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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th. Nov.(월)
오늘도 며칠 남지 않았다는 기다림이 절실한 가운데 하루하루는 자꾸 지나간다. 단조롭고 변화 없는 생활이지만 막상 시작하기만 하면 벌써 반은 마친 기분이다. 시작하는 시간이 가장 싫다. 앞으로 6일이면 끝난다. 24일부터는 Samoa로 향해 항해를 할 예정이다. 남은 6일을 무사히 그러면서도 좀 더 숙련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자. Mr. 유원규가 가오리한테 다친 것이 아직도 작업불능상태의 쓴 맛을 겪고 있지 않느냐. 찔린 곳이 독 때문에 썩는다. 치료해 주는 이철주군이 욕본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긴하나 냉수를 너무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래도 뒷탈이 없으니 괜찮긴 하지만-. 어제 저녁엔 Mr.오가 Capt에게 2/O와 함께 당했다. 2/O 때문이다. 하여간 그 새끼는 이제 우리에게서 인간대접 받기는 텃다. 그것으로 인하여 오늘 아침 총원 선장으로 부터 한마디 들었다. 어구 손실에 대해서는 다소 미안하다. 그러나 전적 잘못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은 못마땅하다. 지도자로서의 관용과 포용력. 또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용과 친절히 더욱 필요한 뱃 생활이 아니냐? 그래도 뱃사람이 돼 보겠다고 모여든 Trainner들인데 그들로 인하여 한 사람이라도 포기한다면 얼마나 그들로서 봐서 실책이고 본래의 목적에 위배되는가 말이다. 참된 마음의 지도자가 필요하고 요구된다.
중국배와 아침에 같이 투승하더니 양승도 같이한다. 그러나 양선의 line이 함께 겹쳐서 애를 먹었다. 좋은 경험이다.
21st. Nov.(목)
자정을 넘은지도 20여분이 지냈다. 오늘로서 63회 조업을 마쳤다. 앞으로 2회! 그러나 내일은 적수다. 역시 어장이동이다. Course가 95도니까 Samoa쪽으로 가나보다. 적수를 않고 계속 조업을 끝냈으면 좋으련만-. 모두들 마지막 단계에서 긴장이 풀리나 보다. 오늘 하루는 몸의 Condition이 좋지 않았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여 무사히 마치는 것이 지상의 일정이다.
그저께 아침에 잠자는 시간에 2/O가 깨운다. 자기의 통솔방침에 대한 의견을 청한다. 보다 깊은 얘길하고 싶었으나 아직 이른 것 같기에 우선 인격적인 유대를 더욱 두텁게, 개인 개인의 마음부터 통할 수 있는 처지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역시 자기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또 잘 해보자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 그 자신이 가진 열등의식을 먼저 버리고 사관으로서의 위엄과 신의를 얻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경우가 가장 위험한 일이다. 특히 환경이 좁고 어쩔 수 없이 갇혀 있는 선박내의 생활에서 한 사람이 한 순간에 마음을 잘못 가지면 전체가 위험하고 영향을 받는다. 여유가 생기는 대로 그와 더불어 얘길 해주고 싶다. 먼저 앞으로 그의 삶을 위해서도 -.
C/O로부터 Report 작성 지시를 받았으나 아리숭하기에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 도대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Report’가 어떤 것인지? 그와 나의 의견이 다른 것이다. 그것이 장차 훈련소까지 간다면 다소 체계적으로 연구해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해야겠다. ‘똥이 더러워 피하는’ 식이다. 어디까지가 자기의견이 합리적이고 지상의 방법이라고 자만에 젖어 있는 그도 장래가 암담하다. 그런 점에 있어선 자기의 언행에 대해 반성을 해보고 개선해 보려고 애쓰는 2/O가 나은 편이다. 덕분(?)에 작업 중 처음으로 고함을 쳤다. 무척 후회를 하고 미안하다는 얘기도 했으나 분노의 고함이 엉뚱하게 돌아지고 만 것에 다소 마음이 안됐다. 물론 Mr.오나 Mr.이가 하는 일에도 합당치 못하긴 하다. 여하간 앞으로 인간답지 못한 놈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말아야겠다. 또 한숨 자자.
