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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아동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가와 작품으로는 단연, 김원기(金元起 1937 – 1988)가 있다. 김원기의 동시 작품은 학 같이 기품 있는 작품들이다.
문학적 배경에 관한 글은 대부분 엄기원이 쓴 김원기론을 참고하였다. 김원기는 1937년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서 출생하였다. 아호는 목(牧), 금서(琴書)이다. 김원기는 강릉사범 병설중학교를 다닌 후 1955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직생활을 하였다. 교직에 있으면서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였다. 초등 교단에서 작고할 때까지 강릉, 삼척, 평창 등에서 교사, 교감, 장학사, 교장등을 역임하였다.
평화로운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품성도 밝고 깨끗함을 지녔는데 이런 품성이 아동문학의 밑바탕이 된 것 같다. 김원기는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문학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중에 강릉사범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문학을 가까이할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 기회였다. 그 당시 강릉사범학교는 후일 한국문학의 거목이 된 황금찬과 최인희, 김유진, 이인수 등이 있었다. 김원기가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김원기의 본격적인 문학활동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이 되면서이다. 이는 개인의 영예였을 뿐 아니라 강릉지역 신기원을 이룩한 문학사의 쾌거였다. 이렇게 문단에 데뷔한 지 6년 만인 김원기는 1968년 5월 5일 첫 동시집인 『풍선을 한 다발 씩』동시집을 상재한다. 5월 19일에는 강릉극장 옆에 있던 ≪돌체 다방≫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돌체’는 이탈리아 말로 ‘달콤하다’라는 뜻이다. 문단에 나온지 7년만에 첫 동시집을 이곳에서 출판기념회를 한 것이다. 이곳에서 회원들과 김원기의 시들을 모아 시화전도 열었다. 고성 아야진에 있던 박용열도 먼 길을 찾아와 축사를 해 주었다. 어린이들은 김원기의 곡이 붙여진 김원기의 동요를 부르기도 하였다. 다채롭고 재미있는 출판기념회였다.
김원기는 작품도 많이 썼고 지면 발표도 활발하였다. 첫 동시집을 낼 당시 200여편의 작품을 써놓았고 이미 100여편의 작품은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조약동아동문학회》는 김원기를 중심으로 회원들이 모여 합평회도 하고 작품집도 발간하였다. 그러니 《조약돌아동문학회》는 김원기를 문학가로 데뷔시켜준 스승이기도 했던 것이다.
1980년엔 시 전문지『현대시학』에서 시 추천을 완료하여 성인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다.
1984년엔 한국 문단에 동요 문학이 퇴색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나머지 강릉에서 동요 창작 운동을 벌인 것이 《솔바람동요문학회》이다. 그래서 1984년 여름에 문학회를 탄생시키고 김원기가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그렇지만 이끌어 갔다기보다는 뒤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정신적인 어른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이런 행동은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자라온 선비적인 가문과 그의 심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1963년 4월에는 《조약돌아동문학회》 창간 문집을 발간하였는데 첫 머리말에 쓴 글을 보면 그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심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깨끗하게 산다는 것은 오래도록 동심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이 아닐까? 조약돌이 크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깨끗하게 살기 위함에서이다. 귀엽게 생긴 돌을 땅에 묻어두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준다. 한 달 쯤 뒤에 흙을 파 본다. 그새 얼마만큼이나 더 컸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이 꼭이 크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무엇인가 해보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작업이 결코 헛되지는 않으리라.
1963. 4, 14.
1986년에는 두번 째 동시집인 『산 위에서』를 아동문예사에서 냈다. 그리고 작고한 뒤때 유고 시집 『환한 햇볕아래 살아 나오리라』는 시집을 대성문화사에서 같이 출간한 것과 동시에 유고동시집인 『귀뚜라미 시계』가 대성문화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세권의 동시집은 김원기의 동시 세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김원기의 동시 「산위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동안 실려 있던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강릉 경포호수를 바라보며 호숫가에 시비로 우뚝 서 있다.
1990년엔 동화집 『거꾸로 가는 달력』이 《꿈동산》에서 출간되었다. 이 동화집에는 「시계탑 속에 들어간 임금님」, 「거꾸로 가는 달력」,「엿장수」,「감기」,「분갈이」,「땅속 나라의 꿈」,「계집애 같은 아이」,「새 학년」등 8편의 동화가 실렸다.
김원기의 작품세계를 보기위해 먼저 첫 동시집「풍선을 한다발 씩」(문왕출판사.1968)를 보았다. 여기에는 희망과 즐거움, 꿈이 가득 차 있다.
5월의 아가들은/한겨울을/나무 눈 속에서 산다.//나무가 눈 뜰 때/5월의 아가들은/창으로 빠꿈이 얼굴을 내민다.//“아이 눈 부셔,/3월의 해님!”//“저 나부끼는/4월의 깃발을 봐!”//“5월의 바람님이/풍선을 나누어 주네!”//“정말!/우리 모두 나가 보자.”//5월의 아가들은/싱그러운 초록빛 날개 옷을 펴고/나무에서 호롱호롱 날아나왔다.
-김원기, 「5월의 아가」 -
‘5월의 바람’은 신선한 상상력으로 봄의 생명감을 나타내고 있다. 김원기의 절친한 고향 친구인 엄기원은 김원기의 첫 동시집 「풍선을 한다발씩」발문에서 ‘푸르고 싱싱한 시어들이 우리들 가슴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하였다.
산위에서 보면/바다는 들판처럼 잔잔하다./그러나 나는 안다./새싹처럼 솟아오르고 싶은/고기들의 설렘을.//산위에서 보면/들판은 바다처럼 잔잔하다./그러나 나는 안다./고기비늘처럼 번득이고 싶은/새싹들의 설렘을.//산위에 서 있으면/나는 어쩔 수 없이 순한 짐승/그러나 너는 알 거야./한 마리 새처럼 날고 싶은/내 마음의 설렘을.
-김원기, 「산위에서」 -
이 동시는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강릉의 경포 호수 주변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동시에 나오는 고기와 새싹은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상징한 표현이다.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김원기는 ‘풍선을 한다발 씩’ 의 책 말미 자서에서 어린이의 꾸밈없고 자연스런 표정을 읽으며 동시를 쓴다고 하였다. 이런 표정은 아이들의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에도 있고, 둥둥 뜨는 풍선에도, 간들간들 웃는 꽃잎에도 있다고 한다.
아래에 제시한 동요는 1984년 7월 14일에 《솔바람동요문학회》에서 내놓은 창간호에 실은 김원기의 동요「7월」이라는 작품이다.
7월은 자수정처럼 동그란 얼굴 / 동그란 얼굴 하늘에 날아 / 하늘이 동글동글 부풀어 오르지요 // 7월은 자수정처럼 맑은 눈빛 / 맑은 눈빛 하늘에 배어 / 하늘은 보랏빛 호수가 되지요 // 7월은 자수정처럼 굴러가는 웃음소리 / 굴러가는 웃음소리 하늘에 메아리쳐 / 하늘은 만도정 울림통이 되지요
일정한 음수율로 리듬감을 살린 것으로 동요라는 것을 대뜸 알 수 있다. 그러나 비유의 적절함과 신선한 표현력의 획득으로 작품성이 뛰어난 동시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엄기원은 김원기의 동요 동시적 특질을 지극한 인간 사랑, 향토적 소재, 참신성, 목가적 세계 등으로 말하고 있다. 좀 더 그의 말을 인용해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극한 인간 사랑이다. 동시나 시에서 사람이나 생물, 혹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의 필수적이고 보편적이라 할 수 있지만 김원기의 인간 사랑, 동심 사랑은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매우 많은 동시들이 순수하고 소박한 인간 사랑을 담고 있는 게 특징이라 하겠다.
둘째는 향토적인 소재의 시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동시인들이 다루고 있는 보편적인 동시 소재와 흡사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인의 보는 눈과 생각하는 마음은 하늘과 땅 만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김원기 동시의 전원적인 소재는 가장 순수 소박한 자연의 모습이며 그가 일생의 절반을 살아온 고향이기도하다. 즉 그가 태어나서부터 자라고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키울 때까지 30년 간 기 세월을 살아온 고장, 그 고향에 대한 향수이기도하고 본능적인 애향심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동시집 3권 안에 수록된 일련의 동시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향토적인 정경과 마음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속의 자연관은 지극히 평화롭고 회화적인 면이 많다. 그의 시적 회화성은 매우 뛰어나고 아름답다.
김원기의 작품을 당선 시킨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이원수는 김원기의 동시집 『풍선을 한 다발씩』서문에서 김원기의 동시 작품을 ‘마음속의 사랑으로 쓴 시’ 라고 말하고 있다
- 『풍선을 한 다발 씩』 이원수의 서문 일부 -
김원기의 동시는 오월의 나뭇일 같이 싱싱하고 들에 핀 풀꽃처럼 향기로운 시입니다. 강원도의 맑은 공기, 청초하고도 부드러운 사람들의 마음씨가 이런 시를 빚어 냈을까요?이 시인은 붓끝의 재주로 시를 쓰지 않고 마음 속의 사랑과 영롱한 눈으로 시를 썼다고 하겠습니다.
