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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0 태극로드 1구간(총15) 장안해수욕장 - 차동고개 (89킬로미터)
태극로드 1구간(총15) 93.1킬로미터 6820미터
2020년 5월 9일 02:58 - 10일 오후 3:45
36시간 47분(23시간 11분), 2.5(4.0) km/h
1 장안해수욕장 - 이어니재 (02:58 - 06:37)
뜻하지 않던 비 예보가 있다. 시간당 10미리가 넘는 비가 토요일 지속된다고 한다. 검은 새벽 장안해수욕장 주차장, 내리는 비와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흩어지는 빗물이 뒤섞여 흩날린다. 생각보다 비는 아직 많지 않지만 바람이 센 편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이 비와 긴 시간 동행 해야 할 것이다.
잠시 도로로 가다가 임도로 들어섰다. 하지만 길이 아닌 것 같다. 다시 도로로 나와 2차 진입 시도. 철책 바깥 미끄러운 길로 진행한다. 계곡의 무너진 철책은 꼼꼼하게 바닥까지 철근으로 막아두어 진입이 어렵다. 어디에도 개구멍은 없어 보인다. 왠지 진흙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고단한 지맥길이 되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다시 도로로 나와서 부터 사라졌다. 아무래도 통달산 진입은 어려워 보인다. 대장님은 연신 좌측 철책을 보며 어딘가 있을 수 있는 개구멍을 찾는 듯 보이지만 그럴 수록 철책은 더욱 견고해 보이고 철책 뒤 사면 또한 빽빽하고 가팔라 보인다.
철책은 길게 이어졌고 새벽에 한적한 도로를 걷는 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대천해수욕장, 무창포 지명이 보이니 마치 바닷가 관광 나온 기분이 든다. 임도는 다시 철책 문이 막아 섰고 논두렁을 걸어야 했다. 미끄러운 진흙을 보니 보령의 머드축제가 연상된다.
진등삼거리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부드러운 산길과 묘지가 이어졌다. 길은 평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젖은 어둠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새벽산행은 금새 밝아오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오늘도 248봉에 올라가면서 흐린 갓밝이가 시작되었다. 좌측으로 남포 일대의 모습이 우리를 반긴다. 멀리 바닷가와 섬도 보인다. 석대도와 죽도 일 것 같다. 바다는 하늘과 경계가 없어 보인다. 앞으로 비가 더 많이 오면 전망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격 비는 예보가 갱신 되면서 계속 늦춰지고 있다.
248봉에서 잠시 쉬었다 출발 하니 산패가 그 곳에 걸려있다. 잘못된 위치의 산패를 대장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늘 지니는 것으로 보이는 공구를 꺼내어 능숙하게 제자리에 걸어두고 주변에 띠지도 말끔하게 다시 걸어둔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안부 고개를 지난다. 마을 사람들이 제법 이용 했을 것으로 보이는 고개는 오늘 비바람만 지나고 있지만 사람의 발을 타지 않은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왠지 기대가 되는 산길이다.
묘지를 지나 274봉에 올라왔다. 사람들이 삼각점에 집착하는 것을 여전히 알지 못하겠다.
안부 시멘트 포장 임도를 지나 223봉을 지났다. 수풀이 시야를 가린다. 앞선 일행을 시야에서 놓쳤다. 223봉 갈림길 지도를 보니 우측이다. 일행에 합류하고자 빠르게 내려오니 이어니재다. 만세보령지킴터라는 낯선 이름과 산줄기를 크게 절개한 도로가 문득 길을 가로막았다. 이름의 친숙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 당황스럽다. 이름도 어디서 유래 됐는지 알지 못하겠다. 아래 장항선 이어니굴이 있다는 것 말고는. 다만 옆에 약수터가 조성되어 있고 물맛이 좋다고 하니 식수보급처로 적당할 것 같다.
장안해수욕장에서 비를 맞으며 시작한다.
