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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관쌍운(止觀雙運): 함께 닦음
지관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도움
결국 지관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힘(定)과 본질을 꿰뚫는 힘(慧)을 균형 있게 닦아 해탈에 이르는 통합적인 수행법
| 제19장 십육특승十六特勝 십육특승十六特勝이란 첫째 숨이 들어오는 모습을 아는 것, 둘째 숨이 나가는 모습을 아는 것, 셋째 호흡이 길고 짧음을 아는 것,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하지 않는 것, 여섯째 기쁨을 느끼는 것, 일곱째 즐거움을 느끼는 것, 여덟째 여러 마음작용을 느끼는 것, 아홉째 기쁜 마음을 짓는 것,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 열한째 마음이 해탈하는 것,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 열셋째 나가서 흩어지는 것을 관하는 것, 열넷째 욕망을 관하는 것,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 열여섯째 포기하고 버림을 관하는 것이다.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2c01) 十六特勝第十九章 十六特勝者。一知息入。二知息出。三 知息長短。四知息徧身。五除諸身行。 六受喜。七受樂。八受諸心行。九心作 喜。十心作攝。十一心作解脫。十二觀 無常。十三觀出散。十四觀欲。十五觀 滅。十六觀棄捨。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2c18-c24)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지 않았을 때, 외도들도 사선과 사공처정을 얻었으나 대치對治21)하는 관행이 없었기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21)대치對治 : 병의 증세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 치유하듯 문제점이나 오류가 있을 때 이를 보완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처음 사제四諦를 설했을 때 혹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으면 다시 구상·배사 등의 부정관법을 설하여 그것을 대치했다. 부정관을 수행하는 자가 탐욕은 제거했지만 간혹 싫어하는 마음이 지나쳐 무루를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자 부처님께선 곧 부정관을 버리고 이 특승법을 닦게 하셨다. 이 법에는 정定도 있고 관觀도 있어서 모든 선禪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들숨을 관하는 법은 숨의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관하는 것이다. 둘째, 날숨을 관하는 법이란 코끝에 이르러 멈출 때까지 관하는 것이다. 셋째, 호흡의 길고 짧음을 관하는 법이란 몸이 불안하고 마음이 산란하면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이 짧고,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이 길다.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진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기도가 막히지 않아 호흡이 몸에 두루 충만한 것이다.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애는 것이란, 상想과 수受가 마음의 작용이고, 각覺과 관觀이 입의 작용이며, 날숨과 들숨은 몸의 작용이 된다는 것이다.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지고 나면 그 감각이 거친 생각을 일으킬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모든 거친 생각을 제거하므로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앤다고 한다. 여섯째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고, 일곱째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미미한 기쁨과 즐거움만 있어도 그것이 온몸에 가득 퍼지고, 몸과 마음이 가득 차고 나면 안으로 마음에 희열이 있게 된다. 따라서 즐거움이라고 한다. 여덟째,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것이란, 이미 마음속에 즐거움을 느꼈다면 반드시 마음의 즐거운 경계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이 따라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낀다고 한다. 아홉째, 기쁜 마음을 짓는 것이란,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물게 되었어도 지혜로 이해하는 작용이 없으면 가라앉은 마음에 반드시 덮이고 만다. 따라서 기쁨으로 그 마음을 일으켜 가라앉지 않게 하므로 기쁨을 일으킨다고 한다.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란, 기뻐하는 마음이 정상보다 지나치게 일어나 산란해지면 그것을 거두어 돌아오게 하고, 온갖 연으로 달아나 흩어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따라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열한째, 마음이 해탈하는 것이란, 마음이 들뜨거나 산란하지 않고 고르고 평등하여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해탈이라고 한다.