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백중기도 입재를 ‘자비수참 기도법’ 을 공부하며 시작합니다.
‘내가 잘못한 죄도 내가 받고, 내가 잘 한 것도 내가 받는다.’ 결국에 이 모든 해결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인연 있는 다겁생래 인연들이 업에 얽혀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매 그 영혼들의 어머니인 지장보살님의 법력과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해 자유자재하기를 발원하며 이 백중기도를 시작합니다. 백중기도 기간이라 절에 기도를 올리는 것만이 나의 모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은 결국에 이 모든 해결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결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행히 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처님도량에 모여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성문(聲聞)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일 겁니다. 아무리 예쁘고 값비싼 고양이라고 해도 이 자리에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간단히 말하면 육도윤회를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천상인 비비상처천의 33천을 윤회한다고 경전에서 말씀하십니다. 육도윤회라 하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도리천의 삶을 각자 지은 인과 따라 인연을 지으며 윤회하며 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명에서 지은 악업의 과보로 만나야 하는 인연들에게 우리의 죄업을 참회하고, 우리 자신 또한 억울함으로 원한심을 갖고 인연 맺은 그 상대를 용서하며 서로의 원결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하고, 우리가 상대를 억울하게 만들었던 그 모두를 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우리도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부처님 말씀인 경전과 제불보살님들의 도움으로 깨달아서 꼭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꼭 죽어서 사악도를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을 살면서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먹고 또 먹어도, 채우고 또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나는 아귀의 습성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은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지금 가난해서 20평 아파트를 사기 위해 인간으로의 도리인 길흉사(吉凶事)를 외면하고, 가난한 사람이 나에게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결국에 목표를 달성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 몸 받은 우리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바세계란 욕계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욕망이 끝이 없이 샘솟듯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아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미래의 부처님들이 계시는 도솔천을 우리는 지족(知足)천 이라고도 합니다. 앞으로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 사람 몸을 받아 욕계로 오시기 때문에 아마도 마지막 지족천이 수행의 끝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다보면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어디까지가 만족의 선인지 알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어리석고 지혜 없이 행동하여 겉모습은 사람인데 하는 언행이 축생의 삶은 살고 있는 것은 않은지 스스로 봐야합니다.
또한 아수라가 되어 싸움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도 싸움을 하도록 하는 그런 습업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고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고 사경과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수행자(修行者)가 될 수 없습니다. 수도자(修道者)는 분명히 부처님이나 앞선 많은 선지식들이 가신 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아는 걸로 끝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생에 사람 몸 받아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전생에 많은 선한 업을 지은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은 악업 또한 불법을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설마하니 내가 그랬을까 하고 우리는 피하려 합니다. 그래서 악업이 생기는 원인을 먼저 생각해봐야합니다. 바로 첫째는 습업(習業)때문입니다. 항상 십악중죄 중에서 어떠한 마음을 쓰고 있는지를 봐야하고, 장애가 생기는 때를 관찰하여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 조용히 참선을 하거나 염불을 통해 부처님 보살님들과 대화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냄새나는 습업을 찾아내게 되고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야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한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두고 보자’ 하는 것이 이생에 받는 과보입니다.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지은 잘못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하다 보니 그들이 우리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원한심으로 하는 일마다 되풀이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해 운수를 보다보면 원한으로 인한 과보로 때에 맞추어 몸이나 하는 일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도 이제는 아실 겁니다. 그러면 어떤 악업이 지어졌는지를 먼저 알아야합니다. 과연 어디에 그것들이 있는지도 이제는 아실 겁니다. 한 번 더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신체로 접촉해서 알아차리는 5식과, 의식 그리고 이 몸이 ‘나’라고 하는 7식에 다겁생래로 저장되어 온 8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래의 모습인 9식은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8식입니다. 우리는 청정한 그 9식의 모습을 여러 생을 살고 윤회하면서 지금의 8식의 모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단지 그러다보니 청정한 9식이라고 구분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겁생래로 인연 있는 분들을 모시고 천도재를 올리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먼저 알았기에 다 같이 부처님 전에 모여서 참회기도를 하기 위함입니다. 무지몽매하여 어리석어서 지은 모든 죄업들을 같이 참회하고자, 우리는 부처님 전에 두 손을 합장하고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음을 되새기며 수행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 전생담에는 500번 전후로 환생하셨다 합니다. 33천에 계시다가 그 겁이 다하매 인도의 한 왕자로 오셔서 인욕과 보시의 수행을 하셨고, 마지막에 도솔천에 계시다 고타마 싯타르타로 마지막 윤회를 마치며 서가모니 부처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생의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것은 부처님은 당신이 무결점의 유일신으로 존재 했던 것이 아니라 당신도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으시면서 성불에 이르셨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처님처럼 깨닫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경전은 지금 내가 중생 짓을 하고 있는 지,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지 깨닫기 위해 주신 방편이라 하셨습니다. 그 방편들을 통해서 우리는 깨달아서 지혜를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불교는 반야(지혜)입니다.
다겁생래로 얻은 8식에 저장된 습업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천도재, 기도, 경전이란 방편을 이용합니다. 절대 이 방편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오늘 입재에 어둠(무명)속에서 지치고 힘들었을 유주무주 유연무연 모든 분들에게 깨끗하게 목욕하시고 새 옷을 갈아입게 하고자 관욕을 먼저 합니다. 보통은 49일 회향에 관욕해서 부처님 전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곳에서는 우리 도움이 필요한 영가님들을 위해 관욕을 먼저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신 영가님들은 육신이 없음을 아시겠지만 이 도량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나 떠돌아다니신 객혼들을 위해 관욕과 새 옷을 먼저 드립니다.
“영가님들, 오늘은 깨끗하게 목욕하시고 예쁜 옷 갈아입으시고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살아생전 영가님들을 돌봐 주시던 부모님 같은 지장보살님이 계십니다. 지장보살님과 모든 제불보살님 천신님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으니 마음을 편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기도에 맞추어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연들이 할 수 있지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조상님들 본인들의 업은 스스로가 소멸하셔야 함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잘 들으시고 우리와 같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