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엄삼매
2)반야바라밀과 13관문
『금강심론』에는 수능엄삼매를 설하며 두 가지 특성을 차례로 전개하고 있다. 앞에서 일행(一行)과 일상(一相)의 지관쌍운(止觀雙運)을 설한다면, 이번에는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다. 한편으로 앞의 두 가지가 완성된 상태가 반야바라밀이라 할 수도 있다.
먼저 여섯 가지 바라밀과 열 가지 바라밀에 대해 정의하며, 반야바라밀은 육근‧육경‧육식의 모든 법이 본래 공한 실상지(實相智)로 도피안(到彼岸)이다. 열 가지 바라밀의 십은 만수(滿數)로 실상지의 반야행(般若行)이 원만히 성취되어 구경(niṣṭhā)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두 단계로 앞 단계에서 견도(見道)를 성취하고, 뒤의 단계에서 수도(修道)로 마지막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보살십지로는 전자가 초지에서 견도한 지위이고, 후자는 십지에서 묘각을 성취하는 지위이다. 또 앞의 실상지는 가관(假觀)의 일상삼매에서 실상삼매가 된 것이고, 나중은 염염(念念)의 일행삼매에서 보현삼매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육바라밀과 십바라밀은 차례로 보살십지와 대응되는데, 제육지의 현전지(現前地)에서 여섯째 반야바라밀을 섭수하고, 제십지의 법운지(法雲地)에서 지(智)바라밀을 섭수하여 반야바라밀을 완성하게 된다.
『수능엄삼매경』에도 중생을 구제하는 중요한 방편으로 사섭법과 바라밀을 설하고 있다. 즉, 보살이 수능엄삼매에 머물면 이 같은 법문의 생각에 다 육바라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은 『금강심론』에서 설하는 십지에서 얻는 십바라밀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초지는 탐심(貪心)의 3분의 2를 제거하고 견혹(見惑)을 타파하게 된다. 성인의 성품을 얻으며 아(我)‧법(法) 이공의 이치를 깨닫고 큰 기쁨이 일어나는 환희지(Pramudit ā-bhūmi)이다. 또 일체를 구제하며 집착 없는 보시를 행하고, 이로 인해 열반 언덕에 이르러 단(檀)바라밀(dāna-pāramitā)을 성취한다.
둘째, 이지(二地)는 남아있던 약간의 탐심마저 제거하여, 견사혹(見思惑)을 여의므로 계(śīla)바라밀을 성취한다. 그리고 범하고 훼손하는 때를 여읜 몸으로 의식이 청정하여 이구지(離垢地, Vimalā-bhūmi)이다.
셋째, 삼지(三地)는 진심(嗔心)을 억제하고 인욕(kṣānti)바라밀을 성취하여, 제찰법인(諦察法忍)을 얻고 지혜가 분명히 드러난 발광지(發光地, Prabhākarī-bhūmi)이다. 제찰법인은 제법의 본체가 생멸하지 않음을 자세히 관찰하여 알고,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초기 불교의 사다함과(斯陀含果, sakṛd-āgāmi-phala)에 해당한다.
넷째, 사지(四地)는 앞뒤 바라밀을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고 행하는 정진(vīrya)바라밀을 성취하며, 이 단계는 지혜의 성품이 밝게 치성하므로 염혜지(焰慧地, Arciṣmati-bhūmi)이다.
다섯째, 오지(五地)는 진심(嗔心)의 근본이 제거되어 선정(dhyāna)바라밀을 성취한다. 이(理)‧사(事)를 계합하여 진속이지(眞俗二智)가 상응함으로 진사혹(塵沙惑)을 여읜 난승지(難勝地, Sudurjayā-bhūmi)이며, 서로 다른 이지(二智)를 합하여 어려운 것을 상응하기 때문이다. 초기 불교의 아나함과(阿那含果, anāgāmin-phala)에 해당하며, 앞의 세 가지와 탐욕‧진심의 다섯 가지를 모두 멸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육지(六地)는 탐심‧진심이 멸하여 혜(慧, prajñā)바라밀을 성취한다. 최승지(最勝智)를 발하여 물듦과 청정이 없는 일진법계의 행상(行相)으로 현전지(現前地, Abhimukhī-bhūmi)이다.
일곱째, 칠지(七地)는 탐하고 성냄이 다함으로 약간의 치심(癡心)이 제거되며, 대비심을 일으켜 방편(upāya)바라밀을 성취한다. 자기만을 제도하는 이승을 멀리 여의는 원행지(遠行地, Dūraṅgamā-bhūmi)이다.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의 경지로 볼 수 있다. 칠지부터 십바라밀이 나타나는데, 방편바라밀은 한량없는 지혜의 문을 일으킨다. 또 보살은 생각마다 십바라밀과 십지의 행을 갖추며, 생각마다 대비를 으뜸으로 삼아 불법을 닦아 큰 지혜에 회향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팔지(八地)는 이승을 멀리 여의고 보살의 대원을 일으킨 경지로 원(願, praṇidhāna)바라밀을 성취한다. 무상관(無相觀)을 행하여 임운무공용(任運無功用), anābhogena)이 계속되는 부동지(不動地, Acalā-bhūmi)이다. 원바라밀은 돌이켜 더 훌륭한 지혜를 구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구지(九地)는 력(力, bala)바라밀을 성취하고 열 가지 힘(daśa-balāni)을 구족하여, 어떤 곳에도 제도함과 제도하지 못함을 알아 능히 설법하는 선혜지(善慧地, (Sādhumatī-bhūmi)이다.
