는 노래를 소개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last dance'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죠.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 무도회를 Prom party라고 하는데, 그 댄스파티에서 추는 춤을 last dance라고 한다는군요. 각자가 다른 대학이나 자신의 진로를 찾아 떠나기 전에 졸업 파티에서 함께 춤을 추자고 신청하는데, 이것이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할 기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라스트 댄스는 마지막 기회(last chance)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군요.
그리고,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은퇴시즌이었던 1997~98 시즌 잭 필슨 감독이 선수들에게 나누어준 다이어리 표지가 'The Last Dance'이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라스트 댄스'가 은퇴를 앞둔 노장 스포츠 선수의 마지막 활약상을 표현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자, 이 노래가 더 특별하게 저에게 다가오더군요. 이에 대한 PPT도 만들고, 아이들이 노래를 준비하는 동안 제가 찾은 정보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더니, 듣는 분들이 더 특별하게 노래를 들어주셨던 거 같습니다.
이렇게말할내용을찾고만들어가는것도중요하지만, 그것을오래고민하다보면, 결국나의단어나문장으로개성있게표현됩니다. 교사들각자가가진특성이있고, 살아온역사가다르기에이미교사라면각자의말에개성이묻어있지만, 공을들여말을가꾸어나가는교사들은힘이있는자신만의언어를가지고있습니다. 그런교사들을만나면놀랍기도하고또한반갑습니다. 예를들면, "발표를하고나서는, 다음사람을지목해주세요."라고표현해왔는데, 동료선생님께서 "발표를하고나서, 다음발표를해주실분을초대해주세요."라고말하시는것을보았습니다. 미묘한차이같지만, 어떤이에게는큰차이일수있겠다생각하며, 그배려하는언어를배운적이있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발표를 들어보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멋져 보이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 저도 그런 마음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이기주 작가는 <말의 온도>에서 말에는 온도가 있다며 우리가 하는 말의 온도를 점검해보자고 말합니다. 내가 쓰는 언어의 온도는 타인을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저의 딸이 보고 있던 <내일은 실험왕>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달에 있다면 아무리 멋진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달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소리는 공기의 진동으로 서로에게 전달되기에, 만약 공기가 없으면 아무 말도 서로 들을 수 없다고 하네요. 공기가 울려야 말이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멋진 말을 찾는 것보다 더 종요한 것이 있다면,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먼저 가슴이 울려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울리게 되거든요. 좋아 보이는 말을 하는 것보다 나에게 울림이 있는 말을 찾고 가꾸는 일이 더 먼저입니다. 진심이 먼저입니다. 진심을 담긴 평범한 말이 마음이 없는 특별한 말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멋진 말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내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저희 가정이 겪은 큰 일을 옆에서 세심히 도와준 친구분과 통화하면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면서 다른 말 없이 고맙다는 말씀만 여러 번하시더라고요. 제가 옆에서 듣는데, 그 말이 진짜 마음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어머니가 하신 말의 온도가 참 따뜻했습니다.
또한 같은 의미의 말을 하는데도 그 말의 무게가 묵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을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말을 잘한다고들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을 잘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을 잘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좋은 습관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그때에 맞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품어왔던 생각을 선물처럼 내어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겪고 거리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후배교사에게 한 선배교사는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길가에 있는 흔한 나뭇잎 사진이었어요.
"내가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한 가지에 잇는 나뭇잎들이 서로를 덮고 있지 않더라고. 서로의 공간을 내어주면서 서로의 거리를 두고 있기에 햇빛을 받고 나무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더군.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내 곁에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선생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혹시 지금은 거리가 필요한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하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시는데, 참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타인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설득력 있게 말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말의 무게는 생각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당장 써 먹을 것들을 찾아 사냥하는 특별한 때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주로 지내는 일상이라는 때에서는 자세히 보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말과 내 삶을 살지게 하는 습관입니다.
저는 때때로 제가 곧잘 하고 있는 말을 점검하곤 합니다. 교무실과 교실에서, 집에서 어떤 말을 반복해서 하는지를 살피는 일을 합니다. 또 일부러 반복하는 말도 있습니다. 요즈음, 의도적으로 자주 하는 말은 "그럴 수도 있지"입니다. 저는 생각없이 본능대로 말한다면, 다른 이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가시 돋힌 말만 할 것 같아요. 제가 있는 공간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습관을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말을 잘 하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을 저도 하려고 노력하곤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교실에서는 "그런 것도 모르냐?"라며 핀잔을 주는 소리가 종종 드립니다. 아마 그런 말을 이미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겠죠. 그럴 때, 저는 장난으로라도 그 소리를 들었던 아이의 편이 되어줍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 다른 학생들도 많이 봤는 걸."
가정에서도 그 말을 자주 쓰려고 노력합니다. 식사 준비가 안 되었어도, 숙제를 안 했어도, 방이 좀 어질러 있어도, 아직 잘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고, 또 마음에 새기며 서로를 이해해봅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권면하고 또 함께 해나가려고 해봅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가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는 것이죠. 좋은 언어를 쓰는 것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됩니다. 교사는 지식뿐 아니라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괜찮아"
"좋은 생각이야"
"그럴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