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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시간과 기억의 공간들
- 이창식 시인의 시 세계
지은경 (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1. 시작하며
챗봇 GPT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며 마법 같은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하염없이 쏟아지 는 함박눈을 맞으며 전설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 억 수로 쏟아지는 비 오는 날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 가슴속에 그리움을 한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시를 쓰는 시인들이다.
이창식 시인의 첫 시집 『생각꼬투리』를 세상에 선보인다. 89편의 시편들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제1부 25편 ‘사랑이고 정이고’에서는 아내, 어머니, 아버지, 아들, 며느리, 딸, 조부모 손자 등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중심으로 쓰고 있으며, 제2부 26편 ‘생각꼬투리’는 시인이 시를 쓰면서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치는 장이다. 제3부 24편 ‘시간은 풀잎처럼’에서는 식물, 동물, 곤충 등 자연에 관한 시들을 모았으며, 제4부 동시 14편 ‘친구야 놀자’에서는 교직 생활하며 아이들과의 추억들을 시로 남기고 있다.
시인은 오랜 기간 작은 섬 학교에 근무하며 아이들과 하나 된 선생님이었고, 교사 교감 교육전문직을 두루 거쳐 교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한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분이었는데 늦게 다시 시인으로 제3의 삶을 사는 분이다. 평자가 이창식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반듯한 외모와 선한 눈매, 예의 바른 언어에서 도덕과 양심, 균형 잡힌 인격을 갖춘 분으로 문인다운 인상을 받았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묻는 것이며 시는 나를 만나는 참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시에 입문하는 것은 거짓 없는 마음으로 돌아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정직하다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성실하다는 것은 그 진실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해서 삶이 반듯하면 글도 순결하게 드러낸다. 이창식 시인의 시편들은 안정적인 언어로 시의 특징인 운율과 함축성을 살려 깔끔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시를 읽고 있으 면 평안하고 따듯하다. 그런 안정감은 오랜 습작과정을 거쳐 다져진 지성과 감성이 고요한 시심을 샘물처럼 길어 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시편들을 읽어보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내 사랑 나의 가족, 공동체 의식
늦깎이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나의 일상과 주변을 새롭게 바꾸어 보겠다는 결의에서 시작된다. 시적 인식은 시적 체험에서 획득되어 시로 확장된다. 시인에 게 가족은 뫼비우스 띠처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항구적인 것이다. 끝없는 사랑과 사랑으로 결속된 공동 협력체로서 강화되며 참다운 실천으로 이어진다. 시인의 가족사랑은 한없이 베푸는 자비요 지극한 마음을 열 어 보여주는 천상의 노래이다. 그의 시들에서는 불안, 고독, 공포, 부조리와 같은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기도처럼
안락한 의자
온기를 나누는
부젓가락
밀고 미는
찬饌 한 점
볼우물 푸른 언덕
주름꽃 호박꽃
팔부능선에 핀
상고대
빈 듯 빈 듯
가득 찬 하얀 손
- 시 「너와 나」 전문
위의 시는 잔잔한 ‘사랑의 찬가’이며 ‘자유’와 ‘평등주의’ 사상이 내포된 시이다. 진정한 사랑은 관심이고 배려이며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참된 사랑은 상 대방을 지켜주고 존중하는 이타적인 삶으로 행복을 배가시킨다. 1연의 “기도처럼/ 안락한 의자”에서 ‘너와 나’는 ‘기도’요 ‘안락의자’가 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와 나’는 “온기를 나누는/ 부젓가락”이다. 젓가락은 한 짝으로는 활용가치를 잃는다. 한 쌍이 될 때 그 가치를 이루며 능력을 발휘한다. 온기를 나누는 한 쌍의 부부는 한 쌍의 젓가락처럼 인간적이다. “밀고 미는 찬饌 한 점”에서 서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을 볼 수 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오묘한가. 