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에서 고 하지혜양의 아버지 하택환님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였는데 그 2부입니다
아버지의 노력과 집념으로 범인까지 검거하는데요
여기서 한가지 더 눈여겨 보셔야 할것은 피해자의 집안도 속칭 부잣집이라는겁니다
제일기획 이사면 삼성의 임원급입니다
거기서 나와서 중소기업도 창업을 했구요
한마디로 짱짱한 인맥에 탄탄한 자금력이 확보된 집안이죠
그래서 경찰이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다는게, 사실 분노하기 앞서 엄청 놀라운겁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재벌들이 갖는 보이지 않는 유착관계의 힘이 상상불허라는거도 느끼고요
재벌들이 보기에는 이정도 부잣집도 천한것들로 여기는데 정말 서민인 우리를 보면 어떻겠어요?
다 그런건 아닐거지만 이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그럼 이야기 게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혜양의 배려심은 남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배려심은 이 비극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죠
"애가 공부를 얼마나 악착같이 하려는지, 올해 초 허리가 아파 한방병원에 입원 했을 때 밤에 병원에서 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옆의 노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의사에게 말해서 밤에는 집에 와서 공부하고 새벽에 다시 병원에 돌아가 입원하고 그럽디다"
거실 한구석에는 河양이 아픈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짬짬이 누웠을 척추 마사지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피살된 직후 언론의 보도를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제한된 정보 때문에 일부 언론이 이 사건이 「치정관계」나 「삼각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어요. 이제야 진실이 거의 드러났지만 아직도 이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명백백 전말을 밝혀 그동안 고통받았을 딸아이의 학우들과 딸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오해를 풀어야만 내 딸이 곱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가 영남제분 윤길자의 행동을 알게 된것은 어이 없는 한통의 전화였다
2001년 3월26일, 윤길자는 사위가 근무하는 서울지법 서부지원 빌딩을 찾아가서 사위에게
"네 사촌동생이 네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내가 나타나자 황급히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장모가 워낙 강하게 주장하는 지라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촌동생 집에 확인 전화를 걸었고
이 전화를 이모가 되는 하지혜양의 어머니가 받았다.
이 전화통화에서 김현철 판사는 장모가 이모님과 사촌동생이 일본에 갔다 온 것은 물론, 그간의 행적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말을 전했고 이에 심각성을 느낀 지혜양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을 전하였고
아버지와 윤길자의 현장 검증으로 이어졌다.
서부지원에서 윤길자는 하지혜양의 걸음걸이를 10여 차례나 흉내내며 "내가 분명히 당신 딸을 이곳에서 보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尹여인은 벽에다 손을 모으고 "부처님, 내가 말한 것이 거짓말이면 내 자식에게 벌을 주소서"
하며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윤길자에게 딸을 보았다는 그 시간에 딸은 집에서 같이 식사를 했을 뿐 아니라,
딸은 서부지원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11시쯤 하지혜양 가족 모두가 서울 청담동 감 판사의 집(윤기자의 집)에 찾아 갔다.
모든 가족이 있는 데서 3자 대면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아버지는 외조카인 김현철 판사에게"장모가 주장하는 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확실히 말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김현철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이런 애매한 태도가 윤길자의 의심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후에 김현철의 진술을 받은 광주경찰서 한 관계자는 "이날김현철이 '장모님,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하고 한 마디만 딱 부러지게 이야기했어도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현철은 언론에 인터뷰도 모두 거절하고 침묵만을 지킬뿐이었다
이 무렵, 하지혜양은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에서도 괴전화가 걸려오고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또한 자신을 미행하는 남자가 있음을 눈치채고 그와 일부러 부딪쳐서 "왜 미행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윤길자의 돈을 받고 미행한 「청부미행자」는 전ㆍ현직 경찰 일곱 명을 포함, 심부름센터 직원, 경호업체 직원, 윤길자의 조카인 운전기사 등 무려 27명에 이르렀으며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기 위해 구입한 휴대폰도 네 대나 되었고, 미행에 사용한 금액은 5000만원 가량으로 밝혀졌다.
윤길자가 직접 자신이 하지혜양이 사는 아파트 경비실에까지 와서 동태를 묻고 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무슨 좋은 혼사가 들어오는'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미행과 감시가 계속 되는 동안 아버지는 2001년 3월에 벌어진 다툼 이후 가족간의 오해를 풀려고 윤길자의 남편인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에게 직접 항의를 하는 등 3개월을 노력했으나 상대편이 성의를
보이지 않아 결국 6월에 윤길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윤길자는 7월, 검찰에 의해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걸로는 불안했던 아버지는 좀 더 확실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그해 10월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피해자인 하지혜양은 12월에 허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기숙사를 나왔고 이듬해 2월에는
본격적인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다.
모든건 정상으로 돌아간듯이 보여졌다
그러나 윤길자의 집념은 끝난것이 아니었다.
