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2장18~26절
제목 : 사무엘과 엘리의 두 아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를 섬기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하였습니다.
(1)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아니하며,
(2)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3)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제사장 직분을 남용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모욕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할당된 몫만 취하지 않고,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을 가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사음식을 탐하고 제사에 참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망령된 죄악이었습니다.
1.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다(18절)
반면에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앞서 언급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방자한 행동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2:18절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에봇'(eEphod)은 일종의 앞치마로서 소매 부분이 없는 긴 조끼 모양으로 생겼는데, 제일 겉에 입는 공식 제사 복장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자의 '에봇'은 갖가지 아름다운 실로 수놓아진 화려한 것이었으나(출 28:6-14),
일반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은 단순히 흰 색의 '세마포 에봇'을 입었습니다(22:18).
그리고 이러한 세마포 에봇은
주요 종교 행사 때에도 사용되었다(삼하 6:14 ; 대상 15:27).
아무튼 본절은 사무엘이 이제 본격적으로
제사 직무에 참여하고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저자는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1) 엘리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2) 새로운 지도자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2. 엘가나와 한나는 매년 실로에 올라감(19절)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한나는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아다 사무엘에 주었습니다.
여기의 '겉옷'만은 이음새 없이 만든 옷으로서,
다만 머리와 팔 부분만 구멍을 내고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만든 옷입니다.
당시 이러한 '겉옷'(메일)은 왕과 제사장을 비롯,
일반 평민과 여자들까지도 입었던 보편적인 옷이었는데,
그 직위와 성별에 따라 옷의 색깔 및 장식품 등이 달랐습니다.
물론 직위가 낮을수록 수수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은 이 겉옷 위에 다가 '에봇' 을 걸쳤습니다(레 8:7). 한편, 본절을 통하여 우리는 비록 사무엘이 하나님께 영영히 바쳐졌지만(1:11), 가족들과의 인연까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한나에 대한 엘리의 축복(20~21절)
“[20]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21]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본절에 언급된 한나에 대한 엘리의 축복은
삼상1:18절에서 한나가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한 한나의 바램에 대한 엘리의 응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엘리의 응답은 서원을 변치 아니하고 귀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소에 바친 엘가나와 한나 부부의 신실성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제사장적 축복 행위일 것입니다.
또한 엘리의 축복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한나에게는
사실상 자기와 함께 생활할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돌보심(21절상반절)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한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임신하였습니다.
2)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음”(21절하반절)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낳게 하셨으므로,
한나는 사무엘 외에 3남 2녀를 더 잉태하게 되었고 낳았습니다.
이는 불임(不姙)과 무자(無子)의 설움을 겪은 한나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요, 풍성한 축복이었습니다.
3)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에서 '여호와 앞에서' 는
곧 '여호와의 면전에서'란 의미로서,
이는 사무엘이 육체적 성장 뿐 아니라,
영적 성숙도 아울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4. 엘리와 그의 아들들(22~26절)
1) 엘리가 매우 늙음(22절)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본서의 주석과,
본서 4:15은 이 당시 엘리의 나이가 98세였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나이는 틀림없이 자식에 대한 한 책망자로서의 부친의 영향력을 상실케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2) 두 아들의 신성 모독과 탐욕죄
“그 아들들이...행한 모든 일”은 삼상2:13-17절에 언급되고 있는
신성 모독과 탐욕죄에 관한 내용의 죄악을 말합니다.
-13~14절에서 “고기을 삶을 때에 갈고리에 걸여 나온것은 자기것으로 취하고”
-15~16절에서 “제사장에 구워드릴 고기를 내라고하고 빼앗고”
-17절에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습니다.
3)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
여기서 '수종드는 여인'은 당시의 성소 규례를 따라 성소 내에서 일정한 직무를 부여받았던 헌신된 여인들을 말합니다(출 38:8).
그러나 성경은 이 여인들이 성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자주 반복되는 희생 제사시에 반드시 수반되는 일,
곧, 식기 세척 및 그 밖의 음식물 장만들의 잡다한 일에 종사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되어 성소의 일에 전념한 여인들이었
홉니와 비니하스의 음행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의 합의 하에 이뤄졌음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일면 이방 민족의 음란한 제의(祭儀) 풍습이 이스라엘 사회, 심지어 제사장 사회에까지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음을 보여 줍니다.
<민 25:1-5>.
그런데 이 같은 악행은 이스라엘의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왕하 23:7).
아무튼 제사장의 신분으로서 하나님께 헌신된 여인들을 더럽힌 엘리의 두 아들의 이 사악한 행위는 하나님을 심히 욕되게 했습니다(25절).
아울러 일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그들로 실족케 한,
실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습니다(24, 25절).
4) 너희가 여와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23~24절)
“[2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엘리는 너무 늙어서(22절) 말로 두 아들을 책망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망 조차도 엄하지 못하고, 유약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타락과 방종의 길로 치닫고 있던 두 아들의 행위를 저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너희가 여와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 신분상으로 영적 지도자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 행위는(13-16, 22절) 백성들로 하여금
(1)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멸시케 하고(17절),
(2) 하나님의 성소를 가볍게 여기게 하며,
(3) 성적으로 타락케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5) 두 아들에 대한 엘리의 책망 요(25절)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다툼이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만물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중재자로 나서셔서 그 문제를 마무리 하실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인간의 범죄는 중재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회개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찌할 권리나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관련된 문제에 중재자로 나서서 그 문재를 헤결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범죄 행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아들에 대한 엘리의 책망 요지는
(1) 그들의 죄가 신성 모독죄에 해당되는 중대한 대신(對神) 범죄 행위라는 것이고
(2) 따라서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 이말은 여호와께서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회개할 가능성마저 고의적으로 배제 시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엘리의 두 아들의 나쁜 여론, 영적 지도자로서의 신분 등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마음이 완악해져 타락과 방종에 눈멀게 되자,
여호와께서 그들의 그러한 마음을 방치해 두셨고,
따라서 이제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무서운 심판만이 있을 뿐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지 않는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을 완악케 하셨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출 9:12 주석 참조.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여기서 본서 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악케 되는 징벌을 받은 엘리의 두 아들(25절)과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은 사무엘을 예리하게 대조시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와
인정받은 자의 특징을 날카롭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는 하나님과 사람들로 부터 미움과 멸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눅 2:52).
*눅2:52절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주변에 죄가 만연하면 그것이 죄인지 알지 못하지만,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죄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흡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죄악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개구리 예화]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나아가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