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9 주일설교
교회의 권위와 사명
(마태복음 18:12~20)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어떤 물건이 있는데 그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라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큰 물건이라면 거추장스럽고 사는 데 방해가 됩니다. 작은 물건은 금새 분실되고 사라지겠죠. 만일 그 물건이 돈을 많이 준 비싼 물건이라면 돈이 너무 아깝겠지요. 어떤 물건이든지 쓰지 않고 오래 두면 고장이 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요? 교회는 정체성이 무엇일까요? 교회는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셨는데 하나님께서 교회에 놀라운 권위를 주시면서 지상에서 엄청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교회는 뭐하러 있느냐고 조롱하고 하나님까지 비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권위와 사명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권위와 사명이 무엇인일지 말씀해 주십니다. 교회의 권위와 사명이란 곧 신자의 권위와 사명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권위를 인식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의 배경>
지난주에 살펴본 본문, 1절에서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질문하자 예수님은 뜻밖에도 천국에 낙방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갈 아무런 공로가 없는 자들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어린아이를 앞에 세우신 예수님은 한 가지 더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마치 그 어린아이처럼 무시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는 낮은 사람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을 무시했다가 그 사람이 상처받아 교회를 떠난다면 차라리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너의 어떤 잘난 것이 너를 교만하게 하거든 손발을 잘라버리고 눈을 뽑아 버리라고 다소 과격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잃은 양 찾기의 의미>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그런데 12~14절의 ‘잃은 양’ 이야기는 불신자 전도보다 신자 중에 상처 입어서 교회를 떠난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입고 천국의 소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높은지 그거 따지면서 나보다 약한 사람을 멸시하고 상처를 주어서 교회를 떠나게 했다면 예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예수님도 그 교회를 떠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그 한 사람에게 가서 어깨를 도닥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괜찮아, 저 교회에서 나도 쫓겨났어.”
인간적으로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 소자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마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 신자의 사명은 신앙생활 하다가 상처 입어 교회를 떠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특히 나 때문에 상처받아 떠난 사람이 있다면 더욱 책임이 큽니다. 그렇게 상처 입고 교회를 떠나 하마터면 지옥에 떨어질 뻔하던 그 한 사람을 다시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엄청나게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잃은 양 비유의 핵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가 [잃은 양 찾기] 행사를 한다면 한 번도 교회를 다닌 적이 없는 불신자도 찾아와야 하지만, 전에 신앙생활 하다가 상처받아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난 그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우선적 사명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올해 부활주일이 4월 20일인데 앞으로 6주 남았습니다. 이번 부활주일을 잃은 양을 찾는 D-day로 정하고 지금부터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 삶이 어려워 믿음에서 떨어진 사람을 열심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상처 입었든지, 무슨 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떠났든지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 사람을 다시 예수님 앞으로 데려올 때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십니다.
(마 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유혹으로 넘어진 형제 세우기>
15~17절에서는, 상처받아 쓰러진 사람과는 달리, 죄의 유혹을 받아 쓰러진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교회의 권위와 사명을 말씀해 주십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넘어진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의 교만한 말 때문에 넘어진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약함과 사탄의 유혹 때문에 넘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그냥 두면 온 교회가 부패하게 됩니다.
(감자 박스) 여름에 감자를 한 박스 사놓고 먹다 보면 중간에 썩는 감자가 생깁니다. 그럴 때 썩은 감자를 그냥 두면 박스 전체가 썩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썩은 감자는 빨리 골라내고 다른 감자에 묻은 것을 씻어 말린 후에 박스에 넣어야 합니다.
죄지은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받아 교회를 떠난 신자는 그 한 사람 하나만 문제이지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뻔뻔하게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은 온 교회를 썩게 만들어 무너뜨립니다. 그런 사람은 신중하게 다음 3단계로 처리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단계/ 개인적으로 가서 분명하게 권고해야 합니다.
“나도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뭐 잘났다고 다른 사람을 지적한단 말이냐?”
