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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이 고민인 시대
두더지 2011.05.11.
1. 먹는 것이 고민인 시대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현대인들, 특히 직장인들에게 이것은 큰 고민이다. 음식문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우리 시대의 얼굴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근대화는 곧 서구화였고, 대대로 내려오던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이제는 대부분 서구적인 생활양식으로 대체되었다.
60년대와 70년대는 미국산 밀가루의 유입으로 자장면과 라면이 대중들의 밥이 되었고, 80년대와 90년대는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치킨과 피자 등 서양식 패스트푸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 소득이 늘어나고 입맛이 덩달아 '고급화'(?)되면서 호텔 식당에서나 구경할 수 있던 스테이크는 물론 스파케티, 라자냐 등 각국의 요리를 먹는 것도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세계화라는 대세에 비추어 이런 변화를 당연한 현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식문화는 단순히 밥상이 차림표를 바꾸어놓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음식문화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자연적인 조건과 하나됨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영역이다. 우리 강산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몸과 일치되는 기운을 너무나 잘 갈무리하고 있는 천혜의 땅이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경치만 보고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조건과 일치시키는 식생활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습이라면, 우리는 우리 몸을 미국의 식민지로 종속시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 목숨까지 팔아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소박한 원칙을 갖고 있는 전통적인 우리 식문화가, 정체불명의 식생활로 바뀔 때 우리의 몸도 바뀔 수밖에 없다. 들어오고 나가는 내용물이 계속 법도에 맞지 않으면, 우리 몸에는 일정한 중독증이 생긴다.그런 중독증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마약'이다. 마약은 특정한 식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체의 균형을 깨뜨리고 그것을 구조화시키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렇게 중독된 몸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보다는, 몸에 좋지 않은 것, 넘쳐나는 것만을 계속 요구하게 만든다.
아울러 이렇게 길러진 습관은 몸만이 아니라 끝내 마음까지도 중독시킨다.
담배도 그렇고 술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음식도 지나치게 치우치면 다른 무엇보다 무섭게 중독 작용을 일으킨다. 콜라에 익숙해진 아이는 맹물은 싱거워 멀리하기 마련이고, 고기 기름에 젖은 입맛은 담백한 식물성 단백질을 멀리한다.
음식의 영양소를 분석하는 것이 서양식이라면, 한국적인 접근법은 음식의 정기(精氣)를 살핀다. 음식의 고른 섭취를 통하여 육체의 균형 있는 성장과 유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서양식이라면, 사람과 자연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인간됨을 실현하려는 것이 우리식이다.
2. 제철음식과 음양조화
옛 어른들의 먹는 원칙을 통해 왜 그런지 살펴보기로 하자.
옛 어른들은 먹는 원칙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제철음식을 음양조화에 맞추어 먹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지나친 약(藥)성이나 독(毒)성이 있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셋째는 상극이 되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쉬운 것 같고, 다시 보면 너무나 모호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 원칙들은 우리다운 사상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한국적인 사상의 핵심에 있는 것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사상이다. 즉 사람 몸 안에 천지인에 해당하는 기관이 있고, 그에 해당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지를 닮은 사람은 자기 밖에 존재하는 천지와 무언가를 주고받으면서 우주적인 질서에 참여하게 된다.
숨쉬는 식(息)이나 먹는 식(食)은 모두 그런 참여의 방식인 것이다.
사람은 하늘의 기운을 직접 내 안으로 들이지 못하고, 땅의 생명을 곧바로 내 안으로 들일 수 없다. 사람은 공기나 물, 짐승의 살이나 풀의 형태를 통해서 하늘과 땅의 기운을 간접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다른 사물을 섭취함으로써 거기에 내재된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개념이 '철'이다. 절기(節氣)를 기준으로 봄을 나타내는 입춘과 춘분이 있다면, 여기서 입춘은 땅이 이루어놓은 봄의 마디이고, 춘분은 사람의 봄이다. 하늘의 봄은 그보다 한 절기 앞서 지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봄나물을 먹는다면, 그 나물은 하늘의 봄기운을 반 철에 걸쳐서 받은 것이며, 다시 땅의 봄기운을 반 철 동안 머금은 다음에 밥상으로 올라온 셈이다. 이처럼 하늘과 땅의 기운을 차례로 머금고 그 흐름 따라 생겨난 음식을 제철음식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 선조들은 풀을 먹되 풀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풀에 담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먹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고, 공장에서 가공되는 식품에 어떻게 하늘과 땅의 기운이 배어 있겠는가! 가장 흔하고, 가장 싼 음식이 제 철 음식이었는데, 이제 과일이나 야채시장에서 제철음식거리는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을 두고 식품가공학이 발전한 결과라고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또 겨울에 수박을 먹고, 봄에 포도를 먹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자랑할지도 모르겠다.