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이란, 이미 자재함을 얻어 가라앉거나 들뜨는 일이 없게 되었으므로 ‘모든 법은 무상하여 찰나찰나 생멸하니 즐거워할 것도 없다’고 관할 수 있는 것이다. 열셋째, 흩어져 무너짐을 관하는 것이란 ‘이 몸은 오래지 않아 흩어져 무너지고 닳아 없어지는 법으로서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열넷째, 욕망에서 벗어남을 관하는 것이란, 이 몸은 오직 고통의 근본일 뿐이므로 마음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벗어난다고 한다.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이란, 이 마음은 머물다 사라지고 갖가지 허물과 근심이 많으므로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여섯째, 버림을 관하는 것이란 ‘이러한 모든 법이 다 허물과 근심이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버림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열여섯 가지 법은 반드시 여러 단계 선의 여덟 가지 관법과 서로 관련지어 차례로 대치해야 한다. 왜 그런가? 첫째와 둘째 호흡이 드나듦을 아는 것은 호흡을 세는 법을 대치하고, 셋째 호흡의 길고 짧음을 아는 것은 욕계정을 대치하고, 넷째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짐을 아는 것은 미도지정을 대치하고, 다섯째 모든 몸의 작용을 없애는 것은 초선의 각지覺支를 대치하고, 여섯째 기쁨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희지喜支를 대치하고, 일곱째 마음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낙지樂支를 대치하고, 여덟째 온갖 마음의 작용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일심지一心支를 대치하고, 아홉째 기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제2선의 내정지內淨支와 희지喜支를 대치하고, 열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제2선의 일심지를 대치하고, 열한째 마음이 해탈에 머무는 것은 제3선의 낙지를 대치하고, 열두째 무상을 관함은 제4선인 부동정不動定을 대치하고, 열셋째 흩어져 버림을 관함은 공처정을 대치하고, 열넷째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관하는 것은 식처정을 대치하고,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은 불용처정을 대치하고, 열여섯째 버림을 관하는 것은 비상비비상처정을 대치하기 때문이다.” 佛未出世時。外道等。已得四禪四空。 而無對治觀行故。不出生死矣。如來初 說四諦。而或有不悟者。更說九想背捨 等不淨觀法。而對治之。修不淨觀者。 貪欲雖除。而或有厭患心重。不能發無 漏者。佛即令捨不淨觀。而修此特勝法。 蓋此法中。有定有觀。具足諸禪故也。 或曰一觀入息。至於氣滅也。二觀出息 止。至於鼻端也。三觀息長短者。若身 不安。心散亂。則出入息短。若身安心 靜。則出入息長也。四息徧身者。形心 旣安。則氣道無壅。充徧身中也。五除 諸身行者。想受爲心行。覺觀爲口行。 出入息爲身行。旣息徧身中。患彼覺動 麤念。除諸麤。故名除諸身行也。六受 喜。七受樂者。雖有微喜樂。能徧滿。身 識旣滿。內心喜悅。故名樂也。八受諸 心行者。旣受樂在懷。必有數法相隨。 倚心樂境。故名受諸心行也。九心作喜 者。旣止心一境。未有慧解。必爲沉心 所覆沒。以喜擧之。令不沉沒。故名作 喜也。十心作攝者。喜心動散。則發越 過常。攝之令還。不使馳散諸緣。故名 作攝也。十一心作解脫者。心不掉散。 均等無累。故名解脫也。十二觀無常者。 已得自在。不爲沈浮所敗故。能觀諸法 無常。念念生滅。不可樂也。十三觀散 壞者。此身不久。當是散壞磨滅之法。 非眞實有者也。十四觀離欲者。此身惟 是苦本。心欲離之。故名離欲也。十五 觀滅者。是心住滅。多諸過患。不欲住 故也。十六觀棄捨者。觀此諸法。皆是 過患。故名棄捨也。 或曰。此十六法。應須竪對諸禪八觀法 相關。所以者何。一二知息入出者。對 於數息也。三知息長短者。對欲界定也。 四知息徧身者。對未到地定也。五除諸 身行者。對初禪覺支也。六受喜者。對 初禪喜支也。七心受樂者。對初禪樂支 也。八受諸心行者。對初禪一心支也。 九心作喜者。對二禪內淨喜支也。十心 作攝者。對二禪一心支也。十一心住解 脫者。對三禪樂支也。十二觀無常者。 對四禪不動定也。十三觀出散者。對空 處也。十四觀離欲者。對識處也。十五 觀滅者。對不用處也。十六觀棄捨者。 對非想非非想處也。 一二知息入出。對代數息者。行者。旣調 22) 여기까지 십육특승의 작용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을 소개하였다. 다음부터는 십육특승에 대한 천태 대사의 설명이다. 첫째와 둘째, 호흡의 드나듦을 아는 것은 호흡 세는 법을 대치할 수 있다. 수행자가 호흡을 조절하여 그것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면 한마음이 호흡을 의지하며 따르기에 숨을 들이쉴 때 그 숨이 코에서 배꼽까지 이르는 것을 알고, 숨을 내쉴 때 그 숨이 배꼽에서 코에 이르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한마음으로 호흡을 관조하며 의지해 따르고 산란함이 없게 된다. 다시 호흡의 거칠고 미세하고 가볍고 무겁고 껄끄럽고 매끄럽고 차갑고 따뜻한 상태를 안다. 