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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다음 시간 자료입니다.
[바스티아와 캐리]
바스티아, [경제적 조화](2판 파리, 1851년)
서문
근대 정치경제학의 역사는 리카도와 시스몽디로 종료되는데, 이들은 한쪽은 영어로 말하고 다른 한쪽은 불어로 말하는 대립자들이다−이는 정치경제학이 17세기 말에 페티와 보아규베르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후의 정치경제학 문헌은 예컨대 존 스튜어트 밀의 저술처럼 절충적⋅혼합주의적 편람으로 귀결되거나, 튜크의 가격의 역사와 일반적으로 유통−새로운 현실적인 발견들이 이루어진 유일한 영역인데, 그 이유는 식민화, 토지 소유(그 다양한 형태에 있어서), 인구 등에 관한 저술들은 실제로는 과거의 저술들과 소재적으로 보다 풍부하다는 점에서만 다르기 때문이다−에 관한 최근의 영국 저술들처럼 개별적인 영역들에 대한 보다 심오한 퇴고로 귀결되거나, 또는 과거 경제학적 쟁점들의 보다 광범위한 공중을 위한 재탕과 자유무역 및 보호무역에 관한 저술들처럼 일상적인 문제들의 실용적 해결로 귀결되거나−또는, 끝으로, 예컨대 찰머스의 맬더스에 대한 관계, 귈리히의 시스몽디에 대한 관계, 어떤 의미에서는 맥컬록과 시니어의 이전 저술들이 리카도와 맺는 관계처럼(33) 고전적인 흐름들을 시류에 영합해서 과장한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류 문헌, 재탕, 형식을 보다 다듬기, 보다 광범한 소재의 취합, 과장, 통속화, 요약, 세부 사항의 정교화, 발전 국면에서의 결정적인 비약의 결여, 한편으로는 재고 목록의 수용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이다.(요강1,33-34)
겉보기에는 양키 캐리와 프랑스인 바스티아의 저술들만이 예외인 듯한데, 후자는 자신이 전자에 의거한다고 자인한다. 양자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대립−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이 고전 정치경제학 저술들 자체에서, 특히 이것의 가장 완성되고 최종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리카도에서 자신의 이론적 전제를 발견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가 근대 경제학에서 역사적으로 획득한 이론적 표현을 오해라고 공격하고, 고전 경제학자들이 순진하게 그 적대관계를 묘사한 곳에서 생산관계의 조화를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자는 전적으로 상이하고 스스로 모순되는 민족적 환경에서 출발해서 기술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경이 이들로 하여금 동일한 노력을 하도록 추동한다.(요강1,34)
캐리는 북미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독창적인 경제학자이다. 그가 속하는 나라는 부르주아 사회가 봉건제의 기초 위에서 발전하지 않고 그 자체로 시작한 나라, 부르주아 사회가 수세기에 걸친 운동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으로 나타난 나라, 이전의 모든 민족적 형상들과는 달리 국가가 처음부터 부르주아 사회와 그 사회의 생산에 복속되었고 한 번도 자기 목적으로 참칭할 수 없었던 나라, 끝으로 부르주아 사회 자체, 구세계의 생산력이 신세계의 방대한 자연 공간과 결합되어 전대미문의 차원과 운동의 자유 속에서 발전되었으며 자연력을 압도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모든 노동을 훨씬 능가한 나라, 결국 부르주아 사회의 대립들 자체가 단지 사라지는 계기들로 현상하는 나라이다. 이 방대한 신세(34)계 내에서 그토록 급속하고 놀랍게 성공적으로 발전하도록 한 생산관계들이, 캐리에 의해서는 아마도 영원히 지속될 정상적인 사회적 생산과 교류관계로 간주된다. 캐리가 보기에 이 관계는 유럽, 특히 원래 그에게 유럽이나 다름없는 영국에서는 봉건시대의 고유한 제약들에 의해 지체되고 방해되었다는 것, 영국 경제학자들이 이 관계들의 우연적인 왜곡들을 이것들의 내재적 성격과 혼동했기 때문에, 캐리에게는 이 관계들이 단지 왜곡되고 위조되어 관찰되고 일반화된 것으로 현상한다는 것−무엇이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 영국 상황 대 미국 상황, 토지소유, 임금, 인구, 계급 대립 등에 관한 영국 이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이것으로 귀결된다. 영국에서는 부르주아 사회가 순수하게, 그 개념에 조응해서, 스스로에 적합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사회에 관한 영국 경제학자들의 개념들이 어떻게 그들이 알지 못하는 현실의 진정하고 순수한 표현일 수 있었겠는가? 궁극적으로 부르주아 사회 자체의 품안에서 성장하지 않은 전통적인 영향력이 그 사회의 자연적 관계들에 끼치는 방해 작용은 캐리에게 있어서는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국가의 영향, 국가의 월권과 개입으로 요약된다. 예컨대 임금은 노동 생산성에 따라 당연히 상승한다. 