25th. Nov.(화)
오늘의 임무는 완전히 수행했다. 내일아침까지 내 시간이다. 어제 64회로서 조업을 마쳤다. 65회는 철회한 모양이다. 음력 10월 초엿새의 달빛을 받으며 부서지는 파도를 넘고 Samoa로 향하고 있다. 낮에 모든 작업시설을 철수했다. 64회. 결코 짧은 시일이 아니다. 참으로 길고 힘든 기간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난 지금에 있어서 그저 무사히 마쳤음을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 과연 그간 내가 무엇을 배우고 익혔는가? 이것으로 작업선에 나갔을 경우 충분이 처리해 나갈 수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 달 후면 부산에 닿는다. 아울러 새로운 내 앞이 펼쳐지게 되고 그 속에서 스스로 개척과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자신(自信)과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이왕 발을 딛고 고생을 들인 이 길이기에 끝까지 이겨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자.
Samoa! 3일 후면 도착하겠지. 거기에는 그리운 영아의 정성이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보고픈 영아! 이제 30일이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루하겠지? 어제가 내 생일이였군.
합동통신을 통한 국내 뉴스가 가끔 들어온다. 무엇보다 연탄사고 중독사고가 많다는군. 내 주위에서도 아무일이 없겠지. 한갓 염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파도가 꽤 높다. 글씨를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더 큰 파도를 맞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일종의 반항의식에서 일까? 앞으로는 작업보다 일반학과, 항해와 운용 기타 계기에 대한 교육이 중요시 된다. 차츰 책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저께 Sextant Error에 대한 교육이 있을 때 C/O의 무책임한 교육내용에 분노를 느낀다. 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 누구를 위하거나 남을 까주기 위한 것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의 실력을 위해서다.
어제 어로장님에게 ‘カズオ マグロ(가쓰오, 마구로)총람’을 빌렸다. 일본어를 왠만큼 공부하고 두서너번 듣기만 하면 책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가면 좀 더 공부해보자. 시간이 없고 바쁠 땐 한가한 시간을 원하고 지난 시간을 후회했으면서도 막상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는 또 그런대로 허비해 왔었다. 모두가 정신문제라 하겠다.
2등 항해사가 작업 및 생활에 대한 지시나 내용을 사전에 나한테 알린다. 간접 전달을 시킨다.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다. 직접 동료들에게 얘기하기도 언잖고, 게시판을 이용해야겠다. 가급적 그러한 중간입장에서 빠지고 싶다. 공연한 오해의 대상이 될 것 같다. 현재 33명의 동기생들이 있으나 진심으로 친구로서 사귀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같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다. 더욱이 작업 중에 다소 분위기를 위해 늦추었는데 제법 기어오르는 놈이 있다. 이제 끝났으니 다시 끌어넣어야겠다. 사실 그들에게 한마디라도 큰소리하고 나무라기 위해서 내 스스로가 행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 그게 바로 고생의 원인이 된다. 하나 마음은 늘 편안하니까. 얼마 남지 않았다. ‘有終의 美’를 잊지 말자.
26th. Nov.(화)
어제도 오늘도 26일이다. Data Line을 서에서 동으로 넘었기 때문에 하루를 더 셈한다. 계속 Samoa로 향하나 강한 앞바람과 높은 파고 때문에 항정이 8.2마일밖에 안 된다. 28일 밤이나 29일 새벽에 Pagopago에 입항 할 예정이다. Deck에 물이 틔어서 작업도 못하고 그냥 잠으로만 보내다. 오후에 실내 대청소를 실시하다. 한결 기분이 맑고 밝다. 앞으로 한 달! 무척 지루할 것 같다. 천측은 이제 Sextant로 측각(測角)하는 것만 숙련시키면 되고-. 영어나 일어에 대한 공부를 좀하고 싶으나 도시 마땅한 장소가 없다. 누워서나 엎드려서는 안 되고 -. 일어는 통시장님에게 하루 얼마씩이라도 교습을 받고 싶은데-. 잘 응해줄는지? 어서 땅 내음을 맡고 다사로운 영아와 친구들이 보낸 편지에 흠뻑 젖어보고 싶다.
