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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5장1~17절
제목 : 예루살렘 함락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4:1~3)이 기러지면서 성안에 양식이 떨어지고(4:9~17), 마침내 성이 함락당하고 주민들이 침략군의 칼에 넘겨져 남김없이 희생을 당합니다(5:1~4).
에스겔은 넷째 상징 행위(1-4절)를 통해 함락당할 예루살렘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이 침략자의 칼에 유린당할 때, 이방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조롱합니다.
1. 넷째 상징 행위(1~4절)
여호와께서 다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 멸암의 네 번째 단계를 보여주는 표적행위를 실행하도록 명령하십니다.
1) 주민의 절망적 운명(1~2절)
(1)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라고 합니다(1절)
“[1]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
날카로운 칼 - '칼'(헤렙)은 고대에 군사들이 전투 시에 사용했던 무기를 가리킵니다.
본서에서는 하나님께 범죄 한 부정한 예루살렘(6:11), 에돔(25:13), 두로(26:6, 8), 애굽(29:8, 9;30:4), 곡(38:21) 등을 멸망시키는 도구로서 여러 번 언급됩니다.
본절에서도 같은 의미입니다.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 구약 율법에서는 제사장들이 머리털이나 수염을 깎는 것을 금합니다(레 21:5).
그럼에도 불구하고 4:12의 경우처럼 율법의 통상적인 규례에 벗어나는 행동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할 심판의 징조를 선지자를 통하여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Wycliffe).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 머리털과 수염을 3등분(2절)하기 위하여 무게를 측량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공정성을 암시하는 바, 범죄 한 예루살렘 거민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2) 성벽을 뚫고 들어간 침략군에 의해 성은 점령당하고 주민은 모두 죽음에 넘겨집니다(2절)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 이는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왕하25:1,2), 예루살렘 거민 중 삼분지 일이 기근이나 질병 및 기타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재앙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암시합니다(12절).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 포위된 예루살렘 성읍이 함락당할 때 성읍 거민 중 삼분지 일이 대적들의 칼에 멸망당할 것을 비유합니다(왕하 25:4-6).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 예루살렘 거민 중 삼분지 일이 대적들에 의해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 가거나 피난처를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비유합니다(왕하 25:11, 12, 26).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 이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멀리 이방으로 흩어진 자들에게까지 임하여 징계하실 것을 암시합니다.
이 사실은 애굽으로 도피한 요하난과 여사냐 등의 멸망에서 엿보여집니다(렘 42:1-44:30).
2) 남은 자의 멸망(3~4절)
(1) 아주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일부가 살아남을 것을 보여줍니다(3절)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
이는 남은 자 사상을 암시하는 표현으로(9:8;11:13 참조) 예루살렘 거민 중 일부 소수의 경건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에서 제외되어 보호받는 것을 비유합니다(왕하 25:22;렘 40:6;52:16).
이와 같은 사상은 하나님이 타락한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당신의 택하신 자를 주권적으로 보호하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심으로 당신의 증거를 나타내심을 시사합니다(롬 9:27-29;11:2-5).
(2) 남아 있는 자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금 목숨을 잃게 될 것을 말합니다(4절).
“[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재앙에서 벗어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얼마를 다시 징계하실 것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보호하시되 더욱 정예화 시키사 극소수를 남기심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의 엄증성을 다시 한 번 엿보게 합니다.
2. 상징 행위와 해석(5~17절)
1) 예루살렘의 고발(5~6절)
(1) 예루살렘이 열방의 중심된 위치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5절)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 앞에서 묘사한 비유를 그치고 그 비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 이는 예루살렘이 열방의 중심된 위치에 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38:12).
그리고 이는 지리적, 영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및 유럽을 서로 있는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펴는 선택된 민족의 위치에 있었습니다(출 19:5, 6;신 7:6-8;14:2;26:19).
(2) 예루살렘의 악은 여호와의 규례와 율례를 무시하고 준수하지 않은 것 이상입니다(6절)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 '규례'의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법률적인) 판결', '선언', '공의', '공의로운 법' 등을 뜻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율법)의 법적인 측면, 법적인 공의성을 드러내는 면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그리고 '거스려서' (테메르)란 원어상 '바꾸다'(레 27:10;시 106:20;겔 48:14)의 뜻을 갖습니다.