비록 한 점에 불과한 찬에 지나지 않지만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사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볼우물 푸른 언덕/ 주름꽃 호박꽃// 팔부능선에 핀/ 상고대”에 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볼우물이 패이고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한 것을 화자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빈 듯 빈 듯/ 가득 찬 하얀 손”은 시간의 흔적 푸르름이 사라져 이제는 빈 것 같지만 ‘너와 나’의 사랑만은 결코 빈 것이 아닌 가득 찬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위 시 「너와 나」는 기도와 같은 관계요 안락의자처럼 편안한 관계임을 재발견하는 사랑 이 담긴 인간주의,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사상이 담긴 시이다. 기도는 성찰과 안녕의 정신적 영혼의 바램이며, 안락의자는 육신을 편히 쉴 수 있도록 받아주는 현실의 안주이다. 화자는 허물어져 가는 시간 속에서 「너와 나」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다. 시는 말과 글로 표현하는 언어예술이다. 시적 묘사는 설명이 아닌 상징적으로 암시적로 표현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짧은 언어로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 시이다. 시 「너와 나」는 뜨거운 사랑에서 인간애로 확장하면서 생 명성을 잃지 않고 있어 성공적이다.
둘이 사는데
새벽 어시장에 자주 간다
가자미 갈치 사서
좋은 놈 가려 아들딸네에 보내고
재미를 사서 기쁨을 나누고
미각도 채우니 밑지지 않는다
우리 밥상도 제법 푸짐하다
미역국, 달걀후라이
빛깔 나는 나물도 있고
가자미 갈치구이가 교대로 나온다
그런데, 꼭 삐딱하다
가자미는 큰놈 작은놈으로
갈치 두 도막은
큰 도막과 반 도막 같은 한 도막이
큰 도막 작은 도막을 돌려놓으면
아내는 눈 깜박할 사이에 원위치
별일이다
그림에 없는 그림인가 봐
- 시 「갈치 두 도막」 전문
부와 명예를 모두 얻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은 본능적인 욕망이 채워져도 영혼이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양분 없는 흙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삶이 시들시들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행복하기 위해서는 ‘덕의 실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덕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자기감정 절제의 중요성으로 해석된다. “둘이 사는데/ 새벽 어시장에 자주 간다// 가자미 갈치 사서/ 좋은 놈 가려 아들딸네에 보내고/ 재미를 사서 기쁨을 나누고/ 미각도 채우니 밑지지 않는다”고 화자는 말한다. 화자의 부부는 시장을 같이 다니는 화목한 가정임을 본다. 가자미 갈치를 사서 아들딸네 보내며 그것이 사는 재미이며 기쁨임을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을 실천’하며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밑지지 않는 장사라고 말하는 것에서 이들 부부에게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보게 된다. “우리 밥상도 제법 푸짐하다/ 미역국, 달걀후라이/ 빛깔 나는 나물도 있고/ 가자미 갈치구이가 교대로 나온다// 그런데, 꼭 삐딱하다/ 가자미는 큰놈 작은놈으로/ 갈치 두 도막은/큰 도막과 반 도막 같은 한 도막이”에서 장에 다녀온 날 미역국, 달걀후라이, 빛깔나는 나물, 가자미 갈치구이 밥상이 푸짐하다. 그런데 화자는 잘 차려진 밥상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생선이 큰 도막과 작은 토막이 나온 것이 불균형을 이룬다. “큰 도막 작은 도막을 돌려놓으면/ 아내는 눈 깜박할 사이에 원위치/ 별일이다”에서 아내는 남편 앞에 크고 좋은 생선을 놓고 자신의 앞에는 보잘것없는 작은 생선을 놓는다. 화자는 얼른 아내가 오기 전에 제 것과 바꾼다. 아내는 눈 깜박할 사이에 원위치한다. 이들은 생선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더 큰 사랑을 바꾼 것이다. 시 「마주 보기」에서 화자는 아내를 ‘엄마다운 사람’, ‘등 하나에 마음은 열 갈래/ 남 몫 앞세우다 자기 몫 빈/ 땅에서도 천상을 사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아내가 매우 인성이 좋은 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뭐꼬……, 늙어 신랑 각시하며 행복의 비명을 지르고 있잖은가! 평자도 순간 닭살 돋는 부러움이지만 TV에 나오는 행복한 노부부를 보는 듯 행복하시라 마음의 큰 박수를 보내게 된다.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시 창작은 고매한 지성이 사랑과 윤리를 품음으로써 21세기 황폐한 현대성을 품으며 빛나고 있다. 극단의 개인주의가 황혼이혼을 부르는 삭막한 시대에 대중에게 따듯함을 선물하는 시이다.
