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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낳은 서정시의 금자탑
구해연 첫 시집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
김 전(시인, 문학 평론가)
1. 깊은 사유와 감각적 언어로 길러 올린 서정시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집을 대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 작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해연 시인의 첫 시집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를 읽고 있으면,
내 몸과 마음이 촉촉이 젖는다. 제목처럼 서정시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시집이다.
좋은 시는 감성이나 사유, 감각이 얼마나 새로운가에 따라 그 시
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모름지기 시란 창의력과 상상력을 얼마나 새롭게, 개성 있게 표현 하느냐가 관건이다. 구해연 시인의 작품은 여기에 부합한다.
구해연 시인은 뛰어난 시적 감각과 탁월한 언어 조탁 능력을 갖춘 시인이다.
아무리 멋있는 수사일지라도 내용이 비어있으면 독자는 한눈에 알아보게 된다. 구해연 시인의 작품집에서는 알이 꽉 찬 배추처럼 부족함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오랜 교직 생활과 연륜에 반듯한 이미지까지 더해서 시 속에 녹여내고 있다. 연륜에서 이루어 낸 곰삭은 맛과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시집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는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언어를 세공하는 섬세한 내공이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작품집이다. 작품 곳곳에서 담백한 시적 사유가 눈길을 끈다. 복잡하지 않은 구조 속에서 주제를 부각하는 표현력이 남다르다. 시인의 생활 태도는
그 성품에서 인격에서 비롯되며, 사물을 보는 안목을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작품집에 수록된 시 속에는 생활 현장에서 진지한 사색을 통해 창작한 작품인 만큼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도 돋보인다. 한 작가의 작품을 두고 이미지의 창출이나 표현, 언어의 역량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객관적 입장에서 느낌을 가감 없이 서술하고자 한다.
2. 개성적인 사유의 얼굴을 보다.
빗장 없는 산사에
문을 밀고 들어선다
시간은 멈춘 듯 적막하고
흰 고무신 두 짝 댓돌 위에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
참선한다
추녀 끝 풍경은 바람에
몸 때려 울고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낸다
밤엔 골짜기에 널려 있는
달빛과 별빛은 고요히 흐르고
백팔 계단 오르내리며
번뇌 끊으려 애쓴다
산사의 새벽
정갈한 참승의 비질 소리에
마음의 땟자국 쓸어버리고
침묵의 아침을 맞는다.
「산사에서」 전문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사의 풍경을 묘사하며, 참선과 자기 성찰의 과정을 담고 있다.
적막하고 고요한 산사에서의 시간은 멈춘 듯하며, 풍경 소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일상의 번뇌를 벗어나려는 시인의 노력이 돋보인다.
산사의 새벽, 참승의 비질 소리는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상징이 다. 침묵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깨달음과 평온함을 상징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자연과의 조화, 내면의 평화를 강조하 며 번뇌를 끊고자 한다.
산사에서 참승의 비질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간결한 표현 속에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와 자연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깔끔한 작품이다 개성적인 묘사로 나타낸 부분은 ‘빗장 없는 산사에/문을 밀고 들어선다’
“흰 고무신 두 짝 댓돌 위에/ 정갈한 모습으로 앉아/ 참선한다.” 이 구절에서 서정시의 진수를 보게 된다. 시적인 묘사가 독특 하다.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나타난다. 시를 끌고 가는 힘도 예사롭지 않다. 좋은 시는 남과 다른 나만의 묘사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구해연 시인은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뙤약볕 앞세우고
찾아온 무더위
파도는 뜨거운 몸짓으로 다가와
갯바위에 던지고
돌아보지 않는다
바람은 바다 냄새를 가져다
내 코끝에 전하고
허공을 이리저리 꿰매는
갈매기처럼
바다와 하늘이 마주 보는
공간 안에 안기고 싶다
노을은 바다에 물들였다 가고
수평선 아득한 그 너머까지
어둠에 묻히면
등대는 불을 켠다
밤새 뒤척이던 파도는
모래밭에 그림 그려놓고
바닷가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보듯
내 영혼까지 헹군다
인생도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듯
우리의 삶을 닮은 것 같다
「인생도 파도처럼」 전문
바다와 자연을 통해 인생의 흐름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첫 연에서는 무더위와 파도의 뜨거운 몸짓을 통해 여름의 강렬함
을 느끼게 하며, 바다와 하늘의 조화로운 공간에서 안식하기를 갈 망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노을과 등대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는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연에서는 파도가 모래밭에 남긴 그림을 통해 인생의 순간 들이 쌓여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며, 인생도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변화무쌍함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덧없음을 동시에 느끼게 하며,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끌어내는 작품이다. 바다와 파도를 통해서 인간의 고뇌를 내면 깊숙이 나타내고 있다 세상 혹은 삶을 사각의 틀 속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언어화하는 기법이 이채롭다.
