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걷는 사람
2023. 3. 2(주일낮예배) 마태복음 16:24
1948년 시인 윤동주 임종 3주기를 맞이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이 출판되었다.
이 시집이 어떻게 출판되었는지 아는가? 연희전문학교 1학년인 정병옥은 신문에 글을 썼는데, 그 글을 본 연희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윤동주가 찾아간다. 윤동주가 정병옥보다 5살이 더 나이가 많았지만, 둘은 문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이야기하고, 나라의 독립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1941년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습작시 19편을 선택하여 자선시집을 발간하려고 3편의 필사본을 만들었다. 그래서 한 권은 윤동주가 가지고, 또 한 권은 스승이었던 이영하 교수에게 드리고, 마지막 한 권은 정병옥에게 주었다. 그런데 스승이었던 이영하 교수가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출판을 만류하여 그 출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정병옥은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끌려가야 했는데, 그때 정병옥은 고향 광양에 사시는 어머님께 그 필사본을 맡긴다.
동주나 저나 죽어서 돌아올 수 없게 되거나 조국이 광복이 맞이했을 때는 이 시의 원고를 연희전문학교 보내어 세상에 알려주세요.
당시 학도병으로 끌려가면 열의 아홉은 죽었기에 정병옥의 어머니는 아들의 유언으로 여겼다. 그래서 정병옥의 어머니는 항아리에 쌀겨를 넣고 그 안에 명주보자기에 싼 필사본을 넣어서 툇마루 아래 숨겨 두었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윤동주는 1943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어 100여편의 시를 남기고, 1945년 2월 16일 독립을 6개월 앞두고 2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한다. 그리고 정병욱은 사선을 넘는 전쟁터에서 극적으로 살아서 광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윤동주 임종 3주기를 맞이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라는 시집을 출판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한 정병옥 교수에게 문학인으로 가장 보람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동주의 육필 원고를 지켜 낸 것이 내 생애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병옥 교수가 목숨 걸고 윤동주의 필사본을 지켰기 때문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정병옥 교수와 어머니가 너무 멋있지 않는가? 오늘 본문인 유다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거짓교사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유다서는 당시 거짓교사들은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고, 또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이라 고소하며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악한지를 구약의 가인, 발람, 고라 자손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먼저 그 부분을 읽기 바란다.
(유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역사적 순서는 가인, 고라, 발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역사적 순서가 아니라, 가인, 발람, 고라로 순서를 정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순서를 바꾸어 놓았겠는가? 가인은 가인의 길이라고 하였는데, 발람은 어그러진 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라는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그래서 점점 죄악이 더 심각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하나님은 가인보다 발람이, 또 발람보다 고라의 죄악이 더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다. 그 후 하나님은 유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였는데, 가인은 에덴의 동편에 에녹성을 짓고 거기서 거주한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힘으로 나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발람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으로 들어올 때 모압왕 발락은 발람 선지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한다. 그래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여러 번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여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선지자가 되었다. 발람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였던 것이다.
고라자손은 가인과 발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자손 고라와 다단과 온이 당을 짓는다. 그래서 총회에서 택함받은 250명과 함께 일어나 모세를 거스리며 이렇게 말한다. 민수기 16장 3절을 읽기 바란다.
(민 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와 그 일당들은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하나님이 그들 중에 있는데, 왜 너희만 총회 위에 있느냐? 하는 원망이었다.
그런데 이 원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마케팅에 함정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미장원에 퍼머를 하기 위하여 갔는데 가격표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다.
A퍼머/ 5만원, B퍼머/ 10만원, C퍼머+클리닉/ 10만원.
이렇게 가격표를 붙여 놓으면 A퍼머를 선택한 사람은 20%이고, C퍼머와 클리닉을 선택한 사람은 80%였다. 그리고 B를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왜 10만원 퍼머를 넣어 두었겠는가? 이번에는 미장원 퍼머 가격표에 B를 없애고 A와 C만 기록해 두었다. 그랬더니 5만원짜리 A퍼머만 하겠다는 사람이 70%였고, C퍼머와 클리닉을 10만원 주고 하겠다는 사람은 30% 밖에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인가? B를 넣은 이유는 사람들이 C를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미끼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지갑을 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끼에 걸려서 아주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지갑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귀의 전술이다.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였느냐?라고 하와에게 묻지 않았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하고 묻는다.
마귀가 몰라서 이렇게 물었겠는가? 그런데 마귀가 이렇게 말한 것은 하나님은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악한 분이다는 생각을 심기 위함이었다. 그랬기에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라고 대답한다. 하와는 하나님이 선한 분임을 말해야 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마귀는 고라자손에게도 똑같은 유혹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라자손은 왜 모세만 너희 위에 높은 자리에 있느냐? 하고 원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은 다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고라자손은 직분을 높고 낮음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고라자손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을 행함으로 땅이 삼키는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안타깝지 않는가? 가인은 스스로의 삶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브올의 아들 발람은 선견자로서 모압의 발락왕이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할 만큼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라자손과 그 일당들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맡긴 일이 작은 일이겠느냐?(민 16:9)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고라자손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받아야 했다.
왜 가인, 발람, 고라자손은 심판을 받아야 했는가? 이들은 모두 능력이 있었고, 또 하나님에게 주신 역할이 있었다. 그런데 그 능력과 역할로 이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려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거짓교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거짓교사의 이 악독이 우리 안에는 없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명령하신다. 먼저 본문을 읽기 바란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좀 편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고, 또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한번 즈음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과 욕망을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고통과 희생과 죽음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 쉬워 보이는가? 오징어게임 더챌린지1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보면 초록색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기선에 선다. 그때 한 사람이 딴 사람은 보지도 말고 걱정도 하지 말고 결승선에 도착만 하자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게임은 시작되었고 한사람 한사람이 총에 맞아서 쓰러질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눈 앞에서 절친이 탈락해서 마음이 너무 안좋았지만, 풀이 죽진 안을 거예요. 오히려 제 동기부여의 기회로 삼으면 돼요.
탈락자가 우수수 나오니까 졸리더라고요. 통과 못할 거 같아요. 탈락자가 나올 때마다 생각했죠. ‘머릿수가 줄어드는구나’ 내 우승 확률이 높아지네. 그래서 기뻤어요.
지금 게임을 하면서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나에게는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일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다음 장면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면서 도착해야 할 부분에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환호를 하는데, 아직 들어오지 못한 사람은 꼼짝도 없이 서 있거나 총에 맞아서 쓰러진다. 누군가는 환호를 하는데, 누군가는 긴장하고 있고 또 쓰러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승선에 들어와서 환호하는 사람도, 또 결승선에 들어가기까지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도 또 쓰러지는 사람도 모두 자기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내가 이겨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기에 우리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힘을 더 주어서 이기게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이기려는 그 힘과 능력을 부인하고, 자기 헌신과 희생으로 주를 따르라고 명령하고 있다.
왜 우리는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그 이유에 대하여 25절, 26절, 27절로 답한다. 25-27절을 함께 읽기 바란다.
(마 16:25-27) (왜냐하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왜냐하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왜냐하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 말씀을 정리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목숨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 목숨은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나에게 주어진 능력과 직분으로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 참된 유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직분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나를 위함이 아니라, 주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생명을 누리고, 우리 주님을 다시 만나는 그날에 하나님의 칭찬이 있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