- 이하 생략 -
세 번째로 김원기의 동시는 소재와 시어의 참신성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소재나 시어의 참신성은 이 세상 아무도 쓰지 않는 새로운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깝고 가장 쉬운 것에서 누구나 흘러보내기 일쑤인 일상에서 건져내는 시작(詩作)의 재주를 말하는 것이다. 일련의 동시들을 읽어 보면 그가 얼마나 동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많은 것을 찾고 생각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시속에 담고 있는 언어들이 일상의 언어이면서도 풀밭에 향기로운 꽃처럼 뛰어난 것들이다.
눈물방울만한
초롱꽃 한 송이가
온 숲을 환히
밝혀 주네요.
나무숲을 뚫고
겨우 겨우 내려와
초롱꽃 속살까지 닿은
햇살 한 방울
- 김원기,「초롱꽃」전문 -
언어의 참신성으로 하여 동시가 신선함을 주고 있다. 초롱꽃 속살까지 내려와 닿은 햇살 한 방울은 사랑이다. 그 한 방울의 사랑이 온 숲을, 온 세상을 밝혀주는 것이다. 어린이의 순수한 눈망울 하나, 손짓 하나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작은 몇 낱말을 통해 커다란 빛의 세계를 드러내는 김원기 시인은 천상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로 김원기의 동요는 목가(牧歌的)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엄기원은 말한다.
이번에는 김원기의 동요에 대해 살펴보자.
김원기는 엄기원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첫 동시집인 『풍선을 한 다발씩』엔 4편의 동요가 실리고 두 번째 동시집 『산위에서』 속에도 4편의 동요가 실렸다. 그러나 유고동시집인 『귀뚜라미 시계』에는 무려 20편의 동요가 수록되었다.
김원기의 3권 동시집에는 28편의 동요가 실려있다. 그러나 솔바람동요문학회가 발족되면서 작고하기 전까지 발표한 동요를 합하면 아마 50여편의 동요가 발표되었으리라고 엄기원은 말하고 있다.
김원기 동요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목가적인 모습이다. 김원기의 호는 ‘목(牧)’이다. 나중에 ‘금서(琴書)’라는 호를 쓰기는 했으나 80년대 초까지 매우 즐겨 ‘목(牧)’이란 호를 사용하였다. 김원기의 성품을 잘 대변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매우 예절 바르고 지극히 유고적인 선비이며 교육자였다. 그렇지만 풀밭에 뛰어다니는 풀무치나 사마귀, 나비와 벌 등 곤충을 사랑하는 동물애호가이며 마음은 자유주의자였다.
종달새야 / 더 까맣게 / 올라가 보렴 //
구름 밭엔 / 구름 밭엔 / 무얼 심었나//
종달새야 / 거기서 / 내려다 보렴 //
보리밭에 / 내가 선 게 / 뵈나 안 뵈나
- 김원기,「종달새」전문 -
동요 「종달새」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러한 그의 목가적인 성품은 동요 속에 그대로 비쳐져 나타나고 있다. 깔끔하고 정제된 언어로 보리밭과 종달새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린이의 상상력을 한껏 부풀게 하는 김원기 동시의 시적 자유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푸르다.
김종영 역시「김원기 선생님의 동요․동시 분석 탐구」에서 그의 작품은 의인화한 작품이 많고 매우 동화적이라 하였다. 그것은 그가 동심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동요와 동시를 창작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원기는 한권의 동화집을 내었다. 『거꾸로 가는 달력』이다. 그의 동화는 티 없이 맑은 동심의 세계를 동시로 표현한 데서 더 나아가 서사적 판타지로 상상의 세계를 재미있게 드러내었다. 그의 동화들 역시 맑고 순수한 동심나라에 대한 지향을 그렸다. 모두가 행복한 동심 속에서 꿈꾸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김원기의 서원(誓願)이었는지도 모른다.
후배인 박은수(서울 과학기술대학교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김원기의 시속에는 가족 사랑이 담겨있고 티 없이 맑은 동심이 세계를 그려내어서 읽는 이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고 하였다.
김원기 동시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면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아기와 바람」 그리고 「산위에서」를 들 수 있다.
아기와 바람
김 원 기
뙤약볕이 쬐는
한낮입니다.
아기 방 앞에
바람이 찾아왔습니다.
"아기야,
혼자 심심했지?"
그러나 방에선
대답이 없습니다.
쌔근 쌔근 쌔근
숨소리는 들리는데-
바람은 가만히
방 안을 엿봅니다.
"애개개, 네 활개 활짝 펴고
한잠 드셨네."
바람은 사뿐
아기 곁에 가 앉습니다.
가만 가만 가만
부채질을 해 줍니다.
가슴을 토닥이며
자장가도 불러줍니다.
그러다 바람도
졸음이 왔습니다.
아기 곁에 가만히
누워 버렸습니다.
-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이 작품은 2005년 3월 5일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여 예림당에서 묶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 동시』에 수록된 105편 중의 한 편이다.
김원기는 1950년대와 60년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냈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는 아동문학가에게는 사물을 보는 순수성의 극대화를 지향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교단에 서면서 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기에 그는 문학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결과 그가 이루어낸 것은 실로 값진 것이었다. 한국 아동문학사에서도 선두 주자로 달려 나갈 수 있었고 맑은 시심은 동심과 어우러지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강릉아동문학사에서 예술성 높은 본격 창작 작품으로 강릉아동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뛰어난 작품성과 겸손한 성품은 한국 동시(童詩) 문단의 현대성에도 크게 기여하였고 후배 문인들에게는 전범(典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강릉아동문학을 성숙시킨 인물은 엄기원(嚴基元1937 - )이다. 엄기원은 아동문학이란 외길 인생에서 꿋꿋하게 문학을 영위하여왔다. 강릉에서 서울로 이직한 후 서울에서 한동안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다. 그후 교직을 그만 두고 한국아동문학연구소를 개설하고 『아동문학세상』이란 아동문학 전문잡지를 계간으로 발행하였다. 한국아동문학연구소에서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전국 아버지 어머니 동화구연대회를 개최하여 우리나라 동화구연에 성숙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아동문학세상』에서는 많은 아동문학 작가를 발굴하고 아동문학가들의 작품 발표기회를 제공하여 한국아동문학을 활짝 꽃피우는데 성공한 원로아동문학가이다.
엄기원의 아호(雅號)는 남천(南川)이다. 아호는 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다. 본관은 영월(寧越). 1937년 1월 10일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에서 태어났다. 3남 2녀중 맏이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거주지를 자주 옮겨 다녔다.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구정초등학교에서 졸업하였다.
엄기원은 김원기가 196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된 그 다음해인 1962년, 같은 신문인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골목길」이 당선된다. 엄기원은 1962년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분에 응모하였는데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골목길」이 1963년 1월 1일자 신문에 당선작으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심사위원은 마해송, 김영일이었다.
강릉에서는 1961년과 1962년이 아동문학에 더할 나위 없는 경사가 있은 해였던 것이다.
엄기원은 어려서 부친이 직장 이동이 잦아서 자주 이사를 하였다. 정선군의 ‘강창회 상회’란 곳에서 일을 하셨다. 그러다가 묵호의 ‘관동택시’ 영업소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이때 엄기원 역시 아버지를 따라 묵호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묵호에서 1학년을 마치니 아버지의 직장이 바뀐다. 양양의 철산으로 옮긴 것이다. 양양의 상평초등학교로 전학을 한다. 3학년 까지 그곳에서 다니며 해방을 맞는다. 얼마 후 조부모님이 계시는 구정면 제비리로 돌아온다. 그곳에 있는 구정초등하교에 전학을 와서 그곳에서 졸업을 한다.
엄기원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생활예절에서부터 교육 전반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는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스토리문학」이란 문예지에서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친구의 편지를 받아가지고 기분이 너무 좋아 물고기 배따듯이 옆으로 쭉 찢어서 옆구리로 편지를 꺼내 보이니까 가위를 가져오셔서 ‘얘, 기원아 이리 와봐라’ 하시며 편지라는 것은 보낸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니 ‘이렇게 위를 잘라서 정성들여 자르고 그 편지봉투를 두었다가 꽃씨도 넣어두고 씨앗도 넣어두고 하듯 재활용을 하는 것이다.’라 가르치셨어요.
‘반드시 주소는 똑바로 쓰되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꼭 자기의 이름 주소보다는 크게 쓰고 자신의 주소는 작게 써야 하며 반드시 정자로 써야 한다. 그리고 정(鄭)씨나 강(姜)씨는 반드시 정자로 써 주어야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또 ‘이름자는 반드시 정자로 써야지 약자로 써서는 안 되고 한자로 모른다면 차라리 한글로 쓰는 것이 좋다’하시고, ‘우표를 바르게 붙이지 않는 것은 모자를 삐뚜로 쓰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엄기원은 양양의 상평초등학교에서 3학년까지 다니다가 4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강릉시(당시는 강릉군)구정면 제비리 구정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생활은 학습장 정리도 잘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었다. 아버지는 당시 구정면장을 지내었기에 매우 유복하게 자랐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냈다.
