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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루치오
지난 밤부터 비가 내렸다. 비에 섞인 바람이 열린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베란다의 버티칼을 흔들어대는 소리에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 버렸다. 이렇듯 새벽녘에 눈이 떠지면 쉽게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왔다. 고요함 가득한 아직 어둠에 잠긴 거실의 정경이 내겐 언제나 친근하다.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포트에 물을 올리고 창밖을 바라다 본다. 새벽 어스름속에 내리는 비는 흐리며 감상적이다. 마치 안개처럼 대지를 감싼다. 인적이 끊기고 굳게 셔터가 내려져있는 아파트 상가엔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비를 맞으며 쓸쓸히 젖은 땅을 비추고 있다. 시선을 들어 보면 멀리 한강너머 자유로엔 밤을 잊은듯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명멸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잠겨 있을동안 정적을 깨우듯 커피포트의 물이 끓는다. 연하게 커피를 타서는 베란다에 나와 담배를 피워 문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담배를 끊는걸 알고있지만 아직은 견딜만 하다고 생각한다. 선배 하나는 얼마전 담배를 끊고나서 삶의 의욕이 사라진것 같다고 말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술도 커피도 마시고 싶지 않더라고 했다. 담배와 커피와 술은 마치 못된 친구들처럼 몰려 다니며 건강을 위협하는가 보다. 어릴적에 자신이 이처럼 낯선 어른이 된다는것을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그리고 쾌락과 고통이 쉴새없이 스치고 지나가던 삶의 여정이란 흔들리는 요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 하는것만 같은데. 가끔은 멀미가 난다. 참으려 해도 극복되지 않는 저 가슴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쓴물 가득한 욕지기.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이미 그렁그렁 눈물이 맺힐만큼 속이 부대끼던 그 아팠던 기억들속에 시간은 저만큼 나를 앞서가며 미소짓는다. 문득 삶은 무엇에든 부딪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맥주 광고의 카피와도 닮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혀라. 이미 부딪힐 수도 부딪힐 곳도 남아 있지 않은 생이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커피는 반쯤 마시다 식어버렸고 담배도 다 타들어서는 불이 꺼져버렸다. 얼마나 서있었을까. 어느새 여명의 빛이 동편 하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詩: 불면증 曲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