현실이 이 법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힌두스탄에서든 영국에서든 조세, 독점 등 정부의 영향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관계들은 국가의 영향들을 제거한 다음에 관찰된다면, 그 자체로 사실상 언제나 부르주아 경제의 조화로운 법칙들을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 이 국가의 영향들, 즉 공채, 조세 등이 어느 정도 부르주아적 관계들 자체로부터 성장해 나오는가 하는 문제−따라서 예컨대 영국에서는 결코 봉건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봉건주의의 해체와 타파의 결과로서 나타나고, 북미에서는 중앙정부의 권력이 자본집중과 더불어 성장한다−를 캐리는 당연히 연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캐리는 영국 경제학자들에(35) 맞서 북미 부르주아 사회의 더 높은 잠재력(Potenz)을 주장하는 데 반해, 바스티아는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의 더 낮은 잠재력을 주장한다. 당신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법칙들이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이 법칙들에 맞서 반역하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들은 이 법칙들을 위축된 프랑스적 형태로만 알고 있으면서, 이를 이 법칙들의 본질적인 형태로 간주하는데, 이는 이 법칙들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왜곡일 뿐이다. 영국을 건너다보라. 이 나라에서의 임무는 국가가 부르주아 사회에 채워 놓은 사슬들로부터 부르주아 사회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 사슬들을 증대시키려 한다. 먼저 부르주아적 관계들을 순수하게 발전시켜 보아라. 그러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겠다(영국에서는 정치경제학인 많은 것이, 프랑스에서는 독특한 사회적 상태들 때문에 사회주의로 간주되는 한에 있어서 바스티아의 말은 옳다).(요강1,34-36)
그런데 국가로부터 부르주아 사회의 미국적 해방을 출발점으로 하는 캐리는, 미국에서 사실상 일어나고 있는 바와 같은 부르주아적 관계들의 순수한 발전이 외부로부터의 영향 때문에 방해받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끝낸다. 바스티아가 자유무역주의자인 데 반해, 캐리는 보호무역주의자이다. 경제법칙들의 조화가 전세계적으로는 부조화로 현상하는데, 이 부조화의 시작이 미국에 있는 캐리 자신을 놀라게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캐리는 이를 영국이 세계 시장에서 산업 독점을 추구하면서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으로 설명한다. 원래 영국의 상황은 그 나라의 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이론에 의해 내적으로 혼란 되었다. 이제 대외적으로는 영국이 세계시장의 지배적인 권력으로서 세계 모든 나라에서 경제적 관계들의 조화를 혼란시킨다. 이 부조화는 단지 경제학자들의 주관적인 견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러시아가 어콰트에게 정치적으로 가졌던 의미가 영국이 경제적으로(37) 캐리에게 가지는 의미와 같다. 캐리에 따르면 경제적 관계들의 조화는 도시와 농촌, 산업과 농업의 조화로운 협력에 기초한다. 영국은 자신의 내부에서 해체한 이 기본 조화를 경쟁에 의해 세계시장의 도처에서 파괴하고, 따라서 일반적 조화의 파괴적 요소로 된다. 그로부터의 보호는 보호관계−영국 대공업이 가진 파괴력에 맞선 강압적인 일국적 차단−만이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 조화의 마지막 도피처는 원래 이 조화의 유일한 방해자로 낙인찍혔던 국가이다. 한편으로 캐리는 여기에서 다시 미국의 일정한 국민적 발전과 영국에 대한 대립 및 영국과의 경쟁을 진술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 의해 선전되는 산업주의를 보호관세를 통해 미국 자체 내에서 더 급속하게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을 파괴하도록 미국에게 제안하는 순진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순진성은 차치하고라도 캐리에게 있어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의 조화는, 이 생산관계들이 가장 방대한 영역인 세계시장과 가장 대대적인 발전 속에서 생산하는 나라들의 관계들로서 나타나는 곳에서는 부조화로 끝난다. 