학교의 학예발표회 때는 독창을 하기도 하였다. 이미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강릉사범학교를 다닐 때에도 문예반에 들어가지 않고 합창반에 들어갔다. 음악에 대한 집념은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졌다. 《디지털 호른》이란 악기로 문인들 행사 때에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음악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는데 현재는 꿈을 이룬 ‘어른 소년’으로 행복해 한다.
1949년 7월 구정면 구정초등학교, 1952년 3월 강릉사범 병설 중학교, 1955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강릉지역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1955년 3월 강릉사범학교 본과 졸업하면서 초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을 받고 고향마을 제비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강릉의 묵호·사천·강릉초등학교에서 12년간 교사 생활을 한다.
아동문학은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직에서 어린이들의 문예지도를 하면서부터였다. 강릉의 사천초등학교에서 4년 동안 근무하다가 강릉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1960년 3월에는 강릉에서 김원기, 엄성기, 최종숙, 박은수, 박영규, 김기숙, 황태근 등과 <조약돌> 문학동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엄기원은 강릉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서울의 추계초등학교에서 채용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후, 추계초등학교에서 근무한다. 1968년 9월부터 1981년 8월까지 13년간 서울의 추계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다.
그리고 13년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고심 끝에 아동문학연구 발전에 힘쓰기로 결심을 한다.
드디어, 1982년 2월, 염리동에 있는 3층 옥탑방에 10평짜리 사무실을 열고 《한국아동문학연구소》를 개설하였다. 그리고 첫 행사로 ‘전국 할아버지 할머니 동화구연대회’ 를 열었다. 1984년 3월 계간지 『아동문학연구』를 창간한 이후 2005년 10월에는 『아동문학세상』으로 개칭한다.
1986년 1월엔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에 선출된다.
1987년부터 2001년까지 교육부 초등국어 집필 편찬 심의위원을 지냈다.
2005년 7월엔 엄기원 육필시비가 충남 보령 모산 한국육필시 공원에 세워졌다.
엄기원이 받은 상으로는 ·제7회 한정동 아동문학상 (1975) ·제1회 눈솔상(아동문학부문) ((1985) ·제6회 한국 PEN문학상 (1987) ·제5회 대한민국동요대상 (1992) ·제31회 한국문학상 (1994) ·제8회 방정환 문학상 (1998) ·제8회 한국아동문화대상 (1999) ·제15회 예총 예술문화상 대상 (2001) ·제3회 지구문학상 (2002) ·제4회 김영일 아동문학상 (2003) ·제4회 천등아 동문학상 (2004) ·제14회 박홍근 아동문학상(2004) 등이 있다.
출간한 동요·동시집은 ·『나뭇잎 하나』,(1966. 문왕출판사), ·『아기와 염소』, (1971. 가톨릭출판사) ·『아기 크는 집』, (1974. 세종문화사) ·『어린이 만세』, (1976. 시문학사) ·『꽃이 피는 까닭』, (1980. 서문당) ·『동시집을 펼치면』, (1986. 우성문화사) ·『산을 오르는 마음』, (1987. 대교문화) ·『들길을 걷다보면』, (1990. 미리내) 동요집 ·『참 잘했지』, (1991. 아동문예사) ·『너희는 금빛 날개를 달고』, (1994. 한글) ·『모두가 즐거워요』, (1995. 한국음악교육연구회) 노랫말 동요곡집 ·『대장과 졸병』, (1997. 익산) 동시선집 ·『365일 동시 여행』, (2000. 현민) 동시선집 ·『저학년을 위한 좋은 동시 101』, (2001. 영림카디널) 동시선집 ·『개구쟁이 편지 쓰는 날』, (2001. 대한) ·『미술관에 간 동시』, (2003. 영림카디널)동시화집 ·『고학년을 위한 좋은 동시 123 』,(2005. 영림카디널) 동시선집 등이 있다.
출간한 창작동화·소년소설로는 ·『달을 보고 짖는 개』, (1980. 삼성당) ·『이상한 청진기』, (1982. 견지사) ·『수탉』, (1983. 꿈동산) ·『호랑이의 연설』, (1984. 독서지도회) ·『별나라에 다녀온 아이』, (1987. 성문사) ·『이야기하는 교실』, (1987. 대교문화) ·『전국동물단합대회』, (1988. 교육문화사) ·『싸움은 이겼어도』, (1990. 삼덕출판사) ·『엄마 행복이 뭐야』, (1991.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단종과 엄흥도』, (1991. 대교출판) ·『평양에서 온 친구들』, (1991. 신원문화사) ·『앞장 선 꼴찌』,(1993. 서원) ·『숙제없는 학교』, (1993. 글세계) ·『별난 결혼식』, (1997. 민지사) ·『불독장군 이야기』, (1998. 삼성당) 그림동화집 ·『꽃님이 좀 바꿔주세요』, (2001. 한국파스퇴르) 그림동화집 ·『내 친구 명섭이』, (2002. 꼬마나라) 등이 있고 그 외 수필집 ·『원색교실』, (1997. 문리사) 수상집 ·『현대동시의 교육적 효용』, (1981), 대학원 석사논문집 등이 있다.
또한 엄기원은「아동문학세상」이란 어린이 전문 문예지를 계간으로 매년 발행하여오며 한국아동문단을 이끌어가는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여 아동문학 문단에 기여하고 있다.
엄기원의 작품세계는 작품을 통해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작품의 진솔성을 추구한다. 지나친 과장이나 위선 따위는 절대 넣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아동문학은 아동들이 보는 문학이므로 사실이어야만 하고 교훈적이어야만 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이 담겨있는 글이어야만 아동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있지요.. ’ 이렇게 말하며 인간주의 문학을 강조한다. 존경하는 작가는 마해송 선생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분의 순수하고 검소한 모습에 존경심이 일었다고 하셨다.
박민수는 엄기원의 작품 연구, 「엄기원 시의 상상력과 그 의미 작용」이란 논문에서 상상력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근원적이라 할 수 있는 시적 자아와 시점, 제재 선택상의 특수성을 살펴보았다. 그에 의하면 엄기원의 시는 주로 어른 자아로서 어린이의 세계를 관찰하거나 어린이들을 교훈적으로 이끌거나, 어떤 미적 체험을 매개해 주는 존재양상을 보인다고 하였다. 이때 미적 체험은 주로 계절적인 것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었으며, 여기에 역사적이거나 현실적인 제재가 덧붙어 들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상상력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양상 중 특히 샂적 자아의 설정은 엄기원의 시가 지닌 특징, 또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른 시적 자아의 설정에 의한 시적 언술은 자칫 어림이들에게 어른의 주관적 미의식이나 사상을 주입, 또는 강요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어린이들의 능동적 공감을 이끌어 내기 힘든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경우 자칫 어린이들의 순수한 미적 체험 욕구에 따른 충실한 예술적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엄기원의 시는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내적 긴장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하였다.
또한 의미 작용 측면에서 엄기원의 시는 순수 서정의 심미적인 것이 지배적이면서 여기에 현실 의식을 내용으로 한 많은 시들이 병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순수 서정의 심미적인 것은 주로 계절에 따른 정서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었고, 현실의식을 내용으로 한 것은, 역사적이거나 현실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순수 서정의 심미적인 것과 비판적 역사 현실 문제가 병행되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진장한 예술 의식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분석적 기술적 관점에서 엄기원의 시를 살핀 결과 엄기원의 시가 드러내주는 보다 귀중한 메시지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 이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순수한 꿈 등이었다고 말한다.
대표작이라 볼 수 있는 동시 「아기와 염소」,「병아리」등에서 보듯 엄기원의 동시는 동심의 순수성을 고양하여 목가적인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 친근함으로 소통하는 자연적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시적 자아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와 아기를 바라보는 염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 등, 중첩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아기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와 염소가 보는 세계, 어른이 보는 세계를 주관적 해석을 통해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또 동시 「참 잘했지」에서 보듯 작품의 소재가 자연과 동물 중심에서 이탈하여 자아에 대한 각성 내지 확인으로 교훈적 내용과 내면의 세계를 조응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자신의 생활경험을 통해 내면에 대한 자기 응시는 1960년대 등단 작가에 들어서서 강릉의 아동문학뿐 아니라, 한국 동시가 더 새로워지고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기와 염소
엄기원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염소 앞에 갔습니다.
풀을 뜯던 염소가
아기를 보았습니다.
염소는 아기가 귀여운 모양입니다.
염소는
턱밑의 긴 수염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아기는 까르르 웃었습니다.
이번엔
도라지 같은
뿔을 자랑했습니다.
아기는 두 손으로
뿔을 잡아 당겨보고
또 까르르 웃었습니다.
염소는 아기처럼 착했습니다.
아기는 염소처럼 착했습니다.