‘바닷가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보듯/ 내 영혼까지 헹군다.’에서 바다와 파도를 자신으로 시점으로 옮기고 있다. 촌철살인의 교훈을 주고 있다.
인생 여정과 삶의 참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바다와 파도를 상관물 로 삼았다.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손안에 작은 기기 하나가
세상을 바꿔 놓았다
입은 닫고 손가락이 열렸다
웃게도 하고 화나게도 한다
삶을 삭막하게 하는
무서운 물건
사람 사는 냄새가 없다
종이와 잉크 책이
풍기는 냄새도 이제 그것마저
아날로그 유산이 되었다
느리고 잔잔하면서 포근한 느낌
가끔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다
세상이 딸꾹질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다」 전문
이 작품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와 그로 인해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감성을 묘사하였다. 손안의 작은 기기가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현실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천지가 열린 듯 갑자기 디지털 세상이 열렸다. 아날로그로 살아왔던 구세대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편리하고 빠른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독서를 즐기며 가끔 손 편지를 써서 소식 전하던 그때가 그립다. 인간미가 넘치던 그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른 세대에서 쉽게 공감이 가는 작품이다.
사람 사이에 오가던 온기가 사라지고 인간 냄새도 같이 사라져
갔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디지털 기기는 웃음과 기쁨, 분노 등 인간의 감정을 쥐락펴락 조종한다. 인간은 속도감이나 편리함에 끌려 그 기기에 빠져들게 된다.
마약에 취한 듯 인간 세계는 온통 디지털 문화 일색이다. 손안에서 세상을 보고, 책을 읽고 쇼핑도 한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디지털 기기는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 갔다. 바로 그 귀한 인간미를 가져가 버렸다. 구수한 숭늉 같았던 인간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종이와 잉크로 인쇄된 책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의 따뜻함과 느림, 그리고 포근함이 그리워지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시인은 디지털 세계가 주는 편리함과 효율성 속에서 가끔 아날로그 시절의 느림과 잔잔함을 그리워하고 있다.
“세상이 딸꾹질하고 있다”는 표현은 빠르게 움직이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혼란을 은유적으로 나타내었다. 개성적인 표현이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미와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향수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에 따라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부르는 작품이다.
기계화되어가고 물질 만능 시대로 변화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개성적으로 끌고 나가고 있다.