수료일이 가까워지니 내일이 걱정된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내가 수산계에 있는 이상 형님과 상의에 따라서 결정짓겠지만-. 우선 내 생각은 가정을 꾸민 후 대서양 방면으로 한 번 가봐야겠다. 그간 영아는 고이 애기나 키우며 기다려준댔으니까. 2-3년, 그만하면 시내에서 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겠지. 그 후엔 다시 결정하기로 하고-. 헌데 형님이 다시 여기 No.2 진달래를 타라고 할는지 모른다. 이게 큰일이다. 하기야 당장 식을 올린데도 자금이 문제다. 1-20만원이 어디서 나오나? 내가 여지끝 벌어놓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크게 후회를 했기에 이상 더 생각지 않는다. 백지(白紙)에서 시작한다고 하고 나섰으니까. 진달래를 타면 다소 장만이 될는지 모르나 가을까지 식이 연기되어야 할 판이다. 어떻해야 하나? 귀국 즉시 형님과 아버님과 진지한 상담을 해보자. 어떤 결과가 나겠지. 영아의 형편과 의견도 있겠지. 어제는 이발을 했다. 3-4개월 기른 머리를 다시 짧게 깎고 목욕을 하니 홀가분하다.
29th. Nov.(금)
약 1주일간의 항해가 끝나고 아침 8시 팡고팡고항에 입항했다. 예상외로 긴 항해가 되었다. 무척 지루했었다. 으레 그랬지만 입항을 앞둔 분산한 광경(?)을 C/O가 치루었다. 이젠 만성이 되고 보니 별 흥미가 없다.
여기 올 때부터 가진 기대는 편지였다. 고운 영아의 손으로 쓴 글! 그러나 단 한 통뿐이였다. 그나마 8월에 쓴 것이다. 실망이 크다. 왜 그랬을까? 내 편지를 못 받았나? 그럴리는 없을텐데-. Fiji서도 했는데-. 역시 불만이다. 조그만 글 속에 ‘지루하다’는 말이 6번 나온다. 얼마만큼이나 지루하고 초조할까. 이해가 안갈 수 없다. 그만큼 나도 따라서 지루하고 안타까워진다. 일이 지루해지고 하루가 너무 길다. 영아의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 자신이 앗찔해진다. 그게 바로 당신을 고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점점 커져가는 죄의식을 감출 수 없다. 내 자신이 지겹게 보내는 것도 영아가 아는 것처럼 나는 당신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 이래서야 어떻게 2-3년을 기다리게 할 것인가? 내 꿈을 뭉게 버리고 말면-? 오히려 성이 난다. 원망이 간다. 뭐가 할 게 없어서 그렇게 시간이 남고 질식해 버릴 만큼 고독할까 말이다. 그만한 말 대신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힘이 될 수 있는 얘길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29일! 기다려라. 간다. 그래서 정 싫다면 그만두자. 땅위에서 살고 싶은 것은 역시 인간의 숙명이다. 참는다고 했다. 안되면 이를 악물어라. 고생이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고생은 반드시 젊어 고생이다. 또한 정신적 육체적 고생을 포함한 것이다. 오히려 몇 푼의 돈을 버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분명히 뱃놈이 인간으로서는 Jero라는 것을 절감했다. 일단 출항하면 인간세계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항구를 찾는 날까지 . 마치 죽었다 살아나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의 이름을 따 붙이고 싶다. 왜 편지가 1통밖에 없을까? 앞으로 남은 29일이 몸서리 치도록 지루하겠다. 큰일이다.
