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끝에 시작 / 허숙희
지난해 가을 우리 마을 섬진강 둔치에 파크 골프((park: 공원, golf: 골프의 합성어.)장이 문을 열었다. A, B 코스(course: 선수들이 지나가도록 정해진 길), 각 9홀(hole: 잔디밭 위에 뚫어 놓은 지름 10.8센티미터의 구멍)로 모두 18홀이다.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배우고 싶어서 오래전부터 개장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가입비와 연회비까지 내고도 허리가 시원치 않아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다 해를 넘기고 올 6월부터 시작했다. 공과 채를 준비하고, 사전 기본 교육은 평소 골프를 즐기던 남편에게 받기로 했다.
안전이 우선이라며 ‘경기 안전 수칙’을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준비운동으로 10분 이상 몸을 풀고, 공을 치기 전에는 주변을 반드시 살펴야 하며, 치는 사람보다 앞서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서 ‘기본예절’을 알려주었다. 차례가 아닐 때는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경기자가 공을 치려고 하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서 방해하면 안 된다. 티 샷(tea shot: 각 홀의 출발 구역에서 치는 제1타.)은 앞 팀이 홀을 벗어나면 친다. 치는 순서는 처음 출발은 자유롭게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로 정하고, 진행 중에는 홀 컵(hole cup: 공을 넣는 구멍.)에서 가장 먼 사람부터라고 했다. 다음 홀로 이동해서는 전 홀에서 가장 점수가 좋은 사람이 먼저 치고 두 번째는 그다음으로 좋은 점수를 낸 사람 순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거리면 양보하거나, 의논해서 정한다. 규칙과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동이다.
타수는 적을수록 잘 친 거라고 알려 주고, 점수 계산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경기는 정직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홀의 길이에 따라 정해진 기준 타수를 ‘파’(par)라 말하고, 공을 기준보다 하나 적게 홀에 넣으면 ‘버디’(birdie), 두 타 적으면 ‘이글’(eagle), 하나 많으면 보기(bogey), 두 번 더 치면 ‘더블 보기’(double bogey), 딱 한 번 쳐서 그대로 홀에 들어가면 ‘홀인원’(hole in one), 세 번 덜 치고 홀 인(hole in: 그린 위의 공을 구멍에 넣는 일.)하면 ‘앨버트로스’(albatross)라고 자주 사용하는 용어를 설명해 주었다. 낯설었지만 경기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자세와 풀 스윙(full swing: 공을 멀리 보내기 위해서 채를 길게 잡고 힘껏 휘두르는 것.)을 배웠다. ‘준비 자세’는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혀야 한다. 처음엔 ‘멀리 치기’보다는 ‘정확히 보내기’에 집중해야 한다. 공이 나갈 길을 생각하지 않고 장타를 치려는 욕심만 앞서면 OB(out ball: 공이 정해진 구역 밖으로 나가는 것.)가 난다. 우리 인생도 방향이 중요하듯 골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깨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채를 던지는 느낌으로 쳐야 한다고 매일매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거리에 따라 힘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번번이 생각과는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옆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면 더 심했다. 그린(green: 홀 주변에 잔디밭.)에 가서 퍼팅(putting: 공을 홀에 넣으려고 치는 것.)도 어려웠다. 힘을 주지 말고, 신중하게 공을 굴려야 한다. 마치 빗자루로 쓸 듯이 해야 한다며 여러 번 시범을 보였다. 일러준 대로 하려고 해도 생각과 행동이 따로였다. 얄밉게도 공은 홀을 비켜 다닌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공에서 눈을 떼지 말라니까!” “머리를 일찍 들면 안 되지!” “어깨에 힘을 빼!” “그린에서는 신중하게! 살짝 굴려야지!” 날이 갈수록 점점 남편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핀잔으로 들려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래도 “좋아! 바로 그거야!” 가끔 듣는 칭찬에 힘이 솟아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렸다. 해뜨기 전에 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전 내내 쳤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마음먹은 대로 공을 다스릴 수 있겠지.
