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초기 방문지는 뭐니뭐니해도 로마, 피렌체 같은 로마제국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유적도시 이거나 세계적 패션의 도시 밀라노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차례 유럽을 드나들며 고성과 두오모 그리고 예술작품이 산처럼 쌓인 박물관과 미술관에 약간의 현증을 느끼는 시점에는 이탈리아의 자연이 대단한 매력으로 여행자를 홀린다는 걸 알게된다.
이탈리아는 3면이 지중해에 면해 있는 장화모양의 반도이기에 해안 풍경이 절묘하고, 내륙 또한 거친 기후가 없이 사시사철 온화한 나라다.
하지만 근래 수년 전부터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유럽 전체가 앓고 있는 혹서는 피할수 없어 한여름 무더위엔 도심을 거니는 것이 거의 고문에 가까운 고통이다.
하지만 겨울이나 봄철의 이탈리아 남부지역은 여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여행은 나폴리항 남쪽의 폼페이를 시작점으로 했다. 아직 베수비오산 정상은 하얀 모자처럼 눈으로 덮혀있지만 아래의 폼페이 유적지 Pompei Antica는 살랑살랑 걷기에 딱 좋은 기온이다.
AD79년에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일시에 화산재와 용암에 파묻혀 버린 고대 도시 폼페이. 그렇게 묻혀진 인구 11,000명이 살던 폼페이는 화산 폭발 당시 모습이 거의 온전히 화산재 아래에서 발굴되었고 최근 2018년에도 새로운 발굴현장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 비극의 도시를 둘러보다 보면 새삼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폼페이를 벗어나서 남쪽 방향의 도로를 타면 바로 즉시 아름다운 지중해를 끼고 이어지는 수없는 마을과 소도시를 만난다.
하나같이 그냥 지나가기엔 아까워서 자꾸 뒤돌아 보게되는...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정도만 몇시간씩 머물며 도보여행을 해도 3박4일은 턱없이 아쉬웠다.
깍아지런 절벽에 아슬아슬 메달린 어촌마을이지만 가까이 들어가보면
그속에 또 산이 있고, 언덕과 광장과 항구가 있고 예쁘게 꾸민 집들이 있다.
낮과 밤이 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남서부지역은 한해 겨울 내내 머물러도 좋겠다.
그리고 드디어 봄 토스카나.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주인공 무사 막스무시의 고향. 밀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고, 발도르차 Val d'Orcia의 저택들로 들어가는 긴 길엔 어김없이 곧게 뻗어 올라간 사이프러스(스카이 로켓 향나무)가 S자 모양으로 심어져 있다.
[토스카나Toscana 또는 Touscany]는 시에나Siena 남쪽 넓은 지역과
피렌체 아래쪽의 내륙 지역을 말하기에
우리나라 [남도지방]처럼 딱히 경계를 그어놓은 지역이 아닌 좀 유동적인 영역을 이르는 명칭이다.
그지역의 특이점은 드넓은 구릉지역 곳곳 동산 꼭대기에 저택이 있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일자형이든 S자형이건 길 양편에 사이프러스가 잘 자라고 있다는 것.그리고 그 저택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은 모두 11세기에 계획된 디자인에 따라 만들어졌는 놀라운 사실!
당시 농민들은 소유한 땅이 없이 귀족의 농지에서 일을 하고 굶어죽을 만큼 가난하게 사는 사회였단다.
토스카나 지역의 부호 중 가장 넓은 영지를 갖고 있고 대규모의 상거래로 영지와 재물이 불어나고 그에 따라 권위도 높았던 몇몇 부호들이 고심해서 내린 결정은
자신들의 영지 중 높은 언덕에 성을 지어 아름답게 가꾸고, 주변 농지를 소작농에게 경작을 맡기면서 수확의 절반만을 농지비용으로 받고, 일정 기간 이후엔 농지 소유권을 소작농에게 넘기는 것.
이렇게하여 농민이 부유해지고, 상거래가 활성화 되면 귀족부호 또한 사업이 번창하게 될 것이므로.
그렇게 형성된 마을과 지역이 발도르차를 중심으로한 토스카나 지방이랍니다.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한숨이 다 나오네요. 우리나라 농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라 그랬을까?
그 푸르름 속을 걷고, 야생화 핀 들판을 거닐고, 깨끗하고 잘 단장된 집들을 구경하면서 이탈리아의 봄을 만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