친구 남x호군한테서도 편지가 왔다. 무엇인가 가슴에 부딪치는 무거운, 그러면서도 울리는 게 있다. 진정한 벗, 그게 이런 것인가? 그렇다 위호야! 뛰자! 넘어지면 일어서고 숨차면 쉬고 계속 뛰는 시대. 끝까지 뛰는 놈이 이긴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가 아니다. 벌써부터 우리는 뛰는 대열에 들어서 있는게 아닌가? 여기서 정지해선 안 돼지. 그리고 그 쥐꼬리만한 양심일랑 버려라. 네가 판 술을 먹고 K.O가 되었다고 치자. 그럼 그놈이 나쁜놈이지 네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잖나. 우리의 방향, 위치는 어느, 어디쯤일까? 나의 배에서의 할 일은 1일 3번 Position을 찾아내는 것이 임무지만 내 자신의 위치와 방향은? 글쎄 자기 스스로가 가진 자(尺)로서 재어 보아야지. 흰 눈이 더욱 얼어붙는 1월이 되면 우리 새로운 한해를 짜는 의미에서 한잔 나누자.
11월 5일 부산을 출항한 남해호가 입항했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없나? 역시 사람이 그립다.
오후4시 다시 편지가 왔다. 영아의 편지가 6통. 5시경 또 하나! 위호군 것이 하나 도합 9통이다. 45명중 최고 기록이다. 그러면 그렇지! 편지가 없을 리가 있을라고-. 아까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활짝 갠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주위에서도 부러워한다. 나 자신도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으니까. 이만하면 귀국하는 동안은 심심찮게 옆에 두고 읽겠다. 영아가 보고 웃는다. 아마 즐거워하는 마음을 알고 있을 거야. No.가 틀렸군. 11번이여야 하는데-. 여하간 고맙다.
No.7의 글 속에 영아의 충고가 있었다. ‘겉치레를 즐기는 나’에 대해서-. 확실히 그랬다. 영아가 잘 보았다. 진정한 충고이기에 감사를 드린다. 지금까지 내가 그랬지만 않았더래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실속 없는 빈통’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가급적 넓게 소식을 전하는 것 낭비다. 그러나 한 가지를 위해서는 2가지를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의식적이였으니까? 헌데 왜 당신은 이런 충고를 하면서 ‘오해 없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마음을 갖고 있을까? 좀 더 내게 대하여 적극적인 방향을 택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 내 결점을 보고 얘기해 주는 사람. 이것이 말이다.
갖고 싶은 선물들을 얘기 했군.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이 갖다 주고 싶지만 이번만은 안 된다. 미안하지만 할 수 없군. 상륙비가 이번에 없다는군. 개새끼들! 좀 남겼다 주지 않고-. 해수비누와 치약 그리고 설탕이 없는데 큰일이군. 다행히 담배를 안 피우니 염려 없지만 거의 모두가 담배가 떨어져 야단이다. 영아, 네 마음대로 해다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빚은 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서 널 기뻐게 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것을 받은 당신이 기뻐하는 만큼 내가 불안해 해야 하잖나. 기회는 머지않다. 내 손이 터지도록 내가 벌어서 사다주는 선물. 그것에 당신은 보람을 느껴야 할 것이야.
영아를 안지 6년! 아직도 그는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나를 믿지 못할까? 왜 자신이 없다고 할까? 지금까지 내가 다시 육상으로 돌아가서 하나가 된다고 하면 그러한 마음 초조하고 불안하고 열등의식에 빠진 영아가 다시 고쳐질까? 아니다. 그전부터 그랬다. 그것은 병이다. 분명히 영아는 병을 앓고 있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열심히 당신과 나의 합점(合點)을 위한 안간힘과 줄달음을 치면서도 늘 버리지 못하는 것이 따르고 있다. 그것은 어느 한 때부터 생긴 것이 아니고 애초부터 가졌던 것이 누적되어 고질화 된 것이다. 그 원인은 영아와 나는 진정한 사랑. 마음의 사랑을 알기 전에 몸이 합쳐져 어쩔 수 없이 끌려오는 상태에서 차츰 숙성해져 왔고 하나를 위해 열 가지를 합리화시켜 왔기 때문이리라 생각이 된다. 솔직히 내 자신도 1-2년전만 해도 영아와 같은 마음, 정말 될까? 하는 불안과 초조, 그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막상 내가 교직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분명히 결심과 아울러 하나를 결정했다. ‘영아는 내 것이다’라고 -.
