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9)
본문 : 에베소서1장10~11절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 바 하나님의 존재, 본성, 성품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본성 및 자신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한 이 계시의 일환으로 자신에게 부여하였던 이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복되신 삼위일체라고 하는 위대하고, 능력 있고, 불가해한 교리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들, 하나님의 활동,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일반적인 교리 중 일종의 세부항목에 해당합니다.
1. 작정 교리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창조의 교리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성경이 그 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의 모든 활동의 특성이 무엇이냐의 문제로 우리를 인도함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근저를 이루며,
그것을 특징짓는 몇몇 위대한 원리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일들을 생각하시고, 결심하셨으며,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실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마음과 의도 속에서 몇 가지 사항이 결정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명백한 연대기적 순서이자 논리적 순서인 것 같습니다.
1.1. 성경이 작정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혹은 방법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흔히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무엇인가 행하시기 이전에 결심하시고 정하신 일들입니다.
성경을 해설하는 사람이 할 일은 성경 전체를 해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대단히 어려운 주제라는 것만은 인정합니다.
이 교리들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영원하신 분의 마음,
즉 우리의 유한한 이해력을 초월하고, 우리의 보잘 것 없고 왜소한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에 대한 교리와 창조 및 구원의 교리는 훨씬 더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영감된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성경전체를 읽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하는 위대한 교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1.2. 작정교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 한다.
이 교리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위대하고,
더 웅대한 개념을 갖게 해 줄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자극할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 전도에 있어 진정한 난점은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관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구원에 너무 관심을 갖는 나머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 위대한 교리는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많이 예배할 것입니다.
1.3. 작정교리는 우리를 많은 오류로부터 구해준다
지난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빠져든 대부분의 오류들과 제기된 많은 의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충분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1.4. 작정교리는 커다란 위로를 준다
유한한 세상에서 잠시 지나가는 미미한 피조물일 뿐인 나의 배후에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하는 교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저에게 더 큰 위안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2. 작정의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2.1. 당파심을 버리고 접근해야 한다.
이 교리를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편견들과 모든 종류의 당파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파심이라는 말은 우리 모든 사람은 특정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발견하는 일보다는 이미 믿어왔다고 생각하는 이을 고수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 다는 의미이다.
2.2.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 주제에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철학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큰 저주입니다.
철학은 그 정의상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작정의 교리 문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접근할 때에는 그 안에,
우리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측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3.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주제는 겸손과 경외심,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며,
언제든지 우리의 한계를 인정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찾고 추구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이 교리를 접근해야 합니다.
성경의 계시를 넘어서는 질문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와야 합니다.
믿음은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즉각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좋아요, 나는 주어진 것은 모두 다 받아들이되 그 이상 알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계시하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 위대한 진리에 접근할 때 우리는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율배반”이란 당신 스스로는 조화시킬수 없는,
두 개의 진리가 주어진 상황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결정적인 이율배반이 몇 가지 있으며,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군가가 “아, 하지만 당신은 그 들을 조화시킬 수 없어요”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즉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그것들을 조화시킬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척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단지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믿을 뿐이죠”.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 본성, 성품에 대해 살펴본 바에 비추어볼때, 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하는 교리가 필연적으로 뒤따라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 교리에 접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이 지금 역사하고 계신 바로 그방법으로 역사하셔야만 합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교리는 서로 일관성이 있으며,
어떤 특정한 교리를 살펴볼 때,
그 것이 언제나 다른 모든 것과 항상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연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 그 외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동의했던 다른 모든 것에 비추어 모순을 일으키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말하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3. 작정 교리의 기본 명제들
3.1. 하나님은 영원 전 부터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첫째의 원칙은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그의 피조물에 대해 변치 않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전에”(엡1:4)와 같은 문구를 계속해서 사용합니다.
사도바울이 우리 주님의 나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때가 차매”(갈4:4)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연이거나 우발적이거나 불확실하거나 뜻밖에 일어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해,
이 모든 것의 마지막과 궁극적 운명에 대해
명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신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일, 그분이 일어나게 하신 모든 일은 그분 자신의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이며, 그 계획은 고정되어 있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으며,
절대적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원칙입니다.
3.2.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것을 포괄하고 결정한다
두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계획은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과 사건들을 포괄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정한 결과를 계획하셨다고 믿는다면,
그 결과로 이끌어가는 모든 일도 하나님이 계획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정한 시점에 창조하기로 결정하셨음을 믿으며,
또한 특정한 시점에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기를 결정하셨음을 믿는다면,
다시 말해 종말이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면,
그 종말로 이끌어 가는 모든 것도 역시 결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일들, 그 종말로 이끌어 가는 모든 것 사이에 일종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의 교리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고 정해진다고 말합니다.
