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2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 どうぞ何か食べてください。
본문; 사도행전 27:33-38
행 27:33 ○날이 새어 갈 때에,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면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졸이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34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목숨을 유지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35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빵을 들어,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떼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36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용기를 얻어서 음식을 먹었다. 37 배에 탄 우리의 수는 모두 이백일흔여섯 명이었다. 38 사람들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 남은 식량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였다.
33 夜が明けかけたころ、パウロは一同に食事をするように勧めた。「今日で十四日もの間、皆さんは不安のうちに全く何も食べずに、過ごしてきました。34. だから、どうぞ何か食べてください。生き延びるために必要だからです。あなたがたの頭から髪の毛一本もなくなることはありません。」35. こう言ってパウロは、一同の前でパンを取って神に感謝の祈りをささげてから、それを裂いて食べ始めた。36. そこで、一同も元気づいて食事をした。37. 船にいたわたしたちは、全部で二百七十六人であった。38. 十分に食べてから、穀物を海に投げ捨てて船を軽くした。
지난 주일에는 자신의 재능을 이기적으로만 사용하려는 평범한 실력자들의 비열한 모습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비열한 태도에도 그들의 실력은 여전히 이 땅의 현실적인 삶에서 모두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는 실력자들의 이기적인 재능도 실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활용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아직 믿지 않는 주변의 친구와 이웃들이 가진 재능과 실력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울을 본받아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영적 은사와 함께 현실의 실력과 재능을 영적으로 선하게 활용하는 사명에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점점 날이 밝아 오는 가운데 지치고 불안과 낙심으로 좌절한 사람들 앞에 서서 용기를 북돋우고 있습니다. 바로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릴 것을 권면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밤낮 거칠게 불어대는 광풍 속에서 두 주간이나 고생하며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럴 때 육신의 생존을 위해서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무엇인가를 입에 넣고 먹는 것입니다.
어떤 선배님께서 어린이부흥회로 한참 의미 있는 사역을 하실 때였습니다. 하루는 매우 영적으로 파워풀하게 사역하며 집회를 인도하는 곳에서 식사대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한 청년이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실 때 어느 정도로 금식기도하시면서 응답을 받으시나요?”
아마도 그 청년은 영적으로 파워풀하게 사역하시는 그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하실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선배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응, 나는 맛있는 음식을 든든하게 먹고 정신이 맑고 밝아지면 기도하고 결정하지... 특히 단 걸 좋아해~~” 하며 웃으셨다고 합니다. 속이 비어서 마음이 날카로워 있을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경험담을 듣고 참으로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되도록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 즉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도하며 준비하고 대비하려고 나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에서도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잠 24:13)
또 전도서에서는 인생을 그 자체로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 5:19)
성경도 이미 우리에게 즐겁고 기쁜 삶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산다는 것이 반드시 육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억지로 무시하거나, 혹은 상식적으로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을 무리하게 몸부림을 쳐 가며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주님께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고,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유익이며, 육신의 소욕을 제어하라고 하신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즐거운 마음과 기쁨의 감정까지 부정하거나 제거해야 영적이라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유익한 것이 무엇이고, 참으로 달콤한 것이 무엇이며, 참으로 기쁘게 즐길 할 만하며 유쾌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분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이지요. 어느 목사님은 이것이 육신의 쾌락이 아닌, 영혼의 쾌락을 구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바울은 사람들 앞에서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먹는 일을 권유하면서도 가장 영적인 행동과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이고 기초적인 일이라고 방금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런 인간생존의 기본이 되는 육신의 1차적인 욕구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먹는 즐거움과 마시는 즐거움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먹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이 언제나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쾌락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고 마시는 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을 위하는 것일까요. 바로 주님께서 이 식탁에 동석하고 계심을 아는 것이구요. 또한 무엇을 먹고 마시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와 자세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을 것을 권유하면서 솔선하여 자기 손으로 먼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떼어먹기 시작하였다고 오늘의 본문은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정통 유대인들이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그 집안의 가장이 감사기도를 드리는 행동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한 달에 한 번 성찬을 할 때 제가 성찬집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을 기념하며 하는 행동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실 때의 모습을 표현하며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3-24)
오늘 본문의 바울은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도 같은 모습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며 기도함으로 모든 음식을 거룩하게 먹을 수 있다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자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3-5)
마지막 구절인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는 고백이 바로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먹고 마시는 행위가 나 자신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지키는 일에 활용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주님의 영광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먹고 즐기는 것만이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는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 제가 온라인으로 사람의 천성적인 마음과 태도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요. 수업 중에 각자 자신의 성격유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요. 함께 참여했던 태국 선교사님께서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누군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식탁이라면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서 그 자리를 지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내게 주신 이 음식과 생존은 과연 “누가 허락하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 이 음식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식사기도를 할 때에 꼭 빠뜨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식탁에 오른 음식들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수고한 모든 영혼들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 식사를 흡족하고 흔쾌한 마음으로 맛있고 즐겁게 먹음으로 이 음식이 거룩하게 되고, 또한 이 음식을 위해서 자신의 역할을 한 모든 이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길 축복합니다.