파도가 문턱을 울려
얻은 아이
파도도령이 되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꽃도령이라 했다
품에서부터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 했으니
꽃밭이 놀이터라서
꽃길로만 다니지 않고
사막의 땅 얼음의 나라에서
없는 것 만들고 있는 것 다투고
거미처럼 그물 쳐
제 세상을 걸어놓고
달 보고 별 보고 진주眞珠 캔다
파도도령이라 할걸
오대양을 멋 부리며 떠다니게
- 시 「꽃도령」 전문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인류의 보고이다. 화자는 해외에 근무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고 한다. ‘파도의 문턱을 울려/ 얻은 아이’라고 하는 것에서 바닷가에서 태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바다는 행운과 번영을 상징한다. 바다의 문학적 상징은 재생, 존경, 정의로움을 뜻한다. 파도의 태몽은 무한한 자유의 상징하며 용감한 개척정신을 가진 아이의 출생을 의미한다. “파도가 문턱을 울려/ 얻은 아이”는 우렁찬 파도 소리에서 세상을 깨우는 일을 할 것이라는 예언적 신비성을 암시하는데 “파도도령이 되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꽃도령이라 했다”에서 아들은 꽃미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꽃길로만 다니지 않고/ 사 막의 땅 얼음의 나라에서/ 없는 것 만들고 있는 것 다투고/ 거미처럼 그물 쳐/ 제 세상을 걸어놓고/ 달 보고 별 보고 진주眞珠 캔다”에서 꽃 같은 아들이 사막과 얼음의 척박한 땅에서 진주를 캐낸다는 것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정신을 읽게 된다. 마지막 연에 “파도 도령이라 할걸/ 오대양을 멋 부리며 떠다니게”에서 화자는 시 「고향의 대숲」에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꿈을 키워주었듯이 아들에게 꿈을 대물림하고 있다. 해서 아들이 편한 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더 큰 길로 나아가길 원한다. 오대양 육대주 지구를 내 나라처럼 다니며 큰 뜻을 펼쳐 세계인으로 멋지게 살 것을 바라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이다.
옥동자 눈떴다
강보에 뜬 별
작은 거인
바통 받으러 온 선수
백일 꿈동산 넘어
생이별 천릿길
가슴도 딸려 보낸 제 어미
조물주가 된 할머니 손길
토실토실 방긋방긋
쫑알쫑알 종달이
제 아가 보는 날
마음은 날고
야간열차는 기고
숨차게 달려도 날을 넘긴다
안아볼까 업어 볼까
고사리 손등 눈물 젖는다
엄마 인기척 알았을까
잠을 턴 아가
눈빛 번개 쳐 엄마 박힌다
으아-앙!
꿈속을 다닌 2박 3일
차창 꼬리 흔들고 빠진 세월
“할머니, 언제 오세요?”