거친 삶 가운데
하루 마감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니
가로등도 힘들어 보인다
담 모퉁이 바퀴 없는 포장마차
갓 없는 백열등은 어둠 삼키며 졸고 있고
삶의 이야기들로 차 있는 공간
따뜻한 국물에 마음 녹인다
외로움과 고달픔을 털어놓으며
소박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술잔의 주기가 넘쳐흐르면
각자 이야기들은 밤거리를 달리고
가물가물한 의식은 안갯속을 헤매듯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술잔을 권할 넉넉한 마음이다
희미한 불빛에 타들어 가는 시간은
까만 밤으로 점점 익어가고
천막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귓가에 머문다
비 오는 날
포장마차는 고달픔을 털어내는
그리움이다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는 거친 삶 속에서 작은 위안을 찾는 공간으로서의 포장마차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하루를 마감한 주인공의 ‘무거운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힘겨운 삶의 여운이 그대로 묻어난 이 장면은 ‘가로등도 힘들어 보인다’라는 의인화법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화자는 어둡고 쓸쓸한 밤거리 속에서 삶의 고단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포장마차는 단순한 먹거리 공간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들로 차 있는 공간”, ‘소박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국물 한 모금에 마음을 녹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움과 고달픔을 털어놓는 모습은 도시의 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특히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술잔을 권할 넉넉한 마음’이라는 표현은 술자리에서의 해방감과 포장마차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비 오는 날/ 포장마차는 고달픔을 털어내는/ 그리움이다”라고 마무리했다.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작으로 단순한 공간을 넘어 정서적 위로의 장소로서 포장마차를 형상화한다.
포장마차에서 나누는 한 잔의 술, 한 마디의 대화가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 시는 소박한 언어로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깊은 감성을 전달한다.
비 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느낄 수 있는 쓸쓸함과 따뜻함이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충돌돠 경쟁, 피할 수 없는 만남을 흔히 접할 수 있는 상관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기운을 손끝에 모아
백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긴 수염으로
까만 살점 토해내며
백지 위에서 춤을 춘다
진한 먹물과 연한 먹물로
생명력 넘치는 꿈틀거림
찍고 누르고 흔들며
까만 몸 굴린다
한번 움직이면
산이 되고 강이 흐른다
여백을 남기면서
헤엄치듯 다닌다
「붓」 전문
이 작품은 붓과 먹을 사용해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붓을 다루는 행위가 백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로 묘사했다. 진한 먹물과 연한 먹물을 사용해 다양한 색감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붓의 움직임이 드디어 산과 강을 만들어 냈다.
창조적 상상력으로 구체물을 의인화하여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사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구체물을 서정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언어의 조탁 능력이 탁월하다. 마치 붓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한 편의 시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스며든다.
서정시의 표현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힘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시의 각 행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붓의 춤과도 같은 움직임이 백지 위에서 펼쳐지며, 여백을 남기면서도 풍부한 표현을 보여주는 시의 흐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 시는 예술 창작의 순간과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생명력, 그리고 여백의 미를 잘 담아내어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예술의 본질과 창작의 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의 체험을 통해서 나타낸 작품이며 개성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붓을 통하여 내면세계와 역동적 미를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번 움직이면/ 산이 되고 강이 흐른다” “여백을 남기면서/ 헤엄치듯 다닌다.”
이 시의 주제가 되는 부분이다.
앙상한 가지 끝으로
휘파람 불듯 바람이
빈 내장까지 흔들어
내 곁에 슬며시 와 앉는다
바라는 꿈들 허공에 떠돌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세월이 얄밉다
어느새 돋보기 친구는
콧잔등에 날렵하게 앉아 있고
기억들 길 잃은 채 허우적인다
마음속 거울을 닦아 보지만
또 흐려진다
고장 난 시곗바늘처럼
가다 서서 머물고 또 가다 주저앉는다
마른 삭정이 같은 가슴 되어
모든 것들 저만치 가고 있다
훗날 나의 뜰 노을이
찾아 들면
한 그루 나무 되어서
속으로 심지 돋우어
그 자리를 지키고 싶다
「나의 뜰에 노을이 찾아들면」 전문
세월의 흐름 따라 찾아든 고독과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시의 첫 부분에서 “앙상한 가지 끝으로”라는 구절은 생명력의 상실과 고독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바람이 빈 내장까지 흔들다. 는 표현은 외로움과 공허함을 강조하고 있다.
“바라는 꿈들 허공에 떠돌고”라는 구절은 희망과 꿈이 현실에서 멀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절대 고독 속에서 허무, 공허, 그리움 등 내면에 잠자고 있던 자아가 고개를 든다.
