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죽지 않는 골짜기의 신령스러운 바, 그것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이) 조용한 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이) 텅 빈 바.
谷神之解, 人, 各異說. 惟朱子所解, 乃其正意. 谷, 虛, 谷也. 虛谷, 至靜. 故能受聲有響. 如相應答. 是, 其神, 不死也. 若城市邑里, 其中甚實. 不虛. 不靜. 雖有聲, 不響. 是, 其神, 使死也. 以喩人心虛靜, 然後其神, 方能湊着, 可以存道, 可以應物也.
“곡신谷神”의 뜻, (그 풀이한) 사람들 모두 (그) 일컫는 바를 달리한다. 오로지, 주자朱子가 일컬은 바, 이른바 그것이 올바른 뜻이다. “곡谷”은 (산과 산 가운데) 텅 빈 골짜기이다. (산과 산 가운데) 텅 빈 골짜기는 지극하게 조용하다. 따라서 (산이 내뱉은)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산이 내뱉은 소리 그대로 되뱉는) 소리(響; 메아리)를 가질 수 있다. 마치, (산과) 서로 응답하듯. 이것은 그 (골짜기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여) “신령스러운 바(神; 道·德·自然·無爲·性·命)”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컨대) 성城, 시市, 읍邑, 리里는 그 가운데(中; 谷)가 가득 채워져 있다. (따라서) 텅 비어 있지 않다. (따라서) 조용하지 않다. (따라서) 비록 (그 가운데가 내뱉는) 소리를 가지는 바가 있을지라도 (되뱉는) 소리를 가지지 못한다. 이것은 그 (가운데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여) 신령스러운 바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유컨대 사람의 마음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에 대해) 텅 비게 되고, 조용해지게 되면, 그 “신령스러운 바”가 따라서 (그러한 사람에게 바싹) 다가서고 (바짝) 달라붙게 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도道와 더불어 자리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어우러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玄, 北方水色, 色之靜也. 牝, 以雌, 言之, 象之虛也. 盖借色象以立虛靜之名也.
“현玄”은 (송宋나라 형병邢昺·932~1010이 지은 『논어주소論語注疏』 「양화陽貨」에 따르면) 북쪽의 색깔을 지시하며, (깊은 연못) 물의 색깔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색깔인 검은) 색깔(이 비유하는 모양과 모습)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조용한 바(靜; 自然)이다. 하는) 모양과 모습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텅 빈 바(虛; 無爲)이다. 이른바, (노자는 검은) 색깔이나 (암컷이 비유하는) 모양과 모습을 빌어서,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텅 빈 바(虛; 無爲)와 조용한 바(靜; 自然)의 이름을 세웠다.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조용한 바와 텅 빈 바의 문, 그것은 이른바 하늘과 땅의 근원.
門者, 出入之始也. 根者, 樹木之本也. 冬至之時, 氣機潛靜. 天地空寂. 亦可謂玄之又玄, 虛之又虛矣.
“문門”은 나오고 들어가는 시작점을 뜻한다. “근根”은 나무의 (생겨남과 되돌아감의) 근원을 뜻한다. (예컨대, 음력 11월) 동지 때는 기(氣; 陰氣·陽氣)의 (일삼는) 모양과 모습이 잠잠하고 조용하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일삼는 모양과 모습)은 텅 비고 잔잔하다. 따라서 “(동지는 기氣·陰氣·陽氣의 일삼는 모양과 모습이) 어렴풋하고 가장 어렴풋한 때, (따라서 하늘과 땅의 일삼는 모양과 모습이) 텅 비고 가장 텅 비는 때”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然一陽之氣, 由是, 初動. 則靜虛者, 乃一陽之門也. 是一陽, 爲春夏秋冬, 之生長遂成. 則一陽者, 乃天地之根也.
