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을 돌아볼 줄 아는 시를 (옮김)

[양길순]

헛것을 돌아볼 줄 아는 시를


안도현


저도 연어가 왜 돌아오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쓴 책 [연어]를 읽으신 분들은 이 사람이 언제 시도 썼나? 저는 늘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서가 아니고 그 동안 시를 쓰면서 시적인 것을 어떻게 찾으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변진섭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너에게로 또다시' 라는 게 있습니다.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짙은 어두움에서 서성거렸나.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이제 나는 알았어 네가 죽는 날까지 너를 떠날 수 없다는 걸.' 하는 내용입니다만 저한테는 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라는 것을 찾아서 돌아오기까지 그 과정을 말씀드리면서 시의 비밀을 한 가지씩 풀어 나갈까요.

[시는 케케묵은 것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저는 비교적 일찍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고등 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문학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 문학보다도 문학 외적인 분위기에 먼저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문학 혹은 시라는 게 이론이나 논리로 잘 설명이 안 되는 것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삐딱하게 노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길로 가지 않고 약간 반대편으로 가고자 하는 어떤 몸짓이 문학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등 학교 시절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지금 시를 쓰는 이문재 씨, 요즘 베스트 셀러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류시화 씨 같은 분들이었는데, 그 형들을 만날 때마다 시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보다도 그 사람들이 어떤 몸짓을 하고 다니는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사철 검은 바바리를 입고 다녔습니다. 한여름에도 검은 색이 물이 바래서 약간 누리끼리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문학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대학에 다닐 때 검은 바바리를 사철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시라는 것에 이끌려 가게 되었는데 시가 뭔가, 시를 왜 쓰는가 하는 고민보다는 마약을 먹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가게 될 것 같습니다.

80년대 중반쯤 황지우라는 시인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나는 시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시적인 것을 쓰려고 한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황지우 씨가 자기는 시는 쓰지 않고 시적인 것을 쓰려고 한다는 말 속에는 그 이전에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었던 어떤 세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케케묵은 시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계속한다면 자기 존재의 이유도 찾을 수 없을 것이고 해서, 그때 말한 시적인 것이라는 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어떤 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뒤엎는 게 황지우 씨는 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삐딱하게 노는 것을 시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 시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고등 학교 때 시가 언어의 조화물이라는 것을 일찍 알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시가 언어로 되어 있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저는 영악한 문학 소년이었던 것 같은데 시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종이 위에 언어로 옮겨놓는 것을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가 마음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기 마음을 종이 위에 담는 것이 시가 아니고 제가 그때 생각했던 시는 내 마음이든, 아니면 세상의 어떤 풍경이든 언어로 묘사하는 게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는 게 시가 아니고, 내 마음이나 풍경을 최대한 정성을 들여 언어로 그려서 보여주는 게 시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처음에 시를 접하는 분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시가 단순히 마음을 털어놓거나 고백하는 그릇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런 고백은 일기나 편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라는 양식 속에 마음을 담을 때는 단순히 고백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묘사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제가 고등 학교 다닐 때 백일장 같은 데 가서 수십 번 상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기로는 아, 저 친구는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서 상을 받기도 했구나 하는데 절대 그게 아닙니다. 아까 영악했다는 말씀을 드렸듯이 저는 시 속에다 제 고민을 노출하거나 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내가 눈으로 본 것을 아주 자세히 정성을 들여서 보여주려고 했을 뿐이지 저를 털어놓았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언어주의자였다고나 할까 혹은 문학주의자로서 고등 학교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습작할 때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시를 손끝으로 쓸 것인가 가슴으로 쓸 것인가 하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가 '시를 손끝으로 쓰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써라' 참 시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맞는 말입니다. 시를 손끝의 재주로 쓰지 말고 온몸으로 써야 된다. 그럴 듯한 말이기는 하지만 저는 이 말이 상당한 함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문학적인 허영일 수도 있다. 저는 처음 문학을 시작할 때 가슴으로 쓴다는 말을 이해도 잘 하지 못했고 거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손끝으로 문학을 하는 소년이었습니다.

손끝으로 시 쓰는 것을 반성했던 게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습니다. 제가 80학번인데 20대를 80년대와 같이 보냈습니다. 대구에서 고등 학교를 다니다가 전라도로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처음 들어가니까 문학을 하는 분위기가 아주 달랐습니다. 대구에서는 어떻게 하면 손끝으로 시를 잘 만들 것인가를 고민을 했었다면, 대학 시절에 만난 선배들은 시를 그렇게 만들어서야 되겠느냐 시를 쓰는 것이지, 또 잊혀지지 않는 말 중의 하나가 시를 살아야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이지 손끝으로 깔짝깔짝 해서 시가 되겠냐는 말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달랐습니다. 상당히 고전적인 책인 도스토예프스키부터 읽어야 되는 분위기를 대학 시절에 맛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80년대 내내 저는 손끝으로 쓰는 것을 일부러 잊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가슴으로 시를 쓸 수 없을까를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시집을 읽는 일은 굉장히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고 역사나 사회과학을 읽는 일이 시를 공부하는 사람의 바른 태도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쓰여진 게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등단 작품입니다.