“세월이 얄밉다”는 표현은 그 대표적인 감정이다. 저녁노을을 보면서 인생의 황혼을 맞은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사물처럼 기억력도 희미하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시간의 무상함과 그로 인한 불만을 드러낸다.
이러한 감정은 시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기억들 길 잃은 채 허우적인다”라는 구절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는 “훗날 나의 뜰에 노을이 찾아들면”이라는 희망적인 구절로 전환된다. 이는 고독과 상실의 감정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 그루 나무 되어서”라는 표현은 안정과 지속성을 상징하며,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고독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희망을 탐구하며, 독자에게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내면을 성찰하며, 결국에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시의 힘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늘을 쳐다보니
말을 건다
애착을 놓아야 한다고
손안에 쥐고 있던 모든 것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부모님도
갈 길로 간 자식들도
내 젊음도
세월 따라 모두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행복했던 날들은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끊임없이 일렁이는
저물녘 바다가 되어 있다
올해 십이월의
붉은 달마저 지고 나면
추운 가슴속엔
허기진 마음만 남는다
「세월이 안겨준 슬픈 일들」 전문
이 작품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손안에 쥐고 있던 것들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고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또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을 우러러 그 하늘과 하나 되어 말을 걸고 감정을 이입한다.
시 쓰기는 개인적인 일이나 인쇄를 통한 발표라면 개인을 벗어나게 된다. 이는 타인의 가슴에 다가와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노력에 따라 감동의 크기도 달라진다.
시 전반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덧없는 세월이 흐름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절절하다.
부모님 떠나보내고, 자식들도 짝을 찾아 제각각 떠났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월이 젊음도 가져가 버린 것이다. 감정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곁에서 보고 있는 듯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행복했던 날들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고, 저물녘 바다가 되어 있는 모습은 시인이 느끼는 쓸쓸함과 공허함을 나타낸다.
특히, “올해 십이월의 붉은 달마저 지고 나면 추운 가슴속엔 허기진 마음만 남는다”는 구절은 깊은 슬픔과 허무함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생의 덧없음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느끼는 상실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화자는 애착을 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인생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받아들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부모님도/ 갈 길로 간 자식들도/내 젊음도/ 세월 따라 모두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여기서 인생의 허무감을 극대화했다. 구해연 시인은 시어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온 세상 꽁꽁 얼었다
차가운 바람에
가로등 불빛도 얼어서 흔들린다
겨울나무는 다 내려놓고
빈 몸으로 당당히 서 있는데
여윈 나뭇가지 흔들림에
몸의 폐부 깊은 곳을 찌른다
세월은 소리 없이 나에게
매질하며 따라오라 손짓하고
내 속엔 서툴고 익지 못한 시어들 웅크리고 앉아
숙성되지 않은 채
여윈 가지 흔들리듯
바깥세상 나오려 안간힘 쓴다
저문 시간 사이로
하얗게 피어나는 이야기들
어떻게 색칠해야 하는 생각에
오늘도 헛웃음으로
허공만 긁는다
「어설픈 내 언어들」 전문
이 작품은 겨울의 차가운 풍경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다.
첫 연에서는 얼어붙은 세상과 그 속에서 흔들리는 가로등의 불빛을 통해 외부 세계의 고요함과 불안정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겨울나무의 모습은 비어있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존재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매질하며 따라오라 손짓하고’라는 구절은 시간의 압박을 느끼는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서툴고 익지 못한 시어들’은 창작의 어려움과 불안함을 나타내며, 여윈 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은 그 불안정한 상태를 더욱 강조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하얗게 피어나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새로운 가능성과 창작의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 ‘어떻게 색칠해야 하는 생각에’라는 구절은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 고민과 망설임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허공만 긁는다’는 표현은 이러한 갈등과 불안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겨울의 차가운 정경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창작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구해연 시인은 작품의 늪으로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독자 역시 작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되돌아보게 된다.
시의 언어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겨울의 정적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깊은 것을 찾아내고자 한다.
늘 고민하면서 창작하는 작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월의 호젓한 들 길
향기 안고 하얀 미소 지으며
나를 반긴다.
