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계천군(啓川君) 이등(李登)의 아들 효(宯)를 계집종 춘덕(春德)과 간통(奸通) 단편소설
1439년(세종 21년) 6월 여름, 한양의 공기는 유난히 덥고 습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너머, 왕실과 인척들의 대저택이 밀집한 한양 한복판의 계천군(啓川君) 이등(李登)의 저택은 태풍이 지나가기 직전처럼 팽팽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세종대왕의 고모부이자 부마로서 무소불위의 위세를 누려온 이등은 지금 사랑채 한가운데에서 분노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디 감히 노비 따위가 부마의 가문과 대신의 이름을 더럽힌단 말이냐!”
이등의 고함에 뜰 아래 엎드린 하인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의 앞에는 서늘한 표정의 아들 효(宯)가 서 있었다. 효는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였으나, 눈매만큼은 고집스러웠다.
사단은 본궁(本宮)의 종인 산해(山海)와 호돈(好敦) 형제, 그리고 그들의 누이 이씨의 계집종인 춘덕(春德)에게서 시작되었다. 이씨는 오래전부터 궁중의 시녀로 들어가 있었고, 그녀의 아이가 병에 걸리자 계집종 춘덕이 아이를 간호하기 위해 본가로 따라 나와 있었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춘덕은 그대로 본가에 머물고 있었다.
사건은 밤마다 찾아오는 침묵 속에서 터졌다. 춘덕의 방으로 은밀히 스며드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계천군의 어린 아들 효였다. 혈기왕성하나 철이 없던 효와 궁가를 오가며 세상의 때를 안 춘덕의 사통(私通)은 오래가지 않아 산해 형제에게 빌미를 잡혔다.
“너 이 음분(淫奔)2)한 년! 감히 누구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는 것이냐?”
밤마다 수상쩍은 소리를 들은 산해와 호돈이 춘덕을 문초하자, 춘덕은 겁에 질려 효의 이름을 토해냈다. 산해 형제는 황당함과 분노를 참지 못했다. 비록 자신들이 천한 노비 신분이라 하나, 누이가 궁의 시녀로 있었기에 가문의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산해의 어미는 즉시 계천군의 집 계집종을 찾아가 매섭게 꾸짖었다.
“상전의 아들이라는 자가 어찌 남의 집 계집종을 범하느냐! 음탕한 어미 밑에서 난 자식답구나!”
그러나 이 말이 계천군 이등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평소에도 성품이 불같아 조정 대신들과 자주 다투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야인(野人)과 주먹다짐까지 벌였던 이등이었다. 이등은 즉시 산해 형제를 불러 호통을 쳤다.
“너희가 누이의 세력을 믿고 감히 나를 능멸하느냐! 너희 누이가 비록 궁의 시녀라 하나,
너희 어미 역시 본래 음탕한 년이 아니더냐!”
산해와 호돈 형제는 하늘이 노랄 지경이었다. 감히 부마에게 맞설 수 없어 그저 서럽게 울기만 했으나, 이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한 모욕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대궐로 달려가 임금에게 하소연한 것이었다.
“전하! 본궁의 종 산해와 호돈이 신의 아들 효를 욕하고, 급기야 옹주(翁主)에게까지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 무례함과 업신여김이 헤아릴 수 없사오니 이들을 엄벌에 처하여 주시옵소서!”
경복궁 편전. 세종은 이등의 상소를 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곁에 있던 승정원의 승지들이 임금의 눈치를 살폈다. 세종은 즉시 승정원에 명하여 사건의 진상을 엄히 국문하게 했다. 의금부와 승정원의 국문이 시작되자, 숨겨졌던 추악한 진실들이 하나씩 꺼내졌다. 추국장에 끌려온 산해와 호돈 형제는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했다.
“전하! 저희가 어찌 감히 옹주 마마를 욕보이겠습니까?
춘덕이 밤마다 사통하기에 물었더니 계천군의 아들 효라 하였습니다.
저희 어미가 그 집 계집종을 조금 꾸짖었을 뿐인데,
계천군께서 도리어 저희 어미를 음녀라 모욕하시며 詰責(힐책)하셨습니다.
저희는 실로 부끄럽고 한스러워 울기만 하였을 뿐입니다!”
이어 끌려온 효와 춘덕 역시 승정원의 매서운 추국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통한 사실을 순순히 자복했다.
모든 진상이 드러나자 세종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갔다. 세종은 승지 김돈(金敦)을 비롯한 대신들을 불러 모았다.