그에게 일정한 국경 내에서 또는 부르주아 사회의 일반적 관계들의 추상적 형태에서 조화롭게 현상하는 모든 관계들−자본집중, 분업, 임금노동 등−이 그것들의 가장 발전된 형태, 즉 그것들의 세계시장 형태에서는 세계시장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초래한 내적 관계로 나타나고, 이러한 지배의 결과인 파괴적인 영향들로 나타나는 곳에서는 조화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 나라 안에서 가부장적 생산이 산업적 생산에 자리를 내준다면 이것은 조화로운 것이고, 이 발전에 수반되는 해체 과정은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만 파악된다면 조화로운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대공업이 다른 나라의 가부장적이거나 소부르주아적 생산 형태 또는 더 낮은 단계에 놓여 있는 다른 생산 형태들을 해체하면 그것은 조화롭지 못한 것이 된다. 한 나라 안에서의 자본집중과 이 집중이 끼치는 해체 효과는 그에게 긍정적인 측면만을 제시한다.(37) 그러나 집중된 영국 자본의 독점과 그 독점이 다른 나라들의 보다 작은 민족 자본들에 미치는 해체 작용은 조화롭지 못하다. 캐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 세계시장적 부조화들이 경제적 범주들에서 추상적 관계들로 고정되었거나, 또는 가장 작은 범위에서 국지적 실존을 가지는 부조화들의 마지막 적절한 표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한편에서 이 해체 과정들의 긍정적인 내용−그가 경제적 범주들을 그 추상적인 형태나 추상되었던 일정한 나라들 안에서의 현실적인 관계들로 관찰하는 유일한 측면−을 이것들의 완전한 외양인 세계시장에 접근해 가면서 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적 관계들이 그에게 진실로, 즉 보편적 현실로서 마주 서는 곳에서 그의 원칙적인 낙관주의는 밀고하는 격한 비관주의로 반전한다. 이 모순이 그의 저술들의 독창성을 이루며 이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의 조화를 주장하는 점에서나, 세계시장적 형체에 있어서 동일한 관계들의 부조화를 주장하는 점에서 미국인이다. 바스티아에게는 그 어느 것도 없다. 이 관계들의 조화는 프랑스 국경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하고, 영국과 미국에 실존하는 피안이다. 그것은 단지 비프랑스적인 영국적-미국적인 관계들의 공상적⋅관념적 형태일 뿐 그에게 그 자신의 토지 위에서 마주 서는 바와 같은 실재적인 관계들이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조화는 결코 생동하는 풍부한 관찰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얄팍하고 긴장된 대립적인 성찰의 잘난 체하는 산물인 까닭에, 그에게 있어서 현실의 유일한 계기는 프랑스 국가에 대해 경제적 경계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캐리는 경제적 관계들이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관계로 나타나자마자 이들의 모순들을 목격한다. 그 조화를 단순히 망상하는 바스티아는 프랑스가 중단되고 국민적으로 분리된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구성 부분들이 국가의 감독으로부터 해방되어 서로 경쟁하는 곳에서만 조화의 실현을 보기(38)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의 이 마지막 조화−그리고 그의 이전의 모든 공상적 조화의 전제−는 그 자체가 다시 자유무역 입법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요청일 뿐이다.(요강37-39)
따라서 캐리의 연구의 과학적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캐리가 적어도 대단한 미국 상황을 추상적인 형태로 진술하는, 그것도 구세계에 대립하여 진술하는 업적을 가진다면, 바스티아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배경은 도처에서 그가 말하는 조화들로부터 벗어나려는 프랑스적 상황의 사소함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된 나라의 상황은 이미 충분하게 알려져 있고, 그러한 부정적인 우회로를 통해 알려질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 업적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따라서 캐리는 말하자면, 신용, 지대 등과 같은 경제학에서 성실한 연구를 풍부하게 이루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스티아는 종결되는 연구들의 자기만족적인 의역에만 매달리고 있다. 만족의 위선. 캐리의 일반성은 양키의 보편성이다. 그에게는 프랑스와 중국이 똑같이 가깝다. 단연코 태평양과 대서양에 사는 남자이다. 바스티아의 일반성은 모든 나라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진정한 양키로서 캐리는 구세계가 그에게 제공하는 대량의 소재를, 이 소재의 내재적 정신을 인식하고 이 소재에게 독특한 생명의 권리를 인정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양키 관점에서 추상화된 명제들을 생명력 없는 증거로, 무차별적인 재료로 가공하기 위해서 전(全)측면적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의 전세계 여행, 방대하고 무비판적인 통계의 사용, 백과사전적 박식. 