저 호흡을 세는 법은 그저 어두운 마음으로 호흡을 세기만 하고 관하는 행법이 없으므로 애착·아견·자만 등의 허물이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지금 호흡을 따를 때에는 곧 이 호흡이 무상함을 알게 된다. 목숨(命)은 호흡에 의지하므로 호흡을 목숨으로 삼는다. 한번 내쉰 숨이 돌아오지 않으면 목숨 또한 따라서 떠나는 것이다. 호흡이 이미 무상하고 목숨 또한 견고하지 않으므로 애착·아견·자만 등이 저절로 생기지 않게 된다. 또 수행자가 한마음으로 호흡에 의지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고서 선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애착이기도 하다(亦愛)’고 하며, 무상을 깨닫기 때문에 ‘다스림이기도 하다(亦策)’고 한다. 선정과 상응하기 때문에 ‘유루이기도 하다(亦有漏)’고 하고, 관행으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기도 하다(亦無漏)’고 한다. 또한 호흡을 셀 때에는 어둡고 우매한 마음으로 세기 때문에 비추어 깨닫는 바가 없다. 따라서 선정을 증득할 때에도 마음에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호흡을 따르는 법은 곧 밝은 마음으로 호흡을 관조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증득할 때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보고 애착·아견·자만을 깨뜨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호흡을 세는 법보다 특별히 뛰어난 점이다. 셋째, 호흡의 장단을 아는 것은 욕계정을 대치하는 것이다. 욕계정에 들었을 때에는 선정의 마음이 밝고 깨끗하나 도무지 호흡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선정에서는 들어오는 숨이 긴 것과 나가는 숨이 짧은 것을 깨닫는다. 마음이 이미 안에 고요하게 자리해 숨이 마음을 따라 들어오므로 들이쉬면 곧 긴 것을 알고, 마음이 밖을 반연하지 않으므로 내쉬면 곧 짧은 것을 안다. 또한 마음이 세밀하면 호흡도 세밀해지고 호흡이 세밀하면 숨을 들이쉴 때 코로부터 배꼽에 이르는 것이 미세하고 느리며 길어진다. 숨을 내쉴 때도 배꼽에서 코에까지 이르는 것이 미세하고 길어진다. 마음이 거칠면 호흡도 거칠어지고, 호흡이 거칠면 곧 숨이 들고 나는 것이 아주 급하고 짧아진다. 욕계정(欲界定); 본격적인 선정(색계 정려)에 들기 전, 욕계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집중 상태를 의미 1. 개념 욕계정은 마음이 산란함을 벗어나 비로소 한 대상에 고요히 머물기 시작하는 단계 불교의 수행 체계인 계·정·혜(戒·定·慧) 삼학 중 '정(定, 선정)'의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하며,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라는 공간적·심리적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집중 상태 2. 주요 특징 및 상태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세분화 o 조심(粗心, 거친 마음): 마음이 대상에 머물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미세한 망상이 일어나는 상태 o 세심(細心, 미세한 마음): 마음이 더욱 고요해져 망상이 거의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경안)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상태3. 수행상의 위치 아직 본격적인 선정인 '초선(初禪)'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 o 욕계정을 넘어서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잠재우고 초선에 근접한 상태가 '미도지정' o 수행의 기초: 비록 높은 수준의 선정은 아니지만, 지혜(慧)를 닦기 위한 최소한의 정서적 안정과 집중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토대가 됨 息綿綿。一心依隨於息。息入時。知其 從鼻至臍。息出時。知其從臍至鼻。如 是一心照息。依隨不亂。復知息相之麤 細輕重澁滑冷煖。若彼數息者。直闇心 數。無有觀行故。多生愛見慢等諸過矣。 今隨息之時。即知此息無常。命依於息。 而以息爲命。一息不還。則命亦隨去。 息旣無常。命亦不固故。愛見慢等。自 不能生也。復次行者。一心依息。令心 不散。得入禪定。故名亦愛也。覺悟無 常。故名亦策也。與定相應。故名亦有 漏。觀行不著。故名亦無漏也。復次若 數息時。則以冥闇心而數。無所照了。 故證定時。心無所見。今隨息則。明心照 息。故證定時。心眼開明。能見身中三 十六物。而破愛見慢。此即特勝於數息 也。 第三知息長短。對欲界定者。欲界定時。 定心明淨。都不覺息。今此定中。覺入 息長。出息短。何以故。心旣靜住於內 息。隨心入故。入則知長。心不緣外故。 出則知短也。復次心細則息細。息細則 入息從鼻至臍。微緩而長。出息從臍至 鼻。亦微而長也。心麤則息麤。息麁則 또한 호흡이 짧기 때문에 마음이 세밀하다는 것을 알고 호흡이 길기 때문에 마음이 거칠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마음이 이미 더욱 고요해졌다면 내쉬는 숨은 배꼽에서 시작해 가슴에 이르러 끝나고, 들이쉬는 숨은 코로부터 목구멍에 이르러 끝난다. 이것은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호흡이 짧은 것이다. 마음이 거칠면 (내쉬는) 숨이 배꼽에서 코에 이르는 것을 느끼며 그 길은 멀고도 길다. 이것은 곧 마음이 거칠기 때문에 호흡이 긴 것이다. 또한 (호흡이) 짧은 가운데 길다고 느끼면 곧 선정이 세밀한 것이고, (호흡이) 긴 가운데 짧다고 느끼면 선정이 거친 것이다. 