248봉
산패 제위치 찾아주기
이어니재
안부
2 이어니재 - 바래기재 (07:17 - 10:33)
이어니재 도로통과가 만만치 않다. 내려다 보니 어디에도 횡단보도는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 자동차는 많지 않다. 지도를 보니 남쪽 윗잣뫼 마을 횡단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었다. 혼자 였다면 난감할 상황. 완만하던 산길은 잔미산 삼거리 직전에서 밧줄이 없다면 발딛기 어려울 정도의 진흙 된비알이 이어졌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 아이젠 없는 눈길을 방불케한다. 그리고 잔미산을 만났다. 잣뫼. 아직 서쪽 마을의 이름이 잣뫼인 잣은 잣이 아닌 성의 옛말이다. 두시에 “외로왼 자새 맔 기운이 어득하도다(외로운 성에 물의 기운이 어둑하도다)” 라는 구절이 있다.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봉수대가 눈에띈다. 여느 봉수대와는 달리 오래되어 보이고, 아궁이도 있다. 하지만 봉수대는 불분명한 출처로 잘못 복원한 것이라 하니 아쉽다. 아마도 주변 성돌로 쌓아 오래되어 보였던 모양이다. 설명에 의하면 “옥미봉 봉수대지”라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돌산도에서 시작된 제5거는 해안을 따라 화산으로 왔다가 직봉은 오성산을 거쳐 내륙으로 가고 간봉은 서천 운은산, 비인 칠지산을 거쳐 남포 잔미산(옥미봉)으로 전해진다. 잔미산 봉수는 다시 보령 조침산, 홍주 흥양곶, 결성 고산, 흥주 고구산, 서산 도비산, 태안 백화산, 태안 주산, 해미 안국산, 당진 고산, 면천 창태곶을 거쳐 양성 괴태곶에서 직봉과 합류한다. 과연 산 이름과 같이 주변 연대를 쌓았던 터가 남아있고 산에 돌이 많은 까닭에 능선 일대가 모두 산성처럼 보인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지맥길을 가야 할 테지만 왠지 대장님은 그대로 직진한다. 아마도 지도상 표기된 좌측 계곡길로 가려나 했지만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으니 길이 사라졌거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삼거리 부터 예로부터 잔미산 봉수대를 오가던 선조들의 길도 있지만 지금은 희미하게 사라졌다. 이 일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드러난 사실 보다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아침,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돌무더기와 산성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능선을 걷자니 금새 봉화산에 도착했다. 흔한 이름이다. 그도 그럴것이 전국의 봉수대는 숱하게 많고 특별히 이름이 없다면 봉화산이란 이름이 적당할 것이다. 379봉을 지나 말재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띈다. 옥마산과 함께 신마에 관한 전설이 새겨져 있는 유명한 고개다. 남포 사람들은 성주면 개화리를 오가고, 새아니재를 지나 웅천읍 수비리(붉은댕이)를, 이어니재를 지나 웅천 두룡리는 지났을 것이다. 여러 고개를 보았지만 커다란 나무 두 구루가 버티고 있고 산줄기 홰손이 적은 말재가 비내리는 녹음에 뒤엎여 푸른 비바람을 넘기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옥마산은 노을전망대가 정상으로 보인다. 정상은 시설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앙증맞은 표석이 친근한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일대 전망이 좋다는 옥마산은 그저 하얀 안개만 보이고 활공장 조차 공사가 한창이라 어수선하다. 필요한 시설이긴 하지만 하루속히 통신과 군사적인 면에서 고지의 이점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 봉우리 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희망한다.
긴 임도를 내려와 지아비를 바래다 주고 또 마중나갔다는 바래기고개에 도착했다. 설명을 보니 보령은 갯벌만이 아니라 석탄도 유명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제2의 탄지라고 적혀있다. 산이 퇴적암 조산운동에 의해 만들어 졌으니 석탄도 많이 묻혔나 보다.
비와 주차를 고려한 인근 적합한 장소를 기사님은 미리 물색을 해 두었고 무원님의 진수성찬이 원없이 펼쳐졌다. 주린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하니 다시 활기가 돌아온다.
잔미산 봉수대
봉화산
말재
말재 위쪽 바람이 잦은 통나무 의자에 앉아 휴식 시간을 갖는다.
