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은혜
김선영
엄마는 머리에 게란 보따리를 이고 다니며 파는 행상 이였다
그날따라 아홉 살 난 어린 딸은 엄마와 동행을 했다
어느 부잣집 큰 쓰레기통이 있어 모녀는 그 위에 계란 보따리를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는데 마침 그 집 가정부가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비켜 달라며 금방 긁은 듯 한 누릉지 한 조각을 버리고 들어갔다
모녀의 눈이 마주쳤다 딸은 무의식적으로 그걸 주워들었고
엄마는 보자기를 풀어 그걸 쌌다 냉수 한사발로 아침을 때운 모녀에겐
그건 밥 같은 식량이었다 “엄마, 그 보따리 내 머리에 이어 줘“ 그러나
보따리를 이자마자 딸은 주저앉는다 “그래도 오늘은 네가 있어 힘이 난다”,
무거운 임질을 하면서도 빙그레 웃는 엄마 어느 구멍가게 앞 엄마는
건빵 두 봉지를 샀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건빵 봉지 입구를 가위로 자르더니
물을 부어준다 딸이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본다 “배도 부르고
목이 메지 않아 먹기도 좋다 “며 ”너도 먹어보라.“고한다
엄마는 늘 이렇게 퉁퉁 불은 건빵으로 허기를 채우곤 했다
다소 부끄럽지만, 위에든 모녀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내 어머니와 그 맏딸인 내 이야기이다
셰익스피어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안 부르고 ’엄마‘ 라고 부른다
엄마는 이렇게 살림에 보태려고 어린 딸 원피스를 사주려고
머리 정수리가 헤져 대머리가 되도록 당신의 고개가 한쪽으로
이상하게 기울어지도록 행상을 하시며 늘 이렇게 어렵게 사셨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나는 어쩌다 홍역에 걸려 앓게 됐는데
그때 우리 아버지는 나를 매일 학교까지 업어다 주시고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다시 오셔서 집까지 업어 오셨다
그 난로 같이 따뜻하고 바다같이 넓은 고마운 아버지의 등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내 어렸을 때 너무 곱디고운 어머니의 모습, 한번은 어머니가 반다지 옷장 앞에서
왠지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 왜 울어?” 하고 내가 물으니까
:네 왜 할머니 생신에 입고갈 옷이 없어서 그런다.“ 엄마의 그런 대답을 듣고
어린 내 소견에도 변변한 옷 한 벌 없는 어머니의 가난이 얼마나 가슴 찡 했던지
솔직히 나는 어려서 아버지가 속옷만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아버지는 잠도 안 주무시고 불개미 같이 일만 하시는 분으로 알았다,
그렇게 담배 한 대 술 한 잔도 멀리한 채 허리띠 졸라매시고 불개미같이
일만하신 아버지,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송구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내가 결혼하던 날, 우리 어머니는 딸을 보내는 서글픈 마음 탓인지
“얘, 결혼식장에서도 우리 서로 보지말자!” 이런 말을 하셨다“ 원피스도 싫어요,
호떡도 싫어요, 빨리 계란 팔고 집에 가요,“ 이렇게 보채던 철부지 딸이 커서
아무리 결혼을 한다고 하여도 고운 정 미운 정이 들대로 든 맏딸과의 이별은
너무 큰 슬픔이요, 충격이기에 엄마는 이런 말씀까지 하셨을 겄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불효막심한 딸은 효도는 고사하고 자식까지 낳아서
키워달라고 맡겨 드렸으니, 이건 자식으로서 잘못을 해도
한참 잘못한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무런 내색도 안하시고
외손을 잘만 키워주신 할머니시다
내 어릴 적에는 유독 우리 집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은 다 가난하게 살았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우리 부모는 자식들 앞에 결코 거짓말을 하시거나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장군 아버지 밑에 장군 아들 나온다,’ 고 이렇게 거짓없는 진실로 인생을 사시고
귀감이 될 만한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주신 어버이 덕분에 지금도 우리 남매들은
올곧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본다,
솔직히 부모님 사시는 곳이 멀어서 자주 못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바빠
친정 근처에까지 가도 부모님을 뵙고 오지 못할 때도 있다, 최근에 시를 공부해서 시인으로 등단한 딸이기에 그 딸이 쓴 시를 들고 가서 부모님을 한 번씩 껴안아 드리고
그 시를 한 두 편이라도 읽어 드리면 그렇게 좋아 하시는데 그 일도 뜻대로 자주 못 한다
어쩌다 친정에 가면 부모님은 큰 딸에게 시를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교수님이란 말보다
선생님이란 표현을 더 좋아하신다,)이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그 얼마 안 되는 노령 연금에서
“선생님 뭐 사다드리라,”고, 그리고“ 네 학비에 보태라,” 고 돈을 쥐어 주신다
그러니 부모는 세월이 가도 자식 앞엔 바다 같은 어버이 마음 그대로시다
반포지효(한자)란 말이 있다 까마귀 새끼가 커서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준다는 데서 나온 말로, 자식이 커서 늙은 부모에게 봉양하는 효심을 말한다, 아직
부모에게 용돈이나 타 쓰는 이 딸은 언제나 그런 효성스런 새가 될 것인지 정말 부끄럽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는 말처럼, 아무리 부모의 은혜를 갚아본다고 해도
자식은 그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갚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부모님 보다 더 훌륭한 하늘로부터 받은 은총은 없다고 본다, 이제 아니도 드셨지만 너무 수척해지신,
또 가끔은 앓아누우시는 부모님, 그래서 번쩍 안아 드려도 너무 가벼워지신 두 분을
뵐 때 마다 지난 세월이 너무 야속하고 그 크신 은혜에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난다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어긋난 덕이요,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공경하는 것은 어긋난 예이다’효경(한자)에 있는 말이다,
일찍이 부모님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걸음걸이가 무엇인지를 배운 나.
마침, 내일은 그 학교에 가는 날이다 그러니 아직 철이 덜 난 이 딸은 공부하고 나서 오후에는 사랑 꽃 한 아름이라도 안고 부모님을 꼭 찾아뵈어야 하겠다.
첫댓글 엇 그제 같았는데 어머니는 요양원에 아버지는 침해에 눈물만 쏟아지네요
그냥 울고만 싶어 짐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입에 담았다가 내 뱉을때
눈 시울 안 그렁거릴 사람 그 누구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