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경영학과 김성준
64년생 김도영.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스윗하고 귀여운 아저씨가 틀림없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일반적인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TV만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부부처럼 아빠는 일을 하고 엄마는 집에서 식사를 차려주는 게 정상의 가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집에선 엄마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다. 가끔 반찬을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두시는 게 전부였다. 항상 아침은 먹지 않았고 점심은 급식을 먹고 저녁은 아빠가 차려 주셨다. 기억에 남는 추억도 집 앞 바다에서 아빠와 낚시를 하거나 당구를 치는 등과 달리 엄마와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삼때가 돼서 신경이 곤두 서있는 나는 불만을 토로했다. "왜 엄만 아침 안 해줘? 우리집만 그래" 나 밖에 몰랐던 나에게 아침을 해주기 위해서 엄마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하고 5시 30분에 나를 깨워 밥을 먹이셨다. 내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다시 주무시러 가셨다. 엄마는 내게 엄마 노릇을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되려 이기적인 아들 이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수능을 마치고 성인이 되고나서 한참 뒤, 엄마와 둘이서 술을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엄마의 학창시절에 외할아버지가 여자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에게 공부를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다. 그 어린 소녀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가슴에 한이 맺혔다. 독립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중 엄마는 직장에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시골에서 자랐고 키 작고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다정한 남자였다. 엄마 마음에 맺힌 한을 잘 이해해주었고 금방 사랑에 빠졌다. 결혼하고 우리 형제가 태어난 후 아빠는 엄마가 공부할 수 있도록 퇴근하면 바로 우리들을 돌봤고 사랑해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 아빠는 술을 마시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지 않고 우리를 돌보았다. 이 얘기를 듣고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내 꿈이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내 롤 모델이 아빠인 것도 이때부터였다. 마냥 집에서 장난꾸러기에 귀여운 아빠가 멋있어 보였다. 나도 아빠처럼 멋진 남자가 되기로 다짐했고, 사회에 잔존하는 성차별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여성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매체에서 많은 남성들이 맞서
반박하며 갑론을박의 갈등 양상을 띄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일부 변질된 악성 페미니스트들로
인해서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종종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차별받는 여성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성이 많다는 것을 SNS의 댓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성들은 당연히 여성의 삶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모르고,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알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죄다. 당장 집에
가서 어머니께 여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운전할 때 여자라고 만만하게 생각해서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아저씨들이 즐비하고, 일부는 서스름 없이 성희롱을 내뱉는다. “여자가 담배피면
못 써”라는 말은 남자는 펴도 괜찮다는 말인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억지다. 남성들은 삐뚤어진 잣대를 여성들에게 강요해왔다.
한국 아줌마들이
기가 세다는 말은 왜 나왔을까? 이 사회가 여성들을 강해질 수밖에 없게끔 만든 것이다. 억세고 강해지지 않으면 차별과 수모는 다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연약하고
여리면 무시하고 얕보는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사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진 여성들을 “남자
잡아먹겠다.”,”여자가 조신하지 못하다.”, “여성미가 없다.”는 말들로 더욱 공격해왔다. 게다가 직장에선 빈틈을 보일 때 마다
들어오는 성희롱과 유리천장도 아닌 대놓고 보이는 강철천장도 있었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이 말은 실연을 겪었을 때 친구가 위로해주며 했던 말이다. 평소에 잘 생각
안 했던 말이지만 참 맞는 말이다. 실제로 세상에 절반이 여자라는 뜻도 있지만, 이 말에는 남자와 여자 똑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애초에
사람이 만들어지길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남녀는 조화되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무려 세상의 절반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귀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모른 체하지
말자.
첫댓글 글을 읽으니 참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극단적인 남성 혐오, 여성 우월주의적인 글을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 지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최근의 여성인권문제가 말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저의 어머니의 경험을 통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듯이 글쓴이 분도 어머니를 통해 문제의식을 가지신 것 같아 공감이 많이 갑니다.
저는 남자, 여자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여자는 ~고, 남자는 ~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접근한 적이 없어서 최근 남녀들의 성대결을 접할 때 잘 이해를 못했어요.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면 될텐데, 어디서부터 어긋나서 이 상황까지 왔는지 .. 제 기준에서 가장 예민한 사회 문제라 생각되어집니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