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0(토) :
Abj. 입출항. 여기서 Matadi로 직행이니까 벌써 다 된 기분이다. 전에 비하면-.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읽다. 그 유명했던 것을 이제야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만약 30여년전 이 책을 읽었드라면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을 지도 모르겠다.
공연히 60년대 초 수륜면 적송동 박노근씨의 기와집, 마루에서 아내와 처음으로 입마춤하던 당시의 그 이상했던 어떤 힘과 그렇게도 따뜻했던 입술의 감촉이 유난히 생각나 늦게까지 뒤척거린 밤이다.
Jan/14(수) 1987 :
12일 밤 Banana 외항 정박. 13일 오후 접안. 시원찮은 Pilot녀석 때문에 진땀나는 꼴을 겪었다. 역시 有備無患은 늘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설마’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옴을 잊어서는 안 된다. C/E와 ‘Daiote'라고 새로 생긴 Bar에까지 갔다 왔다만 여전히 마음의 빈자리는 커질 뿐이다. HK에 3명의 교대자 있음을 알렸다.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고 형식에 따라 처리할 뿐인 것이다. 66kg의 체중. 전과 같은 저울로 달았으니까 확실하겠지. NO.8 부두로 shifting 한다더니 미정인 모양. Zaire River의 가항 수심이 20~21 feet로 줄었다고 스케쥴에 다소 차질이 있는 모양이다.
Le Havre에 들릴 가능성이 있다. ’般若心經‘ ’歸去來辭‘ ’樂志論‘ ’赤壁賦‘ ’漁父詞‘에 대한 해석을 秋田 金禾洙씨의 수상록에서 copy 해 두기로 하다.
Jan/19(월) :
13:40시 Matadi출항. 이곳에 들린지도 다섯 번째다. 올 때마다 한 주일씩을 머물었다 떴다. 그러나 늘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출항 때마다 갖는다. 그만큼 귀중한 시간을 앗겼단 뜻이기도 하렸다. 갈 곳도 갈 수도 없으니 그냥 매양 선내에서 보 낼 수밖에 없는, 또 나가봐야 역시 개비 챗바퀴다. 유일한 Bar 'Condora'의 어수선함. 검은 Mami들의 치근덕거림. 불결함. 새로 생겼단 ‘La Paicote'도 다소 깨끗해진 것 이외는 예외가 아니다. 다만 꼬박꼬박 조깅할 수 있고 흔들림 없는 가운데 隸書를 두어 시간씩 쓸 수 있었다는 것이 얻음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날들이었다.
ABB-1 최 군의 Stomach ache(복통)가 심한 모양.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지키지 않음에야 남이 어쩔 수 없다. 위궤양이나 경련 증세 같다만 자업자득이다. 역시 사람의 경력과 연륜이 그 사람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안다. 대변의 색깔이 검다고 하니 아마도 내출혈이 있은 듯. C/O의 능력에 차츰 한계와 회의를 갖는다. 성격탓도 있다지만 그것만으로 Duty를 해내는 것이 아님을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Super Cargo와의 불협화음이 차츰 그 횟수를 더해간다. Expire에 대한 Confirm Telex를 했지만 Answer가 없다. 일찍 어떤 결정을 주어야 이쪽에서도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데-.
Jan/23(금) :
어젯밤 아비잔 도착. 오늘 Abb-1 최 군데리고 병원을 가다. 역시 Melanin stool(색소변)의 추적이 요점이었고 X-Ray 결과는 심한 Stomach Ulcer(위궤양)이다. 즉시 하선 입원하고 귀국 조치 하는 수 뿐이다. 이젠 정신을 차리려나. 곽 기관장 내외 골치께나 썩힌 인물이겠다.(그는 곽 기관장의 사위로 알고 있다) 거기다 연이틀 술을 퍼마셨다니. 회사나 Owner의 입장을 고려할 개재가 아니다 자칫하면 객지에서 불귀의 객 하나를 만드는 꼴이 난다. 아직도 3명의 교대자에 대한 Reply가 없으니 이참에 함께 보내라. Dakar 기항이 Fix되다. 바로 갔으면 좋으련만.
Jan/25(일) :
어제 밤 늦게 출항. 최 군을 하선시켰다. 오늘밤 10시 출국시키겠다고 했다. Ticket Booking을 HK에서 하면서도 한마디 말이 없음은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짐작하겠지만 내 사정도 있으니 별수 없고. 오늘 아침부터 남은 한약을 마져 달인다. 아무래도 교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슬슬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OB 지급. 연일 꼭 같은 생활, 그저 시간이 죽어 나가는 기분이다.