아! 이게 웬일인가. 9월 2일, A 코스 1번 홀(길이 50미터)에서 공은 가볍게 떠올라 잔디 위를 톡톡 구르더니 컵 속으로 사라졌다. ‘홀인원’을 한 것이다. 잘치는 사람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하다니! “우와!” 환호와 박수가 파도처럼 번졌다. 난 쑥스러워 “우연이었어요”하고 웃었다. 그러나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잘했어! 그동안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라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쎄! 그런가? ‘국립 목포대학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의 ‘이 훈’ 지도 교수님이 쓴 ‘한비야의 글쓰기 비결’에서 본 “좋은 것 치고 그냥 나오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우연도 성의를 편드는 법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났다. 기뻐서 남몰래 피식 웃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남편과 견줄 만한 실력을 갖게 될 것 같아 신바람 났다. 홀 옆에서 공을 들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 구장에 서면 흐르는 땀방울로 속옷이 흠뻑 젖어도 더위는 잊고 즐겁기만 했다. 포근한 잔디 위를 걸으니 관절에 무리 없이 하루 만 보를 채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병원에 자주 다니며 우울하던 남편이 나뿐 아니라 이웃 사람도 가르치며 생활에 활기를 찾아 밝아졌다. 환하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시작하기를 참 잘했다. 먼 훗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첫댓글 저도 파크골프 배우고 싶어요. 담에 한 수 가르쳐 주시죠. 홀인원이라니, 대단하십니다.
반장님도 하면 잘 하실거예요. 열정이 있으셔서.
우와!
해내셨군요. 선생님의 열정이 뜨거운 여름 만큼 느껴집니다. 대단하시다 라고 느끼면서 잘 읽었니다.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 같아선 온 종일도 칠 수 있는데 허리가 시원치 않아서 아끼며 조금씩 오전에만 칩니다. 이웃에 권하고 싶은 경기예요.
나주 배멧산 아래 파크 골프장이 있어요.
호수공원 둘레길 걸으면서 구경했는데 일반 골프와 흡사하더군요.,
동호회원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서 노후에 좋은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멧산 아래 가 보고 싶네요. 아직 원정 다니기엔 실력이 부족해서 나중으로 미루고. 관심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꼭 해 보세요. 건강에 걷기 이상 도움을 줍니다.
파크 골프를 열심히 하시네요. 저도 그 찌는 듯한 날에 몇 번 나갔습니다.
재미있으니 그런 고약한 더위도 대수롭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한 코스에서 연거퍼 두 번 홀인원 했어요.
가까이 계시면 꼭 초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파크 골프 선배님이시네요. 전에 하신다는 말 듣고 자극 받았어요. 한코스에서 연이어 홀인원을 하시다니 대단한 실력자이십니다. 나중에 실력을 키워 도전 해 보겠습니다.
쉽고 친절한 설명 덕분에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이해가 잘 됩니다.
필요한 만큼 자세히 짚어주셔서 글을 읽는 내내 유익했습니다.
점점 영역을 확장해 나가시는 모습, 정말 인상적이고 멋지네요.
칭찬 고맙습니다. 항상 제 글은 설명에만 치우치고 글이 건조합니다.언제나 맛있는 글을 멋지게 쓰게 될지 까마득합니다. 아마 독서 부족일거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늘 반성하지만 책읽기는 잘 안되네요.
와, 정말 더웠는데... 쌤의 열정이 더위를 이겼네요. 하하. 홀인원 축하드려요.
괜한 걱정하신 거 같으세요. 글도 좋습니다.
약이 오르는 날(남편에게 잔소리 많이 듣는 날)은 괜히 했다 싶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허리 아파 못하게 될까봐 걱정 됩니다. 아무튼 재미 있어요. 허리 아끼며 오래도록 즐기려고 이젠 하루에 한번 딱 두시간만 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도 퇴임 후에 하고 싶은 운동이랍니다. 앞서 가신 길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 주세요.
퇴임까지 미룰것 없어요. 주말을 이용해 서서히 워밍업하세요. 키가 꺼서 파란 잔디 구장에 멋지게 어울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