왜냐하면 호흡이 코에서부터 가슴에 이르러 끝날 경우에는 행로는 비록 짧지만 그 움직임은 미세하고 느려서 오랜 시간이 걸려야 배꼽에 다다른다. 이것은 지나간 거리는 짧지만 시간이 길게 걸리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거칠면 코에서 배꼽에 이르는 길이 비록 멀지만 그 움직임이 거칠어 금방 되돌아 나온다. 이것은 지나간 거리는 길지만 시간이 짧게 걸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할 때 곧 무상함을 알게 되고, 마음의 생멸이 일정치 않은 것을 말미암아 능히 욕계정을 깨트리게 된다. 넷째, 호흡이 온몸에 두루 퍼지는 것을 알아 미도지정을 대치한다. 근본선의 미도지정에서는 몸의 모습이 허공처럼 없어지는 것만 느낄 뿐, 몸과 호흡이 있는지 없는지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특승에서는 미도지정을 일으켰을 때에도 다 없어진 듯이 선정에 들어가서 구름이나 그림자처럼 몸이 점점 나타남을 느낀다. 또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이 온몸의 털구멍까지 두루 퍼지는 것을 깨닫고, 숨이 들이쉬어도 쌓이지 않고 내쉬어도 흩어짐이 없이 무상하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또 몸은 공空이고 가假23)로서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또한 생멸하며 찰나도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세 가지24)가 화합해 선정이 생기지만 세 가지가 이미 공하므로 선정은 의지할 곳이 없다. 23)공空이고 가假 : 모든 법은 끊임없이 생멸변화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공’이라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전무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이나마 이름과 형상을 가지고 현상적으로 차별되므로 이를 ‘가’라 한다 24)세 가지 : 호흡과 색과 마음을 뜻한다. 공을 아는 것 또한 공해 선정 가운데서 집착하지 않으면 곧 근본 미도지정을 타파하니, 애착하고 가책한다는 뜻이 이미 그 가운데 있다. . 미도지정(未到地定); 욕계의 산란한 마음을 벗어났으나, 아직 본격적인 색계의 첫 번째 단계인 초선(初禪)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 중간 상태 '아직(未) 목적지(地)에 도달하지(到) 못한 선정(定)' 1. 주요 특징 근접 삼매(Access Concentration): 초기불교나 남방 상좌부 불교에서는 이를 근분정(近分定) 또는 근접 삼매라고도 부르고. 초선이라는 본 궤도에 오르기 바로 직전의 상태 오개(五蓋)의 억제: 수행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탐욕, 분노, 게으름, 들뜸, 의심)가 일시적으로 가라앉아 마음이 매우 깨끗하고 고요해진 상태 몸의 변화: 욕계정보다 훨씬 강력한 몸과 마음의 가벼움(경안)을 느끼며,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멀어지는 즐거움을 경험하기 시작2. 선정 단계에서의 위치 2. 불교의 집중 단계는 보통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짐 o 욕계정; 일상적인 산만함은 줄었으나 여전히 욕계의 거친 기운이 남은 상태. o 미도지정(未到地定): 욕계의 기운은 벗어났지만 색계 초선의 구성 요소(심, 사, 희, 락, 일경성)가 완벽히 갖춰지기 전의 상태. o 색계 초선(初禪): 본격적인 선무(禪定)의 시작 단계. 3. 수행상의 중요성 미도지정은 단순히 거쳐 가는 단계가 아니라, 수행자가 지혜(慧, 관조)를 닦을 수 있는 실질적인 토대 이 정도의 집중력만 확보되어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위빳사나(Vipassana) 수행이 가능해짐 出入急疾而短也。復次息短故。知心之 細。息長故。知心之麁。何以故。心旣轉 靜。則出息。從臍至胸而盡。入息。從鼻 至咽而盡。此則心靜故息短也。心麁者 覺息從臍至鼻。道里長遠。此則心麤故 息長也。復次短中覺長則定細。長中覺 短則定麤。何以故。如息從鼻至胸而盡。 則行路雖短。而其行微緩。久方至臍。 此則行處短而時節長也。若心麤而從 鼻至臍。道里雖長。而其行麁率。欻然 還出。此則行處長而時節短也。如是觀 時。即知無常。由心生滅不定。能破欲 界定也。 第四知息徧身。對未到地定者。根本未 到地。但覺身相。泯然如虛空。而不覺 身息之有無。今特勝中。發未到地時。 亦泯然入定。即覺漸漸有身。如雲如影。 復覺出入息。徧身毛孔。見息入無積聚。 出無分散。無常生滅。覺身空假不實。 亦知生滅。刹那不住。三事和合。故有 定生。三事旣空。則定無所依。知空亦 空。於定中不著。即破根本未到地。愛 策之義。已在其中矣。 1)等 [2] 五除諸身行。對初禪覺觀支者。行者。 다섯째, 몸의 모든 작용을 제거하는 것은 초선정의 각지覺支와 관지觀支를 대치한다 수행자가 호흡이 몸에 두루 퍼지는 것을 깨달아 초선을 일으키게 되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냄새나고 더러우며 혐오스러운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보게 된다. 이때 서른여섯 가지 물질은 모두 사대四大로 말미암아 존재하기에 하나하나가 다 아我가 아니고 하나하나가 다 내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것이 곧 욕계의 몸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욕계의 몸에서 색계의 사대를 구한다면 그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가,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만약 (색계의 사대가) 없다면 어떻게 색계의 촉감을 느끼며, 만약 있다면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이와 같이 관할 때에 끝내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곧 초선의 몸을 제거하는 것이다. (몸의 모든 작용을 제거한다고 할 때의) ‘작용(行)’이란 곧 관지觀支이다. 몸이 제거되면 작용 또한 따라서 멸한다. 각지(覺支); '깨달음(覺)의 부분(支)'이라는 뜻으로, 수행자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닦아야 할 일곱 가지 덕목인 칠각지(七覺支)를 의미[1, 2] 불교의 37조도품 중 하나로, 마음의 평온과 지혜를 동시에 갖추게 하는 매우 구체적인 수행 지침[1, 3] 칠각지의 7가지 요소