옥마산 노을전망대
옥마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보령사랑)
바래기재
3 바래기재 - 성태산 (13:14 - 18:02)
향천봉 이정목에 누군가 성주지맥 그리고 오성종주 라고 적어두었다. 다섯개의 성이 들어간 산이 있는 종주길로 추측하였는데 찾아보니 감마로드에서 개통한 종주길로 보인다. 성주지맥 끄트머리 173봉에서 무창포로 나갔고 백월산 갈림에서 오서산으로 향한다. 다섯산은 아니고 오서산과 성주산의 첫글자를 땄고 66킬로 9234미터에 이른다. 또 지자체의 자연관광 사업은 활기를 띠고 있고 보령은 오성종주 둘레길을 조성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긴 종주길을 가면 지자체마다 산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가 느껴진다. 포스트 코로나가 지속된다면 밀집형 도시 문화 보다는 등산이 더욱 활기를 띠지 않을까 생각된다.
보령의 인물은 김성우 장군 인가보다. 성주산 장군봉은 가장높은 산일 뿐 왜구를 섬멸한 장군의 작전지역을 군인의 관점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봉우리가 장군봉 임을 확신한다는 8361 부대장의 설명판이 눈에띈다. 서해에서 하천을 따라 올라오는 왜구로 사람들이 흩어져 살던 시절 그의 업적은 대단했을 것이고 읍성이 생기며 부터 역사 이래로 편안하지 않던 지역의 안정이 찾아왔을 테다. 대령은 섬멸한 왜구의 수가 3000이라고 적고 있고 모 문헌은 수백, 수십 이라고 적고 있는데, 당시 널린 시체에 개미떼가 까맣게 달라붙어 개미(의)자 (의)평리나, 초토화된 들에 쑥이 먼저 돋아 쑥(라) 청(라)가 유래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으로 보니 아군이던 적군이던 큰 전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보령대첩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장군봉은 지금의 성주산 장군봉으로 보이는 것은 가까워 질 수록 드러나는 독특한 역암 능선과 암봉의 위엄이 “이 곳에 장군의 기상을 담았노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바람도 차고 사람들이 한동안 전망을 즐겼을 전망대는 온통 하얀 안개만 가득하니 마치 구름위 선계에 올라선듯 하다. 성주산은 백제시대 9산선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성주산문의 중심지인 성주사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금도 성주사지의 규모를 보면 놀라울 정도이니 당대 최대 사찰임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문봉산을 지나 잠시 알바를 하고 그 대가인지 상당 양의 두릅을 따고 당산나무 한 가운데 서 있는 임도삼거리를 만났다. 한데 주변 평지를 조성하고 운동기구를 설치하여 두었다.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 같던데 지난날 자연스러웠을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돈을 들여 자연을 홰손한 것으로 보인다. 당산 나무는 애처롭게 남아 본래 높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데 안개가 자욱하니 더욱 쓸쓸해 보인다.
성주산 일출전망대
왕자봉
왕자봉에서 향천봉으로 가는 등성이
향천봉 아래
향천봉
향천봉
김성우 장군이 지휘를 했던 봉우리라 적혀 있는 장군봉
청라 갈림봉
성주산 직전 능선에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붉은 물감이 떨어질듯 하다.
협곡의 녹음과 안개
성주산 장군봉
장군님이 부활 하신 듯 하다.
문봉산
당산나무 임도 삼거리
만세봉 직전 거친 능선
성태산 만세봉은 보령, 청양 그리고 부여의 경계다.
4 성태산 - 여주재 (21:54)
성태산 천세봉을 끝으로 성주지맥은 마무리 된다. 1구간은 오롯이 지맥 하나를 그대로 품고 있다. 부여, 청양, 공주의 경계다. 이름돌이 마음이 들지 않지만 부여에서 세운 만세봉, 천세봉은 독립만세운동 기록에 의거하여 비교적 최근에 명명했다고 적고있다. 이런식의 작명이 옳은지는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름을 지을 것이고, 다수가 동의한다면 계속 이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소멸하거나 바뀔 것이다.