할머니 쟁탈전 벌인다
- 시 「아가야」 전문
가족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초월적 관계이다. 끔찍한 사랑인 동시에 한없이 기쁨인 존재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에서 보는 화자의 가정은 적어도 그러하다. 요즘의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조부모는 ‘손주 돌봄이’의 제1순위이다. 엄마 아빠 외에 아가를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할머니이다. 워킹맘이 마음 놓고 아기를 맡길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인 것이다. “옥동자 눈떴다/ 강보에 뜬 별/ 작은 거인/ 바통 받으러 온 선수//백일 꿈동산 넘어/ 생이별 천릿길/ 가슴도 딸려 보낸 제 어미”에서 ‘강보에 뜬 별’, ‘백일 꿈동산’에서 신생아를 겨우 면한 아가가 엄마와 생이별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화자는 ‘작은 거인’, ‘가슴도 달려 보낸 어미’라고 한 것에서 손주를 귀히 여기며 안쓰럽게 여기는 연민의 시선이 된다. “제 아가 보는 날/ 마음은 날 고/ 야간열차는 기고/ 숨차게 달려도 날을 넘긴다//안아볼까 업어 볼까/ 고사리 손등 눈물 젖는다/ 엄마 인기척 알았을까/ 잠을 턴 아가/ 눈빛 번개 쳐 엄마 박힌다” 아가를 만나러 오는 날 엄마는 기차가 느리다. 야간열차는 날을 넘기고 그렇게 만난 엄마와 아가는 남북 이산가족이 만난 양 안아보고 업어 보고 눈물 콧물 난리부르스다. 영문도 모르는 아가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으아-앙!’ 울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눈물로 키운 우리의 아들딸들이다. “꿈속을 다닌 2박 3일/ 차창 꼬리 흔들고 빠진 세월/ 할머니, 언제 오세요?/ 할머니 쟁탈전 벌인다”에서 벌써 아가들이 많이 자란 것을 알 수 있다. 할머니 언제 오시느냐며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에서 손주와 할머니와의 돈독한 정이 쌓인 것을 읽게 된다. 시 「땟중이」에서도 “할아버지 품에 안겨/ 두 손 감싸준다/ 아프지 말라”며 화자와 손주의 관계가 사랑이 넘치고 돈독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시 「대상포진 뒤풀이」에서도 “손자의 메시지/ 할아버지 많이 아파요?”에 화자는 눈시울을 적신다. 생명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먼 훗날 손주들이 자라서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준 조부모의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라는 사랑의 힘이 삶을 풍요롭게 하며 승리로 이끌고 있다. 사랑이 있는 곳이라면 고생은 행복으로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이다. 인간의 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게 하는 가족의 情을 표현한 시이다.
인연은 햇살이다
안 마루 깊숙이 들어
가슴 가슴 데우고
굳세게 뿌리 내려
일출보다 뜨거운 꿈을 낳았다
물방울 모여 개울 넘치고
작은 씨앗 하나 더해 숲이 되듯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싸락싸락 봉우리 하나 섰다
내리사랑 치사랑
호박꽃 초롱이고
새까만 밤 박꽃이고
등 토닥이는 은빛 물결이다
기쁨 두 배 아픔 두 배
까투리 제 새끼 거두어 가듯
잔바람 센 바람에 이파리 춤추듯
같은 듯 다른 천릿길 속살거림이다
- 시 「며느리 하나」 전문