그리고는 지금까지 허술하고 밑 토대가 불확실한 그와 나의 설계를 다시금 다듬기 전에 토대부터 고쳤고 다졌다. 이제 내 삶은 완전히 그 토대를 굳혔다고 보겠다. 헌데 아직 영안 왜 자신을 못 가진다고 할까? 그도 이젠 완전히 하나의 숙련된 사회인, 여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정신적 태도, 마음가짐이 이루어져있다. 자기도 이상하게 생각하리만큼 환경에 동화되어 있고 살림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저 병을 고치려면 속히 가정을 이루는 수뿐이다. 그게 특효다. 우린 ‘만남’도 불안에 떨면서 했고 너무 많이 전전했다. 그것도 원인이다. 병의 원인이단 말이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어떤 고생을 하던 관계없다 고국에서 얼마든지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큰소리 쳐도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고생많겠다는 그놈 무얼 알고 그럴가? 지나친 물욕? 그렇다. 물질욕이 있다. 강하다. 버려둘 순 없다. 성 군, 류 군이 등등. 둘이서 바득바득 한 직장에서 남의 눈을 살피며-. 그게 좋으냐? 왜 그렇게들 맹활약을 할까? 무엇 때문일까? 머지않는 앞날 결코 그들에게 아니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을 갖는다. 누구의 얘기인지는 몰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무섭다’는 것. 인간세계만이 가진 惡이다. 지금 내 양손바닥을 본다. 마치 늙은 나무껍질 같다. 굳은살을 떼어내고 보니 보드라운 새 살이 돋아나 따갑다. 자고 일어나면 손마디가 제대로 안 논다. 그래도 어디엔가 보람을 가진다. 내일을 위한 기대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각 개인의 꿈을 심고 키우는 것이 곧 그의 삶이 아니겠는가.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이지. 영아야 불안에서 해방이 되어라. 꿈을 먹고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오후8시 역시 전번 입항 때와 같이 선배들의 Reception Party가 있었다. 맥주3깡을 먹다 말다. 술은 안 먹기로 했으니까. Midwatch! 시금털털한 과거의 얘기들을 김대수와 나누다. 지금은 한낮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을 지난날일 뿐이다. 오직 내일이 있으니까. 벌써 오늘 받은 9통의 편지를 세 번째 읽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그런데 왜 집에서는 편지가 없을까. 부산의 형님 형수 정희 모두 괫심하군. 남의 답답한 속도 모르고-. 부산 입항일자 정도는 알려야겠는데-. 엽서를 살 수가 없다. 한 장이라도 얻을 수 없을까? 영아가 알려라 했다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갈피를 못 잡겠다. 내 의사대로 행하는 수뿐이다. 전하자.
30th. Nov.(토)
11월의 마지막 날. 하역작업이 밀려 그냥 멍하니 보낸다. 날씨마져 약간 궂어 별다른 일도 없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작업시의 지휘계통과 사전계획이 무질서하여 Light Buoy 여나무개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낭비되고 비능률적이되어 버린다. 점심 후 또 오랜만에 Fresh Water로서 세탁과 목욕을 하다. 그간 쌓이고 밀렸던 때를 박박 밀어냈다. 런닝샤스들이 다 나간다. 어지간히 입긴 입었다. 한번 헤어지기 시작하니 잘 나가는군 아직 두어 개 있지만 귀국할 때까지 아껴야 한다. 헌 것을 그대로 입자.