이와는 반대로 바스티아는 신학자가 원죄를 인간 본질의 법칙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아담과 이브의 타락의 역사를 다루기도 하듯이, 환상적인 역사와 그의 추상을 숙고 형태로 제시하기도 하고,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상상된 사건들의 형태로 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양자는 똑같이 비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이다. 그러나 캐리의 비역사적인(39) 계기는 북미의 현재의 역사적 원칙인 데 반대, 바스티아의 비역사적 요소는 단지 18세기 프랑스의 일반화 방식에 대한 단순한 회상일 뿐이다. 따라서 캐리는 정형이 없고 산만하며, 바스티아는 가식적이고 형식 논리적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귀금속의 한 측면만을 갈고 닦은 것과 같은 상투어들이다. 캐리에게 있어서는 교리 같은 형태로 미리 언급된 몇몇 일반적 명제들, 이 뒤를 정리되지 않은 소재, 목록표가 증거로서 뒤따른다−그의 명제들의 소재는 결코 정리되지 않는다. 바스티아에게 있어서 유일한 소재는−몇몇 국지적인 예나 또는 환상적으로 다듬어진 영국의 일상적인 현상들을 제외하면−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명제들뿐이다. 캐리의 주요 대립은 리카도, 간단히 말해 영국의 근대적 경제학자들인데, 바스티아의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다.(요강1,39-40)
XIV. 임금
바스티아의 주요 명제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들은 모두 수입의 고정성, 고정된 소득을 추구한다. {진정으로 프랑스적인 예: 1. 어떤 인간이든 공무원이 되거나 자신의 아들을 공무원으로 만들고자 한다(371쪽).} 임금은 고정된 형태의 보수이고(376쪽), 따라서 “모든 구성원이 사업의 모든 우연”에 복속되어 있는 한에서, 원초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우연적인 것”이 지배했던 대단히 완벽한 결사 형태이다. {자본이 스스로 위험을 부담한다면 노동에 대한 보수는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된다. 노동이 좋고 나쁜 결과를 스스로 감수한다면, 자본에 대한 보상은 분리되어 그 자체가 이자라는 이름으로 고정된다(382쪽).} (이러한 병립관계에 관해서는 382쪽, 383쪽도 참조) 그렇지만 원래 우연적인 것이 노동자의 지위를 지배하는 동안에는 임노(40)동의 안정도 아직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에 의해 지배되던 단계를 안정성과 분리하는 중간 단계”이다. 이 마지막 단계는 “노동하는 시절에 절약해서 노년이나 질병 시에 욕구를 충족시킴”(388쪽)으로써 도달된다. 이 마지막 단계는 “공제 조합”(같은 곳)에 의해 발전되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연금 기금”(393쪽)에 의해 발전된다.(인간이 공무원이 되려는 욕구에서 출발했듯이, 그는 연금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죽는다.)(요강40-41)
1에 대하여. 바스티아가 임금의 고정성에 대하여 말한 것이 모두 옳다고 가정하자. 임금이 고정수입으로 포섭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임금의 본래적인 성격, 임금의 특징적인 규정성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의 한 관계−임금이 다른 수입원들과 공통으로 가지는−가 강조되었을 뿐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임금노동의 장점을 옹호하려는 변호론자들에게는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관계의 독특함을 모든 범위에 걸쳐서 이해하려는 경제주의자들(Ökomomisten)에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관계, 어떤 경제적 형태의 일방적인 규정을 고정시키고, 반대 규정에 맞서 이를 찬사하는 것, 법률가와 변호론자의 이러한 값싼 관행이 요설가 바스티아의 특징이다. 요컨대 임금 대신에 수입의 고정성을 가정하자. 수입의 고정성은 좋지 않은가? 확실한 것을 예상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가? 특히 속물적이고 천하다고 느끼는 프랑스인은 누구나? 언제나 가난한 사람은? 아마도 농노제가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더욱 잘 정당하게 방어되었다. 그 반대도 주장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주장되었다 임금을 비고정성, 즉 일정한 점을 넘어서 진전하는 것과 등치시키자. 멈추어 있는 대신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부르주아적인 무한한 진보의 기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관계가 나쁜가? 