‘며느리’는 순우리말이다. 며느리의 호칭이 부르는 사람에 따라 아가, 새아가, 어멈, 며늘애, 에미, 자부 등 참 다양하다. 며느리의 어원은 정확치 않으나 ‘메나 리’에서 ‘메느리’, ‘며느리’의 변천 과정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메나리’는 제사를 지내는데 소중한 제물인 밥을 준비하고 나르는 사람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어원의 유래는 역사의 흐름과 사회 변천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어원이 그렇다 보니 여성단체에서 여성 비하로 논쟁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21세기에 사는 아들딸들은 모두 공주 왕자로 귀하게 자랐다. 며느리를 밥이나 하는 여자로 대접하지는 않는다. 대신 여성 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은 사회의 일원으로 며느리가 과거의 며느리가 아닌 새 시대의 며느리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시대의 며느리는 어떤 존재인가? 화자는 “인연은 햇살이다// 안 마루 깊숙이 들어/ 가슴 가슴 데우고/ 굳세게 뿌리내려/ 일출보다 뜨거운 꿈을 낳았다” 시제가 「며느리 하나」에서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하나뿐인 며느리에 대한 메 시지는 ‘햇살’ 같은 존재이다. 마루 깊숙이 들어와 가슴마다 데우고 뿌리내려 일출보다 뜨거운 꿈을 낳는 존재이다. ‘낳는’ 가능의 존재가 아닌 낳았다고 하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화자의 며느리에 대한 ‘햇살’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랑과 존귀함으로 가득하다. “물방울 모여 개울 넘치고/ 작은 씨앗 하나 더해 숲이 되듯/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싸락싸락 봉우리 하나 섰다”며 날 이 가고 달이 갈수록 며느리에 대한 화자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인성이 좋은 며느리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내리사랑 치사랑/ 호박꽃 초롱이고/ 새까만 밤 박꽃이고/ 등 토닥이는 은빛 물결이다”에서 내리사랑 치사랑은 어른의 사랑을 아랫사람이 잘 받아들여 공손히 모시고 있음을 뜻한다. 하여 새까만 밤에도 박꽃처럼 집안이 환하다. “기쁨 두 배 아픔 두 배/ 까투리 제 새끼 거두어 가듯/ 잔바람 센 바람에 이파리 춤추듯/ 같은 듯 다른 천릿길 속살거림이다” 세상살이가 좋은 일만 있겠는가. 제 가문에서 살다가 다른 가문으로 왔는데 바람도 불고 아픔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 자식 거두듯 사랑으로 속삭이며 보살피니 화평으로 이어진다. 어른의 내리사랑이 한없이 품어주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시이다. 다른 시 「ktx 객실에서」도 “하트 그리며 가족사랑/ 창밖과 창안의 풍경이 사랑으로 가득” 에서 이별의 아픔은 사랑을 증명한다. 시는 진정 신성한 것이다. 이 시는 후손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뿌리 있는 시이다.
소라껍질 빠지듯
돌고 돌아 모롱이 풀고서야
자갈자갈 자갈길
검정 코고무신 코 무너져야
하얀 연기 산허리
산까치 까치집
보리떡 내음
통통통 알밴 벼 논
줄타기하듯 두렁 가면
퐁당퐁당 개구리 술래잡기
팔랑팔랑 메뚜기 날리기
가슴 푸른 풀 냄새 물 냄새
삿갓 논배미 치렁치렁
한나절 손톱 닳리고야
막걸리 풋고추로 허리 펴고
펀득펀득 낫질로 논 키 낮추면
두렁마다 낟가리 배 두드리고 선다
처마 끝에 걸린 보리쌀 바구니
맨 간장 뿌려 비벼 먹기
볼이 차도 숟가락질 급하다
돌아서면,
물 떠난 물총새 날개 푸르고
머리 뉠 잠자리 찾는 여우처럼
가슴 자욱 물안개 핀다
- 시 「고향 가는 길」 전문
