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무척이나 성서 공부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12월에 세례를 받았지만 아는 것이 없어서 많이 방황하던 중 이 곳을 알게되어 정말 기쁨니다.
: 아드레아 신부님 글을 열심히 읽었지만 초보자인 저에게는 쉽지만은 않더군요...몇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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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성서 기록의 문체와 서술 방식의 다양성 때문에 성성서를 읽는데 있어서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성서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은 무엇인지요? 글자 그대로 읽고 생각하고 느끼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표준이되는 성서 해석에 대한 출판물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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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는 유다인이 보는 희브리어 성서와 가톨릭이 더 추가하여 보고 있는 희랍어 성서의 기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왜 유다인과 개신교에서는 희브리어 성서를 가톨릭에서는 희랍어 성서까지를 성서로 인정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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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는 그리스도교 / 유다교 / 개신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니까? (교리때 들은것 같은데 잘 모르겠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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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우리 성당에 성서를 읽고 배울 수 있는 세미나나 모임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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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공부방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좀더 풍성한 토의가 이루어 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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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올바로 읽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한 것을 뒤늦게 답해 드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4가지 정도로 질문된 내용에 대해서 답해 드릴려면 몇시간을 강의해야 해도 부족할 것 같군요..
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한에 있어서.. 그리고 제가 상식적으로 아는 한에서 말씀드립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성서해석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었스면 좋겠고.. 표준이되는 성서해석서는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일러드릴것이 마땅치 않네요. 왜냐하면 가톨릭의 성서학자라도 그 연구자에 따라서 성서의 해석이 조금씩 다르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태현 신부님이 쓰신 책 "현문우답"이라는 책을 보신다면 도움이 될수 있을 것 같네요.. 초보자들의 궁금한 다른 질문도 해소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성서 구절구절마다의 해석은 보통 성서 주석서가 있는데, 한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권으로 되어 있어서 비싸고 내용도 어렵고 보통 개신교에서 나온것들이라서 이곳 진주에서는 구입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신약성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한국천주교회 200 주년 신약성서" 가 분도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각 권당 4500원에서 5000원정도 하기 때문에 싸고 쉽게 해석이 되어 있어서 읽기도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구입방법은 우리 성물센터 아가다에게 부탁하면 수일내에 전해받을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각 성서마다 창세기면 창세기, 출애급기, 등등 따로 따로 조금씩 총론식으로 설명한 책들은 몇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빌려드릴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각 구절마다의 해석서도 이곳 수도원에 있긴하지만 읽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별로 권하고 싶진 않네요. 만약 필요하다면 해당하는 구절에 대한 것을 빌려드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를 글자 그대로 읽고 의미를 알아들으면 되냐고 질문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새로나온 교리서를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답이 될만한 부분을 파란색으로 글자색을 넣었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 원문은 한국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http://www.cbck.or.kr로 가셔서 지름길(사이트 맵)에 가셔서 문헌자료실에서 가톨릭 교리 교리서에서 성서 부분을 클릭하면 아래 본문을 만날 수 있고 주석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 성서 사도직 회보등을 참조하면 유용한 궁금증과 정보를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성서의 해석에 대해서..
I. 그리스도 - 성서의 유일한 말씀
101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을 계시하실 때 선하신 자비로 인간의 언어로써 말씀하십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취하여 인간들을 닮으셨듯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말씀들이 인간의 말과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102 성서의 모든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한 '말씀'만 하신다. 사람이 되신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당신에 대한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상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동일한 한 '말씀'이 성서 전체에 펼쳐져 있으며, 그 '말씀'은 바로 모든 성서 기록자들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진 동일한 한 '말씀'이시고,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신 하느님이신 그분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한마디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103 교회는 언제나 성서들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72)
104 교회는 늘 성서 안에서 양식과 힘을 얻는다.73) 왜냐하면 교회는 성서에서 인간의 말뿐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74)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서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75)
II. 성서의 영감과 진리
105 하느님께서는 성서의 저자이시다. “하느님의 계시는 성령의 감도로 성서에 글로 담겨지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사도의 신앙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을 그 각 부분과 함께 전체를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것이고, 하느님께서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76)