성주지맥은 여느 지맥보다 관리가 잘 된 상당히 매력적인 산길이다. 호젓한 산길과 역암의 바위산이 고루 분포하고 역사와 문화가 어우려져 있어 지루하지 않다. 역암은 얼핏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 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보기 드문 퇴적지의 조산운동에 의해 바다였던 지형이 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바다는 어땠을지 여러 상상을 부른다. 풍화로 떨어져 나와 산길에 나뒹구는 둥근 자갈은 마치 해변을 걷는듯한 착각도 일으키고 더러 조개도 보이다고 하니, 주로 수도권 일대나 설악산의 바위를 보아온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성태산 하산길에 숫돌바위를 만났다. 숫돌 모양이 아닌 숫돌을 만드는 그 바위인 것이다. 이색적이고 신기하다. 청양군은 산길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 안내판이 없다면 그냥 지나쳤을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된다.
다릿재(다락재)를 지나 임도로 들어섰다. 대장님은 지친 일행을 위해 조금 편안한 길로 가고자 임도를 택했지만 임도는 끊기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복원지 사면을 치고 올라야 했다. 때아닌 발길이 닿지 않은 지맥 낙엽길과 비교적 양호한 가시길을 체험하게 되었다. 제법 힘이 들었지만 능선에서 대장님은 사탕하나씩 쥐어주며 위로를 해 주는데 이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다. 빗속에 수킬로 이어졌다면 발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월산은 현지에서는 월산으로도 부르는데 달과 관련있다. 남양에선 산위로 달이 기울고, 청라에선 달이 뜨는것을 보아 붙여졌다고 하는데, 산 꼭대기서야 그저 하얀 안개속에 검은 이름돌이 놓여있을 뿐 알 수가 없다. 여하튼 남양과 청라에서 비중이 있는 산으로 보이니 각 지역에서 산에 걸린 달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하산길엔 줄바위와 배문이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줄바위는 멀리서 보기에 작은 바위가 줄지어 서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톱을 갈때 쓰는 줄을 닮아 이름붙었고, 배문은 이름 그대로 바위 두개가 양쪽에 있고 그 사이로 배가 드나든 것으로 연상되어 이름지어졌다. 역시 역암의 바위로 더러 조개껍질도 볼 수 있어 과거 바다였을 적 물에 잠기어 배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연상 된 모양이다.
공덕재를 지나자 어둠이 찾아왔다. 허기와 어둠이 함께 오니 다소 힘이 들지만 여주재 까지 진행 하기로 하였다.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검은 오봉산을 지나 고운식물원 능선을 지나게 되는데 갑자기 야생에서 정원으로 들어선 느낌이라 어리둥절하다. 잘 정돈된 둥근 주목이 비를 흠뻑 받으며 어둠 속에서도 싱그러워 보인다. 등성이 까지 관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식물원의 규모를 알 것 같다.
검은 식물원길을 만나고 마지막 천마봉이 남았다. 이 구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천마봉 올라가는 능선은 조림이 되어 황량 하기만 한데 나무가 없으니 바람조차 강해 춥기까지 하고 허기는 더욱 올라온다. 고스락에는 강한 바람과 함께 낮이라면 좋았을 검은 조망이 희미하고, 특이하게 한쪽 울타리에 띠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추위에 황급히 하산을 했다. 이번에는 계단 위에 젖은 낙엽이 수북하여 계단은 오히려 장애물이 된 상황이니 여간 걷기 불편한 것이 아니다.
숫돌
다릿재
백월산 상봉
줄(톱이나 철을 가는 연장) 바위
배가 드나들 것으로 연상되는 배바위
공덕고개에 다다르자 다시 어둠이 내려앉는다.