(1971)
병아리
엄기원
조그만 몸에
노오란 털옷을 입은 게
참 귀엽다.
병아리 엄마는
아기들 옷을
잘도 지어 입혔네.
파란 풀밭에 나가 놀 때
엄마 눈에 잘 띄라고
노란 옷을 지어 입혔나 봐.
길에 나서도
옷이 촌스러울까 봐
그 귀여운 것들을
멀리서
꼬 꼬 꼬
달음질 시켜 본다.
이 작품은 2005년 3월 5일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여 예림당에서 묶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 동시』에 수록된 105편 중의 한 편이다.
엄기원의 「이상한 청진기」동화는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을 주는 동화이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병원인데 마음을 고쳐주는 병원이다. 의사 선생님이 소녀에게 가장 친하던 친구인 지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고쳐주는 내용이다. 순수 창작동화이면서도 교훈성이 많이 담긴 동화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상한 청진기
엄기원
우리 마을에는 병원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외과․내과․산부인과․치과 ․이비인후과․안과․소아과 병원이 따로따로 있는데 또, 무슨 병원이 생겼을까요.
세상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병원이 생긴 거예요.
‘양심병원’입니다.
참 재미있는 병원이지요? 이 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아주 작은 사무실에 S인 의사 한 분과 간호사 한 분 뿐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습니다.
늙어서 머리도 하얀데 흰 가운을 입고, 흰 바지에 흰 양말, 구두까지 흰 색입니다. 또, 간호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랗습니다. 노랑머리에 노랑 간호 모자를 쓰고, 가운도 노랗고, 노랑 스타킹에 노랑 구두를 신었습니다.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는 손님이 오건 말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환자가 한 분도 없는데요.”
“응, 그거야 좋은 일이지. 암, 좋구 말구…….”
“그렇지만 선생님이 너무 심심하잖아요.”
“허허, 우리가 심심하더라도 환자가 적은 것은 좋은 일이야.”
의사 선생님은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고 무슨 이상한 책을 읽으며 말했습니다.
어느 날, 오랜 만에 병원 문이 열리며 아주 예쁜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섰습니다.
병원에 들어선 소녀와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옷차림과 간호사의 옷차림이 너무도 색달랐기 때문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가 아파서…?”
“네. 애가 이상하게 얼굴이 핼쓱해지면서 밥도 먹지 않고 밤이면 자면서 헛소리를 하거든요.”
“간호사. 청진기 가지고 와요.”
“네. 선생님.”
간호사가 청진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청진기에는 새까만 두 개의 꼭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한 쪽 꼭지로 소녀의 가슴과 배, 등에 대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며칠 전 학교에서 한 친구를 몹시 미워했지?”
“그런 일이 없어요.”
“아이야, 틀림없이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없는데요.”
“그럼 할 수 없지. 간호사, 이 소녀에게 엘투씨원 피에이치액을 먹여요.”
의사가 시키는 대로 간호사는 소녀에게 이상한 약을 먹였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서 이상한 청진기로 가슴 부분을 찍었습니다.
그 결과 필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현상되어나 타났습니다.
<지난 4월 26일 넷째 시간 학급 반장 선거에서 2표 차로 친구 지현이에게 졌다. 나는 그 순간부터 가장 친하던 지현이가 미워졌다. 지현이가 우리 반에 없었으면 내가 반장이 되었을 텐데. 정말 지현이기 밉다. 오늘도 공부 시간에 지현이가 일어서서 부르는, 차렷, 경례 소리가 몹시 얄밉게 들렸다.>
“자, 이게 네 병이야, 이젠 더 속일 수 없겠지?”
의사는 필름을 소녀에게 주며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씨는 본인에게만 보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선생님. 이 필름엔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잖아요?”
엄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아니야, 엄마 내가 잘못했어. 선생님의 진찰이 맞아. 선생님 잘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병을 고칠 수 있어요?”
“아니, 얘가 정신이 나갔니? 뭐가 잘못했다는 거냐? 세상에 우리 은주보다 더 착한 애가 어디 있다구……. 그럼 네가 무얼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뭐냐?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니?”
“글쎄, 그게 아니래두…….”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습니다.
그 눈물은 잘못을 뉘우치는 눈물이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이쪽 청진기로 네 고쳐진 마음을 진찰해야겠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꼭지로 소녀의 가슴을 진찰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절대로 남을 미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어요. 그리고 내일 학교에 가면 반장이 된 지현이에게도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친하게 지내겠어요.>
소녀의 마음에서 뉘우침의 말소리가 청진기의 줄을 타고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매우 만족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병은 깨끗이 고쳐졌습니다. 이 어린이는 오늘부터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생활도 아주 즐거워질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니, 선생님. 우리 애가 어디가 아팠는지,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좀 속 시원히 설명해 주십시오.”
어머니는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밝은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습니다.
이 병원 의사 선생님은 이상한 청진기 하나로 소녀의 마음의 병을 깨끗이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양심이 병든 어른 환자는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1981)
엄기원은 평생을 아동문학을 위해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엄기원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동문학이란 꽃나무를 키우고 사는 외길 인생의 키다리아저씨라고 할 수 있다. 강릉의 후배 문인들에게 더한 층 자긍심과 긍지로 아동문학 창작에 열정을 쏟아 붓는 동력이 되고 있다.
1960년대를 이끌었던 작가로 또 한분은 김완기(金完起 1938 - )이다. 김완기는 동심과 자연 속에서 꿈을 빚는 교육자이며 작가이다.
김완기의 호는 송천(松泉), 초등학교 은사님이 지어 주셨다고 한다. 1938년 11월 4일 강릉의 지변리에서 아버지 김진성(金振星)과 어머니 정봉남(鄭奉男)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릉관아 터에서 북쪽으로 십리 정도쯤 가면 율곡 이이가 태어나서 자란 오죽헌이 있다. 오죽헌으로 들어가면 이율곡이 태어난 방으로 알려진 몽룡실이 있다. 김완기는 어릴 때 가까운 오죽헌에 가서 놀며 희망적인 꿈을 키웠다. 그곳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놀며 이율곡이 쓰던 붓, 벼루, 글씨와 유품들을 볼 수 있었고 신사임당의 초충도, 포도, 대나무, 매화 같은 그림의 예쁜 무늬를 어린 가슴에 새기곤 하였다.
김완기는 강릉 김씨 옥가파 38대 장손으로 태어나 엄격한 조부모님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고향집 뒤뜰의 오죽처럼 꼿꼿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늘 되새기곤 하였다고 술회한다.
김완기는 초등학교 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 문학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2015년『열린아동문학』여름호에 「아동문학의 오래된 샘」이란 제목의 인터뷰 글에는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와 중학교 사범학교 다닐 때 문학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계기가 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선생님인 최상벽 선생님을 만나 동요와 동시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것을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
6∙25가 터지기 전 해인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 훤칠한 키에 멋지게 생긴 남자 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셨어요. “노래를 좋아하고 시를 암송하는 여러분이 되는 게 나의 소망이어요. 이 시간부터 여러분과 나는 두 가지 약속으로 …” 이렇게 말씀하시며 주머니에서 하모니카처럼 생긴 대나무 토막을 꺼내셨어요. 모두 눈이 뚱그레지며 숨죽이고 있는데 도, 레,미,파, 솔, 라, 시… 구멍 8개를 뚫은 대나무 하모니카를 입에 대고 연주하는 거예요.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산토끼 토끼야…’, ‘따따따 주먹손으로…’ 이런 노래였는데 그날부터 우린 매일 대나무 하모니카를 입에 대고 동요 부르기를 했습니다. 어린 마음 밭에 동요를 심어준 고마운 최상벽 선생님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시 암송을 시키는 거예요. ‘매주 월요일에 시 한편을 칠판에 적을 테니 베껴 쓰고 외워서 토요일에 암송해야 집에 간다.’라고 말씀하시자 우린 그냥 신기하고 흥미로워 매주 한 편 씩 재미있게 암송했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 동무들과 / 백제의 옛 서울 찾아드니 / 무심한 구름은 오락가락 / 바람은 예대로 부는구나 / 부소산 얼굴은 아름답고 / 우는 새 소리도 즐겁도다 …’
- 부소산 -
선생님은 시가 뭔지 동요가 뭔지 모르던 어린 우리들에게 글의 재미와 동요의 재미를 눈뜨게 해 주었지요. 지금도 가끔 동창회에서 그때 친구들을 만나면 머리는 희끗희끗해도 그날 암송하던 동요 동시와 대나무 하모니카 반주의 동요곡을 함께 불러보기도 합니다.
김완기가 문학에 매우 깊은 영향을 받는 것은 중고등학교 무렵이다. 전쟁의 포성소리가 한창일 무렵 김완기는 강릉사범 병설중학교에 입학한다. 그곳에는 황금찬이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가끔 문학 특강을 해주는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또 황금찬은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을 학교에 모셔와 시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릉사범학교 본과에 입학하면서는 윤명을 스승으로 모셨다. 문예부장을 맡으면서 문학동아리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이 분들의 영향으로 강릉은 문학에 대한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그 무렵, 극작가인 신봉승, 아동문학가 엄기원, 소설가 홍성암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문단에 나와 활동하고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김완기는 엄기원이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나서 6년 째 인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선생님의 눈속엔」이란 작품이 당선된다. 이렇게 하여 1960년대의 강릉문단은 화려한 신춘문예 당선 속애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아동문학세상』2003년 봄호에 김완기는 「문학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서울살이를 하면서 문학을 한 내용이 나온다.