혹자는 이를 '반역하다'(hasrebelled, RSV)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합니다(Wycliffe).
그러므로 본절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담긴 율법을 노골적으로 반역하거나 자기들 취향에 맞게 임의로 변경, 해석하였음을 나타냅니다.
내 율례도 그리함이. - '율례'의 히브리어 '호크'는 '규정하다', '제정하다'란 뜻의 '하카크'에서 유래된 말로 '제정', '규례', '관습'등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평상시에 지켜 행하도록 지정하신 법으로서 율법을 암시합니다.
결국 본문은 이 백성이 일상생활 가운데서 율법에 의해 통제받지 아니하고 자신들 뜻대로 죄악 가운데서 행했음을 나타냅니다.
한편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을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에 따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는 바, 성도들은 그 진리 가운데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요 16:13, 14;히 8:10-13).
2) 여호와의 징벌(7~17절)
(1)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그분의 규례를 전혀 준수하지 않았습니다(7절)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여기서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서로 소요, 격동하여 율법을 거역함으로 하나님께 범죄 한 것을 뜻합니다.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⓵ 렘 2:10, 11에서 엿보여지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은 최소한 그들 자신의 우상을 충성스럽게 섬기나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지도, 충성되이 섬기지도 못한 것을 암시한다(Calvin, Plumtre). ⓶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 하되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 심하게 타락한 것을 나타낸다(Lange, Dyer, Carley).
이중에서 문맥적으로 살펴볼 때 ⓶가 더 타당한 듯합니다.
(2) 그러므로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벌을 내립니다(8절).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 이는 원어상 '그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 곧 내가'(therefore thus says the Lord GOD:Behold, I, even I. RSV)의 뜻입니다.
이것은 화자(話者)의 의지를 거듭 밝히는 표현으로 이스라엘의 죄와 불의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엄중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 할 때는 오히려 이방인들 앞에서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을 엿보게 합니다(14, 15절).
그리고 '벌을 내리되'의 히브리어 '아시티 미쉬파팀'은 원어상 '(법적인) 판결, 또는 공의를 실행할 것이다'(execute judgements, RSV)의 뜻입니다.
(3)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 것이라고 합니다(9절)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 '가증한 일'의 히브리어 '토에바'는 원래 '혐오', '구역질 나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부정함'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으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성적 범죄(레 18:22;신 23:18;24:4)나 특히 우상 숭배 죄(신 13:14;18:9;왕상 14:24;왕하 16:3;21:2;대하 28:3;33:2;34:33;렘 7:10;13:27)를 가리키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본 구절에서도 우상 숭배를 지칭하는 말로 보입니다(11절; 8:3-17).
(4)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습니다(10절)
“[10]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 이는 율법을 어길 경우 임하리라고 구약 율법에 예언된 것으로서 예루살렘 성읍의 멸망 시 성취되어졌습니다(레 26:29;신 28:55, 57;애 2:20;4:10).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 2절 비유의 반복입니다.
특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17)을 상실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잃게 됨을 암시합니다(4:13 참조).
(5) 예루살렘의 철저한 배반에 맞서 여호와께서도 여호와께서도 더는 은총을 베플지 않을 것을 맹세하십니다(11절)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
내가 나의 삶의 두고 맹세하노니(하 아니 네움) - 이는 문자적으로 '내가 사는 것같이 말한다'(as I live, says, RSV)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자존자(自存者)로서 영원히 거하시며(출 3:14, 15;신 33:17;시 90:2;92:8) 결코 변치 아니하십니다(약 1:17).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말씀도 영원히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사 55:11).
미운 물건(쉬쿠츠)이란 문자적으로는 '더루운 것', '역겨운 것'을 뜻하며, '가증한 일'과 연관시켜 볼 때 하나님의 성소에 세워두고 섬긴 우상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8:3-17 참조).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 '성소'(미크다쉬)란 굳이 성막이나 성전 내에 설병상과 등대 및 분향단이 설치되어 있는 '성소'(출 26:33;28:29;39:1)를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아니며,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처소를 가리킵니다(출 25:8;레 19:30).