연한 가시로 온몸 감싸안고
얼기설기 덤불에 둥지 틀어 앉아
앙증맞은 작은 꽃으로
해맑은 웃음 지으며 반기는
순백의 사랑이다
아련한 추억
고향 불러오는 향기
찔레는 우리를 유혹하며
배고플 때 따서 먹던 꽃이었다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
세월은 나를 이만큼 데려다 놓고
바람에 실려 온 향기는
그리움 되어 나를 가두어 놓는다
햇살 쏟아진 들길에 핀 찔레꽃
언제나 그리워지는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니 같은 꽃이다
「찔레꽃」 전문
이 작품은 오월의 평온한 들길에서 느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다.
찔레꽃은 순백의 사랑과 향기, 그리고 고향의 아련한 추억을 상징하며, 시인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연한 가시와 작은 꽃으로 이루어진 찔레꽃은 순수하고 따뜻한 사랑을 의미하며 평온함을 상징한다.
찔레꽃을 따서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시인에게 있어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는 그리움을 자극하며, 시인은 그 향기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구절에서 찔레꽃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며, 언제나 그리운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시는 자연과의 조화,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움과 사랑을 아름답게 담아내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시인의 감정과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다.
한마디로 상큼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
짓궂은 바람이 몰래 와서
몸을 두드린다
놀란 물고기 한 마리
처마끝 종을 업고 매달려
세상 내려다 본다
바람의 언어로 내는 풍경소리
아픔 도려내고 걷어 내는 소리다
바다 떠나온 물고기
그곳이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
바다 같은 푸른 하늘 보며
파도의 울움을 되새겨 본다
몸뚱이에 녹슨 비린내
바람에 떨어지고 그리움 안고 매달려
마음껏 헤엄쳐 다니던 그 바다를 생각한다
눈 아래 세상 초록 바람이
잔잔한 물결로 일렁이고
그리움들 스쳐 가는 바람에 실어 보낸다
오늘도
처마 끝에서 종을 업고 매달려
바람의 언어로 소리 내며
세상 내려다본다
「풍경이 된 물고기 소리에 젖다」
산사 처마 끝에 매달려 풍경소리를 내는 물고기를 보고 수준 높은 문학 작품으로 창조해 냈다. 놀라운 관찰력이다. 시인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대상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감정 이입을 통해 재구성하게 된다. 시상을 펼치는 솜씨나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이 시는 바람과 풍경, 물고기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떠남과 그리움, 그리고 삶의 성찰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의 첫머리에서 ‘짓궂은 바람이 몰래 와서 몸을 두드린다.’라는 표현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이는 운명적 변화나 시련을 예고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울리는 풍경 소리는 ‘아픔 도려내고 걷어 내는 소리’로 표현되며, 단순한 울림이 아니라 정화와 치유의 의미를 지닌다.
이 시에서 물고기는 처마 끝에서 종을 업고 매달려 있다. 이는 자신의 본래 자리(바다)를 떠나 어쩔 수 없이 다른 공간에 머무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바다 떠나온 물고기 그곳이 가슴 저리도록 그리워”
이 부분에서 물고기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온 사람, 혹은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제 물고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울리는 풍경이 되었다. 그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리움과 지난 시간의 흔적이 스며 있다. 특히, “몸뚱이에 녹슨 비린내 바람에 떨어지고 그리움 안고 매달려”에서 시간이 흐르며 변해가는 존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때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물고기는 이제 처마 끝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이 시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존재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단순한 사물의 관찰을 넘어, 삶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떠나온 공간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재 머무르는 자리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서걱거리는 늦가을은
널브러져 있고
바람에 그네 타며 오락가락한다
몸은 점점 여위어 가고
침묵 속에 긴 그림자 되어 서 있는 사이로
거센 바람 소리 지르며 달려든다
언제쯤 내 운명이 바뀔지 모르는 삶
불안을 안고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
그늘과 양지에서 푸석푸석 한 채
아픔 안고 매달려 몸살 앓고 있다
긴 시간
목 잘린 채 함께했던 친구들
아픔 나눈 그때의 잔향은 남아 흐르고
알몸으로 매달린 채
오늘도 바람에 뒤척이며 요동치고 있다
「시래기」 전문
시래기가 줄에 매달려 말라가는 장면에서 인생으로 확장하여 그 정서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서정시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현장감이 강하게 다가온다. 적절한 시어의 선택은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늦가을의 쓸쓸함과 불안한 삶의 고통을 시들어 가는 시래기를 통하여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오는 계절에 점점 여위어 가는 시래기는 바로 인생의 모습이다. 거센 바람 소리 속에서 내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조마조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의 중간 부분에서 삶의 무상함과 고통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늘과 양지에서 아픔을 안고 몸살을 앓는 모습은 인생의 고단한 모습이다.