‘김완기는 1969년 봄, 학교를 서울로 옮기고 선배 문인을 모시며 문단 활동을 본격화했다. 김영일 회장이 재창건한 한국아동문학회에서 활동하며 70년대 중반엔 한국아동문학회 사무국장도 맡아 일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이원수, 김영일, 박경종, 석용원, 박화목, 박홍근, 어효선, 장수철, 홍은순, 박송, 유경환, 엄기원 등의 동요 동시인 15명으로 구성된 한국동요동인회 멤버로 가입하였다.’
김완기의 아동문학 작품을 쓰는 마음가짐은 어떠한 것인지 그의 말을 들어본다.
동심으로 바라보면 세상이 새롭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늘 체감하는 관습적인 세계가 아닌 숨겨진 사물과 일상의 진솔한 의미를 동심의 그릇에 담고 싶었습니다. 오랜 세월 어린이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온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을 습관처럼 그려내게 되었지요.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교감하는 것, 초롱초롱한 눈빛까지도 촉촉한 한 편의 시와 동화로 보였습니다.
내가 햇병아리 교사 시절 시골학교 운동장에 가난한 농촌 아이들과 흙벽돌 도서실을 지으면서 소망하던 문학의 잎싹을 틔우기 시작한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아동문학가 몇 분께 편지를 보냈더니 상록수 젊은 교사라며 몇 권씩 보내준 작품집을 아이들과 읽으며 나도 동시 동화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동시 동화는 본디 작가와 어린이가 동심으로 만나는 공간이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살아가는 방식,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과 삶의 가치를 어떻게 공유하며 공감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작품의 멋과 맛이 넉넉하고 정갈하기 위해 동심이란 순수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도 치열하게 되묻는 작가정신이 필요했습니다. 하얀 백묵가루로 만난 어린이들과의 문학교육이 하나의 열정이었다면 동심으로 담아내는 동시 창작은 하나의 애정이었다고 봅니다.
이 글은 2015년 5월 20일 ❰문학의 집∙서울❱이 주최한 「이 작가를 말한다」나의 삶 나의 문학 강좌에서 발표한 글의 한 부분이다.
문학 입문기에는 선배 문인들의 조언을 들으며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선배 문인 중에 최태호 학장은 존경하는 분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1957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이후, 27세가 되던 1964년 봄이었다. 독서교육에 미친 듯이 빠져 있던 김완기는 춘천교육대학 부속초등학교로 발령을 받는다. 그곳의 춘천교육대학에는 동화작가인 최태호가 학장으로 있었다. 부임 첫날 김완기는 학장실로 신고를 하러 갔다. 학장은 첫 모습에도 인자하게 보였다.
“김선생에게 두 가지 책무가 있는데, 하나는 문예교육이고 또 하나는 책을 가까이 하는 교사 양성의 길잡이가 돼줘야 하겠어요.”하고 말하였다.
최태호 학장은 먼 강릉에서 이 일 때문에 데려왔다고 하시고 문학 작품 쓰기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 주셨던 것이다. 이때에는 이웃 학교인 효제초등학교에 동화 쓰는 임교순이 있었다. 모두들 어려운 관문인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완기가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가 당선되고 난 3년 후인 1971년엔 임교순이 「연못 속의 동네」란 작품이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에 당선 되었던 것이다.)
리터엉 할아버지로 이름이 난 최태호 학장은 동화 창작을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작가로 활동하려면 정식 등단하는 길 밖에는 없으니 열심히 응모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공감하는 감동적인 글이어야 독자 곁에 다가갈 수 있다고 작품 쓰기에 대해 안내를 해 주기도 하였다.
김완기의 문학관은 천사주의이다. 우선 어린이들이 사는 세상을 천국으로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은 천사처럼 맑고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얀 어린이들의 마음 밭에 삶의 기쁨을 심어주려 한다. 어린이의 순수함을 어떻게 동시라는 그릇에 담아낼까 하며 고민을 하며 창작을 한다. 또한 누구나 공감하는 동시가 좋은 작품이라 여긴다. 아이도 어른도 함께 공감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것을 추구한다. 한 줌의 흙을 빚는 도예공과 같음을 비유로 든다. 또한 동시 한 편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작은 소망으로 동시 창작에 임하다보니 본인도 마음이 풋풋해진다고 한다. 동심으로 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생각에 자꾸 동시 창작의 불씨를 지핀다고도 말한다.
후배 작가들에게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정신으로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냥 덤벙덤벙 쓰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잘 익은 토실토실한 열매가 깊은 맛과 영양을 주듯이 작품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다림으로 잘 익을 때까지 정성으로 다듬어야 하고 고민하는 작가정신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완기는 동시 한 편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평생 시를 써 온 분이다.
그동안 국어교과서에 6편의 동시(5-7차 교육과정), 음악교과서에 1편(6-8차 교육과정)이 실릴 정도로 많은 동시와 좋은 동요를 써왔다.
제5차에서 6차, 7차 교육과정에 수록된 작품은「고드름」(3-2), 「산새」(5-2), 「산」(4-1), 「시를 쓸 때면」(4-2), 「우리나라 지도」(5-1), 「조약돌」(5-2) 등이고 6학년 음악교과서에는 「봄오는 소리」(한용희 작곡)가 수록되어 텔레비전에 많이 소개되고 널리 불려졌다.
2008년에는 충남 보령시 성주개화예술공원 안에 육필시공원에 「봄오는 소리」시비가 세워져 있다. 2011년에는 대구광역시 도로공원에 「우리나라 지도」시비가 세워졌다.
2002년부터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동시 「우리나라 지도」는 남북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작품이다.
아래의 글은 본인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어릴 적에 동네 아이들과 10리 길 동해 백사장에 달려가 뛰놀던 바닷가에서 서울에 재직하던 학교의 어린이들과 하룻밤을 바다 캠핑을 하면서 썼지요.
아이들은 반짝이는 은빛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엄마 아빠 얼굴과 친구들 모습을 그리는 거예요. 어떤 아이는 자기 소망을 모래 위에 쓰기도 했어요. 한 아이는 파도치는 모래밭 위에다 엉뚱하게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고 있었는데 분단된 한반도 모습이었어요. 토끼 모양의 우리 나라 땅 한 가운데에 휴전선 긴 가로줄을 그어놓고 그 아래에 ‘통일이 빨리 왔으면, 우리 할아버지 고향에 가 보고 싶어요.’라고 글씨를 써놓았는데 파도가 달려와 스르르 지워버리는 장면입니다. 그 모습에서 파도가 하나 된 통일 한반도 모습을 다시 그려보라고 새 도화지를 자꾸만 깔아주는 걸 비유를 통해 그려낸 동시가 나중에 초등 국어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본인 스스로 작품에 대해 말한다.
70년대 작품은 주로 생활시 보다는 자연의 서정을 담은 시들이 많다. 1978년에 펴낸 동시집『너희들도 하늘만큼』, 1980년에『하늘을 달리는 새떼』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하늘, 새, 나무, 바위, 바다, 풀, 개울, 샘물 같은 자연의 오묘함을 그려내려고 했는데 그 무렵엔 일상보다 사물과 자연에 대한 글감이 더 감흥을 준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김완기는 어린이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환한 세상을 꿈꾸며 맑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 속에 수용되어 있다. 또한 동시 「우리나라 지도」에서 보듯 남북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염원도 담겨 있다.
동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저서가 있다.
『매화』, 울진문화사, 1962.『 하늘이 단지 속에』, 현대아동문화사, 1975. 『너희들도 하늘 만큼』, 을지출판사, 1978. 『하늘을 달리는 새떼』,을지출판사, 1980. 『산마을 산토끼』,남광, 1990. 『엄마, 이게 행복인가 봐』, 한모임, 2004. 『연잎에 개구리 미끄럼 타는 날』,꿈소담이, 2007. 『동그란 나이테 하나』, 아동문학세상, 2012. 『눈빛 응원』, 노문사, 2015. 『김완기동시선집』,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5.
햇살 무게
김완기
산새가 솔가지에 앉으면
산새 무게 만큼
솔잎이 촐랑거리고
다람쥐가 도토리나무 오르면
다람쥐 무게 만큼
도토리 알 뚝, 떨어뜨리지만
햇살은
알속의 애벌레를 고물거리게 하고
땅 속의 꽃씨들을 곰틀거리게 하고
우주의 의사다, 다 거저로.
거저지만 날마다 재고 있단다
햇살 무게 저울엔
쑥쑥 크라는 눈금 하나뿐이라고
나도 그 눈금에 들어있다.