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헤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우니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자 세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 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서울로 가는 전봉준' 전문

[역사책에서 만난 전봉준의 목소리를 듣고]

시집보다 역사책을 더 즐겨 읽던 때에 그 책 속에 [한국 근대사]라는 책이었는데 전봉준이가 잡혀가던 유일한 사진이 한 장 남아있습니다. 그 사진 밑에 설명이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시가 될 것 같았습니다. 단순히 역사적인 인물로서 혁명에 실패하고 잡혀가는 전봉준만 그린다면 재미없는 역사시가 될 것 같아서 제 머리속에서 겹쳐지는 게 광주 5월 이후에 광주의 실패인 시대적인 상황과 동학농민 전쟁에 실패하고 전봉준이 잡혀가는 것이 오버랩이 되어서 그것을 써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상투적인 구절도 많습니다만 84년은 5공치하여서 신춘문예라는 오래 된 제도 속에서 혁명적인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부터가 읽어주시는 분들이 신선하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척왜척화(斥倭斥和)' 물결소리라는 게 있습니다. 동학농민 전쟁에 그 중요한 기치중의 하나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또 척왜척화라는 말은 왜적을 물치리고, 서양 세력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용어 중에 척양척외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똑같은 말입니다. 서양을 배척하고 왜를 배척한다. 둘 중에 무엇을 쓸 것인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물이 강 언덕에 부딪쳐서 소리를 낼 때, 혁명적 상황을 드러내려고 할 때 척외척화가 어울리겠습니까. 척양척외가 더 어울리겠습니까. 어떤 게 더 센 소리겠습니까. 척양척외보다는 척외척화겠지요. 가슴으로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자잘한 일을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쓸데없는 것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로 문단에 나왔는데 80년대 내내 제 고민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내가 쓰는 시가 내 자신의 안주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과 만날 수 있을까. 세상에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을 내가 해결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들을 계속 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시인으로서 역사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던, 어떻게든 역사적인 현실과 시를 만나게 해야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 강박의 와중에서도 모닥불에 실려 있는 시중에 [청진 여자]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미군 없는 청진항에서

헌 자전거 한 대 빌어 타고

퍼붓는 눈발을 따라가서

어둠을 털어내는 전등을 밝힌 집

백설기 같은 김이 하얗게 서린

유리문 열고 들어서면

갈탄 난로가 뜨거운 집

이름도 버리고 돈도 없이 왔노라고

내가 등 푸른 한 마리 정어리로

당신과 헤엄치고 싶다 말하면

동해 같은 자궁을 열어주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청진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봄에 눈이 온다는

물 맑은 청진항 부근에서

꿈의 벌레 같은 눈송이들이

이부자리를 따듯하게 적시는 밤

아내를 남쪽에 두고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헐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부끄럼 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듯이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온 바다로 파도치는

청진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비로소 하나 되는 날

그 설레이는 첫새벽에

동해 붉은 해 같은 아이를 낳아

넘치는 젖을 물리게 될 청진 여자여,

우리는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 싶다.

-'청진 여자' 전문


겉으로만 보면 바람난 남쪽 사내가 해찰을 하는 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단의 현실을 넘어서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자고 싶다는 말을 써 본 것인데 여기서 세 번째 줄의 미군 없는 청진항이라는 말이 있고 끝에 보면 우리는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80년대라는 상황은 단순히 내가 시인으로서 내 마음을 드러내는 시만 쓴 게 아니라 뭔가 사회적으로 시인이 역할을 해야된다고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 시가 20대 중반에 쓴 시인데 외세의 간섭이 없는 혹은 미국의 간섭이 없는 통일된 국가를 시로 써보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미군 없는 청진항의 설정이나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든 시에다 넣어야 된다는 강박이 아주 심했었습니다. 이게 안들어 가면 내가 시를 쓸 이유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했었습니다.