106 하느님께서는 성서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성서를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신다.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다.”77)
107 영감을 받은 책들은 진리를 가르친다.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성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성서에 기록되기를 원하신 진리를 확고하고 성실하게 그르침이 없이 가르친다고 고백해야 한다.”78)
108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서의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 “적혀지고 침묵하는 말씀이 아닌 강생하시고 살아 계신 '말씀'”79)의 종교이다. 이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도록 곧 성서를 깨닫도록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신다.80)
III. 성서의 해석자이신 성령
109 하느님께서는 성서 안에서 인간의 방식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서 저자들이 정말로 뜻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며, 하느님께서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81)
110 성서 저자들의 의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대와 문화의 상황, 당시에 사용되던 '문학 유형', 그 당시에 이해하고 표현하고 이야기하던 방식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본문에서 역사적, 예언적, 시적 또는 다른 화법 등 여러 양식으로 각각 다르게 제시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82)
111 그러나 영감을 받은 책인 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이 원칙은 앞의 원칙만큼 중요하며 이 원칙이 없다면 성서는 죽은 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성령을 통해 쓰여진 성서는 성령의 도움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83)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에 영감을 주신 성령을 따르는 성서 해석을 위하여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84)
112 1. 우선 '성서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특히 유의할 것. 왜냐하면 성서를 구성하는 책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실제로 성서는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밝혀진 그 계획의 중심이시며 심장이시다.85)
그리스도의 마음86)을 알려 주는 성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서가 흐릿했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 성서가 열렸다. 이때부터 성서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예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고찰하고 식별하였기 때문이다.87)
113 2. 그리고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에 따라 성서를 읽을 것. 교부들의 격언에 따르면, 성서는 교회의 마음이 문서로 옮겨진 것이다.88) 물질적인 수단에 의한 표현들 안에서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마음 안에서 더욱 바르게 읽혀진다. 실제로 교회는 성전 안에 하느님 말씀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교회에 성서의 영적 해석을 내려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성령께서 교회에 주시는 영적 의미에 따라 ……"89)).
114 3. '신앙의 유비'90)에 유의할 것. 우리는 "신앙의 유비"로, 신앙 진리들 상호간의 일관성과 계시의 전체 계획 안에서 진리의 일관성을 알아듣게 된다.
성서의 의미
115 오랜 전통에 따라 성서의 의미는 자구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중에서 후자는 우의적(寓意的) 의미, 도덕적 의미, 신비적 의미로 다시 세분된다. 이러한 네 가지 의미들의 심오한 조화로써 성서 읽기는 교회 안에서 더욱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진다.
116 자구적 의미.
자구적 의미는 성서 말씀에 따라 표현되고 올바른 해석 규칙에 따른 주석으로 밝혀진다. “성서의 모든 의미는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다.”91)
117 영성적 의미.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성서의 문장뿐 아니라, 그 문장이 말하는 실재와 사건들도 표징이 될 수 있다.
1. 우의적 의미. 사건들의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음으로써 더욱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홍해를 건넌 일은 그리스도 승리의 표징이며, 그 때문에 세례의 표징이 된다.92)
2. 도덕적 의미. 성서가 전하는 사건들은 우리를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 사건들은 “우리에게는 경고로서”93) 기록된 것이다.
3. 신비적 의미(anagogia).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그리스어로 ‘높은 곳으로’라는 의미의 ana와 ‘인도한다’는 의미의 agogos의 합성어인 anagoge) 영원의 의미에서 실재와 사건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예컨대 지상 교회는 천상 예루살렘의 표징이다.94)
118 중세의 한 이행시(二行詩)는 이러한 네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자구적 글자는 사건을 가르치며, 우의는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치고, 도덕적 글자는 행할 것을 가르치며, 신비는 향할 것을 가르친다.95)
119 “성서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서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서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96)
만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97)
두 번째 질문에서..
유다인이 보는 희브리어 성서와 가톨릭이 더 추가해서 보고 있는 희랍어 성서의 기원과 차이점에 대해서.
먼저 유다인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믿는 구세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의 신약성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개신교와 카톨릭에서 성서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이 질문도 다음의 글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옮겨 왔습니다.
이글은 현재 우리가 보는 공동번역성서라고 하는 것의 배경과 개신교 성서와의 차이점과 그 배경에 대해서 쓴글이므로 질문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의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한 노력은 우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한 현상의 하나로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시작했다.
1968년 1월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표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에서는 세계 성서공회연합회와 로마 교황청에서 합의된 내용에 따라 성서를 원전으로부터 새롭게 공동으로 번역하기로 하고 그 기본 원칙을 확정하였다.
번역의 원칙은 원문을 낱말이나 구절 그대로 번역하거나 형식적인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하여 독자들이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고유명사는 1) 신구교가 현재까지 사용하는 명사가 같은 것은 그대로 두었고, 2) 그렇지 않은 것은 사전이나 교과서에서 쓰는 명칭을 따랐고, 3) 이 두 가지가 다 아닌 경우에는 원어의 발음을 따랐는데 실제 표기를 할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고유명사는 가급적 원문을 직역하려 애썼으나, 직역이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우면 의역하기도 했다.