오후에 남해212호에 가다. 안선장과 얘기 좀하고 그간 폐끼친 것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려고 했었다. 마침 212호가 오늘 출항하기 때문이다. 내 손을 보더니 험하다고 맨소래담을 한 통 준다. 최x진 항해사와 이야기 하다 맥주 대접을 받다. 시큼털털한 얘기 끝에 결국 여나문깡을 마셨다. 약간 취한다.
동기생들의 건의에 못 이겨 C/O에게 상륙비 관계를 얘기했다. 아직 우리 수당이 얼마 남았는지 배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보고 계산해보라고 하는 판이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외국 땅. 한 푼없이는 나돌아 다니지 못한다. 모두 죽어 시들어진 꼴이다. 담배도 떨어졌군. 현우형님과 C/O에게 떼쓰다 싶이 하여 항공엽서를 구했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왠만하면 이번은 예쁜 Card로 보낼려 했는데 -. 없는 놈이 이것저것 따질 수도 없고 그냥 넘기다 마는 거다. 어서 가자. 인정과 사랑이 출렁거리는 고국땅으로 -. 내일은 일요일. 또 허적허적 보내야 하나보다. 월요일날 하역한다고 한다. 오후 6시 넘어 남해 212호 출항하다.
1st. Dec.(일)
그놈의 소대가리 1개가 끝내 말썽을 부렸다. 그것의 출처와 내력에 대해서도 안다. 내 손으로 했으니까. 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울분과 감정이 꿈틀거린다. 이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이 이성(理性)일까? 만약 참지 못한다면 정말 살인이 나겠다. 내 손으로 몇놈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배웠다는 죄가 이와 같이 감정을 누르는지 모르겠다. 그놈의 새끼들! 얼마나 오래 진달래 사관 노릇하려나. 몇 백년을 해먹어라! 앞뒤도 순서도 질서도 조리도 없는 무식한 개새끼들! 그들이 우리 한테 추잡다고 욕하기 전에 인간적으로 우리들로부터 개 돼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말이다. 매를 맞았으나 그 아픔보다 마음의 상처가 몇 십배 크다. 내 자신이 억울하게 맞았다는 그 사실보다 동료들, 특히 당번과 당직이 당한 사실에 대해선 앞으로 부산가드래도 많은 파문을 남길 자료를 가져다 준 것 같다. 똥이다.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다. 내가 나서더래도 이 같은 악습은 뿌리 뽑든가 아니면 대가를 치루도록 해야겠다. 더 생각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다. 맞은 자리가 아프다. 이를 악물고 갈면서도 참아야 하는 내 처지가 가련타. 하지만 ....
오후에 On the Shore(상륙)하다. 같은 한국인의 덕분에 차로 상당히 먼 곳까지 갔다. 올 때도 역시 동포의 호의로 타고 왔다. 한 푼없이 빌빌 돌다가 나무그늘에서 쉬는 어떤 원주민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쉬어가자고 했다. Apia에서 그의 누님집에 왔다는 46세의 중늙은이. 아들 둘에 딸 넷, 그리고 부모와 함께 산다는 그에게 망고 대접을 받았다. Apia나 Uppolu에선 이국인 특히 동양인이 환영을 받으나 이곳 PagoPago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도 한다. 얼마 걷지 않았으나 다리가 아프다. 큰일이군. 옛날엔 40리씩 빗속에도 걸었는데 -.
내일은 하역이다. 오후에 모든 장비를 Stand by시켰다. 언제 출항 할 것인가? 어서가자. 달이 환하군. 며칠일까? 열 사흘쯤은 돼어 보이는 군.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은 밤이다. 어서 오늘이 끝났으면 좋겠다.
2nd. Dec.(월)
아침 8시 하역작업을 시작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평상시와 조금이라도 다른 일이 있을 때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질서와 조리 없이 말로만 행해지는 C/O의 이그러진 인상(印象)에서 그나마 오전에는 소낙비 마져 쏟아졌으니 모두 시무룩한체 시작되어 12시간만에 완전히 끝났다. 예상보다 Tonnage가 많아 선장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Starkist는 Albarcore와 Yellowfin 그리고 Big Eye 30kg짜리 이하만 구입, 그외 Marlin 이나 큰 Big Eye들은 일본사람들이 사간다.