바스티아 스스로 다른 한 곳에서는 임금이 비고정적이라고 주장한다. 비고정성은 그렇다고 하더라도,(41) 변동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달리 노동자가 바스티아가 원하듯이 노동하기를 그만 두고, 자본가가 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임노동은 고정성 때문에 좋다. 그것은 비고정성 때문에 좋다. 그것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지만, 또한 전자이면서 후자이기 때문에 좋다. 일반적인 규정으로 축소되어, 이 규정이 부정이 아니라 정립으로 간주될 때 좋지 않은 관계가 있는가? 모든 기회주의적인 요설, 모든 옹호, 모든 속물적인 궤변이 그러한 추상에 기초한다.(요강1.41-42)
이 일반적인 서문에 이어 우리는 바스티아의 실재 구성에 도달한다. 랑테의 차지농, 임노동자의 불행을 소자본가의 불운과 내적으로 통일하고 있을 따름인 자는 고정 임금만 받을 수 있다면 사실은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점만 덧붙여서 언급되면 된다.−프루동의 “서술적이고 철학적인 역사”는 그의 적수인 바스티아의 역사와 비교될 수조차 없다. 모든 구성원이 우연의 모든 위험을 공유하는 원초적인 결사 형태의 뒤를 이어 노동자에 대한 보수가 고정되어 있는, 양측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고차원의 결사 단계가 따른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편에는 자본가를, 다른 한편에는 노동자를 전제하고, 나아가서 나중에는 양자 사이의 합의에 의해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가 등장하도록 하는 독창성에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요강1,42)
노동자가 모든 우연적인 영리 기회에 노출되어 있고−모든 생산자가 균등하게 이 위험들에 노출되어 있고−, 노동에 대한 보수가 고정성을 획득하고 안정적이 되는 임금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반(反)의 정(正)으로서 선행하는 결사 형태는, 우리가 바스티아로부터 듣는 바와 같이, 어업, 사냥, 목축이 지배적인 생산 형태이자 사회 형태를 이루는 상태이다. 떠돌아다니는 어부, 사냥꾼, 목동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임노동자. 반(半)야만적인 상태로부터 근대적인 상태로의 역사적인 이행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기껏해야 “혼란” 속에서. 실제 역사에서 임노동은 노예제와 농노제의 해체−또는 동양 민족(52)들이나 슬라브 민족들에서처럼 공동체적 소유의 붕괴−로부터 발생하며, 그것의 적절하고 획기적인 노동의 모든 사회적 현존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인 길드경제, 도시제도, 자연노동, 자연소득, 농촌부업으로서 영위되는 공업, 아직 봉건적인 소농업의 쇠퇴와 몰락으로부터 유래한다. 실제로 역사적인 이 모든 이행들에서 임노동은 수입, 내용, 국지성, 범위 등 모든 측면에서 노동이 고정되어 있던 관계들의 해체⋅폐기로 나타난다. 요컨대 노동과 그에 대한 보수의 고정성의 부정으로서. 아프리카인의 물신으로부터 볼테르의 지고의 존재로의 직접적인 이행, 또는 한 북미 야만인의 사냥 도구로부터 영국 은행 자본으로의 직접적인 이행도, 어부로부터 임노동자로 이행하는 바스티아만큼 어리석게 역사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모든 발전에서 자발적이고 상호 합의에 의한 변화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바스티아의 역사 구성−역사적 사건 형태로 천박한 추상을 불러내는−은 마치 영국의 공제조합과 저축은행들이 임노동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모든 사회적 모순의 지양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실재의 역사에서 어긋난다.(요강1,42-43)
요컨대 임노동의 역사적 특성은 비고정성. 바스티아의 구성의 반대. 그러나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고정성을 모든 것을 보상하는 임노동의 규정으로 구성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규정된 임노동을 역사적으로 다른 사회 형태나 결사 형태에서의 노동에 대한 보수 형태보다 높은 보수 형태로 설명하게 되었는가?(요강1,43)
