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학생을 잘못 알아 왔다. 정말 이 집 딸과 같이 계집애도 공부를 시켜야겠다. 어서 우리 집에 가서 내외시키던 손녀딸들을 가을부터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꼭 결심을 했다. 눈앞이 아물아물 해 오고 귀가 찡한다. 아무 말없이 눈만 껌뻑껌뻑하고 앉았다. 뒤꼍으로 불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중에서 젊은 웃음소리가 사(사기) 접시를 깨뜨릴 만치 재미스럽게 싸여 들어온다.(37)
누군가의 개명이 다음대를 이어, 여자들에게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에게도 도착했다. 이 시대에 그런 이웃(개명한), 가족이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대감에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재미있다.
경희는 불을 때고 시월이는 풀을 젓는다. 위에서는 푸푸, 부글부글하는 소리, 아래에서는 밀집의 탁탁 튀는 소리, 마치 경희가 도쿄음악학교 연주회석에서 듣던 관현악 연주 소리 같기도 하다. 또 아궁이 저 속에서 밀짚 끝에 불이 댕기며 점점 불빛이 강하게 번지는 동시에 차차 아궁이까지 가까워지자, 또 점점 불꽃이 약해져 가는 것은 마치 피아노 저 끝에서 이 끝까지 칠 때에 붕붕하던 것이 점점 땡땡하도록 되는 음률과 같아 보인다. 열심히 젓고 앉은 시월이는 이러한 재미스러운 것을 모르겠구나 하고 제 생각을 하다가 저는 조금이라도 이 묘한 미감(味感)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얼마큼 행복하다고 생각하였다.(45)
듣고 보고 배운 것에 따라 느끼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장면 같다. 경희의 삶이 풍요롭게 느껴져 좋음과 동시에 시월이의 삶은 당시 대부분의 여성의 삶처럼 느껴져 안타까웠다. 어느정도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고도 느껴졌다.
경희는 이제까지 비녀 쪽 찐 부인들을 보면 매우 불쌍히 생각하였다. '저것이 무엇을 아로 저렇게 어른이 되었다. 남편에게 대한 사랑도 모르고 기계같이 본능적으로만 저렇게 금수와 같이 살아가는구나. 자식을 귀애하는 것은 밥이나 많이 먹이고 고기나 많이 먹일 줄만 알았지 좋은 학문을 가르칠 줄은 모르는구나. 저것도 사람인가.'하는 교만한 눈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오늘은 그 부인네들이 모두 장하게 보인다.(...)아무리 생각하여도 저는 저 같은 어른이 될 수 없을 것 같고, 제 몸으로는 저와 같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저와 같이 이렇게 가기 어려운 시집을 어쩌면 그렇게들 많이 갔고, 저와 같이 이렇게 어렵게 자식의 교육을 이리저리 궁구하는 것을 저렇게 쉽게 잘들 살아가누.' 생각을 한즉, 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부인들은 자기보다 몇십 배 낫다.
'어떻게 저렇게 들 쉽게 비녀로 쪽 찌게 되었나? 어쩌면 저렇게 자식들을 많이 낳아가지고 구순히들 잘 사누. 참 장하다.'(62)
누구가 누구의 삶을 '장하다', '못하다' 평가할 수 있을까? 그 삶을 살아보기 전에는 모른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교육받지 못하기도 했고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으며 살아가는 것을 순리로 여겼던 시절이었다. 남편과 자식을 먹이고 살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겠지만 올라오는 감정은 배움의 유무와 관계없이 본능적이고 본질적 인 것이었을 것이다.
때땨로 억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고 나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켠에 저릿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자신의 감정, 욕구를 누르고 희생해온 여성들의 삶이 모순적으로 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슬프다.
내 생각 같아서는 매년 몇 십 명씩 관광단을 모집하여 일본의 후지산이나 닛코나 마쓰시마 같은 데 구경시키는 것보다 가깝고도 서양 풍속을 볼 수 있는 상해나 하얼빈 같은 데 가정 시찰이나 시켜 근본적 생활 개선책을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업일는지 모르겠어요.(132)
나혜석은 조선 여성들에게 조선과 다른 세상을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을까?
여성들이 자각하고 주인공, 주체자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른 세상을 보고 배웠을 때, 변화를 요구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이 일상적이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싶다. 그래서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권리와 책임을 가진 지식 계급의 주부들을 시찰 시키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혜석은 정반대의 길을 택하여 직접 말하고 직접 글을 쓰며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 대가를 너무나도 혹독하게 지불했으나, 나혜석은 자신의 말과 글을 중단하지 않고 공개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정작 바라는 일은 여성들이 발화를 봉쇄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이러한 구조를 오랫동안 체험했기 때문에 침묵이 보신(保身)의 길임을 분명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순에 저항했다.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와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혜석의 삶과 글은 역사적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추었다.(153)
여성의 자리가 조금씩 생기게 된 것에는 누군가의 용기, 혹독한 댓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나혜석 선생님의 삶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모든 것에 출발점은 다 자아에게 있는 것이외다. 한집 살림살이를 민첩하게 해 놓고 남은 시간을 이용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외다. 나는 결코 가시를 범연히 하고 그림을 그려 온 일은 없었습니다. 내 몸에 비단옷을 입어 본 일이 없엇고, 1분이라도 놀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제일 귀중한 것이 돈과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건대 내게서 가정의 행복을 가져간 자는 내 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예술이 없고는 감정을 행복하게 해 줄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입니다.(162)
그냥 주어진 편안한 환경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님을 느꼈다. 자아의 행복을 준 예술이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모두 그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은 어떨까. 그려보게 된다.