열째, 십지(十地)는 장도무명(障道無明)의 근본을 끊고 수용법락지(受用法樂智)와 성숙유정지(成熟有情智)로 지(智, jñāna)바라밀을 성취한다. 끝없는 공덕으로 한없는 공덕수(功德水)를 내는 것이, 큰 구름이 청정하여 많은 물을 내림과 같아 법운지(法雲地, Dharmameghā-bhūmi)라 한다.
지(智)바라밀은 모든 법의 모양을 여실히 말하며, 이 같은 생각마다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된다. 보살이 십바라밀을 갖출 때는 사섭법‧삼칠품‧삼해탈문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는 모든 법을 생각마다 구족한다고 설한다.
경전의 논소(論疏)에도 육바라밀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강조하고 있다. 즉, 『수습차제』에는 "그러므로 육바라밀과 십지를 제외하고 보살이 가는 더 빠른 길은 별도로 없다."라고 하며, 『보살지』에는 육바라밀을 복덕과 지혜로 나누어 설한다. "복덕을 요약하면 보시바라밀‧지계바라밀‧인욕바라밀의 세 가지다. 반면에 지혜는 하나의 바라밀로 반야바라밀이다. 정진과 선정바라밀은 복덕에도 속하고 지혜에도 속한다고 알아야 한다."
한편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금강심론』에서 중요하게 설하는 것이 『인왕반야바라밀경』에서 설하는 오인(五忍)이다.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지혜 방편으로 벽산은 "지혜로운 마음으로 법에 안주함이고, …법의 실상에 안주함이며, 인법(忍法)을 잃지 않음이 인다라니(忍陀羅尼)다."고 한다.
『화엄경』의 주석에는 "인(忍)이라는 것은 지혜로 비춰 관찰하여 통달함이다. …진리를 안인(安忍)하고 받아들이면 평안하고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고 한다. 벽산도 "법을 관찰하되 안인하지 못하면 소승이고, 능히 안인하고 안주해 움직이지 않으면 대승이며 비로소 인(忍)이다."라고 한다. 『금강심론』에는 아래와 같이 설한다.
불타가 대왕에게 말하되, 다섯 가지 인(忍)이 곧 보살의 법이다. 복인(伏忍)의 상‧중‧하, 신인(信忍)의 상‧중‧하, 순인(順忍)의 상‧중‧하, 무생인(無生忍)의 상‧중‧하, 적멸인(寂滅忍)의 상‧하를 모든 부처와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 오인(五忍)의 13관문 수행을 말하는데, 첫 번째 복인은 차례로 습인(習忍)‧성인(性忍)‧도종인(道種忍)의 삼현위(三賢位)가 된다. 두 번째 신인(信忍)은 차례로 초지‧이지‧삼지와 대응하며, 세 번째 순인(順忍)는 차례로 사지‧오지‧육지와 상응한다. 네 번째 무생인은 차례로 칠지‧팔지‧구지에 대응하며, 다섯 번째 적멸인은 하(下)가 십지와 상응하고 상(上)이 불지(佛地)에 해당한다. 마지막 불지인 상적멸인을 빼면 모두 열세 단계가 되며, 정확하게 오인 중에 네 가지 인(忍)이 십지와 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삼현위의 복인(伏忍) 세 가지와 십성위(十聖位)의 네 가지 인(忍)은 수행의 차제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금강심론』에서 설하는 오인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인은 습인‧성인‧도종인의 삼현위 보살이 번뇌의 종자는 끊지 못하지만, 이를 굴복시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인(忍)이다. 둘째, 신인은 초지부터 삼지까지 탐욕을 모두 끊고, 참된 성품을 보며 바른 믿음을 얻는 인(忍)이다. 셋째, 순인(順忍)은 사지부터 육지까지 성냄을 전부 끊고, 보리의 진리에 수순하여 무생과(無生果)로 향하는 인(忍)이다. 넷째, 무생인은 칠지부터 구지까지 어리석음을 다 끊고, 모든 법의 무생(無生, anutpā da)의 진리에 깨달아 들어가는 인(忍)이다. 다섯째, 적멸인은 십지를 거쳐 묘각에서 열반의 적멸에 도달한 인(忍)이다.
인(忍)은 인가하고 안인하는 의미로, 진리를 깨닫고 결정하면 움직임이 없다. 또 13관문이란 위의 14인(十四忍) 가운데, 상적멸인(上寂滅忍)의 묘각위(妙覺位)를 제외한 13인의 수행법이다. 경전에는 13관문으로 수행하는 자를 대법왕이라 하며, 불타와 같이 공양하고 받들라고 설한다. 이처럼 오인의 13관문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반야바라밀의 수행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앞에서 불타가 대왕에게 설한 것처럼 오인의 수행은 바로 반야바라밀 수행이다. 본 항에서는 반야바라밀의 중요한 수행방편으로 십바라밀과 13관문을 살펴보았다. 굳이 비교하면 십바라밀이 주로 공덕의 차원에서 설한다면, 13관문은 대체로 미혹의 단멸 차원에서 설해지고 있다.
또 전자가 일행(一行)의 끊임없는 실천 수행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후자는 일상(一相)의 지혜로 깨쳐 부동함을 강조하여 설한다. 특히 13관문은 탐진치 삼독을 멸하는 차례를 정확하게 설하므로, 수행차제를 정립하고 판별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