이 성소의 의미는 임마누엘 사상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출애굽 후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가시화되기 시작하였고(출 25:8;40:1-33)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 건물로 확대되어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요 2:20, 21), 부활 승천하신 후에 작게는 성도 개인의 몸(고전 3:16;6:19), 또 유기체적으로는 교회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엡 2:21, 22;딤전 3:15).
이와 같은 성소를 더럽히는 것은 곧 거기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로 성소를 더럽힌 모습은 8:3-17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 히브리어로 '아니 에게라'이며 이는 '나는 거두어 버릴 것이다'라는 뜻으로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 목적어란 바로 하나님의 '긍휼'(후스) 혹은 긍휼이 담긴 하나님의 '눈'(에니)
을 가리킬 것입니다.
(6) 주민의 삼분의 일은 전염병과 기근으로 쓰러지고, 삼분의 일은 칼을 맞아 죽고, 삼분의 일은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그들도 여호와의 칼을 피하지 못합니다(12절)
“[12]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 ”
본절은 1, 2절에 나타난 비유에 대한 해설입니다.
전염병으로 죽으며. - '전염병'(데베르)이란 '부수다'는 뜻인 '다바르'에서 온 말로 '역병', '흑사병'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여호와'(출 15:16)이시나 사람들이 죄를 범할 때에는 질병에 걸리게 하여 당신의 공의성을 드러내시기도 하십니다(레 26:25;신 28:21;삼하 24:13;대하 20:9).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 때문입니다.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 하나님은 사람들이 범죄 할 때 '기근'을 보내사 징벌하기도 하십니다(삼하 24:13;렘 14:12-18;15:2;44:12, 13, 18, 27).
삼분지 일은...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 '칼'은 곧 유다 왕국을 침입해 그 백성들을 진멸하고 포로로 잡아갈 바벨론 군대의 칼을 가리킵니다(왕하 25:1-5;렘 1:14, 15;25:9).
(7) 여호와께서 분노를 다 풀어 당신 속을 후련하게 하실 때까지 예루살렘에 보응하십니다(13절)
“[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 여기서 '풀려서'의 히브리어 '누아흐'는 원래 '쉬다', '머무르다'는 뜻이며 16:42에서는 '그치며'로, 21:17에서는 '다 하리로다'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백성에게 당신의 공의의 진노를 다 쏟으신 후에야 비로소 분노를 멈추신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철저성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세상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까지 한 데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마 26:39, 42, 44;27:46).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장계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뉘우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본문의 '열심으로'(베킨아티)란 '질투'(신 29:20;습 1:18), '투기'(마 8:6;겔 16:38, 42) 등으로도 번역되는데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8) 예루살렘이 여호와이 심판을 받아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황무지와 모욕거리가 되고, 수치와 조롱거리와 두러움과 경고가 됩니다(14,15절)
“[14] 내가 이르되 또 너를 황무하게 하고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모욕 거리가 되게 하리니 [15]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를 황무하게 하고. - 구약 율법에 예언된 바로서(레 26:31-33) 예루살렘 성읍이 대적들에 의해 훼파되어 폐허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황무'에 해당하는 '호르바'는 가뭄, 화재, 파괴 등으로 인해 황폐해진 상태를 나타내며 풍요나 번영과 반대의 개념을 갖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9)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과 살육과 칼의 심판을 선포합니다(16~17절)
“[16] 내가 멸망하게 하는 기근의 독한 화살을 너희에게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 [17] 내가 기근과 사나운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에 전염병과 살륙이 일어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기근의 독한 화살 - '독한'(하라임)이란 원어상 '나쁜', '악한', '해로운' 등의 뜻입니다.
그리고 '화살'이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용어입니다(신 32:23;시 7:13;38:2).
따라서 본절은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극심한 기아(飢餓)의 재난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사나운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 - 이는 10, 12, 14절처럼 구약 율법에 예언된 바입니다(레 26:22).
이것은 문자 그대로 사자나 곰과 같은 맹수들을 보내사 이스라엘 족속들을 진멸하게 하심을 뜻하기도 하지만(14:15;왕하 17:25, Calvin, Plumtre) 사람들의 거주지에 악한 짐승들을 활보하도록 함으로 그 땅을 황폐하게 하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914:15).