1977년 4월 10일, 구약성서와 제2경전(개신교의 외경)이 완역되어, 1971년 완역한 신약성서와 합해서 공동번역 성서를 내게 되었다. 신약성서 번역위원은, 가톨릭은 백민관, 허창덕 신부가, 개신교쪽에서는 박창환, 정용섭, 김진만, 이근섭, 김우규 등이 참여했고, 구약성서 번역위원은 선종완 신부(가톨릭)와 문익환 목사(개신교)였다.
그런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서가 왜 다른 것일까?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하권)까지 포함하여 신구약성서는 총 73권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제2경전(개신교는 외경이라고 한다.)을 뺀 66권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근원적으로 구약성서에 대한 히브리 성서와 70인역 성서의 차이 때문이다(신약은 그리스말로 쓰여졌고, 이에 대해서는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경전 목록이 27권으로 똑같다). 그러니까 가톨릭의 구약성서는 마흔여섯 권, 개신교의 구약성서는 서른아홉 권이다.
이스라엘 본토(팔레스티나)에서 사용한 히브리 성서에는 제2경전에 해당하는 일곱 권이 없었고, 외국에서 사는 유다인들을 위해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말로 옮긴 70인역 성서에는 이 7권이 포함되어 있다. 이 70인역 성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200-300년 전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해외에 사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성서로, 초대교회에서도 주로 이 성서를 사용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에 인용된 구약성서의 대부분이 바로 이 70인역 성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4세기에 예로니모 성인이 라틴어로 성서를 옮겨 대중라틴말성서를 만들 때 히브리 성서를 참고하면서 70인역 성서를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구약성서 마흔여섯 권 전체를 성서로 인정하는 가톨릭 전통이 세워졌다.
반면에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히브리 성서를 옮겼기 때문에 서른아홉 권만이 구약성서 경전으로 여겨져 왔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는 히브리 성서에만 진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 교리 가운데 연옥에 대해 매우 싫어했는데, 제2경전에 해당되는 성서 가운데 마카베오 후서(12,38-45)에 연옥에 대한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 개신교 성서학계에서는 외경이라고 부르는 7권 역시 믿을 만한 성서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번역되는 외국 개신교 성서의 끝부분에 외경이 덧붙여 있는 예가 많다
셋째 그리스도교 유다교 개신교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성서공부방의 내용과 조금 동떨어진 내용같아서 이 질문은 여기서는 생략하고 (사실 지금 밤도 늦어서..) 기회가 되는 대로 다른 방법으로 알려드리려 합니다.
끝으로 우리성당에서 성서를 읽고 배울수 있는 기회에 대해서는
작년까지 청년 성서 가족 모임을 통해서 창세기반 2개가 끝났습니다. 이 모임은 창세기를 조금씩 읽어가면서 배우고 느낀점을 나누는 소그룹 모임이었습니다. 이 모임이 끝났기 때문에 다음에 출애굽기반으로 넘어가고 다시 창세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현재 마산교구 여건상 이 반들을 체계적으로 연계해서 이끌어갈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다른 교구에 연계해서 해야하는데 재정과 시간 거리상 조금 부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 성당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성서배움 계획을 다른 방법으로 더 연구 계획종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필요하시다면 현재 옥봉성당에서 또는 신안성당에서 간헐적으로 성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성당 게시판에도 홍보하고 있듯이 "요한복음"이라는 주제로 "홍 나탈리아"수녀님이 강의하십니다. 장소는 옥봉성당 교육관 시간은 2월 1일부터 2일까지 오전 10시부터... 그리고 회비는 10,000원이고요, 성서와 도시락 지참이고요..
이런 간헐적인 강의 말고도 마산교구에서는 성서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사람을 모집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신을 이용해서 성서 공부를 하는 곳도 있고요. 즉 편지를 통해서 성서를 읽고 배우고 느낀점을 써서 보내면 답을 적어서 보내주는 방법인데요.. 방학때를 이용해서 3박4일정도 함게 모여서 이들이 더욱 심화할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자세한 내용은 전화 02-944-0820에서 0824번짜기입니다.
요즘엔 온라인 통신성서도 있더군요.http://www.pauline.or.kr 로 가셔서 통신성서를 클릭하면 더 좋은 정보를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궁금과 질문이 성령안에서 꽃이 피고 덕행으로 열매맺어 지기를 희망하면서
부족한 대답을 마감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칠암성당의 조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