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랑미의 바느질 솜씨
작문시간에 작문선생님을 동백아가씨 사투리 가사로 혼돈스럽게 만든 김도곤은 조금도 자신이 잘못된 수업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물건에도 가짜가 있고 또 가짜라도 원품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와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리메이커창작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자신이 작문시간에 한번은 꼭 자신의 힘으로 창작한 시를 졸업 전에 발표하겠다는 결심을 해서 밤새워 동백아가씨의 가사를 개작했는데 작문선생님이 자신의 그런 피나는 노력을 알아주지 않은 것이 좀 서운했지만 아직 듣기 수준이 자신의 개작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다.
김도곤은 아무리 자신이 깨알같이 베끼고 수정한 똥빼악까씨 를 외우고 또 외워 보았지만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라 여겼다.
언젠가 작문선생님이 시란 언어에 가깝게 표현했을 때 가장 훌륭한 삶의 창작이 된다고 해놓고 지금은 딴청부리는 작문선생님도 좀은 속물이라 여겼다.
왜냐면 자신이 경상도 표준발음에 완벽한 시를 창작했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김도곤 그래 네가 옳다 나라도 너를 후원하마.
잘났다 내 친구 김도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등교시간이 되면 버스정류장은 전쟁이었습니다.
버스차장은 우리들을 버스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힘을 써야 했으므로 버스차장은 대부분 힘 좋고 덩치 큰 남자들이었습니다.
큰 덩치에 걸맞게 힘 좋은 남자차장은 공기 한 방울 남지 않은 상태가 되어도 도착하는 정류장마다 어김없이 학생들을 모두 버스 안으로 혼자서 밀어 넣었습니다.
남자차장은 버스 출입문이나 외벽을 손으로 두드리며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면서 운전기사에게 보내는 출발신호로 도도도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숨쉬기 조차 힘든 상황의 버스 내부의 학생들이나 시민 모두 아무 불평 없이 그 버스를 타고 출근이나 등교했던 학창시절이었습니다.
버스로 통학하는 여학생들은 큰 곤욕이었지만 남학생들에겐 기분 좋은 아침이었죠.
지금 같으면 그 버스에 탄 모든 남학생들은 성희롱 죄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살아야 할 정도로 밀착이 심했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달 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버스 안은 약간 군둥내 나는 알랑미로 지은 밥 냄새며 김치 냄새 등 요란 한 냄새들이 섞여 만원버스 안을 채웠지만 그래도 등교 길은 즐거웠습니다.
알랑미와 김도곤이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김도곤은 가급적 가슴을 늘려 작은 키의 알랑미를 보호하느라 힘을 썼지만 워 낙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합쳐져 김도곤은 그 힘을 다 감당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알랑미는 김도곤의 겨드랑이에 붙어 김도곤의 보호로 생긴 틈새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알랑미 이놈 소개하고 가겠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김도곤이 이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지금 인사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아마 당시에 안남미 안 먹어 본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그 안남미 밥 먹고 돌아서면 배가 또 고팠지요?
정말 형편 없는 쌀이었습니다.
그나마 안남미라도 제대로 먹고 산 사람들은 행복한 시절로 기억됩니다.
남자 차장도 그 안남미 먹고 출근했을 텐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불가사의 했고 우리 김도곤이 등교 후에 친구들 벤또 훔쳐 먹지 않으면 비실대는 것도 그 안남미 때문이었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또는 태국 그리고 왕과 나에 나오는 미얀마 등으로부터 안남미는 대부분 무상원조 받은 식량이었는데도 꼭 사먹어야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왜 그랬는지 잘은 몰라도 지금 같았으면 그 쌀 판 사람 징역 20년은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착해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들의 황포를 용서했고 우리들 어머니들은 그 쌀로 우리들 밥 먹였습니다.
안남미 밥은 발음 그대로 해석한다면 밥그릇에 달라 붙어 남는 한 알의 밥알도 없다는 뜻 즉 안 남아 나는 쌀 미란 뜻으로도 해석되는데 그 만큼 찰기가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도 찰기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 곳에나 잘 붙어 다니거나 잘 묻어 다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쌀이나 사람을 안남미라 부르지 않고 알랑미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반에도 사람 안남미가 있었습니다.
졸업사진 찍을 때 내 다리 밑으로 기어 들어와 함께 찍혔던 그 놈이죠.