목 잘린 채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흐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인생의 불안정성과 고통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시는 삶의 불확실성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쓸쓸함을 잘 담아내고 있다. 시인의 감정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무상함과 그 속에서 찾아야 할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밤으로 가는 길목
잔 빛 쓸던 노을 앞에 서니
골목이 휘돌아 온 바람이 등을 떠민다
어제의 내가 시간에 뒤척이면서
많은 생각들은 공기 속에 녹아있고
지난 기억들이 축축하게 달라붙는다
인연을 뒤에 두고 온 지금 주름진 세월 안고
현관에 들어서니 휑하니 빈집
반겨주는 사람 없어 쓸쓸함만 저벅거린다
세월이 그려놓은 흔적들
버리지 못한 살림들은 숨죽이고
깨끗이 목욕한 이불들 장 속에 고이 접혀
곁눈질하며 나를 쳐다본다
초저녁 별빛에 가슴 쓸어내리고
어둠 내린 집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
방황하는 나를 위로한다
펄럭이던 우울의 옷자락을 접고
홀로서기 해야 하는 마음 다지며
흐르는 밤의 강물에 나를 담근다
「쓸쓸함이 저벅거리는 날」 전문
인생의 쓸쓸함과 고독감이 시적 분위기를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시인은 저물어 가는 하루와 함께 인생도 이와 같음을 느끼며 저녁과 자아가 일체를 이룬다.
바람에 등을 떠밀리며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은 인생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내었다.
과거의 기억들과 생각들이 현재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특히, 현관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절절하다. 일인 가구나 늘어나는 시점에 적절한 시어의 선택이다. ‘휑하니 빈집’이라는 표현은 혼자 사는 쓸쓸함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세월의 흔적과 버리지 못한 물건들은 시인의 지난 삶을 상징하고 있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방황하는 시인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고독 속에서 위안과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우울의 옷자락을 접고 홀로서기를 다짐하는 모습은 시인이 고독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로 보인다.
이 시는 인생 말년의 고독감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시인의 감정을 통해 우리에게도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3. 서정시의 금자탑을 쌓다
구해연의 첫 시집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에는 감각적 언어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뛰어난 시 정신이 엿보인다.
제1편에서 20수, 제2편에서 20수, 제3편에서 20수, 제4편에서 20수, 제5편에서 25수 총 125수로 이루어져 있다.
삶의 모습을 개성적인 묘사로 나타내어 시적 미감을 높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행과 연의 유기적 조화와 이미지 전개 능력도 돋보인다. 비유와 상징, 치환으로 이끌고 있어 시적 기교도 빼어났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자신을 관조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엄숙하기 그지없다.
우울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번득이는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빚어낸 이 작품집은 독자에게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이기에 구해연 시인의 서정시가 가뭄에 단비처럼 촉촉이 젖어 들 것이다. 작품집을 읽노라면 그 속에 함몰되어 물아일체의 세계에 빠지리라 믿는다.
시집 『비 오는 날의 포장마차』는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집으로 자리매김하리라 믿는다.
첫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한국 문단에 족적을 남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