우리 배의 구조가 일반선의 하역설비와 다르기 때문에 육상에 달린 Winch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체의 Boom을 이용하므로 각종 Wire rope 나 Manila Rope 의 연결이 많았다. 특히 Block의 사용은 눈여겨 보아두어야 한다. 하루를 무사히 끝내고 Fresh Water에 목욕을 하고 나면 한결 피로가 풀린다. 2/O가 작업 중의 여러 가지 소감을 얘기한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입장과 처지에 대한 호소 같기도 하다.
내일부터는 잡다한 일들이 시작되겠다. 뱃일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들이 생기고 않으려면 할 것이 없는 점에 있어서 교직(敎職)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참치선에서는 대개 일정하게 공식화된 작업이므로 얼마든지 계획적으로 맞추어서 끝내고 항구에 들어오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갑판장이 얘기해 준다.
작업 중 맥주를 3깡이나 먹었다. 입항하던 날부터 어떻게 되었던 하루에 꼭 매주를 먹은 셈이다. 조금만 먹어도 얼큰해진다. 술을 안 먹다 먹어니까 그런가보다. 앞으로 부산 가더래도 술만은 조심해야 함은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3rd. Dec.(화)
시간은 자꾸 흐른다. 벌써 3일! 이 한해도 불과 27일을 남겼군. 지난 1월1일 영아와 동촌에서 만났던 것이 벌써 한해다. 세월이 무섭도록 빠르다고 느껴진다. 6일쯤 출항하리라 한다. 3일 남았군. 아침부터 Outside plate Scrapping 과 Painting이 시작된다. 아울러 어창도 깨끗이 청소하다. 많은 일을 잘 해냈다. C/O의 간섭없이 2/O와 같이 일하면, 거기다 우리들의 자율적인 책임하에 두면 이렇듯 많은 일도 웃으며 마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시키고 하면 되는 것이다. 또 몇 개의 큰일들을 마친 셈이다. 차츰 줄어드는데 자그마한 희망을 갖는다고 할까. 그러면서도 너나없이 지루해 한다. 오후에 C/O따라 부식구입하는데 따라가다. 아무 필요도 없으면서 하나씩데리고 다니는 심리가 이상하다. 아마도 말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눈치다. 무엇보다 Officer로서 외국에서 일하려면 좀 더 기본적이면서도 폭넓게 언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
갑판장이 하역설비 철수 작업중 다쳤다. Block가 튄 모양이다. 바로 눈위에 3바늘을 꿰매었다. 눈을 맞았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 마음이 우울해진다. 아주 작은 생각. 그것이 결국 그런 큰일을 내는 것이다. 만약 Boatswain이 한발자욱만 옆으로 섰드래도 괜찮았을 것인데 - . 자신이 알면서도 설마 하다가 화를 입었다. 오랜 경험 끝에 일의 내용에 밝아 좀처럼 실수가 없는 그인데 -. 재수가 없는 날이다. 그것을 보는 내 자신이 당장 교훈이 되고 실행해 진다. 의식적인 행동과 사전의 숙고가 반드시 있어야겠다.
저녁 후 Capt가 총원 구경을 시켜준다. 수고의 대가를 생각해서 선심을 쓰는 모양이다. 별로 생각이 없었으나 모두 갔다. Seamen's Club의 야외극장. 그래도 아주 조용하고 선명하게 나온다. 영국의 영화인데 대화의 Hearing이 모자라 자세하게는 모르겠으나 그림(?)만 보고 뜻은 각자가 해석 할 뿐이다. 내일은 F.O를 적재한다.
상륙비관계상 동료들의 독촉에 못이겨 C/O에게 건의 한 결과가 어처구니 없이 끝났다. 오히려 안 한것만 못하다. 더 원망을 받았을 뿐이다. 과연 훈련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를 분명의 파악 못하면서도 ‘알고 있다’고만 되풀이 한다. 상어꼬리 처분에 대한 결과만을 내세운다. 아직도 자기의 위신과 자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 사람이 되려나?’ 누구의 입에선가 나온 말이다.