동시 「햇살 무게」의 작품에서 보듯 자연의 신비, 더 나아가 우주의 신비를 햇살의 무게라는 이름으로 비유하여 나타내고 있다. 글 속의 화자인 ‘나’ 역시 자연의 일부로 자연의 변화에 의해 생장소멸하고 있음을 그렸다. 자연이나 우주의 크나 큰 힘이 얼마나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변화의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가르쳐준다.
어떻게 아나
김완기
우리 집 울타리 나팔꽃
어떻게 아나?
해 뜨는 새벽 여섯시
해님과 주고받는
실줄 감아놓고 있었나?
우리 집 마당가 분꽃
어떻게 아나?
별 반작이는 저녁 일곱 시
별님과 주고받는
비밀 안테나 감춰놓고 있었나?
동시 「어떻게 아나」역시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자연의 식물들이 때를 맞춰 움직이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동시로 펼쳐보인다. 여기엔 자연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감동과 놀라움의 눈이 숨겨져 있다.
시를 쓸 때면
김 완 기
시를 쓸 때면
내 귀는
청진기가 된다.
새 이야기
꽃 이야기
돌이야기
벌레들의 숨소리
나무들의 맥박소리
시를 쓸 때면
내 눈은 망원경이 된다.
해 이야기
별 이야기
눈 이야기
무지개가 보인다.
옥토끼가 보인다.
-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 -
( 시인의 귀, 시인의 눈은 일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까요? 외관상으로 봐서는 조금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귀와 눈은 마음으로 알아듣고 마음으로 내다봅니다. 다시 말하면, 들리지 않는 것도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남다릅니다. 그래서 시인의 귀는 청진기가 되고 시인의 눈은 망원경이 된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 감상: 허동인 글 -
산새
김완기
아기새는
혼자서 생각을 키웁니다.
긴 긴 밤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하늘의 별을 셉니다.
그 작은 가슴
그 작은 눈으로
고운 걸 예쁜 걸
하나 씩 배우는 기쁨
둥지에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아침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엄마새가 산속을 날으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
파란 하늘에 내 힘으로
텀벙 뛰어들어 보라는 것도
눈짓으로 알게 됩니다.
- 6차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 수록 -
우리나라 지도
김완기
파도가 철썩이는
모래밭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아침의 나라
우리 땅 지도를 그려봅니다.
한반도 허리에
그어진 금
잘못 그렸다고 일러주려는지
숨가쁘게 달려와
사르르 지워 버립니다.
고운 손 예쁜 마음으로
하나 된 우리나라 지도
다시 그려보라고
백사장 모래 위에
새 도화지 자꾸만 깔아줍니다.
- 제7차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
참 좋은 말
김완기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아빠 엄마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맛이 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닥콩닥인대요.
이 동요는 2007년 MBC 창작동요 대상으로 수상한 작품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지명곡으로 많이 불리워진 것 같다.
봄 오는 소리
김완기
땅속에 꽃씨가 잠을 깨나 봐
들마다 언덕마다 파란 숨결 소리에
포시시 눈을 뜨는 예쁜 꽃망울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봄 오는 소리
꿈꾸던 나무가 깨어나나 봐
뿌리로 물을 긷는 고운 맥박 소리에
쏙쏙쏙 고개드는 밭가의 냉이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봄 오는 소리
80년대에 들어서 2010년대 초반까지 음악교과서에 수록된 동요이다. 서정성이 짙어 오랜 세월 동안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행복한 가치집」(박동한 곡), 「기분 좋은 날」(윤소희 곡), 「무얼까」(정연택 곡), 「새들의 아침 인사」(이재식 곡), 「내 마음의 꿈」(신귀복 곡) 등이 가끔씩 텔레비전과 창작동요 발표시간에 들을 수 있는 노래이다.
신작로
김완기
친구와
말다툼
입이 뾰로통
신작로 양쪽으로
돌멩이를 던진다
미루나무 위로.
헤어지는
갈림길
둘이는
밀이 없다.
저만치
뒤돌아보면
친구도
뒤돌아본다.
오가는 마음
작로 넓은 길.
이 작품은 2005년 3월 5일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하여 예림당에서 묶은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 명작 동시』에 수록된 105편 중의 한 편이다.
김완기의 동시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이나 혜택을 넘어서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깊은 의미도 깃들어 있어 동시의 품격을 높인다. 김완기는 1968년 신춘문예 당선 이후 줄곧 교직과 문단에서 활동해온 현역 노장의 작가이다. 그의 시 세계는 처음엔 어린이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우주의 생명력에 대한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로부터 또한 겸손함을 배운다.
1961년 김원기 등단 이후 60년대 강릉아동문단의 주역인 두 사람, 엄기원 김완기는 2010년대의 아동문학 흐름까지 이끌어가는 노익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또 현재진행형이다.
1997년 집문당에서 발행한 『한국현대아동문학 작가 작품론』에 수록된 「김완기론」의 집필자 윤명철은 김완기의 작품세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아동상은 늘 맑고 고운 꿈을 간직한 아이들이다. 1990년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수상 때 인터뷰의 기사를 보면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금이 가지 않는 얘기들로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 주는 것이 늘 창작활동느껴 왔습니다.” , “아동문학에는 흥미 위주 보다는 어린이들의 심성을 계발시킨다는 문학 본질의 도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표현 면에서 표면적인 수식어보다는 은은한 가운데 중심을 찌르는데 문학의 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문학가이기 이전에 , 참다운 교육자로서 어린이에 대한 사랑은 그의 문학의 출발점이자 근원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시인 이전에 교육자로, 아동문학의 전달자로서 아동문학사적 측면에서 높이 자림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그의 문학적 특성을 요약해 보면, 첫째, 그의 작품은 자연과 아동의 동일화에 근거하여 자연 소재를 통한 어린이들의 꿈의 형상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둘째, 그는 식상하기 쉬운 자연소재들을 내면성 있는 참신한 표현들로 재창조하고 있다. 이것은 동시의 표현을 한 차원 높여주는 동시사적(童詩史的)의의가 있다.
김완기는 평생을 교단에서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며 교육해 왔다. 김완기는 동화에도 많은 창작을 하여왔다.
자연사랑, 어린이사랑이 중심을 이루었다. 교육현장의 체험을 통해 겪은 일들이 글의 소재가 많이 되었다. 특히 불우한 아이들이나 장애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그가 쓴 동화 「벙어리 도장포」도 그와 같은 내용이다. 여기엔 한 농아 어린이가 헤쳐 온 삶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이 동화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오래전에 ‘벙어리 도장포’란 동화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이 내가 가르친 한 농아 어린이 얘기였어요. 나는 교단에 처음 서는 햇병아리 교사 때부터 불우하고 가난한 어린이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1967년 첫 발령지 경포초등학교에서 5학년 남자반을 담임했는데, 그땐 수업 전 출척을 불렀지요.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황영구 어린이는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뭇잎만 꼬깃꼬깃 접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고 따돌림을 받기에 교실에 들어오기 싫었던 거예요. 가난한 장애아 황 군에게 나의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사랑을 보이니까 아이들 관심도 달라지더군요. 2년간 담임하면서 장애아에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지요. 그림 그리기가 뛰어났어요. 판화, 목각, 수채화, 붓글씨 같은 숨은 재능을 계속 개별지도로 졸업을 맞았는데 가난해서 중학교 입학이 불가능해지자 궁리 끝에 서울 종로에 있는 국립농아학교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기숙사에다 학비 없는 국립학교에 입학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더니 미술실기 시험을 치르러 오라 해서 함격한 거예요 한 농아 어린이가 헤쳐온 삶의 모습이 담긴 ‘벙어리 도장포’ 이야기에서 장애를 딛고 꿋꿋이 내일을 개척하는 야멸찬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주요 저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어깨동무 삼총사』,꿈나무, 1980. 『푸른 바다를 다리는 기차』,꿈동산, 1983. 『꽃마차 공주님』,글방, 1985. 『열두달 듣고 싶은 별님 이야기』,남광, 1992. 『둘만의 약속』, 웅진출판사, 1992. 『꾸러기 친구들』,꿈동산, 1993. 『꼴찌가 일등 했어』, 민지사. 1997. 『가재와 버들개지』, 남광. 1997. 『내 배꼽이 더 크단 말이야』, 여명, 2002. 『동물원 수의사 선생님』, 달맞이, 2005.
문학 활동을 하면서 김완기는 1976년 한정동아동문학상, 1990년 한국아동문학 작가상, 1997년 대한민국동요대상, 2003년 한국동시문학상, 2004년 김영일 아동문학상, 2007년 한국펜문학상, 2013년 박경종아동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아동문학의 우뚝한 산맥으로 자리하였다.
2. 1970년대, 1980년대, 강릉아동문학의 화려한 발아와 성숙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강릉의 제2기 아동문학을 여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강릉아동문학의 화려한 발아와 성숙의 시대이다.