고향의 공간적 개념은 나고 자란 곳으로 어머니의 젖가슴과 같은 곳이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고향, 어머니, 사랑은 영원한 주제로 다룬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하는 사람 등 고향은 잊을 수 없 는 그리움의 존재로 어머니와 동일시한다. 타국에 사는 사람들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애절하다 못해 그 상실감을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소라껍질 빠지듯/ 돌고 돌아 모롱이 풀고서야/ 자갈자갈 자갈길/ 검정 코고무신 코 무너져야/ 하얀 연기 산허리 / 산까치 까치집/ 보리떡 내음// 통통통 알밴 벼 논/ 줄타기하듯 두렁 가면/ 퐁당퐁당 개구리 술래잡기/ 팔랑팔랑 메뚜기 날리기/ 가슴 푸른 풀 냄새 물 냄새”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는 이미지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변했을 텐데 화자는 어릴 적 고향을 그림 그리듯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자갈자갈’, ‘통통통’, ‘퐁당퐁당’, ‘팔랑팔랑’ 등의 의성어 활용은 고향의 풍경이 한충 현재적이며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높여주고 있다. “삿갓 논배미 치렁치렁/ 한나절 손톱 닳리고야/ 막걸리 풋고추로 허리 펴고/ 펀득펀득 낫질로 논 키 낮추면/ 두렁마다 낟가리 배 두드리고 선다// 처마 끝에 걸린 보리쌀 바구니/ 맨 간장 뿌려 비벼 먹기/ 볼이 차도 숟가락질 급하다” 1~2연이 유년시절의 고향 풍경이라면, 3~4연은 청년기의 추억으로 보인다. ‘한나절 손톱 닳’도록 일하고, ‘막걸리 풋고추’, ‘낫질’, ‘낟가리’ 쌓는 것은 어린 소년의 모습은 아니다. “돌아서면/ 물 떠난 물총새 날개 푸르고/ 머리 뉠 잠자리 찾는 여우처럼/ 가슴 자욱 물안개 핀다”에서 고향에 대한 풍경이 아름다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평자도 시를 읽으며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시이다.
3. 사유의 여정과 시간의 연금술
시란 무엇이며 왜 시를 쓰는가? 왜 시인이 되고자 하는가? ‘왜’라는 질문은 참으로 중요하다. 철학에서 ‘왜’라는 질문은 그 문제의 근원을 찾는 길을 묻는 것이 되며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묻는 것은 존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검열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왜’라는 질문은 ‘무엇을’, ‘어떻게’라는 해답의 방향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시를 쓰는 과정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재확인하는 것이므로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는 완성에 가까운 인생길이므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 한 길인 것이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영혼이므로 영혼을 읽을 수 있어야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시간을 응시하는 시인은 시의 여백과 의미를 함축하여 짧으면서도 깊은 언어를 배치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작품은 작가의 명예와 인격도 함께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도끼 달랑 들고서
“따라와”
뒤도 보지 않고
대나무밭으로 들어선다
손아귀로 대를 골라
씨암탉 모이 쪼듯
날렵한 손놀림에
스르르 비껴서는 대나무
대밭에 대 끌어내기도 재주
대나무 가지를 곱게 치며
“넌 운이 있는 사람이야”
“네가 올 때면 대 주문이 생겨”
열 개씩 두세 묶음이면
내 학비가 되었지
대숲,
아버지의 의지
뻐꾸기 나래 펴고
댓잎처럼 푸른 꿈 하나 꾸었지
다시 그 대숲 만나보니
야위고 왜소하고 주름진 얼굴
눈길이 딱 마주친다
잊고 살았구나
고마워!