식물은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과 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자체가 천지의 기운을 담고 있는 식물의 우주이기도 하다. 뿌리가 땅이라면, 잎은 하늘이다. 일년생의 줄기는 하늘 기운으로 치고, 다년생의 줄기는 땅의 기운으로 친다. 땅 기운을 음이라고 하고, 하늘 기운을 양이라 하면 이제 음식에서 음과 양의 조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음양이라는 말은 구체적인 실천을 전제로 한다. 밥을 먹는 실천행위에서 음양의 조화는 곧 하늘과 땅의 기운을 조화롭게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 옛 어른들이 편식하지 말라는 것은 뿌리와 잎과 줄기 가운데 어느 하나로 치우쳐 먹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놓아도 그것이 양이나 음으로 치우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한 가족의 일상적인 밥상이라면, 가족 전체가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들의 체질이 대부분 비슷한 것도 바로 음식 습관에서 비롯한다.
3. 약성 많은 음식과 독성 있는 음식
뿌리와 잎의 조화를 맞춘다고 할지라도, 독성이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 독성이 있는 음식이란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뿌리는 본래 음인데 이것이 반대로 양성을 띠는 것이라면 일단 독성을 가지는 음식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음식이 인체에 들어오면 인체와 서로 통하지 않고, 일정한 기운변화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 목숨을 앗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식품은 음식으로 쓰지 않는다.
일반적인 원칙에 어긋나기는 약재도 마찬가지다. 사실 약과 독은 쓰임새에 따라 붙여진 이름일뿐, 그것은 모두 일반론에 적용되지 않는 사물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 인삼은 특별한 경우에 약으로 쓰는 것이지만, 때에 따라 독이 된다. 또 맹독성을 띠고 있는 부자의 경우에도 가끔 약으로 쓴다. 우리 선조들은 원칙적으로 그런 것을 음식으로 일용하지 않았다.
독성이 있는 경우는 또 있다. 뿌리와 잎의 성격이 음양으로 서로 구분되지 않고 동일할 때도 그렇다. 그런 것은 대부분 음지에서 자란다. 태양의 기운을 받지 못하고 땅의 기운만 잔뜩 받아 그것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버섯 가운데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또 이런 식품은 뿌리와 잎까지 모두 같은 맛을 내고 있다.
4. 서로 맞지 않는 음식
다음으로 상극인 음식은 피하라고 했는데, 어떤 음식이 서로 상극이고, 상극의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음식의 짝에 대해서는 그저 민간요법 정도로 이해하는 수준에 있다. 음식의 짝에 대한검토는 음식끼리의 궁합도 문제지만, 그것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에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검토되어야 한다. 돼지고기와 생고구마, 막걸리와 국수, 삶은 당근과 생오이, 취나물과 조청, 생김과 생들깨, 마와 미나리, 꽁치에 생강... 이렇게 먹으면 왜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부작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음식을 짝지어 먹으면, 가벼운 경우 체하고, 심하면 심장마비로 죽기도 한다. 그런데 체하거나 심장이 마비되는 결과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 오는 것일까? 짝이 아닌 음식이 몸 안에 들어오면 안에 있는 12주경의 조화가 깨진다. 또 때로는 어떤 경맥이 거꾸로 돌기도 하며, 어떤 경맥이 갑작스럽게 끊어지거나 흐름이 막히게 된다. 그럴 경우 그 흐름이 복원되기도 하지만, 심장이 마비되어 영원히 복원될 기회를 잃기도 하는 것이다.
육식 가운데서도 기피 대상이 있다. 전통적으로 섭취해도 되는 육식으로는 '오수류(五獸類)'가 있다. 소(말), 돼지(맷돼지), 닭(꿩), 오리, 토끼가 그것이다. 노루나 사슴과 같이 향내가 나는 짐승이나, 소는 습관에 의해 예외가 되었지만 뿔이 있는 짐승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뱀이나 개구리와 같이 눈꺼풀이 두 겹인 것도 피했고, 산란철에 있는 물고기도 반드시 피했다.