1) 자유로운 행위자의 자발적 행동도 작정에 포함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위자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동들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아주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하나님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엡1:10~11“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진술은 모든 일에 적용됩니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전체 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우연한 사건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나님이 지배하시고,
통제하시고, 결정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성경의 증거가 있습니다.
잠16: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제비를 뽑는 행위는 우리가 합니다.
하지만 “일을 작정하기를 여호와께”있습니다.
마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떨까지 세신바 되었나니”
잠21:1“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 악한 행동도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심지어 악한 행동까지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가 설교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 4:27~28)
그 사람들이 끔찍한 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미리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같은 문제에 대한 놀라운 예가 창세기에서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말하는 유명한 구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겪은 일을 말하면서 형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
우리 관점에서 보면 그 일을 행한 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그리고 질투심에 가득 차서 비열하고 매우 악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이악한 행동들도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영원하신 작정 아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리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악을 유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악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악한 행위자들이 악을 행하시는 것을 허용하시며,
그분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악을 지배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악에 한계를 설정하여,
그 악이 벗어나지 못할 정확한 궤도와 이루게 될 결과를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도록 지배하십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이 모든 문제에 대한 가장 놀라운 예는
아마도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사건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행동이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영원하신 목적과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3.3. 하나님의 모든 작정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다.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작정은 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와 그분 자신이 거룩하심 외에는
어떤 것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에 원인과 결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연과 인생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리가 말하는 것은 모든 원인과 결과,
자유로운 행동들은 하나님 자신의 작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같이 특별한 방식으로 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결말이 확실하게,
그리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도록 정하셨으며,
그 무엇도 이것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고 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땅의 모든 사람들은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손을 금하거나 심지어 그것에 의문을 표시할 수도 없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언제나 “그 기쁘신 뜻래로”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 인해 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물론 이 교리가 가장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는 곳은 저 웅장하고 위대한 로마서 9장입니다.
이 시점에서 특히 11절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들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롬9:11~13“[11]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한다고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질문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행한 일 때문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임신조차 되기 전에,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그들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주권적입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9:14)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일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롬 9:15~18)
3.4. 하나님의 작정은 효력있는 작정이다.
네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작정은 유효적입니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능하심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들은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뜻하시는 것은 틀림없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꺾을 수 없습니다.
3.5.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본성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다섯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작정은 그분 자신의 최고로 지혜롭고, 자비하시고, 거룩한 본성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것은 논증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안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완벽하시고, 절대적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시기로 결정하셨는가?” “우리는 모른다.”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죄를 허용하기로 뜻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다면 죄가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광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볼 때,
그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우리의 책임-우리가 확신 할 수 있는 두가지 사실>
첫째 : 하나님은 결코 죄의 원인이 아니십니다.
합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약 1:13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합니다.
둘째 :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피조물의 본성 및 행동 양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다시 말해, 비록 우리가 그것을 조화시킬 수는 없지만,
궁극적인 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자유로운 행위자들과 자유로운 행동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궁극적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작정하시고도,
우리가 행하는 일에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수 있습니까?
여기에 그 답이 있습니다.
롬9:20~23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하지만 그 둘을 어떻게 조화시킵니까? :
로이드 존스의 답-“저로서는 조화시킬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성경이 두 가지 사실, 즉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자유로운 행위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6. 하나님은 창세이전에 구원을 작정하셨다.(행 13:48)
여섯 번째 원칙은 사람들과 천사들의 구원, 특별히 그들 중 일부의 구원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그분의 선하신 뜻과 은혜로 말미암아 이 일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5~26절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되었습니다.
요 6:44에서 우리 주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행13:48절에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후2:13절“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3.7.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로마서 9장 20~23절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라는 이 위대한 교리를 선포하면서 로마 사람 하나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보기에 이것은 모순 될 뿐 아니라 공정치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한 것이 진실이라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바울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롬9:19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바울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롬9:20~23절
그것이 사도의 대답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대답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가 시간에 매인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맞붙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작은지, 당신이 얼마나 유한한지,
타락의 결과로 얼마나 죄악 된 존재가 되었는지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 가운데 들어가기까지는 궁극적인 이해를 보류해 두어야 합니다.
지금 이곳,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일관성이 있으심을 믿고, 하나님이 그의 영원하신 작정과 창세전에 결정하신 일들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4. 결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당신에 대해 결정하신 일들은 확실하고, 안전하고,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당신을 그분의 손에서 빼앗거나,
당신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그만 두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전에 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 그분은 나를 아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아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기도 전에 우리의 이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 굽혀 경배합시다.
그분의 거룩하신 임재 안에서 겸손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 그 계시에 우리를 복종시킵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