모든 경제학자가 자본과 임노동, 이윤과 임금의 주어진 관계를 논하고, 노동자는 이윤 기회에 참여할 요구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노동자에게 증명하며, 자본가에 비해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고 노동자를 진정시키려 할 때, 그들은 노동자가 자본의 커다란 모험과는 다소간 무관하게 소득의 일정한 고정성을 가진다고 노동자에게 강조한(43)다. 마치 동키호테가 산초 판자에게 비록 그가 매를 맞기는 하지만 용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달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컨대 경제학자들이 이윤과 대립하는 임노동에 첨부하는 규정을 바스티아는 이전의 노동 형태들에 대립하는 임노동의 규정으로 전환시키고, 이 이전의 관계들에서의 노동에 대한 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전환시킨다. 바스티아씨는, 주어진 관계에 위치 지워지고 이 관계의 한 측면을 가지고 다른 한 측면을 달래는 상투어를 이 관계로부터 단절시켜, 이 관계가 등장하는 역사적 토대로 만든다. 이윤에 대한 임금의 관계, 자본에 대한 임노동의 관계에서 경제주의자들은 임금이 고정성이라는 장점을 가진다고 말한다. 바스티아씨는 고정성, 즉 이윤에 대한 임금의 관계의 한 측면이 임노동 출현의 역사적 등장 근거라고(또는 이윤에 대립해서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과거의 보수 형태에 대립해서 임금에 속한다고), 또한 이윤의 등장 근거, 따라서 전체 관계의 등장 근거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서는 임금과 이윤 관계의 한 측면에 관한 상투어가 슬그머니 이 관계 전체의 역사적 근거로 전환된다. 이는 그가 도처에서 최초의 결사 형태로 꿈꾸었던 사회주의에 대한 성찰에 끊임없이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는 경제주의자들의 저술에서 경제 발전에 부수되는 옹호론적 상투어가 바스티아의 수중에서는 얼마나 중요한 형태를 띠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요강1,43-44)
경제학자들에게 돌아가자. 임금의 이 고정성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임금은 영원히 고정되는가? 이는 임금 결정의 기초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전적으로 모순될 것이다. 임금의 상승과 하락이라는 변동은 어느 경제학자도 부정하지 않는다. 또는 임금은 공황과 무관한가? 또는 임노동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기계와는? 또는 임노동을 이동시키는 분업과는? 이 모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이단적일 것이고, 그러므로 주장되지 않는다. 의미하는 바는 대체로 임금이 어(44)느 정도의 평균 수준을, 즉 바스티아가 그토록 증오하는 최저임금을 계급 전체를 위해서 실현한다는 것, 노동의 일정한 평균 지속성이 이루어진다는 것, 예를 들어 이윤이 하락하거나 일시적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에도 임금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임노동이 지배적인 노동 형태, 생산의 기초로 전제된다면, 노동계급은 임금으로 생존해야 하고 개별적인 노동자는 평균적으로 임금을 위한 노동의 고정성을 가진다는 것 이외에 무엇인가? 다른 말로 하자면 동어반복. 자본과 임노동이 지배적인 생산관계인 곳에서는 임노동의 평균적인 지속성이 존재하며, 그 정도까지 노동자에게 임금의 고정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임노동이 존재하는 곳에서 임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스티아에 의해서는 모든 것을 보상하는 임금의 속성으로 간주된다. 나아가 자본이 발전된 사회 상태에서는 대체로 사회적 생산이 자본, 즉 생산이 아직 이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은 곳에서보다 더 규칙적이고 연속적이며 전측면적이라는 것−은 아직도 자본과 이에 기초한 생산 개념에 의해 주어져 있는 또 다른 동어반복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임노동의 일반적 현존이 임노동에 선행하는 단계들에서보다 더 높은 생산력 발전을 전제한다는 것, 이것을 누가 부인하는가?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임노동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생산력의 이러한 발전을 전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보다 더 높은 요구를 제기할 생각을 떠올렸겠는가? 생산력의 보다 높은 발전은 오히려 그들의 요구의 전제이다.(요강1,44-45)
주의. 임금이 일반적인 외양을 취하는 최초의 형태−국민군과 민병대가 쇠퇴하고 몰락하면서 나타나는 군인 봉금(Sold). 처음에는 시(45)민들 자신이 군인으로서 봉급을 받는다. 곧이어 시민이기를 중지한 용병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등장한다.(요강1,45-46)
2. (이 어이없는 언행을 계속 추적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스티아씨와 작별한다.)(요강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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