- 시 「고향의 대숲」 전문
순우리말 ‘아버지’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쓰인 것으로 전한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父性의 어근 ‘압’에 호격 조사 ‘아’가 결합된 ‘압아’에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아비’에 호격조사 ‘아’가 결합된 ‘아비아’에서 ‘l’가 탈락한 ‘아바’로부터 변한 것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어머니의 존재가 생물학적이라면 아버지의 의미는 관습적이고 사회적이다.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이다. 20여 년 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종족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참 어려운 관계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책임과 고통을 대물림한다. 그래서 아들이라는 과중한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알겠습니다” 이 한마디로 관계는 순탄하고 든든한 기반이 된다. “손도끼 달랑 들고서/ 따라와/ 뒤도 보지 않고/ 대나무밭으로 들어선다” 아버지의 ‘따라와’ 뒤도 돌아보지 않는 명령은 아들에 대한 확신에 찬 명령어이다. “손아귀로 대를 골라/ 씨암탉 모이 쪼듯/ 날렵한 손놀림에/ 스르르 비껴서는 대나무/ 대밭에 대 끌어내기도 재주”의 ‘씨암탉 모이 쪼듯’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대나무를 다루는 노련한 솜씨를 예사로 보지 않는다. “대나무 가지를 곱게 치며/ 넌 운이 있는 사람이야/ 네가 올 때면 대 주문이 생겨/ 열 개씩 두세 묶음이면/ 내 학비가 되었지” 인류사에 보기 드문 한국전쟁을 치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시기에 화자는 공부를 했다. 대나 무를 정성스럽게 치는 아버지는 순종하는 아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줄 심산이다. ‘넌 운이 있는 사람이야. 네가 올 때면 대 주문이 생겨’ 아들에게 하는 이 말은 사실이든 아니든 매우 희망을 주는 말이다. ‘넌 운이 좋은 아이야. 그러니 그 운을 꼭 잡아라’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아들의 학비 걱정을 덜어준다. 아들의 침묵은 아버지의 말씀을 받드는 순종의 자세이다. “대숲,/ 아버지의 의지/ 뻐꾸기 나래 펴고/ 댓잎처럼 푸른 꿈 하나 꾸었지” 대숲은 아버지의 꿈인 동시에 아들의 꿈이 된다. 이 시에서 대나무는 꿈의 상징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꿈이 동시성의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그대 숲 만나보니/ 야위고 왜소하고 주름진 얼굴/ 눈길이 딱 마주친다/ 잊고 살았구나/ 고마워!” 마지막 연은 현재 성으로 돌아온다. 까마득한 수십 년 전의 꿈동산을 찾아 ‘잊고 살았구나 고마워!’ 눈시울이 붉어짐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핵가족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존재는 아내와 자식들을 지키고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해서 아들은 아버지의 역할을 대물림하는 전통이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어져 왔다. 아들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서 세상살이를 배운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숭배의 대상이다. 시 「고향의 대숲」은 아버지와 아들이 존경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시이다. 오늘날 최악의 아버지, 최악의 아들들이 빈번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부자의 정을 읽게 된다. 다른 시 「선영에서」 “증조할아버지의 자리, 육척 장신 지팡이 의지하고/ 이 언덕에 하얗게 앉아/ 식솔들 일하는 들녘의 허수아비였다”에서 화자는 성실하고 신체가 좋은 조부를 닮은 듯하다.
출석 반 결석 반
산 넘고 물 건너 학교길
소 먹이다 눈비 와서
4·5학년 되어도 글 몰라서
읽기 셈하기 지명 당할까 두려워서
하루건너 하루 결석하던 아이들
거품 물어가며 읽어 주신
‘장발장’ 두툼한 소설
그 이야기에 귀 트인 아이들
앞자리 앞자리 모여들더니
어느 날 칠판에 빨간 글씨
‘전원 출석’
눈물 섞인 선생님 글씨
이야기에 귀 열리고 공부에 신나고
드디어 먼 도시 중학교까지
아이들 보낸
1958년, 그 선생님
교장 되어
꽃바구니 들고 뵙던 스승의 날
주름진 해맑은 미소, 그 아름다운 미소
자네도 늙어 가네
그때 감동 쫓아 칠순에
완역본 ‘레 미제라블’ 읽었다.