각지는 그 집중을 깨달음으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방법론 관지(觀支); 수행자가 색계 초선(初禪)에 도달했을 때 그 마음 상태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인 초선오지(初禪五支) 중 하나로, 대상을 미세하게 관찰하고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의미 보통 심(尋, 일으킨 생각)과 짝을 이루어 사(伺, 머무는 생각)라고도 불리며, 선정의 깊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 1. 심(尋)과 사(伺)의 차이 선정 상태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뉨
수행자가 미도지정을 넘어 초선에 들면 다음 다섯 가지 성질이 나타나는데, 관지는 그 중 두 번째에 해당
선정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이 '관지'조차도 점차 사라지게 됨
여섯째, 기쁨을 느끼고, 일곱째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초선의 희지와 낙지를 대치한다. 이 선정은 곧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도 그 성품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집착하지도 않아 어떤 허물과 죄도 없다. 그러므로 느낀다(受)고 한다. 여덟째, 모든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초선의 일심지를 대치한다. 각 등의 사지25)를 움직이는 작용(動行)이라 하고, 일심지를 움직이지 않는 작용(不動行)이라 한다. 근본선에서 일심으로 들어갈 때는 마음에 애착이 생기지만, 이 선정에서는 이 일심이 헛되고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곧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바르게 삼매에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마음의 작용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25)각 등의 사지 : 각覺·관觀·희喜·낙樂을 말한다. 일심지(一心支) ; 초선오지(初禪五支)의 마지막 요소로, 한자어로는 일경성(一境性, Ekaggatā) 마음이 오직 하나의 대상(境)에 완전히 몰입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 초선(初禪)에서 일심지가 가지는 의미와 특징 1. 선정의 완성 (마음의 통일) 앞선 요소들인 심(尋)과 사(伺)가 대상을 붙잡고 관찰하며, 희(喜)와 락(樂)이 감성적인 충만함을 준다면, 일심지는 이 모든 에너지를 하나의 점으로 모아 고정시키는 역할,. 비유하자면 촛불이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미동도 없이 타오르는 것과 같음 2. 초선에서의 역할 o 통합;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마음의 작용들을 하나로 묶어 '삼매(Samādhi)'의 상태로 만듬 o 토대: 일심지가 확보되어야만 초선에서 얻은 고요함이 유지되며, 이후 2선, 3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김. o 억제: 일심지가 강해지면 감각적 욕망이나 외부의 소음 등 '욕계'의 방해 요소들이 마음 안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됨 3. 미도지정과의 결정적 차이 미도지정에서도 집중은 일어나지만, 초선의 일심지는 희(喜)와 락(樂)이라는 강력한 정서적 안정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차이점. 즉, 억지로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 속에서 마음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녹아든 상태 요약하자면 일심지는 초선의 다섯 가지 요소 중 '결과'이자 '핵심' 거칠게 대상을 찾고(심), 미세하게 살피며(사), 기쁨(희)과 행복(락)을 느끼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마음이 대상과 하나가 되는 일심(一心)으로 귀결되는 것 아홉째, 마음으로 기쁨을 짓는 것은 제2선의 내정지와 희지를 대치한다. 제2선의 희지는 지혜로 비추어 깨닫는 작용이 없으나 지금 여기에서는 이 기쁨을 관찰하여 곧 헛된 것임을 알고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으로 기쁨을 짓는다고 한다. 제2선(二禪)에 이르면 초선에 있던 '거친 생각(심)'과 '미세한 관찰(사)'이 사라지고, 오직 내면의 명징함과 기쁨이 두드러집니다. 질문하신 내정지와 희지는 제2선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1. 내정지(內靜支) - 내면의 고요와 믿음
