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천문학 15집 출간 축하”
총회장 김주헌 목사
모 일간지에 소설가 황석영 씨의 대담 내용이 게재된 적이 있다. 그 내용 중에 “일상의 삶은 가장 위대한 화면(畫面)”이란 표현이 있다. 그는 1950년대에 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교도소에서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일상의 삶을 일탈한 책 읽기의 결과로 남은 것은 무의미한 관념뿐이었다.” 세상에서 사람들과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운데 책을 읽는 것이 삶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독서지, 삶과 유리(遊離)된 책 읽기는 공허한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삶을 떠나서는 소설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소설가뿐 아니라, 실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화두이다. 한 인간이 어떤 인격과 소양을 지녔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화면은 당사자의 일상의 삶이다. 일상(日常,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삶보다 인간의 실상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화면은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과연 얼마나 참된 신앙을 가졌는지는, 일상의 삶이라는 화면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우리의 신앙상태를 보여 주는 화면은 결코 예배당 안에 있지 않다. 예배당 안에서는 누구나 거룩해질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을 확인시켜 주는 화면은 언제나 예배당 밖에 있다. 예배당 밖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일상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투영될 때는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간과 한 채, 신앙과 일상의 삶이 서로 괴리(乖離)되어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에 가면 문준경 이라는 여인의 무덤이 있고 기념관이 있다. 그녀는 신안에 있는 영혼들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다 1950년 10월 5일 공산당에 의하여 증동리 백사장에서 59세의 나이로 순교 당하신 분이다.
우리가 문준경 이라는 한 여인에게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기념관에 문준경 전도사님이 사용했던 어떤 유물 때문일까? 그의 철학 사상 때문일까? 그의 교수법 때문일까? 증도에 있는 노두길 때문일까? 사실 문준경 기념관에는 아무 것도 없다. 거의 다 모조품이다.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왜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가? 유품 때문이 아니다. 이곳에 오면 그분의 삶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분의 일상의 삶이라는 화면이 있기 때문이다. 총질을 하여 목숨을 빼앗은 원수들까지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일상의 삶을 오롯이 글로 표현하는 잡지가 있다. 그것이 ‘활천문학’이다. 글이란 기교를 부린다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비록 흙으로 만든 항아리처럼 투박하지만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가장 위대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왕이신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15집이 나오기까지 ‘할천문학’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드러내기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일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룩한 행진이기에 축하를 드린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6년차 총회장 김주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