- 시 「선생님」 전문
흔히 교육은 인륜지 대사라며 삶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삼위일체가 되어야 좋은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요즘 학생과 학부모 대 선생님의 갈등이 깊은 것을 보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정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과거에 선생님의 훈육 차원에서 학생에게 주는 체벌이 지금은 폭력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배움과 가르침이 의무를 넘어 인격과 존경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출석 반 결석 반/ 산 넘고 물 건 너 학교길/ 소 먹이다 눈비 와서/ 4·5학년 되어도 글 몰라서/ 읽기 셈하기 지명 당할까 두려워서/ 하루건 너 하루 결석하던 아이들”에서 선생님도 학생도 어려운 환경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겪은 황무지에서 대한민국이 미래에 살길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여 신분이나 경제적 차별 없이 국민 누구나 초등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의무교육화하였다. 1960~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어린 나이에 학교 다니며 동생 돌보기, 소 먹이기, 나무하기, 나 물 캐기, 집안일 등을 거들어야 했으니 공부하는 학생들이 출석 반 결석 반이요, 하루건너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방의 학교는 도시처럼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한다. 하루건너 결석하는 아이들이니 고학년이 되어도 글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 선생님은 참으로 가르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거품 물어가며 읽어 주신/ ‘장발장’ 두툼한 소설/ 그 이야기에 귀 트인 아이들/ 앞자리 앞자리 모여들더니/ 어느 날 칠판에 빨간 글씨/ ‘전원 출석’/ 눈물 섞인 선생님 글씨//이야기에 귀 열리고 공부에 신나고/ 드디어 먼 도시 중학교까지/아이들 보낸/ 1958년, 그 선생님”에서 거품 물어가며 읽어 주신 ‘장발장’은 선생님의 열 정이 극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화자는 참교육자로서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텍스트 위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는 공부, 화자는 숫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육은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어 중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가슴 뿌듯한 기억을 고백하는 시이다. “교장 되어/ 꽃바구니 들고 뵙던 스승의 날/ 주름진 해맑은 미소, 그 아름다운 미소/ 자네도 늙어 가네//그때 감동 쫓아 칠순에/ 완역본 ‘레 미제라블’ 읽었다.”에서 심혈을 기울여 가르친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되었고 학생들은 스승의 날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니 교사로서의 보람이 한 가득이요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교육자의 길은 변함없이 숭고하고 아름답다. 무지를 깨우쳐주고 새로움에 눈뜨게 해주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어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이들의 두려움을 감싸주고 이끌어 주셨으니 선생님은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가. 사표師 表로서의 존경받는 덕망의 모습을 보여주는 미담의 시이다.
4. 맺으며
이창식 시인의 첫 시집 89편의 시편들을 읽고 감상을 겸한 해설을 썼다. 예시로 선정된 시들은 이 시집의 중심이 되는 시들이며 그 외에도 「가슴꽃」 「신선동자」 「영원한 동행」 「선영에서」 「나팔꽃」 등도 좋은 시들로 완성도가 높다. 문학이란 오로지 기억의 흔적과 감각에 의한 창작물이다. 이창식 시인의 시들은 지나친 시적 기교를 배제한 서정성과 주지성이 담백한 시격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공을 초월하여 지극히 평안하고 행복감을 안겨준다. 그의 시들은 영혼을 울리는 소통부호로서 자연스러움과 생명성이 돋보이며 빛나는 감성과 시의 틀 짜기가 안정적으로 일관돼 있다. 좌절과 회색의 시대를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순탄한 여정만은 아니었을 텐데 매우 긍정적인 인생관이 농축되어 있다.
이 시집은 현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미래의 세계를 지향하는 사상이 위대하다 하겠다. 시인은 가정의 평화와 미학적 선을 지향하는 도덕적 가치들이 사랑을 함유함으로 시가 평안한 상태를 유지한다. 문학은 인간과 세상의 문제를 성찰하고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작업이다. 말은 진리를 통해 비로소 그 가치를 드러낸다. 시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된 시대에 사회의 입법자로서 시인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들은 도덕적 지혜의 산물이 될 것이다. 무의식과 정의 산물인 시가 미덕과 사랑과 우정으로 세상의 모순과 비루와 부조리를 아름다운 불멸의 가치로 치환하고 있어 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창식 시인님의 첫 시집 『생각꼬투리』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문단의 빛나는 샛별이 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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