인근 포장된 공덕고개
오봉산
고운식물원 능선의 주목
식물원길
천마봉
계단을 가득 덮은 낙엽길
여주재
5 여주재 - 와고개 (03:10 - 07:06)
다시 새벽을 맞았다. 다들 피로가 누적되어 천천히 걷기를 원하는 분위기다. 다행히 이번 구간은 좀 쉬운 구간이다. 어렵지 않게 일산봉을 만났고 산책길 같은 산길을 내려와 여러 임도를 지났다. 금북정맥의 낮은 산줄기는 지금까지 좋았지만 매일유업이 들어서서 산줄기를 가로막았다. 따라서 돌아서 올라와야 했는데 좀 아쉽니다. 어려운 살림의 지방 지자체 로서는 공장을 유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겠지만, 낮은 산줄기의 귀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푸른 학당고개로 내려섰다. 조금 내려가면 청양 읍내 일 텐데 마트도 하나 없이 쓸쓸하다. 도로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다시 모두 모였다. 아침 개짖는 소리를 들며 성가신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한다. 마을로 들어가 산줄기를 이거 가리로 한다. 낮은 산줄길로 둘러 쌓인 소박한 학당리 여우실 마을의 커다란 나무가 눈에띈다. 마을에서는 고목제를 100년 전부터 지낸다고 하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저 나무가 아닐까 생각된다.
안개에 쌓인 밤나무 과수원과 하얀 자작나무 숲이 운치있다. 문박산 꼭대기에는 철제의자가 놓여 있다. 서양식 정원처럼 꾸며져 있으니 조금 따뜻하다면 쉬어 가기 적합해 보인다. 밤은 공주가 유명한 것으로 아는데 인접한 이 곳도 밤 과수원이 많다. 산 이라기 보다는 과수원 위쪽을 걷는 기분으로 가볍게 와고개에 도착했다.
다시 새벽을 맞았다. 일산봉
학당이 있었다는 학당리 교차로
여우실 마을의 고목
정원처럼 조성된 문박산
와고개 직전
6 와고개 - 차동고개 (09:09 - 15:45)
위라천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분골고개에서 산길로 들어갔고 낮은 등성이를 따라 사라골을 바라보며 걸어가게 된다. 청량의 이정표는 고추의 모양을 하고 있다. 방축골에도 더러 보이는것이 확실히 고추 생산지가 많아 보인다. 조금 덜 익은 고추를 따서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은 직접 기른 사람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후 밤나무 과수원을 만났고 사리골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작은 산줄기는 온전하게 보전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수도원의 이런 산줄기라면 개발의 유혹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마루금까지 들어선 밤나무길이 나쁘지 않다. 여느 과수원과는 달리 산에 자생하는 나무를 줄맞춰 심어 관리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막 피어난 파릇한 나뭇잎 사이로 검은 줄기가 다양한 선을 그리며 푸름을 던진다. 과수원 위쪽엔 누군가의 묘가 자리 잡고 있는데, 아마도 과수원을 조성한 분의 선조가 아닐까 생각된다. 평생 일구고 가꾸던 과수원에 자리 잡아 마을을 내려다 본다면 행복할 것 같다. 자리도 넉넉하게 잡고 있다.
후덕리로 넘어가는 작고 자연스런 고개를 지나 다시 밤나무 과수원을 만났다. 금북정맥의 완만한 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동네 뒷산이 금북정맥이라니, 사람들은 산에 대한 자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장임도를 잠시 따르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긴 임도는 아니고 묘지에 닿는 길로 보인다. 봉우리를 내려와서 안부에 작은 절개지를 만나게 되는데 역시 묘지와 관련 있어 보인다. 사라골은 규모와 달리 인물이 많이 났다고 하던데 조상을 극진히 모시는 것으로 보인다.
산길은 점 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산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금자봉의 산세가 시작 되려는 모양이다. 두 번째 맞는 아침, 홀로 뒤에 남아 호젓한 산행을 맘껏 즐겼다. 꼭대기에서 일행의 정담 소리가 숲에 조용히 흩어진다. 무한도전클럽은 기량이 뛰어나지만 늘 함께 하는 문화를 가졌다. 산길이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상관없이 균등한 속도로 가고, 적당히 피로가 쌓이거나 함께 사진을 담아야 할 장소로 판단되면 기다린다. 이런식의 정해진 장소까지 자유롭게 산행을 하고 다시 함께 출발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한데 후미로 가 보니 먼저 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청양군산림축산과는 산길 관리를 잘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담당하시는 분이 등산을 취미로 하거나 자문을 받아 이해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유가 더 되면 이름있는 봉우리는 저마다 개성있는 디자인의 이름표가 부착되기를 희망한다. 동일한 디자인의 나무판은 천안의 동일한 디자인의 돌 보다야 비용도 적었을 테고 한시적인 성격을 띠겠지만 한마디로 맥이 빠진다. 이정표는 80미터 더 가야 금자봉이라고 하고 지도를 보아도 금자봉은 조금 벗어난 곳에 있지만 가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운곡의 풍경은 안개만 가득 할 것이다.
