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중학생 시절 1974년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아봤다. 그때 서울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다녀본 곳은 강남구 일대, 신림동 고시촌, 서울역과 종로 및 을지로 지역, 홍은동과 서대문구, 문산과 파주 등등이었다.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추운 겨울이어서 이렇게 혹한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나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12시간 걸려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친척 집을 방문했다. 그때 서울의 환경과 현재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그것도 그럴 것이 50년, 즉 반세기 전이니까, 추위도 추위지만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밤만 되면 칠흑처럼 캄캄했다. 문산에서 교장 선생님이었던 작은 삼촌 집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신촌을 거쳐 기차를 타고 밤에 내렸다. 내린 후 역을 벗어나자 온 세상이 캄캄했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멀리 보이는 불빛 외에는 거리든 나무든 길이든 사람이든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불빛을 바라보며 별빛에 의지하여 한 걸음씩 걸어갔다. 걷다가 발에 뭔가 뭉클하게 밟히는 것도 발견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두꺼비였다. 아무튼 논두렁에 빠지기도 하고 돌부리에 차이기도 하면서 겨우 교장 사택을 찾아 들어갔다. 어두움 속에서는 거리 측정이 거의 불가능했다.
또 요즘도 꼭두새벽에 혼자 달리곤 하지만 작년만 하더라도 중랑천 달리기 코스에 가로등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야광조끼를 입고 뛰곤 했다. 혹시나 상대방이 나를, 내가 상대방을 직면했을 때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2년 전 의정부까지 새벽 1시에 달려 새벽 4시 전에 도착했을 때 기억으로는 북쪽으로 가면서 가로등이 많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달리는 코스인 중랑천은 요즘 가로등이 많아 멀리서도 오가는 사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두움 속에서 달리는 것이 위험한 것은 길바닥에 뭣이 있는지 간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거리 측정도 어렵다. 얼마큼 달렸는지는 코스를 알기에 그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영적으로 세상, 세속 문화, 유기된 자는 어두움이라 말한다. 온통 어두움이라면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하늘의 별빛 외에는 알 길이 없다. 날이 흐려 구름이 끼인다면 북극성을 볼 수 없어 난감한다. 대양을 항해하는 배가 나침판이나 지도와 항해사가 없다면 머나먼 바다를 건거기 어려울 것이다. 바이킹이나 고대 사람들은 맑은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다고 하는데 대단한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어두움이다. 선택된 자는 별빛처럼 너무 멀리 있어 수직으로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형 망원경으로 보면, 무수한 별들이 항성과 행성으로 구성된 은하수라고 한다. 그렇게 많은 별이 인간의 눈에는 별로 많지 않게 보인다. 세상이 어두움이라면, 하늘나라는 별이다. 달이 없더라도 별을 보고 어두운 밤을 걸어가는 것처럼 신자, 중생된 자, 선택된 자로서 어두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주위엔 온통 칠흑처럼 어둡다. 누가 얼마나 사는지 어디에 있는지 분간조차 어렵다. 하지만 걸어가야 하고 생존해야 한다.
나는 새벽에 달릴 때마다 많은 사색에 잠긴다. 이것이 마지막 달리기일 것이라 여겨 뛰기도 하고, 오늘 뛰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 뛰기도 하고, 미래에서 볼 때 오늘에 대해 후회할 것이라 여겨 뛰기도 한다. 노원구에 이사 온 2009년부터 열심히 뛰었다. 그 전 유학 시절에도 이사 오기 전까지도 영국과 미국에서 뛰었다. 연구하던 시절이기에 뛰는 것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땀과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운동화 바닥이 길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리는 다리를 움켜쥐면서, 아픈 허리를 뒤로하면서, 뛸 수 있는 한 뛴다. 어두움 속에서 달리는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식이다. 어두움이지만 빛으로 여기고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