이야기는 지금 김도곤과 알랑미가 타고 있는 오늘아침 사건입니다.
2교시를 마치고 10분간의 휴식시간에 김도곤이 알랑미 자리로 달려갔습니다.
김도곤은 금방 수업을 마친 선생님이 교무실로 가자마자 알랑미의 멱살을 잡아 복도로 끌고 나왔습니다.
작은 체구에 삐쩍 말랐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난하기를 좋아했던 알랑미가 분명 김도곤에게 못할 장난을 한 모양입니다.
옆 반 친구들도 우루루 복도로 몰려 나왔습니다.
- 야 알랑미
- 와 그라노
- 니가 내 바느질했재
- 내가 언제?
- 내 다 안다 내 옆에 서 있던 놈은 니뿐이었다 아이가
- 내 모른다 그 가시나가 했을끼다
- 바라 이기 증거아이가
- 미안하데이 나는 니하고 어불리길래 짝지아 줄라꼬 묶었는기라.
- 그러다꼬 천지에 가시나 바닥인데 해필 우째서 그런 가시나를 붙인 니 의도가 불량하다
- 내 보기엔 괜찬터마는
- 니 눈깔은 썩은 동태눈깔이가
- 내가 보기에는 니나 그 가시나나 거기서 그거더마는
사건은 이렇게 됐습니다.
김도곤이 알랑미의 이름표 밑에 있던 앞 주머니를 강제로 뒤져 왕바늘이 꽂힌 종이실패를 꺼 집어 내자 알랑미의 범죄는 만천하에 공개되었습니다.
아침 등교버스에서 알랑미가 앞에 서 있던 김도곤의 교복과 옆자리에 서있던 이웃여학생의 교복을 실과 바늘로 단단히 바느질해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학교 주위엔 세 개의 여자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알랑미는 우리학교와 한정거장 떨어진 여학생을 골라 김도곤과 묶어버렸습니다.
학교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그 여학생이 하차하려 했을 때 김도곤이 그 여학생의 옷자락에 자신의 교복이 실로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우락부락한 남자 차장의 하차명령에 엉거주춤 그 여학생이 이끄는 대로 버스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숫기가 없어 여학생 앞에서 고개도 못 드는 김도곤이 거의 게걸음으로 그 여학생에게 딸려간 곳은 버스정류장에서 50여 미터 거리에 있는 그 여학생의 학교였습니다.
역전에서 무려 열한정거장을 지나 오면서 쉬지 않고 김도곤과 그 여학생을 바느질했으니 알랑미의 바느질 솜씨가 서툴렀다 해도 쉽게 해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김도곤은 그 여학교에서 그 여학생의 일당에 의해 엄청난 수모를 당했습니다.
더구나 운 나쁘게 김도곤을 자신의 교복으로 끌고 간 여학생은 그 여학교의 규율부장이었기에 그 여학생의 세력은 엄청났겠죠.
운 나쁜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를 깬다는 속담이 딱 들어 맞는 김도곤의 아침등교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모를 당했으면 복도로 끌고 나온 알랑미라는 그 친구를 반쯤 죽였을 텐데 김도곤은 의외로 담담했고 어떻게 보면 비록 알랑미가 멱살을 잡혀 김도곤에게 들려 있었지만 김도곤이 알랑미에게 사정하는 조의 그림이었죠.
어찌 보면 알랑미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더 줄 테니 내일은 제대로 인물 좋은 여학생을 붙여 달라는 뭐 대체로 그런 분위기의 협박 같은 헤프닝이었습니다.
- 니 눈 진짜 파내삐야겠다 그것도 눈깔이라고 꼽고댕기나
- 아이다. 내 눈조타.
- 그런기 그런 가시나 붙였나?
- 도곤이 니도 정신 좀채리야 되겠데이 니 쌍판데기도 좀 생각해라
- 무가 우째?
- 아이다 우선 이 손부터 좀 놔라 숨도 몬시겠다
- 니 또 그런 가시나 붙일끼가 아이면 좀 쌈쌈한 거로 붙일끼가?
- 그 가시나 얼굴 보긴 봤나?
- 그 기 사람얼굴이가 썩은 멍게지.
그 일이 있고 난 점심시간 김도곤은 알랑미의 책상에 거꾸로 앉아 파리 한 마리 얼씬 못하게 망쳐놓고 찐계란에게 현찰로 사온 노란 알계란을 알랑미에게 골라 먹이며 알랑을 떨고 있었습니다
참 한심한 놈이었지만 사실은 쬐꼼 부러웠습니다.