이 까닭에 대해서도 불교적인 전통이니 종족적 풍습이니 하는 흐리멍텅한 대답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음식에 대한 우리들의 대안문화가 나올 수 없다. 역시 인체의 반응을 가지고 그 이유가 설명되어야 한다. 기피 대상이 되는 짐승들은 위장에서 인간과 구조가 너무 다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먹어서 소화시키는 과정이 크게 다른 짐승은 가급적 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와 같이 사람의 기운 구조와 너무 비슷한 것도 피했다. 개고기가 인체에 들어오면 그 유사성으로 말미암아 12주경의 순환에 혼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음식을 변증하는 데 어떤 것은 긍정적이고, 어떤 것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얼까!식품영양학처럼 영양소를 가지고 음식의 짝을 살피는 것은 실험실 내에서 벌어지는 인공적인 경우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서양의 화학색소나 탈색제 그리고 인공감미료와 같은 것은 그 자체로서 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에서 짝을 찾는 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다운 기운 구조를 갖추고 있고, 같은 기운을 갖는 존재는 서로 연계된다는 '동기상계(同氣相繫)'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과 음식도 기를 중심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음식의 궁합을 살피는 것이다.
음식의 짝을 맞추는 또 다른 기준은 오행이다. 오행은 맛을 중심으로 하고, 빛깔을 다음으로 하여 짝을 맞춘다. 그리고 여기에 천지인 삼재의 속성을 더하여 살피므로 5×5×3=75가지의 음식 분류법이 나오게 된다. 이 75가지 음식 분류법을 다 파악하고 있는 사람을 두고 음식의 이치를 터득했다고 하며, 그런 이치를 '요리'(料理)라고 한다.
맛에 대한 오행상의 기준은 '달고․쓰고․맵고․시고․짜고'로 구분하고, 색에 대한 구분은 우리말로 하면 '검(黑)․풀(綠)․불(赤)․흰(白)․눌(黃)'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어울리면 혼선이 생기는 맛과 색의 몇 가지 경우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달면서 녹색이나 흰색을 띄는 것은 안 된다. 원래는 달지 않은데 먹기 편하도록 나물에 참기름과 같은 단 것을 치는 것은 괜찮다. 쓴맛을 내면서 검거나 붉은 것은 안 된다. 쓰면서 뿌리가 흰 것은 안 되지만, 뿌리 이상은 괜찮다. 가령 지황처럼 뿌리가 흰 경우는 약재이면서 독이 된다. 물론 뿌리가 흰 것에는 무우와 같은 예외도 있으며, 예외가 아니라도 한철 이상 묵히면 독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또 짜면서 빨간 것은 안 된다. 파란 고추를 재우는 것은 괜찮지만, 빨간 고추는 안 된다. 매운 것은 적색과 백색을 제외하고는 모두 안 좋다.
5. 공동체와 배설물도 식문화의 영역
이상의 이야기는 원리에 해당할 뿐이다.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실용화하는 문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식품영양학의 발달은 인구의 증가와 자원의 제한에서 오는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양적인 팽창에 대한 양적인 대안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사고 방식을 전환하고, 사람의 몸을 바꾸지 않는 한 사람과 자연 사이의 악순환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기적인 차원에서 해결돼서는 안 된다. 특별한 병이 아닐 경우, 제 몸만 생각해서 저는 생식을 하고, 나머지 가족에게는 다른 상을 차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제대로 된 가족이 할 짓이 아니다. 이제는 가족 공동체의 어울림을 생각하는 문화가 밥상 위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밥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배출하는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만 완전한 식문화가 된다. 예전 같으면 다른 식물의 거름이 되었을 사람의 똥과 오줌이, 지금은 독기로 가득해서 거름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한 음식이 들어오니 당연하고, 그것이 내 몸 속에서 제대로 연소되질 않으니 나가는 똥오줌도 살림으로 이어지질 못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보이는 꼼꼼한 관심처럼, 내 몸밖으로 나가는 똥과 오줌과 땀 등에 대해서도 그 색깔과 냄새 등의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배출물의 상태도 기준으로 삼아 어떤 음식을 먹을 지 결정해야 한다. 먹는 일은 내보내는 일과 짝이다. 그것이 순환을 바탕에 둔 우리 겨레의 음식문화다.
** 이 글은 몇 년 전 바나리 출판사의 '모울도뷔' 에 실린 것입니다.
첫댓글 오감을 찾고, 순환이 되면, 우리겨레가 살긋네요~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