집과 하지혜양의 휴대폰으로 괴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다.
불안해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접근금지 결정까지 났는데 너무 신경이 과민한 것 아니냐"며 달랬다.
아버지의 위안에도 불안하기만 했던 하지혜양은 어머니와 함께 강남경찰서를 찾아 가서 도움을 요청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납치는 한번에 이루어진게 아니었다 범인들은 납치를 위해 3월2일, 5일, 두 차례 아파트 앞에서 잠복했으나 실패했고 3월6일 새벽 5시47분 세 번째 잠복 끝에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건 이후 경찰 조사과정에서 하지헤양의 아버지 진술에 의하면 더 놀라운 일도 있었다
시건 이후 4월8일경, 아버지는 작년 말에 자기에게 사업을 같이 하자며 접근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경찰에게 말한다
"작년 말 김기준(김용기의 가명)이란 사람이 나에게 접근을 해서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재산이 50억원 가량 있는데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습니다. 이 사람 말이 횡설수설하고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범죄형같이 생긴 것이 도무지 사업을 할 행색이 아니었어요"
이 사람은 '영국에서 온 옷이 인천에 와 있는데 같이 가자' '일본에 같이 가서 프랜차이즈 사업성을 알아보자''부산에 투자자가 있는데 같이 가 보자'는 등 몇 번이나 호의적인 제의를 하며 동행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제의를 쉽게 거절할 수 잇었다고 한다.
"나중에 일이 터지고 보니 이 자들이 나를 납치하려고 하다가 잘 안 되니 계획을 바꾸어서 딸을 납치한 것 같다"
이 진술은 수사의 방향을 급진전시켰다. 이 무렵, 광주경찰서는 하지혜양이 성남의 검단산 인근에서
살해되었다고 판단하고, 감금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장소를 찾기 위해 강력반 3개 팀을 투입해서
인근 지역에 있는 수천 개의 별장을 탐문 조사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은 그 남자가 주었다는 명함의 앞뒤 번호를 조합하여, 그 번호로 전화를 개설한 사람들을 추려냈고 인상 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가려냈다.
그러자 곧바로 김용기(40)라는 인물이 용의자로 지목됐다.
경찰이 파악해 본 결과, 김용기는 1년째 집세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백수였다
그리고 김용기의 전화통화 내역을 확인해 보니 납치 당일 피해자의 집 부근에서 새벽 4시경부터 통화를 한 것이 확인 됐다.
김용기를 추적하자 윤남신이라는 인물이 나왔고 둘은 같은 고향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리고 윤남신은 윤길자의 조카였다
경찰은 6일 만에 납치에 가담한 주변인물에 대한 신상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이미 윤남신과 김용기는 3월22일과 4월2일 베트남 등지로 도주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후 4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김용기에게 공기총을 사준 자, 범행 후 공기총과 실탄을 보관하고 있던 자, 납치에 가담한 자, 납치를 준비한 자 등 일곱 명을 검거했다.
그러나 납치에 직접 가담한 자들은 자기들은 납치만 도왔을 뿐, 최종적으로 납치해서 태우고 간 사람은
김용기와 윤남신이라고 주장하며 윤길자를 모른다고 진술했다
아버지는 소중한 딸을 죽인 범인들을 잡기 위해 6월 중순 직접 베트남에 들어갔다.
베트남에는 도망간 윤남신의 아버지이자 윤길자의 남동생이 봉제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그 쪽에 숨어 있을 것이란 판단하고 직접 들어간 것인데 일주일 만에 큰 성과 없이 돌아왔다.
그리고 경찰은 8월20일 윤길자를 납치 및 감금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윤길자가 자신의 운전기사 서모(44)씨에게 베트남으로 달아난 윤남신과 만난 사실을 부인해 달라며 700만원을 주는 등 하지혜의 납치에 관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초기 윤길자가 잠적하는 바람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경찰이 탐문 끝에 찾아낸 곳은 부산의 한 병원이었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에 나섰으나 환잔실로 뛰쳐들어가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쓰러져서 반신 불수가 되면 당신들이 책임지겠냐"하며 완강히 저항하였다 한다
아버지는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건 발생 후 4~5개월이나 숨어다닌 것은 스스로 죄를 자인한 것이다곧 모든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나머지 범인 두 명이 잡히지 않아 초조하다"고 하며
"보통의 원한 같으면 그 자리에서 죽일 것 아닙니까. 자기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딸아이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문을 했겠죠. 면전에 나타나 핍박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베트남 현지 경찰과 교민사회, 인터폴과의 공조 요청 등사력을 다한
결과 마침내 2003년, 중국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고, 중국 공안이 적색 수배 대상 국제 범죄자인
조카 윤남신과 김용기를 체포하여 강제 추방 조치, 국내로 압송 조치하게 된다.
5부는 고 하지혜양의 오빠 이야기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하지혜양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삼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