외롭게 하고(쉬클루크) - 이는 문자적으로 '유산하다', '자녀를 빼앗기다', '자녀를 잃다' 등의 뜻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자녀를 잃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랑은 기대합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기다리고 참을 수 있어도 기한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것은 비인격적인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외면하였습니다.
사랑 받은 이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외도하였고 변절하였습니다.
심판은 마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에 심판하셨습니다.
묵상Point
1) 헛된 신념을 심판하시다.
선지자에게 머리텔과 수염을 밀어 1/3은 불사르고, 1/3은 칼로 치고, 1/3은 바람에 흩으라는 기이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예루살렘이 장차 전염병과 기근에 죽고 칼에 도륙당하고 사방으로 흩어질 것을 보여 주십니다.
남은 자들이 있겠지만, 그들 중에서도 반역하여 심판을 당하는 자가 나올 것입니다.
한 번도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안전과 번영을 보장해준 적이 없었는데, 이스라엘은 헛된 신념으로 일관하다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으로 상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신실하게 사는 데 있고 주님과 더불어 오늘 동행하는데 있습니다.
2) 배은망덕을 심판하시다.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준 심판의 대상은 바벨론이 아니라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방 가운데 이스라엘을 두어 ‘열방의 빛’으로 삼으셨고 그들을 통해 모든 족속이 하나님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바라셨지만, 이방 나라들보다 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은혜와 사람을 베푸신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그것이 사명을 위한 은해임을 망각할 때, 하나님은 더는 우리에게 만왕의 왕이 되실 수 없습니다.
3) 유례없이 심판하시다.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도 전무후무한 형벌로 돌려주십니다.
가증한 우상을 집 안과 하나님의 성전에 두면서 하나님을 부끄럽게 한 이들에게 마땅한 수치를 안겨주십니다.
온 세상의 명예와 영광이 되도록 세우신 이스라엘을 열방의 조롱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기근을 보내 양식을 끊으실 것이고, 전염병과 칼을 보내 목숨을 끊으실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은 지워진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들을 아기지도,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는 참지 않고 분을 다 쏟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노가, 그 책망이 질투하시는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 합당하지 않은 사랑이 주를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9-17절 음행한 예루살렘을 심판하십니다.
언약을 맺은 대상은 서로 신실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넘치게 사랑하심으로 언약의 의무를 다하셨지만, 예루살렘은 끊임없이 음행하여 언약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번 그들을 용서하고 설득하심으로 관계를 회복하셨지만, 더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치 오차도 없이 그분의 뜻대로 시행될 것입니다(1-4절). 예루살렘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12절)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언약의 축복을 버리고 언약의 저주를 택한 결과입니다.
이토록 심판이 혹독한 것은 사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컸던 탓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와 진노를 일으킬 만한 일이 혹시 우리에게도 있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5,6,15절 본이 되지 못한 예루살렘을 심판의 본보기로 삼으십니다.
예루살렘은 세상의 중심에 세운 제사장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여 이방 나라 가운데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 나라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때문에 이방 앞에서 수치를 당하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악한 예루살렘을 심판하셔서 악한 삶의 대가가 무엇인지, 당사자인 예루살렘과 그 일을 통해 교훈을 얻을 이방 나라에 알리셔야 했습니다.
지금의 교회도 이 말씀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모르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을 쏟아 양육하신 자기 백성으로 인해 모욕을 당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 어떤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7절 하나님의 백성이 계명을 무시할 때 그들의 삶은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짠맛을 잃은 소금 같아서 사람들에게 밟히는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제사장 나라로 세상을 정결하게 할 백성이 세상보다 더 부정하니 버림받고 밟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따라 살지 못하고, 심지어 세상의 상식조차 따라가지 못할 때, 교회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합니다.
교회가 듣고 있는 수치와 조롱의 말들에 대해 말이 아닌 변화된 삶으로 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실천하겠습니까?
[기도]
공동체-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본보기로 살게 하소서.
열방-이상기후로 인해 호주에서는 한쪽에서 큰 홍수가, 다른 쪽에서는 수년간 가뭄이 발생하였다. 모든 인류가 자연을 잘 보호하여 이러한 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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