1970년대에 등단한 작가들은 치열한 작품 활동을 하여왔다. 애석하게도 작고한 작가를 제외하고는 2017년인 현재까지도 한국아동문학 문단에 메인 작가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크게 활약하고 있다. 1
작가들을 보면 엄성기(1970. 월간문학), 김종영(1973. 조선일보), 김지도(1974. 풀과 별), 권오훈(1975. 월간문학), 전세준(1975.강원일보), 최도규(1976. 10월 아동문예), 김완성(1977. 소년중앙, 월간문학), 남진원(1977. 아동문예), 김진광(1979. 기독교아동문학), 조무근(1979. 매일신문), 권영상(1979. 강원일보) 등이고 1980년대에는 장영철(1981. 기독교아동문학상), 이호성(1986. 한국아동문학연구)을 들 수 있다.
엄성기는(1940-1998)는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서 태어났다. 1959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까지 교사 생활을 하였다.
1970년 동시「별열매」가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된다. 그리고 17년 만에 한국아동문학작가상을 받는다. 이상은 한국아동문학회에서 매년 우수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었다. 1993년에는 강원도문화상을 수상하고 동요보급에도 힘을 기울였다.
1984년 5월 솔바람동요문학회 창립을 위해 강릉시 교육청 휴게실에 김원기, 엄성기, 김교현 등이 모여 의논을 하였다.
엄성기가 작고하고 유고 동시집 『바람의 속삭임』 뒤에 김교현의 추모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의 내용을 보면 엄성기의 인품과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엄성기는 김교현을 처음으로 보며 ‘엄성기입니다.’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고 하였다.
엄성기의 맑고 환한 얼굴을 보며 ‘그래, 저런 인상이니까 그렇게 맑고 깨끗한 동시를 쓰지’ 하고 김교현은 생각하였다고 하였다.
엄성기가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회의 운영을 잘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성품, 참다운 교육자의 모습을 김교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교현은 이 글에서 엄성기의 성품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솔바람동요문학회를 이끌어오시던 김원기 회장이 갑작스레 돌아가시자 형이 2대 회장직을 맡으셨죠. 사실 모임의 대들보였던 김원기님의 가심으로 급속도로 위축되었던 모임을 다시 추스르시느라 참 고생 많이 하셨죠. 모임에 계속 불참하는 회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특유의 따뜻함으로 불러내시고 또 전국의 작곡가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정성을 보아셨습니까? 이렇게 형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우리 솔바람동요문학회가 1990년 5월 ‘대한민국 동요 대상’을 받게 되었지요. 축하연 자리에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만취해서 춤추며 노래하시던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형은 솔바람동요문학회를 내 몸처럼 사랑하셨죠. 5년 전 저에게 회장직을 넘기시면서 꼬옥 잡은 내 손을 한동안 놓지 않으시며 솔바람을 잘 키워 가자고 다짐하셨죠. 14년 간 매월 발행하는 회지를 모아 ‘솔바람 축쇄 영인본’ 만드는 사업을 벌인지 2년, 1998년 6월 책이 출간되자마자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다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엄형, 형의 후덕하신 인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마음도 언제나 사로잡으셨죠. 형이 한국문인협협회 강릉지부장으로 계실 땐 모든 강릉 문인들의 칭송 가운데 정관을 어겨가며 3회나 연임하셨죠. 제각각 개성이 강해 자칫 흩어지기 쉬운 문인들을 하나로 묶어낸 데는 형의 인품적 기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란 평들이었어요. 그런 칭송은 신봉승, 엄창섭 시인의 뒤를 이어 형에게 관동문학회장이란 무거운 직책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맡게 했지요.
형은 또 아주 훌륭한 교육자였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술은 따로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라고 언제나 주장하셨죠. 방학 때도 ‘글짓기 교실’을 개설하여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두 하루에 3시간 씩 가르치며 사랑을 실천하셨죠. 이 모든 공적이 인정되어 형은 1993년 강원도 문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이 상을 받은 일은 일찍이 없었기에 한동안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형을 축하했답니다. 형, 그러면서도 형은 욕심이 참 없으셨어요. 친구들은 모두 교감으로 장학사로 승진하는데도 형은 늘 ‘선생이 아이들 곁을 떠나서야 되나’하시며 평교사를 고집하셨죠. 명예퇴직으로 교직을 물러나셔도 아이들을 떠날 수 없어 ‘어린이 문예교실’을 여시고 개구쟁이들을 모아놓고 그렇게 사랑하시더니 ……
( 중략)
형, 이번 달에도 우리 솔바람 회원들은 변함없이 <문화의 집>에 모여 작품을 발표하고 ‘오솔길’에서 명태찜에 술동이를 몇 개 비웠답니다. 늘 형이 앉던 빈 자리가 마음을 슬프게 하고 눈길을 주는 곳마다 형의 모습이 남아 있어 아직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답니다.
엄성기는 생전에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장, 솔바람동요문학회장, 관동문학회장, 조약돌아동문학회장 등을 맡으며 문학 방면에 힘썼다.
1975년 동시집 『산골아이』(영진문화사), 1980년에 두 번 째 동시집 『그림 위에 누워서』(을지출판사), 1990년 세 번 째 동시집『꽃이 웃는 소리』(대성문화 출판사), 2000년 유고 시집『바람의 속삭임』등을 냈다. 동시집 『바람의 속삭임』과 함께 낸 유고 동요집으로 『내 마음의 노래』라는 책이 나왔다. 여기에는 작곡된 동시 58편, 노랫말 79편이 수록되었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 엄성기 또한 지역성을 살린 향토색 짙은 작품을 동시로 형상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안개 낀 대관령에 서면/구름이/발바닥까지 가득 차/하얗게 흘러내린다.//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낭떠러지와 골짜기와/높낮은 산등성이 마저 덮어버린/그 위로/어쩌다 머리 내민/산봉우리가/징검다리마냥/출렁출렁 흔들린다.//열 발짝 앞도/잘 보이지 않는/하얀 골짜기/아흔아홉 구비를 헤집고/크고 작은 차들이/조심스레/헤엄치듯 오르내리고 있다.
-엄성기의 동시 「안개 낀 대관령」 전문(조약돌 10집.1982)-
별 열매
엄성기
싸늘한 바람에
잎 날려보내고
탐스런 열매마저
잃어버린
앙상한 나무에
밤이 오면
흰 서리 함빡 젖은
가지가지 끝
끝에
찢어져라 무거웁게
별이 열린다.
엄성기의 동시 「별 열매」는 강릉 아동문학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교육성이라는 아동문학의 속성을 거부하고 순수한 미의식에 충실하였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시라는 작품이 이처럼 직관에 의해 아름다움의 미의식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강릉의 경포호수 시비에 새겨져 있는 엄성기의 작품 「꽃이 웃는 소리」는 자연을 바라보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있다. 동심의 바탕위에서 자연의 소리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청각적 이미지에 성공한 작품이다.
「꽃이 웃는 소리」는 1959년 강릉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에 재직하며 아동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엄성기(嚴成基)[1940~1998]의 대표작이다. 엄성기는 1970년 『월간 문학』 신인 공모에 동시 「별열매」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동시집 『산골아이』, 『그림 위에 누워서』, 『꽃이 웃는 소리』, 유고 시집 『바람의 속삭임』, 동요집 『내 마음의 노래』 등이 있고, 『이율곡』, 『김정호』 등 여러 권의 어린이 위인전을 펴냈다. 한국 문인 협회 강릉 지부장, 솔바람 동요 문학회장, 백오 문학회장, 아동 문학회 연구소장, 관동문학회장, 조약돌 아동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7년 '제9회 한국 아동 문학 작가상', 1993년 '제33회 강원도 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엄성기가 회장으로 활동했던 솔바람 동요 문학회는 1990년 동요 보급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동요 대상' 보급 부분 단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동시 「꽃이 웃는 소리」는 2연 18행으로 이루어진 동시로, 1연과 2연이 리듬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꽃이 웃는 소리
엄성기
나는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꽃밭에서
빨강 노랑 분홍꽃이
모두 함께 어울려
맑디 맑은 소리로
하하 호호 까르르르
꽃향기로 피어나는
꽃이 웃는 소리를
나는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꽃밭에서
자주 보라 하얀꽃이
모두 한데 어울려
곱디 고운 소리로
하하 호호 까르르르
향기롭게 퍼져 가는
꽃이 웃는 소리를
「꽃이 웃는 소리」는 작곡가 김계명이 곡을 붙여 동요로 불리워진 작품으로, 1986년 제4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시의 제목 「꽃이 웃는 소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맑은 동심에서 나온 공감각적인 표현과,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오래 남는 리듬 및 표현이 돋보인다. 엄성기는 조약돌 아동문학회 회장, 솔바람동요문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강릉 아동문학의 초석을 놓았다.
강원도 속초에서 문학 활동을 하던 김종영(金鍾榮1947 ~ )은 강릉시 관내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강릉에 정착하였다.
