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정 情 즉 칠정(喜怒憂思悲恐驚)을 필두하는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접촉해서
감지되는 느낌이고
기분은 기가 더 미세하게 나뉘어 감정보다 더욱 세밀한 느낌을 뜻한다.
감정과 기분은 비슷한 말로 혼용하기도 하는데 기분이 나쁜 것이나 감정이 상한 것이나
같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뉘앙스가 좀 다르다.
감정과 기분은 타고난 품성과 달리 그때 그때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과 기분은 또한 타고난 품성에 바탕을 두고 발현된다.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두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떤 사람은 감정과 기분이 상하는
것은 본래 타고난 품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품성이 어떤지는 미리 알기 참 어렵다.
그러나 건드려 보면 금방 알수 있다.
호랑이의 품성은 보통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화가 났거나 배고플 때 사냥할 때에
드러난다. 그리고 보통때에는 돼지처럼 어슬렁 어슬렁 거린다.
이처럼 사람의 품성은 보통 때에는 드러나지 않는데 어떤 상황에 접했을 때 즉 감정이나
기분을 건드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어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가 어떤 처자를 진찰했는데 체질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궁리 끝에 다른 사람을 다 방밖으로 나가게 하고 그 처녀에게 치마를 벗어 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주저주저하면 옷고름을 풀다 말다 하였다.
그때 이제마가 그 처녀의 옷을 확 잡아다녀 벗기려 하였는데 그 처녀의 반응이 옷을 붙잡으며
이제마에게 대들었다.
그 때에야 이제마는 이제 됐다 하며 체질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 처녀는 소양인 이었던 것이다.
이 경우에 태양인 같으면 반항하며 방밖으로 나가 버렸을 것이고
태음인 같으면 알아서 하셔유 했을 것이고
소음인 같으면 수줍어 하면서도 왜 이러세효효~~ 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에서 이성의 판단을 할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즉 감정을 건드리면 생각할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성품이 조금 더디게 드러나지만
아주 세밀한 기분을 건드리면 더 빠르게 성품이 드러나게 된다.
배고픈 독수리에게서 고기를 뺏으면 당연히 성품이 드러나 곧바로 대들것이다.
그러나 배고픈 독수리에세 풀을 뺏으면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배고픈 호랑이에게 먹을 것을 뺏으면 당연히 성품이 드러나 곧바로 대들것이다.
그러나 배고픈 호랑이에게 여물을 뺏앗으면 별무반응일 것이다.
그것은 호랑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고픈 강아지에게 먹는 것을 뺏으면 당연히 성품이 그러나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으르렁 거릴 것이다.
그러나 배고픈 강아지에게 김치를 뺏으면 별로 반응이 없다.
배고픈 돼지에게서 먹을 것을 뺏으면 당연히 성품이 드러나 별로 대들지 않을 것이다.
돼지의 성품은 순응적이고 소극적이기 때문이고 공격할 무기도 없기 때문이다.
소에게 여물을 뺏어도 별로 반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의 성품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처럼 똑같이 먹을 것을 빼앗았는데 각각 나타나는 반응이 다르다.
이것은 본래 성품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 성품이 체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