제2선은 생각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마음이 안으로 완전히 수렴되는 단계 내정지를 통해 마음의 요동이 멈추고 거울처럼 맑아지며, 그 투명한 고요 속에서 희지라는 충만한 기쁨을 경험하게 됨 열째,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은 제2선의 일심지를 대치한다. 앞에서 마음으로 기쁨을 일으키는 것이 비록 바르기는 하지만 동요되는 허물이 없지 않다. 따라서 기쁨의 성품이 끝내 공적함을 돌이켜 관찰한다. 그러면 선정심이 산란하지 않고 기쁨을 따라 동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거두어들인다고 한다. 제2선의 일심지(一心支); 초선의 일심지와 다름 초선에서는 거친 생각(심)과 미세한 관찰(사)이 마음을 붙들고 있는 상태에서의 집중이었으나, 제2선의 일심지는 생각의 개입 없이 마음이 스스로 고정된 상태 1. 무심(無尋)·무사(無伺)의 집중 제2선에 이르면 '심(尋)'과 '사(伺)'라는 사유 작용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따라서 제2선의 일심지는 어떤 대상을 잡으려고 애쓰는 '노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마음이 내면의 명징함(내정지)과 기쁨(희지) 속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녹아들어 있는 상태 2. 정생희락(定生喜樂)의 토대 제2선의 특징인 '선정에서 솟아나는 기쁨(정생희락)'은 이 일심지가 견고할 때 유지됩니다. 생각으로 대상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고요한 지점에 집중되어 더욱 강력한 삼매의 힘을 발휘 3. 초선 일심지와의 차이점
因覺息徧身。而發得初禪。心眼開明。 見身三十六物。臭穢可惡。爾時即知三 十六物。皆由四大而有。一一無我。一 一非身。此即除欲界身也。復於欲界身 中。求色界四大。爲從外來耶。爲從內 出耶。爲在中間住耶。若無者。云何受 色界觸。若有者。今何所在。如是觀時。 畢竟不可得。此即除初禪身。所謂行者。 即觀支也。身除則行亦隨滅矣。 第六受喜。第七受樂。對破初禪喜支樂 支者。此定即於喜樂。知其性空故。不 受不著。無諸過罪。故云受也。 第八受諸心行。對初禪一心支者。覺等 四支。名動行。一心支。名不動行。根本 禪。入一心時。心生愛著。而此定。知此 一心。虛誑不實。即不取著。則是三昧 正受。故云受諸心行也。 第九心作喜。對二禪內淨喜支者。二禪 喜支。無智慧照了。而今觀此喜。即知 虛誑。不生愛著。故名心作喜也。 第十心作攝。對二禪一心支者。前心作 喜雖正。而不無動過。故返觀喜性。畢 竟空寂。定心不亂。不隨喜動。故云作 攝也。 열한째, 마음이 해탈에 머무는 것은 제3선의 낙지를 대치한다. 제3선에는 온몸에 두루 퍼지는 즐거움이 있어 범부가 이를 얻으면 대부분 애착을 일으켜 그것에 묶여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제 관하는 지혜로써 분석하여 타파하면, 온몸에 두루 퍼지는 즐거움을 증득할 때 “이 즐거움은 인연으로 생겨났으므로 공하고 자성이 없으며 헛되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안다. 이렇게 즐거움을 관하여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자재하게 된다. 따라서 마음으로 해탈한다고 한다. 제3선의 낙지(樂支, Sukha); 제2선에서 느꼈던 강렬하고 들뜬 기쁨(희, 喜)이 가라앉고, 몸과 마음 전체로 스며드는 지극하고 미세한 행복감을 의미 제3선은 선정의 단계 중 '즐거움이 가장 극에 달한 상태'로 평가받으며, 그 특징은 다음과 같음 1. 희(喜)와 낙(樂)의 차이 불교 수행 체계에서 이 둘은 엄격히 구분
제3선의 낙지를 '이희락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기쁨(喜)을 떠나서(離) 얻는 오묘한(妙) 즐거움(樂)"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자극하던 강렬한 희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자리에 더 깊고 섬세한 행복감이 가득 차게 됨 3. 성자들이 찬탄하는 상태 제3선에 이르면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행복하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김하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칭송하는 단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감각적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행의 힘으로 얻는 최상의 심리적 만족감 . 4. 제3선을 지탱하는 다른 요소들 제3선의 낙지가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 요소들이 함께 작용
열두째, 무상을 관하는 것은 제4선인 부동정을 대치한다. 제4선을 부동정이라 하는데, 범부가 이를 얻으면 대부분 이것이 영원하다는 생각을 내어 애착하고 취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제 이 선정도 세 가지 모습26)으로 변천하는 것임을 관하여,이것이 파괴되며 불안한 모습임을 안다. 그러므로 무상을 관찰한다고 한다. 26)세 가지 모습(三相) : 생기고(生) 변화하고(異) 없어지는(滅) 유위법의 변천상을 말한다. 여기에 머묾(住)을 더해 흔히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사상四相이라 한다. 제4선(第四禪)을 부동정(不動定)이라 부르는 이유; 즐거움(樂)과 괴로움(苦), 기쁨(喜)과 슬픔(憂)이라는 양극단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져, 마음이 어떤 동요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不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 제4선 부동정의 핵심 특징 1. 사념청정(捨念淸淨)의 경지 제4선의 구성 요소는 사지(捨支, 평온)와 일심지(一心支, 집중)