상대자의 불품행을 논할지대 자기 자신의 청백할 것이 당연한 일이거든 남자라는 명목하에 이성과 놀고 자도 관계없다는 당당한 권리를 가졌으니 사회제도도 제도려니와 몰상식한 태도에는 웃음이 나왔나이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며 이기적인 모습이 한 대만 내려가도 여전히 보인다. 100년 가까이 세월 흘렀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
많은 여성은 자기가 가진 이 모성애로 인하여 얼마나 만족을 느꼈으며 행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 모성애에 얽매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비참한 운명 속에서 울고 있는 여성도 적지 아니하외다. 그러면 이 모성애는 여성에게 최고 행복인 동시에 최고 불행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자기 개성을 잊고 살 때, 모든 생활 보장을 남자에게 받을 때 무한히 편하였고 행복스러웠나이다마는, 여자도 인권을 주장하고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며, 남자만 믿고 있지 못할 생활 전성에 나서게 된 금일에는 무한히 고통이요, 불행을 느낄 때도 있는 것이외다.(193)
모성애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런 마음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리 헤매지 않았을텐데...아쉽기도 하고 여전히 여성의 삶은 진행중이구나!를 느꼈다. 읽는 내내 이 글이 100년이 넘었다는 것에 대해 계속 놀라고 있다. 나혜석 선생님의 깨어남, 알아차림. 그것을 글로 표현 능력과 용기가 놀랍기만하다.
인생은 가정만도 인생이 아니요, 예술만도 인생이 아니외다. 이것저것 합한 것이 인생이외다. 마치 수소와 산소와 합한 것이 물인 것과 같이. 여보셔요. 내 주의는 이러해요. 사람중에는 보통으로 사는 사람과 보통 이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봅시다. 그러면 그 보통 이상으로 사는 사람은 보통 사람 이상의 정력과 개성을 가진 자외다. 더구나 근대인의 이상은 남의 하는 일을 다하고 남는 정력으로 자기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최고 이상일 것이외다. (...)
나는 이러한 이상을 가지고 10년 가정 생황에 내 일을 계속해 왔고 자금으로는 실행할 자신이 있던 것이외다. 그러므로 부분적이 내 생활 행복이 될 리 만무하고, 종합적이라야 정말 내가 요구하는 행복의 길일 것이외다. 이 이상을 파괴케 됨은 어찌 유감이 아니리까.(202)
가정과 일(자기 개성을 발휘하는 것) 두가지가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가정에서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열심히 살아오고 시간을 쪼개 사색, 공부, 예술을 해 온 그녀였다. 그런데 비난받고 위자료도 제대로 못 받고 부당하게 이혼 당하는 모습이 그려지자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 세상에서 혼자 분투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 중에 공명할 자가 있는 줄 믿는다. 만일 이것을 부인하는 모가 있다 하면 불원간 그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불가피할 필연적 동감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조금 있는 것보다 많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271)
'필연적 동감'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기를 꿈꿨다는 이야기를 해설에서 읽었다. 이 글이 2026년 나에게 와 동감이 일어났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나혜석 선생님은 세상에 없지만 그 꿈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므로 어려운 시절, 용감했던 그녀의 삶과 글이 값지게 느껴진다.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받든지 또는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잃어버리든지 행복의 샘, 내 마음 하나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사람은 어느 시기에 가서 자각한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즉 자기를 잊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자다. 또 사람은 자기 내심에 자기도 모르는 정말 자기가 있는 것이다 그(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 내는 것이 곧 자기를 잊지 않은 것이 된다. 요컨대 우리들의 현재 및 미래의 생활 목표의 신앙 및 행복은 오직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무것도 우리의 맘을 기쁘게 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자기 내(內) 생활의 전개를 자기가 보장하려는 것인만치 지실할(손에 잡히는 열매일) 것이다. (322)
내 마음 하나를 잊지 말자. 내가 가진 힘을 자각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자. 보이지 않는 자기를 찾아내는 것이 자기를 잊지 않는 자. ->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기쁨이고 행복이며 열매이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는 것 같다. 나를 찾고자 함 끝에 ‘나로 살아가기’를 위해 살아가려는 내겐 감동적인 가르침이다. 나혜석은 그런 가르침을 주는 조선의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