“산해 형제는 본시 무상(無狀)한 자들이다. 아무리 천인(賤人)이라 하나 부마를 꾸짖어 욕보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춘덕은 산해의 누이 이씨의 계집종으로, 아이가 죽은 뒤에도 본가에 머물렀는데,
효는 왕실의 친척이 되어서 사사로이 노비와 간통하였으니 이 어찌 경솔하지 않다 하겠는가?”
세종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이어 세종은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계천군 이등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등(登)은 일찍이 조정 대신들과 자주 다투고, 길에서 야인과 격투를 벌여 나에게 아뢰더니,
이제는 제 아들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뻔뻔스럽게 나에게 와서 거짓으로 아뢰었다. 내가 이를 취하지 않겠다.
마땅히 사헌부와 유사(攸司)에 내려 엄히 국문하고자 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떠한가?”
이등의 몰상식한 행태에 임금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좌우의 대신들은 숨을 죽였다. 이때 승지 김돈이 앞으로 나와 엎드리며 아뢰었다.
“전하, 산해가 천인으로서 부마를 욕보였으니 죄가 큰 것은 성교(聖敎)와 같습니다.
또한 효는 의금부에 내려 죄를 다스림이 마땅하오나, 아직 나이가 적어 세상의 사리를 알지 못하여 벌어진 일이옵니다.
만약 의금부의 하옥을 거치면 종신토록 허물이 될 것이니, 다만 먼 지방으로 귀양 보냄이 적당할까 합니다.
다만 계천군 이등은 평소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고 뻔뻔하였으니, 그 벼슬을 파면하여 징계하심이 옳을 줄 아나이다.”
김돈의 말을 듣던 세종은 잠시 묵념에 잠겼다. 계천군 이등의 무모함은 경계해야 했으나, 왕실의 핏줄인 어린 효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 역시 마음이 쓰였다.
“효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이다. 내가 특별히 그 죄를 용서하고자 하는데 어떠하냐?”
임금의 은혜로운 용단에 김돈은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의 상교가 지극히 옳으옵니다.”
며칠 후, 사건의 판결이 내려졌다.
승정원으로 불려 온 어린 효는 임금의 매서운 질책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사사로운 욕망에 이끌려 가문의 먹칠을 하고 법도를 어겼다"는 호된 호통 속에 효는 겨우 목숨과 신분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계천군 이등은 자신의 오만함과 무지함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조정의 법도를 무시하고 도리어 거짓으로 아뢰어 임금을 속이려 한 죄로, 이등은 즉시 모든 관직에서 파직(罷職)당했다. 한때 한양 땅을 호령하던 부마의 위세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자들에게도 형벌이 내려졌다.
궁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어린 상전을 유혹하여 사통한 계집종 춘덕에게는 형장 80대의 중형이 내려졌다. 매질 소리와 춘덕의 비명이 의금부 뜰을 울렸다.
그리고 부마에게 감히 맞서 힐책했던 산해에게는 형장 60대가 내려졌다. 형제 중 집안의 어른이라는 이유로 산해 홀로 그 죄를 짊어지고 매를 맞았다.
여름 해가 저물어가는 한양의 하늘 아래, 한바탕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욕망과 오만, 그리고 신분의 벽이 얽히고설켰던 계천군 집안의 비극은 세종조 실록의 한 페이지에 깊은 흉터처럼 기록되었다. 벼슬을 잃고 폐가가 된 계천군의 저택에는 기어이 차가운 밤바람만이 맴돌 뿐이었다. 이글은 세종실록 85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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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9년 세종 21년 6월 10일 병술 4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이등·춘덕·산해 등에게 죄를 주다