[해직 교사의 쓰라림 속에서]

그런 생각이 어떤 극단까지 가게 된 것은 제가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교사 시절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힘들고 곤궁한 시절이었는데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그 당시 교직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해직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또 시가 단순히 어떤 역사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서 시라는 게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라는 시집의 상당 부분이 그런 시를 쓸 때는 앞으로 내가 쓴 시들이 문학사에 한 줄도 남지 않더라도 그 당시 생각은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학교가 좋은 공동체 공간이 된다면 나는 시 따위는 포기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가까운 문학사에서 정말 시가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김남주 시인, 박노해, 백무산 같은 시인들이 그런 생각으로 시를 쓰고 했습니다. 저도 그 무렵에는 시를 쓴다는 일이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제 석줄 자리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를 읽으신 분들이 정말 나도 내 자신을 반성해 보게 되었다, 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여기서 연탄의 이미지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다 태워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연탄이란 존재는 자기 몸에 불을 붙여서 방구들도 덥혀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재가 되어서는 미끄러운 골목길에 으깨져서 길을 미끄럽지 않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저는 제목을 지금 같으면 [너에게 묻는다] 라고 쓰지 않고 [나에게 묻는다] 라고 썼을 것 같습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제 마음속의 한쪽에는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 아주 많아서 너에게 묻는다 라는 말이 얼마나 건방진 소리입니까. 너 언제 그렇게 뜨겁게 살아봤어? 그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아주 공격적이고 독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을 뜨끔하게 공격하는 투입니다. 지금 같으면 그러지 않고 저 스스로한테 물어 봤을 텐데 그 무렵에는 그랬었습니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하는 노래도 있었는데 아주 어릴 때는 손끝을 까딱거리며 시를 썼고 20, 30대까지는 가슴으로 시를 쓰고 싶었었는데 어느 순간 시라는 것은 한 가지만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끝과 가슴을 다 가지고 써야 좋은 시를 쓰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때가 해직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복직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 무렵에 쓰여진 시집이 [그리운 여우] 와 [바닷가 우체국] 같은 시들이었습니다. 학교에 복직을 하고 나니까 학교에 대한 시가 안 써지는 것입니다. 학교 바깥에 있을 때에는 내가 써야 될 말들이 아주 많았었습니다. 교육에 관한 시들 중에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표현한 것 중에 '어린 조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조국이다' 정말 뜨거운 가슴으로 생각해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에 '어린 조국'이라는 말속에 내 의도가 너무 넘치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욕심이 아이들을 너무 과장한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아이들로 봐야 되는데 '아이들은 어린 조국이다' '가슴으로' '뜨겁게' 이런 말들만 머리 속에 뱅뱅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흔히 80년대 민중시라고 이야기하는 시들을 보면서 한 편의 시속에 시인이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던 시절이 80년대구나, 물론 시대가 시인으로 하여금 발언들을 하게 만들었던 때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저는 전반적인 저의 시 쓰기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 때가 [그리운 여우]라는 시집에 실린 시들을 쓸 때였습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보면 들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들꽃은 말 그대로 그늘 깊은 곳에 사는 연약한 존재, 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들꽃이라는 말만 해도 추상적인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들꽃이 [그리운 여우]를 쓸 무렵에는 더 작은 애기똥풀이라는 구체적인 말로 바뀌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나 서른 다섯이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애기똥풀' 전문


이건 제 자신을 질타하는 목소리입니다. 정말 서른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애기똥풀이라는 꽃을 모르고 지냈었습니다. 지금도 뉘우치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시를 쓸 때 저는 꽃이나 나무를 보지도 않고 그 말이 예뻐서 썼던 게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푸레나무와 자작나무, 쥐똥나무, 후박나무와 같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 말이 예뻐서 시에 썼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물푸레나무가 물가에 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깊은 산속에 사는 나무였습니다. 그것은 그 나무와 제가 일치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나무 이름을 빌어다 썼던 것입니다. 이런 [애기똥풀]과 같은 시를 쓸 무렵에는 정말 사소한 것들, 작은 것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시 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라고 하면 그 이전에는 이 세상을 볼 때, 그냥 안경을 안 쓴 눈으로 볼 때가 있고 또 멀리 있는 것은 망원경으로 봐야 되고 미세한 것은 현미경으로 봐야 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한 가지 방법으로만 봤던 것 같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은 현미경으로도 봐야 되는데 망원경으로만 보던 그 눈을 현미경을 대고 보기 시작했던 게 아마 그 무렵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진여자]의 경우에 내가 분단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으로서 어떻게든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시를 써야 되겠다는 강박 속에 쓰여진 시입니다. 이제 그런 강박이 많이 없어진 것입니다. 미군 없는 청진항이랄지 간섭 없는 부부라는 것을 써야만 내가 시인으로서 세상에 기여하는 게 아니고 자잘한 것 속에 있는 어떤 커다란 것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한 게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 중에 [모과나무]라는 시를 한 편 보겠습니다.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나는 처마 틴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모과나무' 전문