자기는 비교적 나를 가까이 해주는 듯 하지만, 그러나 왠지 나는 그의 친절을 받기가 싫다. 자존심이 화를 낸다. 그의 호의를 물리칠 수 없어 받아들이긴 해도 부담을 느낀다.
4th. Dec.(수)
Fish hold에의 밑창 Bilge퍼내기와 널판 깔기와 상갑판의 지저분한 것을 집어넣어 말끔히 치웠다. 한결 마음이 환해진 느낌이다. 연료유 적재도 끝났다. 내일 모래가 D-day란다.
5th. Dec.(목)
편승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침실의 Main Line예비품을 fish hold에 옮기고 각 개인회사에서 본국에 보내는 탁송품도 적재했다. 고려원양에서 청와대로 보내는 것도 많다. 오후에 상륙하다. 현우형님에게 1.25$ 얻어 쓰다. 돈없이 다니는 외국땅. 서럽기 그지없군. 어디가나 어린이들이 귀엽다. 국민학교 7학년짜리 들과 얘기하면 잠시 즐기다.
실습 Report 작성이 급한데-. 어떻허나? 평소 느낀데로 화살을 직접 겨눌까? 아니면 이중으로 해서 훈련소에 가서 할까? 착찹한 심정이다. 왜? 내가 또 어떻게 될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내용도 고려해야 한다.
1. 승선초부터 불안감을 갖게 했다. - 그 이유와 결과. 자율적 생활 불형성의 원인.
2. 당일 일과에 대한 계획이 없다.
3. 지휘계통의 문란 - 사관 상호간의 인격존중이 없다.
4. 인간성의 결여 - 자만심이 인격적인 존경심을 갖지 못한다. 강제권의 발동
5. 작업방식에 새로운 문제점이다 개선점이 없다. 경험의 주입뿐이다.
6. 어구제작 방법이 구태의연하다. - 일반 작업선과 비교.
7. 사관들 자신의 실력향상에 노력이 필요 - 작업선 경력이 요함. 학술능력의 향상.
8. 사관들 자신의 바른 행동 - 과음조선. 과음추태 등.
9. 하급선원들의 질적 수준이 낫다.
10. 어구 낭비가 극심하며 절약심이 없다. - 야간의 전기남용 등.
11. 이론적인 지도가 결여 - 마스터 한사람이 없고 장시간 낭비.
12. 밀수 방지 -정신만은 배격해하는 방향.
13. 본받을 점이 그들의 과오를 보고 고쳐야 한다고 느끼는 점이 더 많았으나 그대로 받아드리는 사람은 그만큼 Minus를 가져온다.
(예: 일반작업선의 하급선원 접촉 -통솔력의 배양이 요망)
14. 공공건물의 청소(변소.샤워장) - 작업선에 잡지전달 등으로 유대강화 및 소위 앙양이 필요.
15. 부상자들에 대한 취급이 소홀하다. -사기앙양에 대한 문제
16. 실습을 마침으로서 하선을 원하는 사람이 생간다. -원래의 목적에 위배.
그 원인의 규명과 개선점.
저녁에 몇몇이와 더불어 해안을 거다. 파돗소리가 유난히 크다. 어느 민족이건 공통적으로 통하는 언어 그것은 ‘미소‘다. 그리고 자기칭찬을 해줘서 좋아하지 않는 연놈이 없다. 특히 아가씨들! 그게 바로 여자의 약점이다. 호화스러운 화객선이 왔다 갔다.
그저께 영아와 정희한테 엽서 띄웠는데 오늘 생각하니 정희 것에 주소의 번지가 빠졌다. 부랴 부랴 한 장 더 구해 간단히 전했다. 영아에게 전보를 치라는 얘기와 내 겨울옷 stand by시켜두라고 -. 원 참 정신도! 권 사감한테도 하나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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