○啓川君 李登啓: "本宮奴山海、好敦兄弟疾臣子宯奸其婢春德, 罵曰: ‘淫婦之産也。’ 累及翁主, 其所凌辱, 難以一二計。" 上命承政院, 鞫問事由以啓。 承政院鞫之, 山海、好敦對曰: "春德連夜淫奔, 問其所私, 乃啓川君子李宯也。 奴母責啓川君家婢, 啓川君怒, 詰我兄弟曰: ‘汝輩恃妹勢, 敢爾爲惡耶? 汝妹雖是侍女, 汝母亦本淫女也。’ 奴等心實愧恨, 但涕泣耳。 安敢慢罵, 辱及翁主乎?" 又鞫春德、李宯相奸狀, 宯與春德俱承服。 承政院具辭以聞, 上曰: "山海兄弟, 素無狀者也。 以賤口而罵辱駙馬, 其罪不可貸也。 春德, 乃山海妹李氏婢也。 久在宮中, 及李氏兒病, 春德携兒出居李氏本家, 兒死仍在焉。 宯以王室之親私奸, 無乃不可乎? 登數與朝中大臣爭詰, 又嘗於路中, 與野人相鬪, 來啓於予。 今又不知其子之不肖, 靦面敢啓, 予不取也。 欲下攸司鞫之, 何如?" 金墩對曰: "山海以賤口, 罵辱駙馬, 其罪不小, 誠如上敎。 宯則宜下義禁府, 推按治罪, 若然則必終身玷累矣。 宯, 年少不識事理者也, 但黜諸遠方爲便。 登好與人相詰, 不可不懲, 宜罷其職。" 上曰: "宯是無知者也。 予欲特恕其罪, 何如?" 墩曰: "上敎是矣。" 遂命承政院, 召宯切責之, 罷登職, 杖春德八十, 山海六十。 山海家長, 故獨坐之。
계천군(啓川君) 이등(李登)이 아뢰기를,
"본궁(本宮)의 종 산해(山海)·호돈(好敦)형제가, 신의 아들 효(宯)를 그 계집종 춘덕(春德)과 간통(奸通)함을 미워하여 꾸짖기를, ‘음부(淫婦)가 나은 아들이라. ’고 하여, 욕이 옹주(翁主)에게 미쳤으며, 그 업신여기고 욕보임이 한두 가지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하니, 임금이 승정원에 명하여 사유를 국문(鞫問)해서 아뢰게 하였다. 승정원에서 국문하니, 산해와 호돈이 대답하기를,
"춘덕이 밤마다 음분(淫奔)하기에 그 사통(私通)하는 바를 물었더니, 계천군의 아들 효(宯)였습니다. 나(奴)1)의 어미가 계천군의 집 계집종을 꾸짖었더니, 계천군이 노여워하여 우리 형제를 힐책(詰責)하기를, ‘너희들이 네 누이의 세력을 믿고 감히 나쁜 짓을 하느냐. 네 누이가 비록 시녀(侍女)로 있을지라도 네 어미도 본래 음녀(淫女)였었다.’ 하므로, 저희들은 마음이 실로 부끄럽고 한스러워 다만 울기만 하였습니다. 어찌 감히 만홀하게 꾸짖어서 욕이 옹주에게 미치게 하였겠사옵니까."
하고, 또 춘덕과 효(宯)의 서로 간통한 사실을 국문하니, 효(宯)와 춘덕이 모두 자복하므로 승정원에서 말을 갖추어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해 형제는 본시 무상(無狀)한 장인데, 천인(賤人)으로서 부마(駙馬)를 꾸짖어 욕보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춘덕은 바로 산해의 누이 이씨의 계집종인데 오래 궁중에 있었고, 이씨의 아이가 병이 들자 춘덕이 아이를 데리고 이씨의 본가(本家)에 나가 있다가 아이는 죽고 그대로 있는데, 효(宯)는 왕실(王室)의 친척으로서 사사로이 간통하였으니 불가함이 없겠느냐. 등(登)은 조정의 대신들과 자주 다투고, 또 일찍이 길에서 야인과 서로 격투하고서 와서 내게 아뢰었고, 이제 또 그 아들의 나쁜 것은 알지 못하고 뻔뻔스럽게 감히 와서 아뢰니, 내가 취하지 않겠다. 유사(攸司)에 내려 국문(鞫問)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하니, 김돈이 대답하기를,
"산해는 천인(賤人)으로서 부마를 꾸짖어 욕보였으니, 그 죄가 작지 아니함은 진실로 상교(上敎)와 같습니다. 효(宯)는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여 죄를 다스림이 마땅하오나, 만약 그렇게 하면 반드시 종신(終身)토록 허물이 될 것입니다. 효(宯)는 나이가 적어서 사리를 알지 못하는 자이오니, 다만 먼 지방으로 내쫓음이 적당하오며, 등은 남과 서로 다투기를 좋아하므로 징계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그 벼슬을 파면시킴이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효(宯)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니, 내가 특별히 그 죄를 용서하고자 하는데 어떨까."
하니, 돈이 아뢰기를, "상교가 옳습니다."
하였다. 드디어 승정원에 명하여 효(宯)를 불러 간절히 꾸짖고, 등은 파직시키고, 춘덕은 형장 80대를 치고, 산해는 60대를 쳤다. 산해는 그 집의 어른이기 때문에 홀로 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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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노(奴) : 자기를 가리킴.
2).음분(淫奔) : 음탕(淫蕩)한 행동(行動)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