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교회: 현대과학에 개방적인 공동체>
오래전 상영된 영화 중에 저메키스 감독의 <컨택트>(Contact, 1997)라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라고 하는 주제를 다룬 것이다. 그 이전에도 외계인과 인간의 조우를 다룬 영화들은 종종 있었지만, 과거와 달리 그 영화는 보다 진지하게 그 문제를 성찰하였다. 영화의 대사 중에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위트 있게 설명한 천문학자 주인공(조디 포스터)의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넓은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낭비가 아닐까요?”라고 말이다.
그런데 필자에게 이 말 못지않게 더 기억에 남는 말은 조디 포스터의 연인이자 경쟁자로, 특히 과학자가 아니라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등장한 매튜 매커너히의 말이다. 그는 신학자로서 조디 포스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나 신학 모두 진리를 추구하는 하는 한에서는 모두 비슷하지 않나요? 따라서 과학과 신학은 외계인과의 조우가 과연 진실인지를 밝히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다. 과학자와 신학자 그 둘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신학자 매튜 매커너히가 신을 믿는다고 하여 외계인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든가, 혹은 인간이 외계인보다 더 우월하다든가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디 포스터가 과학자라 하여 과학이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영화 속에서 다행히 그들은 함께 외계인과의 조우라는 모험을 겪으면서 인류 진보를 위해 함께 손 맞잡고 나아갔던 것이 필자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실 2017년 교계의 한 언론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는 약 200만 명 정도가 소위 ‘가나안신자’라고 한다. 전체 1천만 명의 기독교인 중 약 20%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명목상 기독교인인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신자가 되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에 의하면, 그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진화냐 창조냐’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보여주듯이, 한국교회가 현대과학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행인 것은 현대과학과 신학 관련의 학술대회나 신학강좌들이 심심치 않게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여기서 논의되는 학계의 목소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에서 소개한 영화 <컨택트>의 대사에서 나오듯이, 현대과학과 신학(교회)이 과거처럼 서로 대립하기 보다는 앞으로는 진리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존재로 서로를 인정하자는 의견이다. 그래서 그 양자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 관계, 곧 서로에게 가까운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사실 프로이트는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겪었을 교회의 충격을 일찍이 다음과 같이 암시한 바 있다. “인류는 역사상 두 차례에 걸친 과학적 발견에 의해 우주에 있어서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방대한 규모의 우주계 안에서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이고, 또 하나는 진화론에 의해 신의 피조물로 인식되던 인간의 특권이 강탈당하고 동물계의 한 후손의 자리로 격하되었을 때이다.” 이처럼 현대과학의 발전은 교회에게 큰 충격이었고, 지금도 그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는 이러한 대립을 조속히 끝낼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의 탐구자로서 교회와 현대과학이 함께 협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는 보다 더 실제적인 문제로써 우리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와 현대과학이 속히 협력해야 한다고 학계는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과학과 교회가 서로 적대시하면 할수록 인류는 더욱 파멸의 길로 치다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편리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생태계의 파괴나 인간성의 상실 등의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동시에 종교는 현대과학의 무지로 인해 신자들에게 정신분열증적 사고를 갖게 만들고 또 종교를 미신화해 가고 있다. 따라서 학계는 양자 모두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인류에 큰 도전이 되고 있는 ‘인간복제’의 문제나 ‘AI’(artificial Intelligence)로 불리는 ‘인공지능’의 문제는 과학자들과 종교인들의 긴밀한 협력이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우리 신앙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자명하다. 그것은 교회가 현대과학에 개방적 공동체가 됨으로써, 우리의 자녀들에게 기독교신앙과 함께 현대과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비록 기독교신앙과 현대과학이 자신의 고유성을 주장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처럼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할지라도, 교회는 현대과학과 쉬지 않고 대화하며 더불어 진리를 찾아 함께 떠나는 공동의 파트너가 됨으로써 더욱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풀기 위해 현대과학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교회는 인류복지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주간기독교, 2149호, 2018.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