제가 복지관 시골학교 뒤꼍에 이런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울 때 뒤꼍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맨날 모과나무를 보면서 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정말 모과는 비를 맞으면서 서있고 저는 비를 피해서 처마 밑에서 쪼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가지 끝에는 굵직굵직한 모과들이 달려 있는데 거기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내가 키우는 아이들, 나와 아이들의 관계와 모과나무와 모과나무의 열매가 겹쳐졌던 것입니다. 그전의 가슴만 뜨거웠던 때 같으면 시를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뭔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내 주장을 시에 담았을 텐데 이 시를 쓸 무렵에는 단지 그 모과나무와 나의 입장을 서로 바꾸어 놓는 것으로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근래 제가 시를 쓰는 방법중의 하나가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기'입니다. 저는 이따금 부부싸움을 자주 합니다만 할 때마다 생각되는 게 입장을 서로 바꿔놓으면 싸우지 않을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제 시를 꼬집는 분들 중에는 이 세상이 복잡하고 갈등으로 얽혀 있는 곳인데 당신의 시는 그런 갈등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너무 편안하고 화해하는 쪽으로 한 발 앞서가서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지적해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입장을 서로 바꿔놓고 생각을 하면 이 꽃이 애기똥풀이다고 인식하지 못했을 때는 길가에 있으면 밟고 지나가고 꺾고 했었는데 이름과 존재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애기똥풀을 보면 장미꽃처럼 보입니다. 시도 그렇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것이 두루두루 잘 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들이 시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문학적으로 살 수 없을까. 문학적으로 산다는 것이 시를 많이 읽고 늘 시적인 분위기가 있는 곳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시를 읽고 시를 쓰는 것은 이 세상과 연애하는 것이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습니다. 연애를 하려면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스쳐 지나가는 대상하고는 연애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한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마음이 시적인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를 쓴다는 일이 명성을 높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억만금을 모을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시를 쓰면서 참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이 세상의 질서와 똑같이 발을 맞추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것, 사람들이 좀더 높은 곳을 쳐다보면서 달려갈 때 저는 낮은 곳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위안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시게 된다면 그게 바로 시적인 삶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현실로부터 크게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서도 시를 쓴다는 일이, 특히 최근에 들어와서는 허망하게 생각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괜히 헛짓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망한 것에 목숨을 거는 즐거움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시집으로 아직 묶어지지 않은 시입니다


이제는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 무엇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 무엇도 아닌 헛것이라고, 써야겠다



고추잠자리 날아간 바지랑대 끝에 여전히 앉아 있던 고추잠자리와,

툇마루에서 하모니카를 불다가 여치가 된 외삼촌과,

문득 어둔 밤 저수지에 잉어 뛰던 소리와,

우주의 이마를 가시로 긁으며 떨어지던 별똥별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새털구름처럼 밀려오던 자잘한 슬픔들을



내 문법 공책에 이제는 받아 적어야겠다

그 동안 나는 헛것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

너의 눈을 재 속에 숨은 숯불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너의 말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귀로 듣지 못하고,

너의 허벅지를 억새밭머리 바람의 혀로 핥지 못하였다



그래 여우라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

혼을 빼고 간을 빼먹는 네가 여우라면 오너라

나는 전등을 들지 않고도 밤길을 걸어

그 허망하다는 시의 나라를 찾아가겠다

너 때문에 뜨거워져 하나도 두렵지 않겠다

-'헛것을 기다리며' 전문



[고정관념을 넘어 새롭게 보며 시의 길을]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을 헛것 씌웠다고 합니다. 저는 시를 사랑하고 읽고 쓰고 하는 일들이 헛것 씌운 사람들의 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 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헛것에 투자할 줄 아는 삶이라는 게 정말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거야말로 시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 전에 문학주의자나 언어주의자였던 아이가 나중에는 그런 문학을 팽개치고 이 세상을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가 지금은 다시 시로 돌아오고 싶은 '너에게로 또다시' 처럼 죽는 날까지 시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좋은 삶과 문학 중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하면 좋은 삶을 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후배들을 만나도 "너무 시 열심히 쓸려고 하지 마" 어깨를 탁탁 두드리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시가 잘 쓰여지겠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바꾸어서 "삶도 중요하지만 정말 문학을 하려면 헛것에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 된다. 헛것에 투자를 할 줄 알아야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김학성]

참 시가 좋와요 !정신을 촉촉하게 와닿으니 말이요!!
그런데 양선생님언어 특징 중에 자궁 이라는 단어가 늘따라다니는 것을 볼수있어요??

[김학성]

헛것~~그것은 무의식의 세계가 아닐까?~~~보이지않는것~~의식 저 속에 감쳐진것?
황순원 선생님은 자꾸 자기 머리에다 곡갱이 질을해서 자신을 감춘 무의식세게를 파헤쳐야 한다고햇어요
끄집어내서 갈고 갈고닦고 개발해야하다고햇어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