부동정은 마음이 가장 견고하고 예리하게 벼려진 상태. 불교에서는 이 상태를 '부드럽고 유연하며 다루기 쉬운 마음'이라고 표현 이 강력한 부동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비로소 사성제를 통찰하거나 숙명통, 천안통 같은 신통력을 일으키는 토대가 마련됨. 요약하면 제4선 부동정은 "행복마저 놓아버린 자리에서 얻는 지극한 평온과 명징한 깨어있음"의 상태 열셋째, 나가서 흩어짐을 관하는 것은 공처정을 대치한다. 나가서 흩어진다는 것은 색을 벗어나서 마음이 허공을 의지해 소멸하고 흩어져 자재함으로써 색법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나가서 흩어진다고 한다. 범부는 이 선정을 얻을 때 이것이 진실한 공이며 안온함이라 여겨 마음에 집착을 일으킨다. 지금 ‘나가서 흩어짐을 관찰한다’고 하는 것은, 수행자가 처음 허공처정에 들어갔을 때 곧바로 “사온27)이 화합해 있을 뿐 실제로는 자성이 없어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머물지 않으니, 곧 마음 세 가지 모습으로 변천하는 것이다. 또 공은 앎이 없는 법이니, 마음이나 공에서 얻을 곳이 없다. 따라서 마음에 애착이 없다. 이를 나가서 흩어짐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27)사온 : 수受·상想·행行·식識을 말한다. 공처정(空處定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색계 4선을 넘어 무색계(無色界)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단계 물질적인 형태(색, 色)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한 공간'에 마음을 집중하는 선정 1. 주요 특징
수행자는 제4선의 부동정 상태에서 얻은 강력한 집중력을 바탕으로 다음을 닦음
공처정은 무색계 4공정 중 가장 기초적인 단계.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공간'조차 의식의 산물임을 깨닫고, 공간이 아닌 '무한한 의식'에 집중하는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으로 나아가게 됨. 열넷째,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관하는 것은 식처정을 대치한다. 무릇 애착이 있으면 모두 욕망이라 한다. 식처정에서는 바깥 법을 여의고 안의 법을 반연하며 공을 여의고 식을 반연하지만 역시 욕망에 대한 집착임을 면치 못한다. 지금 이 선정에서는 이를 능히 관하여 타파한다. 식처정(識處定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색계 사공정(四空定) 중 두 번째 단계. 앞선 단계인 공무변처정(공간의 무한함)을 넘어, 그 공간을 인식하는 '의식(識)의 무한함'에 집중하는 선정 1. 주요 특징
수행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통해 이 단계에 진입.
第十一心住解脫。對破三禪樂支者。三 禪有徧身之樂。凡夫得之。多生愛染。 爲其所縛。不得解脫。今以觀慧破析。 證徧身樂時。即知此樂。從因緣生。空 無自性。虛誑不實。觀樂不著。心得自 在。故名心作解脫也。 第十二觀無常對破四禪不動定者。四 禪名不動定。凡夫得之。多生常想。心 生愛取。今觀此定。三相所遷。知是破 壞不安之相。故名觀無常也。 第十三觀出散。對破空處定者。出散。謂 出離於色。而心依虛空。消散自在。不爲 色法所縛。故名出散。凡夫得此定時。謂 是眞空安穩。心生取著。今言觀出散者。 行人。初入虛空處定時。即知四陰和合 而有。實無自性。不可取也。何以故。過 去心已謝。未來心未至。現在心無住。 則心是三相所遷。空是無知之法。於心 於空。無可得處。故心無愛著。是名觀 出散也。 第十四觀離欲。對識處定者。凡有愛著 皆名爲欲。識處離外而緣內。離空而緣 識。亦未免著欲。今此定。能觀破析也。 第十五觀滅。對無所有處者。不用處定。 「等」疑「第」{編}。 열다섯째, 멸함을 관하는 것은 무소유처정을 대치한다. 불용처정은 무위법의 경계를 반연하므로 마음이 무위와 상응한다. 따라서 범부가 이를 얻으면 버릴 수가 없다. 지금 “멸함을 관찰한다.”고 한 것은 이 선정을 얻었을 때 식이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식이 비록 적긴 하지만 역시 수·상·행·식의 사온이 화합한 무상하고 무아인 법이니 물들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 불용처정不用處定); 무색계 사공정(四空定) 중 세 번째 단계로, 무한하게 확장했던 의식(識)조차 버리고 "아무것도 없다(無所有)"는 상태에 집중하는 선정 1. 주요 특징
수행자는 다음과 같은 마음의 과정을 거침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완전한 해탈을 이루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더 나아가신 것임 불용처정(不用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한자어 뜻을 풀이하면 '아무것도 쓸 곳(用)이 없는(不) 상태의 선정'이라는 의미로, 마음 안에 붙잡을 만한 대상이나 의식의 찌꺼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음을 강조하는 표현 1. 왜 '불용(不用)'이라 부르는가?