Jan/31(토) 1987 :
이 달도 간다. 잘가거라. 그저 매일 매일의 하루가 죄악 같은 게으름으로 시작되어 코뚜레 뀌인 농가의 소처럼 끌려가다가 만다. 번연히 알면서도 행하기 어렵고 안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적극적인 생각, 시간의 활용, 마음의 자세, 다 좋은 얘기들이지만 막상 코앞에 닥치면 개밥에 도토리다. 그저 달력만 쳐다뵈는 날들이 되고 말 것이다. 앞으로 4-5일은-.
28일 Dakar 입출항. 계속되는 Swell과 흔들림. 그저께의 구정. 그래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날들은 삶을 엮으며 사라져 간다. Ref. Container에 대한 정길중 기관장의 기술력이 문제다. 아는 듯 했더니만 그게 아니다. 기본적인 구조와 용어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회로를 찾다니. 차근차근 처음부터 설명을 했다. 겨우 감이 잡히는 듯도 하다만 그 이상은 내 한계 이상이다. 그가 해결할 문제다.
Fortuna에서는 여전히 소식이 감감이다. 아마도 구정, 뗏놈들의 설날이니 뒤집고 걸판지게 노는 모양이다. Biscay灣에 들어서기 전 월말 보고서와 교대 준비를 마친다. 아무래도 시간에 쫒길 염려가 있다. 지난 1년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매일 1만보를 걷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교적 건강도 좋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곧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가능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계기 삼아 제2의, 제3의 어떤 일에 도전해 봄도 좋으리라. 분명한 목표 설정. 차근차근히 쌓아가는 자세와 여유! 어찌 좀 안될까?
Feb/2(월) 1987 :
엊저녁 교대관계를 확인하는 Telex가 있었다. 교대한다고 했다. 시원하다. 미리 대강 준비를 해두었으니 다행이다. 이 흔들림 속에서 만들기도 힘들텐데-. 5일 도착 즉시 교대가 이루어질 모양이다. 앞으로 3일. 지난 한해 동안 못다 한 일들은 이제부터 해야 한다. 아내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대가도 갚아야 하고 얘들의 생일들 또한 보람 있었던 일들은 격려해 주고 더욱 분발하도록 용기를 북돋워도 주어야 한다. 앞으로 1년을 위한 새로운 각오와 설계를 갖도록 도와주기도 해야하고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모임이나 외출, 외식 그리고 소풍도 가져야 한다. 돈이란 벌고 쓰는데 그 묘미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난 1년간 쌓였던 내 자신의 응어리도 어느 정도는 풀어내야 한다. 지금까지 주저하며 못 해주었던 것들도 과감히 해주도록 해보자.
오늘 오후부터 Biscay만에 진입한다. 의외로 해상이 조용하다. 다소 Rolling이 있긴 해도 뒷바람이다. 남은 3일간 Doing Best다. 유종의 미를 갖고 가야지. 내일은 내일 다시 하자. 그간 협조해준 CMB의 몇몇 간부들과 Owner측에게도 Letter 한 장은 남기고 가는 것도 예의리라. 매년 한번씩 봇다리를 챙기고 풀며 들락거리는 번거로움이지만 한해를 무사히 보냈다는 그 자체로 만족하고 위안으로 삼자. 미련과 과욕은 사정없이 여기 나를 골탕 먹인 이 Biscay 바다에 던져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돌아가자.
Feb/4(수) :
새벽 English Channel에서부터 시작된 짙은 안개는 船首가 안 보일 만큼 꽉 찼다. 그 때문에 Wandlla Pilot Station에서는 Sea Pilot Service를 중지한다고 했으므로 40여척의 대기선이 발생했다. 한 점 바람이 없는 가운데 안개는 존재한다. 이상한 날씨다. 안개는 강한 바람보다 선박의 운항에 있어서는 더 무섭고 지장스럽다. 결국 또 늦어진다. 이놈의 날씨는 좋아도 탈이고 나빠도 탈이다. 짜증스럽다.
Feb/05 :
10:00시 다소 안개가 걷히기는 해도 겨우 0.7마일의 視界다. N0.16으로 순번을 받았다만 Pilot Boat가 본선에 접안하기 전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었다. 갈수록 어렵고 겁이 나는 느낌이다. 겨우 Flushing에 닿았으나 다시 투묘. 밤늦게 나마 입항되려나 했던 기대가 또 무참히 깨진다. 잠만 설친다. 두툼하던 얼굴이 말이 아니다. 겨우 이틀밤의 일인데도-.
전번과 꼭 같군. 후임자로 朱 선장이 왔다고 내전. 이번에는 사전에 Telex 한 장이 없군. 괫심한 놈들이다. 환자를 보냈다고 마음이 상했다는 것인가?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생기는 환자를 낸들 어쩌란 말인가. 네 놈들도 당해봐라.
(M/V Eatern Summit는 분명히 1987년 2월 초순에 마친 걸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몇 명이 교대했는지 기억은 없다. 지난 2년간 HK Owner의 두 척의 다목적 화물선은 내게 좋은 경험과 Cargo Vessel에 대한 많은 배움을 주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