이른바, 하나의 양(陽; 陽儀)과 기(氣; 陽氣)는 동지의 때를 말미암아, 처음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른바, (하늘과 땅이 일삼는 모양과 모습이) 조용하고 텅 빈 동지의 때는 이른바 하나의 양(陽; 陽儀)이 (양기陽氣로) 나오는 “문門”이다. (이른바) 이 하나의 양(陽; 陽儀)은 (동지 때 양기陽氣로 나와서, “하늘과 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일삼으며, (양기陽氣는 동지 때 하나의 양陽·陽儀에서 나와, “하늘과 땅”의) 생겨나게 함, 자라나게 함, 이르게 함, 이루게 함을 일삼는다. 따라서 (이) 하나의 양(陽; 陽儀)은 이른바 “하늘과 땅의 근원”이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하늘과 땅의 근원, (그것은 이른바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이어지며 (자리하고) 자리하는 바, (쓰고) 쓰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
綿綿若存, 猶太史公所謂, 黃鐘, 細若氣, 微若聲也. 不勤, 猶云不竭也.
“면면약존(綿綿若存;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이어지며 자리하고 자리하는 바의 모양과 모습)”은 이른바 사마천이 일컬은 음력 11월 (동지 때)의 (살필 수 없을 만큼) 가늘고 가는 기氣(의 모양과 모습), (들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작은 (하늘과 땅이 내는) 소리”(의 모양과 모습)이다. “불근不勤”(의 모양과 모습)은 이른바 (“쓰고” “쓰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의 모양과 모습)이다.
言一陽初生, 其爲氣也. 綿綿若存, 未嘗麤大. 故施之於用, 能生生不窮也.
이른바, (하나의 음陰·陰儀과) 하나의 양(陽; 陽儀)이 처음으로 생겨나게 하는 바(生; 太極), 그것이 (음陰·양陽의) 기氣를 일삼아 내는 바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어지고 끊어져 자리하지 않은 적이 일찍이 없다. 따라서 “이어지고 이어지며 (자리하고) 자리하는 바”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살필 수 있을 만큼 기氣를 일부러 일삼아) 굵고 굵게 하거나, (들을 수 있을 만큼 소리를 일부러 일삼아) 크고 크게 한 적이 일찍이 없다. 따라서 (“쓰임새”) 그것을 (베풀고) 베풀지만, “쓰임새”가 생겨나고 생겨남이 (그 끝점을) 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大抵老子之意, 以爲太極, 雖行於陰陽. 然陽則氣機, 動盪. 不見太極之眞體. 惟陰之至靜至虛, 如水湛一, 然後太極之眞體, 方能呈露.
덧붙여, (이 장에서) 노자가 의도한 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의 끝점에 다다른) 태극太極이 이른바 (하나의) 음(陰; 陰儀)과 양(陽; 陽儀)을 일삼지만, 이른바 (하나의) 양(陽; 陽儀)은 이른바 (하나의 기氣·陽氣의 모양과 모습으로 움직이고 움직이며, 하나의) 기(氣; 陽氣)의 모양과 모습은 (오행五行의 모양과 모습으로) 움직이고(動; 變) 움직인다(盪; 化). (따라서) 태극太極(이 일삼은 처음)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참된 본체(體; 無極)를 살피지 못하게 됨”을 일컬음으로써, “(따라서 양기陽氣는) 음(陰; 陰儀)의 지극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고요한 모양(靜; 自然)이나 지극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無爲이) 텅 빈 모습(虛; 自然)과 (더불어) 같이 하며, (깊은 연못) 물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잠잠한 모양(湛; 自然)이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한결같은 모습(一; 無爲·自然)과 (더불어) 같이 한 다음에야,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끝점에 다다른) 태극太極(이 일삼은 처음)의 참된 본체(體; 無極)를 (저절로 그러하게) 드러내고 나타낼 수 있게 됨”을 일컫는 것이었다.
故以人, 則必欲如嬰兒. 嬰兒, 卽人之冬至也. 以世, 則必欲如五帝之前, 五帝以前, 卽世之冬至也.
따라서 이른바 사람은 이른바 반드시 어린아이 (때)와 (더불어) 같이 하는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해야 하는데, 어린아이 (때)는 이른바 사람의 (모양과 모습이 생겨나기 시작한) 동지(의 때)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상은 따라서 반드시 (아주 먼 옛날, 소호少昊·전욱顓頊·제국帝嚳·요堯·순舜) 다섯 임금이 다스리던 이전과 (더불어) 같이 하는 바를 일부러 일삼고자 해야 하는데, (그) 다섯 임금이 다스리던 이전은 이른바 세상의 (모양과 모습이 생겨나기 시작한) 동지(의 때)이기 때문이다.
右第六章.
여기까지가 제6장에 대한 풀이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