1947년 10월 27일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속초 영랑초등학교(1960), 속초중학교(1963), 속초고등학교(1966). 고등학교 졸업 후 춘천교육대학에 입학하여 졸업(1969)하여 교직에 발을 내 딛는다. 교직에 있으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을 1989년에 졸업하는 등 학구열이 높았다. 초등학교 교단에는 2010년 2월 정년할 때까지 41년 동안 어린이의 벗이 되어 교사, 교감, 교장으로 지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참된 교육자, 스승다운 스승을 찾기가 모래밭에서 사금 찾기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김종영은 문학가이기 이전에 진정한 교육자이며 스승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한평생 그는 돈, 명예, 권력과는 담을 쌓고 강원도의 외진 산골학교를 찾아다니며 가난하고 헐벗은 어린이들의 참된 벗, 참된 스승으로 살아왔고, 교직 생활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없이 행복해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조용하고 겸손하며 예의 바름이 몸에 배어 있다.
1972년 『아동문학』에 동시 「옥희가 잡은 해」가 입선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였다. 1973년 1월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아침」이 당선되었다. 1983년에는 제15회 한정동아동문학상, 1993년에는 제12회 강원아동문학상, 2000년에는 제19회 강원문학상, 2003년에는 제16회 대한민국동요대상(작사·2003년) 등을 수상하였다.
동시집으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들』(교학사, 1980), 『할머니 이야기』(교학사, 공저, 1980), 『소낙비가 심고 간 하늘』(월간문학사, 1983),『어머니의 무릎』(아동문예사, 1993), 『사랑의 아이』(2000), 『크레파스의 꿈』(2001), 『산 위에 오르면』(5D 광고 출판, 2006), 『기차 무지개』(5D 광고 출판, 2007) 등이 있다. 『아버지의 웃음』(5D 광고 출판, 2016) 등이 있다. 이밖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찍으며』동시집도 상재하였다.
동화집으로는 『무지개 운전사』(1992), 『사랑의 종소리』(아동문예사, 1992) 등이 있다.
김종영은 동시와 동요 등 매우 많은 작품을 쓰고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수상 경력이나 교과서 등에도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김종영은 우리나라의 아동문학가 중에서 가장 낳은 동요와 동시가 교과서에 수록된 작가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강릉에서 활동하며 초등학교, 중학교의 국어교과서, 음악교과서에 많은 작품이 채택되었다는 것은 그의 문학적인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는 제 6,7차 4-2 읽기 교과서에 동시 「싸움한 날」이 수록되었고, 제7차 국어 5-2 교과서에 동시 「홍시」가 수록되었다.
또 초, 중 음악교과서에는 많은 동요 작품이 수록되었다.
동요, 「꿈이 크는 책가방」김종영 작사, 손정우 작곡, 초등6학년, 대성출판사. 「꿈배를 띄우자」김종영 작사, 박혜정 작곡, 초등 6학년, 대한교과서(주). 「굴렁쇠」김종영 작사, 김석곤 작곡, 중학교 1학년, 천재교육. 「풍년놀이」 김종영 작사, 신상춘 작곡, 중학교 3학년 ㈜더 택스트. 「바람개비」 김종영 작사, 이성복 작곡. 초등 3,4학년 ㈜동아출판사
위와 같은 동요 작품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국정교과서, 검인정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창작 동요대회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수상하였다.
1993년, 김종영 동요 「풍년놀이」, 신상춘 작곡으로 창작국악동요제 대상을 받았다.
1998년, 김종영 동요 「빗방울」, 신상춘 작곡으로 부산 KBS창작 동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김종영 동요 「크레파스의 합창」, 조원경 작곡으로 성남시 창작동요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김종영 동요 「하얀 편지」, 주유미 작곡으로 EBS 고운노래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김종영 동요 「맷돌」, 홍재근 작곡으로 MBC 창작동요제 작곡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김종영 동요 「꿈이 크는 책가방」, 손정우 작곡으로 KBS창작동요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김종영 동요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 정연택 작곡으로 대전일보 전국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또 이수인 작곡의 작품 「감자」는 가곡으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이상에서 김종영의 동요제 입상 경력을 보면 그가 창작한 동요 노랫말은 남다른 데가 있다. 어린이들에게 쉽게 읽히고 불러지는 쉬운 내용과 음악적 리듬감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김종영은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이며 어린이를 위한 진정한 봉사자이다. 김종영은 2010년 2월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많은 문학 예술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다. 강릉의 솔바람동요문학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매월 회원들과 동요를 창작하고 그 작품들을 모아 동요작곡가들에게 보내어 어린이노래를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동요음악협회, 한국아동문학연구회, 강원아동문학회, 관동문학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학 단체에서 회원과 임원으로 활동 내지 봉사하고 있다.
김진광은 김종영의 시집 『아버지의 웃음』발문에서 김종영의 시 세계를 ‘가족 사랑, 나라 사랑의 시인’, ‘아침과 봄과 나무의 시인’, ‘꿈과 희망, 깨달음의 푸른색 시인’이라고 하였다.
그의 동요 속에는 어린이 사랑의 지극한 마음이 웃음과 사랑, 화해와 용서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웃음 쪽지
김종영
- 친구야, 어제 미안했어.
밤새 마음으로 그린
사과꽃을 보낸다.
친구가 보낸
웃음 쪽지
-고마워.
내가 먼저 보내고 싶었는데.
난 해를 입에 문
나팔꽃을 보낸다.
어제는 멀고 먼
우리 집 가는 길
오늘은 자꾸자꾸 가고 싶다.
- 제8동시집 「물음표와 느낌표를 찍으며」중에서 -
이 작품에는 친구와의 갈등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있다. 다투고 난 뒤 서로 먼저 친구에 대해 사과의 쪽지를 보내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즐거운 친구로 되돌아가는 즐거운 모습이 담겨 있다.
동요 「꿈이 크는 책가방」은 2004년 ≪KBS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꿈이 크는 책가방
김종영
엄마 사랑도 가득가득 내 꿈도 가득가득
세상을 밝힐 푸른 등불을 메고 학교로 간다.
내 꿈이 랄랄라 나무들처럼 노래한다.
내 희망이 반짝반짝 햇살처럼 춤을 춘다.
친구들 사랑도 가득가득 땀방울도 가득가득
세상의 새 그림을 그리며 집으로 간다.
아빠 사랑도 담뿍담뿍 내 꿈도 차곡차곡
세상을 안아 줄 사랑 등불을 메고 학교로 간다.
내 꿈이 무럭무럭 선생님과 자라난다.
내 희망이 훨훨 푸른 하늘로 날개친다.
노래도 웃음도 담뿍담뿍 이야기도 차곡차곡
세상의 새 행복을 꿈꾸며 집으로 간다.
동요인 이 작품에서도 사랑, 꿈,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종영의 동요 동시는 밝음과 희망, 사랑과 우정이 따듯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음 동시 「아침」은 어효선이 뽑은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이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물동이에 물을 퍼 담아오던 모습을 동시로 담았다. 어머니의 부지런함, 새소리, 파란 하늘의 이미지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농촌의 싱그러움이 아침이란 시간 속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다가온다. 신선함 때문에 작품을 뽑았다고 하였다. 신선함이 시 쓰기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 하게 된다. ‘아침의 신선함’을 ‘어머니의 부지런함’과 함께 청각적 이미지를 빚어낸 모습은 1970년대 초 한국의 아동문학 문단에 분명히 충격적인 메시지였다.
엄마가 / 돌담 우물가에서 / 쪽박으로 / 어둠을 뜹니다. // 쪽박 속에 어둠이 / 찰랑 소리내며 / 동이 속에 쌓일 때마다 / 활짝 열리는 / 동이 속의 아침. / 동이 가득 차오는 / 은빛 하늘. // 엄마가 이고 가는 동이 속으로 / 해님이 삐끔 얼굴 담그고 / 하늘가 칫솔질하는 새떼들 / 소리소리 쌓이고 / 햇살이 포시시 내려 // 세수하고 날아가는 / 동이 속. // 엄마의 머리 위에서 / 드르륵 열리는 / 아침 하늘 // 엄마가 / 아침을 이고 갑니다. / 눈을 비비고 일어선 / 파란 하늘도 / 이고 갑니다.
- 김종영,「아침」,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작품 -
싸움한 날
김종영
싸움하고
집으로 가는 날
내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마을은 더 멀어집니다.
나는 바람 찬 언덕 위
앙상한 나무
어머니의 따슨 손이
내 마음을 녹이고
어머니의 사랑의 말씀이
눈물이 됩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달려갑니다.
달을 안고
친구에게로 달려갑니다.
- 제6,7차 교육과정 국어 읽기 4-2 수록 작품 -
홍 시
김종영
쪽쪽 햇살을 빨아 먹고
쪽쪽 노을을 빨아 먹고
통통
말랑말랑
익은 홍시
톡 건드리면
좌르르 햇살이 쏟아질 것 같아,
톡 건드리면
쭈르르 노을이 흘러내릴 것 같아.
색동옷 입은 아기바람도
입만 맞추고 가고,
장난꾸러기 참새들도
침만 삼키고 간다.
- 제7차 교육과정 국어 말하기∙듣기∙쓰기 5-2 수록 작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