일행이 모두 떠난 뒤 잠시 꼭대기를 감상하고 초록을 따라 하산 하였다. 그리고 돌계단이 놓였있는 고개가 드러났는데 고개 양옆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압도한다. 쉬지 않더라도 잠시 앉아 머물다 가고 싶은 곳이다. 노점골과 운곡을 연결하고 운곡고개로 적혀있지만 노점고개라고도 한다.
아무래도 마지막 구간은 놀멍쉬멍 가려는 모양이다. 400봉에 올라와 다시 일행을 만났고 424봉에서 다시 만났다. 424봉은 아래에서 보니 바위의 모습이 마치 견고한 산성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하얀 안개를 배경으로 연둣빛이 적절히 배합됐다. 막상 올라와 보니 그저 평범한 모습인데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름아닌 삼각점이다. 삼가점이 뭐가 그렇게 재미 있을까? 420봉 안부에도 커다란 참나무가 한 그루 있고 나무의자와 이정표를 적절히 배치했다. 어떤 공원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니 속도가 나지 않는다.
000봉은 국사봉 까지 계속됐다. 고도 이름 봉우리로 설악산의 유명한 봉우리도 있지만 청양은 작은 봉우리도 이름표를 달아 두었으니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국사봉 앞봉우리는 십자가가 높게 걸려있어 십자가봉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측 수리치골성지와 통하는 길이 있어 수리치라고도 한다. 천주교 탄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번 구간 가장 높은 국사봉 이름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검은 철제의자 두개를 두어 일행이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하기 적합했다. 청양군의 관리에 대한 칭찬이 오갔다. 지방의 지자체 살림이 녹녹치 않을텐데 타 지역과는 달라보인다.
헬기장봉우리를 지나 사점미재에 내려왔다. 사점미골과 연결이 되어 있다. 역시 철제의자를 두어 버려두지 않았다. 지난 길에 비해 좀 더 야생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더러 바위도 보였지만 길은 대개 유사한 분위기다. 다시 서반봉과 노동고개(야광고개, 들괭잇고개)를 지나 천종산에 올랐다. 야광리에 괭이로 개간한 벌이 있어 이름지어졌는데 이름이 재미있다.
천종산은 위치가 좀 혼란스럽다. 표지목 기둥에 천종산이라고 적혀 있고, 383봉에는 누군가 천종산 표지를 뽑아서 이동시켜 소나무에 묶어 둔 것으로 보인다. 장학산도 그렇다. 앞봉우리나 장학산 봉우리 어디에도 어떤 표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380봉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가면서 길은 더러 가시 나무도 있어 불편했다. 하지만 내려와서는 넓고 편안한 길이 이어졌고 고재고개를 지나 바람이 잦은 묘지에 앉아 일행을 기다린 후 모두 함께 차동고개로 내려왔다.
사라골 마을 일대
밤나무 과수원
금자봉 삼거리봉
운곡고개 또는 노점고개
400봉
아래서 올라다 본 424봉
424봉
424봉과 420봉 사이 안부 쉼터
십자가봉
마을에 국사있어 벼슬을 고사하고 금을 묻었다는 국사봉
뒤 헬기장
사점미재
서반봉
노동고개 또는 야광고개, 들괭잇고개
천종산
천종상 표지는 383봉에 묶어져 있다.
성황당고개
장학산
350봉 하산이 다소 불편했지만 내려서니 넓고 편안한길이 이어진다.
330봉 능선의 조림지
차동고개
첫댓글 와~ 출정식 축하드립니다 긴여정이 되겠지만 첫 마음 그대로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길 설레이며 열심히 일 하는데 활력이 될 것 같습니다. 찰리임과 함께 할 날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