단지 이 음식을 만들고 봉사하며 직접 수고한 지체들에게만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으신 분들과 먼 바다에 거친 파도를 견디어 내며 생선을 잡아 오는 어부들... 그리고 각종 생산라인에서 음식재료들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전국적으로 이 식재료들과 음식들을 나르기 위해서 밤새도록 트럭을 운전하시는 분들...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입니다. 이 음식은 표면적으로 보면 단지 금전과 유통의 흐름을 타고 이 자리에 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활동의 원동력이 되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음식을 먹기도 하고, 물과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감사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고, 나의 나다움을 지키는 행동인 것입니다.
식사기도에 대한 우스갯소리가 있는데요. 어느 시골 장날에 도회지의 건달 같은 청년 몇이 식사를 하러 작고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정말 초라한 행색을 한 노인이 앉아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자 주름진 손을 가지런히 모아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청년 한 명이 짓궂은 마음이 들어서 놀리듯이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요즘엔 촌놈들도 기도라는 걸 하나보네...” 그러자 함께 동석한 친구가 키득거리며 동조합니다.
기도를 마친 노인이 그 소리를 듣고 혼잣말처럼 한 마디합니다.
“응, 촌놈도 기도를 하지.. 그런데 안 하는 것들도 있기는 해... 개들은 기도도 안 하고 그냥 처먹기만 하거든...”
먹을 것을 보자마자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아무런 절제나 예절도 없이 먹기만을 탐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답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단순한 유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짧은 우스갯소리 안에서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를 알고, 그 분께 감사하며, 더 나아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먹고 마실 때... 비로소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바울이 단지 생존만을 위해서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생존이 기본이고 먹는 즐거움이 우리를 유쾌하게 하고 흡족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주님께서 성도와 늘 동행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기 전에 이미 먹을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이죠.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막 6:41)
그 후에 또 일곱 개의 빵과 물고기로 많은 이들을 먹이실 때도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막 8:6)
축사란 축복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혹은 찬양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음식을 또한 직접 축복하셨던 것이지요.
바울은 배 위에서 종교적인 행위로서의 성찬을 집례하였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부르게 나누어 주셨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모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나누어 모두가 배부르게 먹는 잔치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넘치도록 남는 음식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함께 음식을 먹고 남은 것은 바다에 버림으로 위기에 처한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 그 덕에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기력이 건강한 상태로 구조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두 행동 모두 영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유익함을 모든 이들에게 끼칠 수 있게 되었던 간증인 것이지요.
우리가 우리의 성도다움을 지켜 나아갈 때 각자 자신의 육신적인 유익함도 회복될 수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 유익함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와 나라까지도 이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신의 조건과 여건만 잘 지킨다고 사람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심리적인 안정을 취한다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비로소 사람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다움이 회복되었을 때에 비로소 육신의 여건과 조건들도 제 기능을 할 수 있고, 실력과 재능도 모든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활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오늘 이렇게... 어찌보면 초라하고 화려하지 않고, 뭔가 극적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여건과 조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예배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단지 음식 먹기만을 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음식을 먹음으로서도 예배하고 찬양하고 감사를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한 주간의 첫날을 구별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한 주간을 시작하는 것이, 곧 이 한 주간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일상을 시작하고,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고, 자신의 재능으로 일과들을 감당할 때... 비로소 우리는 거룩한 존재로 하루에 하루만큼 완성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육신으로는 아무것도 체감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우리의 영혼에 엄청난 변화와 부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이 땅에 부흥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성도의 기본인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것으로도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축복하며, 이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는 초석을 놓는 것임을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모든 시선과 가치관과 전문적인 지식은 우리가 지금 풍랑 속에 갇힌 배와 같다고 말합니다.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가운데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난파선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한 배 안에 바울과 같은 예배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런 혼돈 가운데 낙심과 절망으로 물든 사회에 진정 예수와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사는 크리스천이 있을 때 인류의 결론은 달라집니다.
저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인천을 경유하여 이스라엘 땅을 순례하기 위한 열흘 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단지 성지순례를 함으로 목회의 경험치를 하나 쌓는 것이 아님을 의식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셨을 그 현장을 찾아가서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마시며, 예배하기 위하여 갑니다. 단지 그곳이 거룩하기 때문에 감동을 느껴보기 위해 경험상 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의 예배와 이곳에서의 예배가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한 일상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 다녀오려고 합니다.
혼란과 불안과 좌절과 낙심의 현장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음식을 먹고 마신 바울의 본을 받아 우리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감사와 찬양으로 음식을 먹고, 마시고, 일상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무엇을 먹는 것만큼 누구와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하다면... 지금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무엇이든 먹고 마시는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이 될 저와 여러분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오랜 표류 생활에 지치고 낙심하고 좌절한 276명의 승객들에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릴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솔선하여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함께 음식을 먹는 이들과 그 음식을 먹는 그 자리를 또한 축복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시는 거룩한 성도로서의 태도와 자세를 바울의 모습을 통해 본받고 배우기를 원합니다.
주변의 이웃들과 온 인류 안에 많은 어려움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이 이 시대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먼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기력과 활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새로운 부흥을 주실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침내 세상을 완전하게 하실 주님의 사명자로 번듯하게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