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감기~ 고열로 응급실에 왔다가 입원을 하게 되었어요. 몸 회복에 집중하느라 당분간 전화는 받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문안도 가족만 가능하다고 하니, 마음으로만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얼른 회복해서 인사드릴게요!
(인권칼럼) 마침표의 주권(主權): 고통의 연기(延期)를 넘어 존엄한 완결로
이삭빛 (시인, 문학평론가)
질병은 예고 없이 찾아와 일상의 성벽을 허문다. 고열과 염증 수치에 밀려 병상에 누운 지금, 갱년기의 무력감과 쏟아지는 잠은 나를 생의 낯선 경계로 몰아넣는다.
휴일을 고스란히 간병에 바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필자는 10년 동안 호스에 묶인 채 서서히 풍화되어 갔던 고모의 기억을 환각처럼 마주한다.
생명은 신성하다. 그러나 그 신성이 오직 기계적 호흡을 유지하는 데만 국한될 때,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박제된 고통'이라 불러야 하는가.
글을 쓰는 이에게 가장 참혹한 일은 이미 주제가 끝난 원고의 마지막 장에 원치 않는 먹물이 쏟아져 문장의 형체를 망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연명의료는, 완결된 문장 뒤에 의미 없는 음절을 강제로 덧붙여 글 전체를 오문(誤文)으로 만드는 번진 잉크 자국과 같다.
삶이 한 편의 시(詩)라면, 그 마지막 마침표는 반드시 작가 본인의 손에 쥐여져야 한다. 고통뿐인 생존은 '거미줄에 걸려 날개가 찢기면서도 죽지 못한 채 파들거리는 나비'와 다를 바 없으며, 정작 나비에게 필요한 것은 억지스러운 생존이 아니라 그 거미줄을 끊어내고 고요한 대지로 내려앉는 안식이다.
생명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국가의 명분은 때때로 현실의 비극을 외면하는 위선이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을 통해 임종기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소극적 존엄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는 환자가 스스로 죽음의 시점을 결정하는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다행히 최근 ‘조력 존엄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며 입법 논의가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법과 제도는 국민의 법감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2022년 서울대학교병원 윤영호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6.3%가 안락사와 조력 존엄사에 찬성하고 있으며, 2024년 통계청 자료는 가족 간병인의 60% 이상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가 오늘 아들에게 느끼는 이 고마움과 미안함이 훗날 거대한 부채감이 되지 않도록, 국가는 엄격한 검증 시스템을 갖춘 '존엄한 퇴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집은 그 안에 사람이 온전히 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집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이 썩어 더 이상 거처가 될 수 없는 폐허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은 건축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망가진 집을 허물고 평온한 대지로 돌아가는 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안식이다.
입원 중인 병실에서 필자는 다짐한다. 나의 염증이 나를 더 이상 나답지 않게 만들고,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 족쇄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내 삶의 마지막 문을 스스로 닫을 것이다.
국가는 이제 고통을 방치하는 침묵을 깨고, 가장 인간다운 소멸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최후의 인권을 허락해야 한다.
[참고 및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서울대학교병원, '안락사 및 의사 조력 존엄사 입법화 대국민 인식 조사' (2022)
대한민국 통계청, '가족 돌봄 및 간병 실태 조사' (2024)
네덜란드 RTE, '안락사 검토 연례 보고서' (현황 비교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