이 경지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할 만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무소유(無所有)의 관점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상태. 수행자는 이 단계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미세한 흔적(의식)마저 놓아버리는 법을 익히게 됨 . 3. 주요 맥락
불교에서는 이를 넘어 비상비비상처정과 그 이상의 멸진정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봄 무위법(無爲法); '인위적인 조작(爲)이 없는(無) 법'이라는 뜻으로, 인연에 의해 생겨나거나 사라지지 않는 영원불변한 진리를 의미 욕계정부터 무색계 4공정까지의 모든 선정(定)은 사실 유위법(有위法)에 속함 인연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상태이기 때문 반면 무위법은 그 모든 수행의 끝에서 마주하는 궁극의 자리 1. 주요 특징
유위법의 세계(생사윤회)를 넘어서서 이 영원한 평화인 무위법(열반)을 체득하기 위함 열여섯째, 포기하고 버림을 관하는 것은 비상비비상처정을 대치한다. 초선으로부터 각 단계의 선정에서 두루 버리긴 했지만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러 유와 무를 모두 버리니, 이것은 버림 가운데서도 가장 지극한 것이다. 범부가 이를 얻으면 열반이라 여겨 버리지를 못한다. 지금 이 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그 법 역시 무상·고·공·무아로서 진정한 열반이 아니라고 관할 수 있다. 따라서 포기하고 버림을 관찰한다고 한다. 근기가 날카로운 이라면 꼭 열여섯 가지를 다 닦을 필요는 없다. 즉 호흡을 따르는 법에서도 무상을 잘 깨달아 곧장 큰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두세 가지를 얻기도 하고 네다섯 가지를 얻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근기에 달렸다. 그러므로 특승이라고 한다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3a01-905a01)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무색계 사공정(四空定)의 마지막 단계이자, 중생이 선정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의 최정점(유정천, 有頂天). 명칭 그대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非想),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非非想)" 지극히 미세한 의식 상태를 의미 . 1. 주요 특징 o 극도의 미세함: 앞선 무소유처정에서의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조차 번거로워 그마저 놓아버린 상태입니다. 거친 생각은 물론 미세한 관념도 거의 사라져 '생각이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생명 활동의 근원인 미세한 의식은 남아 있어 '생각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o 선정의 한계: 범부나 외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지만, 불교에서는 여전히 '나'라는 미세한 뿌리(아집)가 남아 있는 유위법의 세계로 봅니다.2. 부처님의 수행 경험 부처님은 두 번째 스승인 우다카 라마풋타로부터 이 경지를 배웠고 단숨에 도달. 하지만 이 상태에서 깨어나면 다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생사윤회를 완전히 벗어나는 열반이 아님을 깨달아 다시 고행과 명상의 길을 떠남 3. 수행상의 위치
비상비비상처정은 "의식의 등불이 꺼지기 직전,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남아 있는 상태"와 같음. 지극히 고요하지만 아직 '완전한 소멸'은 아닌 셈. 緣無爲法塵。心與無爲相應。凡夫得之 不能捨離。今言觀滅者。得此定時。覺 有少識。此識雖少。亦是四陰和合。無 常無我之法。不可染著也。 第十六觀棄捨。對非想非非想者。從初 禪以來。處處徧捨。至非想而雙捨有無。 是捨中之極。凡夫得之。以謂涅槃。不 能捨離。今此定時。能觀其法。亦是無 常苦空無我。而非眞涅槃。故云觀棄捨 也。 若利根者。未必具修十六。即於隨息中。 亦能覺悟無常。便入大道故。或得二三 或至四五。在人根機。故名特勝也 『선학입문』 禪學入門上卷(ABC, H0254 v10, p.905a01-a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