헉ㅋ!
김도곤! 너.
점심시간마다 취미로 찐계란이 짜 주던 네 얼굴의 여드름은 생각 안 하냐?
네 얼굴의 왕 여드름 부산대표급이다
그리고 임마 내일 알랑미가 아무리 삼삼한 가시나 붙여줘도 개발에 달걀이다
나라면 몰라도
첫댓글 6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학창시절을 겪으셨나보군요. 글을보며 내가겪었던 학창시절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알남미밥이 두알도 붙지안은 퍼실거리는 밥 그것도 없어 초근목피 로 끼니를 떼워야했던 시절
그리고 지금 후진국에서나 볼수있는 사람을 짐작처럼 싣고다닌던 뻐스 그안에서 구잡을떨었군요.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그관경을 본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배꼽을 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젠틀맨님도 안남미 기억하시군요
그 안남미로 떡국 뽑아 놓으면 정말 먹기 힘들었죠.
퍼져서 국물이 죽같이되어서.....
그런시절도 다있었네요. 지금같으면 상상도 안되는대요.
남학생들은 실로묶여 차에서 내리는 걸보며 배꼽이 빠저버렸을테지만
규률부장 여학생은 얼마나 곤욕을 치럿을까 ? 생각해봅니다
지금도 그여학생 추억을 생각하며 제미있게 잘살고계실것같슴니다
이쁜글 보며 오늘,,,아침부터 웃어서 오늘 기분좋은일만 생길것같아요.
이슬김님은 70년대 ?
이제 조금씩 정감어린 님들 감 잡힙니다
행복 또 행복하십시오
지금같으면 감히 생각도 못할 웃으운일입니다.
영화나 소설속에서나 일어났던것처럼 느껴집니다.
불루보트님께서는 감독님이시구요.
추억속에 학창시절 상상하며 제미있는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요일 행복가득한날 시작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감독?.......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초혼님 먹고 싶은것 돈 아끼지 마시고 한가지 사 드세요^.*
고맙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오랜추억을 생각하시고 거기에따른 귀한사진들
대단하시다는걸 느낍니다.불루보트님 심창치안은 글솜씨까지 말입니다.
이런 분이 어떻게 김도곤 학생과 단짝이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멋진분이 되셨다는것입니다.
아침 웃음에 활력을 찾고 갑니다.
저는 사람 사귀는데 조금도 차등이나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있습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 전 그런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 그렇지 않은사람 제 아내를 빼고는 한사람도 없었네요....불행하게도....ㅉ
여학교 규률부장과 함께 엮어저 갈때 웃옷을 홀라당 벗어버리지나 안았을까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큰 봉변은 사지안았을까 ? 알라미 학생 너무 심했다는 생각들어요. 제미있슴니다.
나같으면 친구들 불러 혼좀 내주었겠슴니다.
김도곤은 수줍음이 많아 옷 벗을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그냥 끌려 갔습니다
그래도 알랑미 나중에 김도곤에게 여학생하나 붙여 주려고 노력 업청했는데요?
어렵던 시절을 아스라히 기억해봅니다.다시이땅에 그런 가난과 슬픔이 오지안았으면 합니다.
불루보트님 즐거웃던 학창시절 추억 저에게도 새롭슴니다.
그런 시절 다시 올 순 없겠죠?
항상 위로 가는것이 세월이고 인생이며 과학이고 의학이고 경제니까요
알라미 학생 조그마한친구가 간덩이가 얼마나크기에 활소같은 김도곤학생과 여학생을 묶어버렸을까요.
그때당시 직접 본사람들 배를잡고 웃슴거리가 되었을것 같아요,
이글만 보아도 그때상황이 보이는것 같아요 웃을일없는대 학창시절 추억을 보며 한동한 웃어봅니다.
휴일 오늘도 벌써 붉은해는 서산마루에 걸립니다. 남은시간도 행복한시간 되세요.
하여튼 그 소문 때문에 버스안에서 옷 기워진 남여학생이 엄청 많았던 기억납니다
그래서 버스만 타면 여학생들은 옷 주위를 손으로 훑어 확인하는 일이 잦았죠
그런데 오늘 왜 모나리님은 웃을 일이 없었을까요?...궁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