이런 생각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는 것은 다 함께 죽자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잘난 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죄지은 사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2단계/ 그런데 그런 사람은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서 다음 단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명이나 두 명을 데리고 가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확증한다는 말은 우선 그 말을 전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사람이 받아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확증했을 때는 나중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3단계/ 슬프게도 한번 죄에 넘어진 사람은 두세 명이 가서 말해도, 순장이나 집사님이 같이 말해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온 교회가 나서서 그 사람을 치리해야 합니다. 두세 명이 말했을 때 거절하는 죄인은 전 교인이 말해도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의 이름으로 출교해야 합니다.
출교의 이유는 오염 방지입니다. 썩은 감자 골라내기와 같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인을 향해 돌을 던져 죽였죠. 신약 시대에는 투석살 대신에 출교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입니다. 썩은 감자와는 거리를 두어야 하듯이 출교한 사람과는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교회의 권위>
그런데 이렇게 교회가 출교 결정을 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18~20절에서 예수님은 지상 교회의 결정이 바로 하늘나라의 결정, 예수님의 결정이라고 하십니다.
18절에서 땅에서 “매면” 혹은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거나 풀린다는 말은 지상 교회가 어떤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출교를 명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책에서도 지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뉘우침으로 교회가 해벌하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다시 기록됩니다.
건축할 때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레미콘 기사가 손에 리모콘을 들고 조작하니까 회반죽이 콸콸 쏟아지다가 또 리모컨을 조작하니 회반죽이 멈추었습니다. 호스 끝을 옮긴 후에 또 리모컨을 조작하지 역시 회반죽이 쏟아졌습니다. 기사의 손에 있는 리모컨은 자동차의 엔진이 돌거나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어쩌면 천국의 지점이어서 교회가 한 사람은 천국 백성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생명책에서 삭제하기도 하는 권위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무섭지 않습니까?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고 교인들도 문제가 많지만 지상 교회에는 그런 엄청난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는 한 사람을 세우는 곳이지 죽이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되살아나도록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19절에서 말하는 합심 기도와 그 응답은 모든 기도에 적용됩니다. 하지만 먼저 상처입은 신자를 치료하고 죄를 지어 넘어진 신자를 회복하기 위한 기도가 첫 번째입니다.
19절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합심 기도보다는 15~18절에서 말하고 있는 그 교훈의 연상선에서 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분들이 19~20절을 단순히 기도 응답에 관한 교훈으로 생각합니다. 또 예배 시간에 소수가 모였어도 하나님은 예배를 받아주신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두세 사람이 모여 예배해도 받아주시고 기도해도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아무리 소수가 모인 작은 교회여도 지상의 교회는 천국의 지부, 지점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교회, 거기에 계신다고 하실까요?
사람들은 작은 교회를 무시합니다. “교인도 몇 안 되는 작은 교회가 감히 나를 치리한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경찰서도 없고 파출소도 없는 시골에 경찰지서라고 있습니다. 지서에 근무하는 순경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경찰총장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역 교회가 아무리 작아도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모인 곳에는 예수님이 그 가운데 계십니다. 그 교회도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작은 교회의 교적부에 이름이 올라가면 천국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그 교회에서 출교되면 생명책에서도 이름이 지워집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우리 교회 명부에 있으므로 천국의 생명책에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러분이 교회에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예물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방학중인 성도 찾아내기>
이제 12절에서 말씀하신 잃은 양 찾는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운전할 때마다 극동방송을 듣습니다. 극동방송은 FM 106.9입니다. 여러분도 꼭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극동방송은 매일 오후에 <세상을 깨우는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2시부터는 찬양과 설교를 전하고 3시부터는 김인수 PD가 진행하는 방학 중인 성도 되찾기를 합니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을 김인수 PD에게 부탁하면 정말 전도를 잘합니다.
방학 중인 사람 본인이나 가족이나 지인이 문자를 보내면 전화해서 선물을 주고 권한 후에 영접 기도를 합니다. 저는 그 시간마다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번 부활절에 방학 중인 신자를 찾아와서 다 함께 눈물 흘리는 놀라운 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주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함께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