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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陽文化保存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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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동+......☜ 스크랩 각기리 선돌 앞에 서서/ 오태동
금수산 오태동 추천 0 조회 68 16.02.14 15:16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각기리 선돌 앞에 서서



단양 적성면 금수산로 길가에 두 개의 바위가 서있다.

매포읍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 올 때마다 그 곁을 지나게 되는데

이 한 쌍의 선돌을 나는 할배바위, 할매바위라 부른다.

죽은 후 저렇게 돌이 되어 마주보며 세월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제안을 아내에게 해본다.

겨울바람, 봄바람을 쐬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인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각기리 선돌엔 수 세대를 이어 이곳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영혼과 손길이 묻어 있기에

이건 그냥 굴러다니는 돌덩이가 아니다.

수천 년 전 한 마을을 상상해보자.


                                                                                                       (할배와 할매를 끈으로 이어 놓았다.)


지금이야 대형 굴삭기로 들면 들릴만한 크기지만 아무 기구도 없었던 시대에

인력으로 이만 한 돌을 찾아서 옮기고 반듯하게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참여한 인원도 상당했을 테고 작업일수도 제법 걸렸으리라.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바위를 무엇 때문에 세웠을까?


                                                                                                                                         (할배바위)


고인돌, 선돌에 대한 학계의 연구를 빌려오면 이건 무덤 위에 세워진 표석이다.

연구의 기초 위에 구체적인 상상을 더해보자.

어차피 우리는 전문가든 아니든 몇 조각 사실을 놓고 소설을 쓸 수 밖에 없다.  

무덤의 주인공은 마을에서 존경받는 연장자(장로)였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두 어르신은 이웃마을과의 갈등을 조정과 협력으로 풀었고

추위와 굶주림의 위협 속에서 마을을 지키는데 앞섰다. 

병들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며 이웃사랑을 실천하신 분들 이었다. 사랑은 물론 그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돌아가셨고 사람들은 당신들이 보여주었던 지혜와 뜻을 오래 기억하고 되살리고 싶었다.

책도 없고 앨범도 없었으니까, 영원한 추억의 연상물로 돌을 세우기로 했다.

 

                     (나도 아버지를 추억하며 형제들과 가족묘소에 돌 하나 놓은 적이 있다.)


왜 바위였을까?

바위는 흙이나 나무와 비교할 때 그 생성과 소멸의 시간이 영원에 가깝다.

수천만 년 모습 그대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는 지질학적으로는 우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현대물리학의 분석으로는 자기장을 가지고 있다.

샤머니즘에서 큰 바위를 치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신비한 에너지의 파장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람(人性)과 자연(物性)의 만남에서 생성된 신성(神性),

이 소박한 믿음으로 할배와 할매는 바위가 되고, 바위는 다시 할배 할매가 되어 선돌이 되었다.

동의하시든 아니하시든 내 추론의 종교적 배경이다.  


                                                                                                                                                 (할매바위)

주검 위에 세워진 돌.

죽음이 생명의 다른 한 모습이라고도 하지만 성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에겐 두려움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기에 죽음의 공포감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인류는 이 압박감에서 벗어나려고 종교를 고안했다고 한다.

영생, 영혼, 구원의 문제가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삶과 죽음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우선 자연 속에서 신성을 찾게 했다.

사람들은 가뭄에는 비를 달라고, 풍년에는 감사하다고 달려와 절을 올렸다. 

다산(多産)을 바라는 자손들이 자식 낳게 해달라고, 낳게 해주어 고맙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각기리 할배 할매 선돌에는 이런 종교적 의도가 담겨있다.



그럼 왜 여기에 세웠을까?

뒷산엔 양지바르고 호젓한 곳도 많은데 어찌 마을 한 입구에다 세웠을까?

대체로 고인돌, 선돌은 마을 입구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결속과 더불어 밖으로 집단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에서 씨족, 씨족에서 부족으로-이른바 ‘우리’라는 공동체가 확대되면서

그 권위와 경계를 표시할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한 무리가 땅의 한 곳에 정착하면 그 존재를 알리려는 표적과 경계의 필요성은 당연하다.

여기는 우리 땅이며,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에겐 이 바위를 세울만한 힘이 있으니 함부로 넘보지 말라.

선돌은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장성이나 성황당처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상 이었다.



         이쯤에서 역사적 상상의 나래를 접고, 오늘의 현실로 돌아오자.  

묘석을 세우는 습속이야 남아 있지만 그간 인류사의 흐름은 엄청나게 변했다.

신흥종교들이 쏟아져 나와 온갖 자연 신성들을 흡수 통합한지는 오래되었다. 

이른바 근세사의 두드러진 변화만 해도 삶의 형태는 정착사회에서 신유목사회로 바뀌었다. 

산업화과정, 정보화 과정을 통해 변화의 흐름은 정신없이 빨라져가고 있다. 

이상향을 꿈꾸며 정착지를 찾았던 사람들이 이젠 시장과 일터를 쫓아 분주히 유랑하고 있다.

한 때 묘석이 지켜주었던 권위와 경계는 실시간 위성이 찍어주는 세계 지도 위에서 의미가 없다.

먼 옛날 정착시대의 선돌은 신세대에게 더 이상 흥미꺼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선돌 앞에 발길을 멈추고 섰을까?

긴 유랑의 생활을 마감하고 사천년 전 촌민으로 돌아와 똑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걸까?  

"할배 할매요,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우리 애들 잘 돌봐주시고

 이 땅을 착하고 깨끗하게 지켜주세요. 비나이다."



         (2016. 2. 14.) / 숲속의기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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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2.15 09:08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

  • 16.02.15 09:53

    각기이릌과같이 오랜역사는 그저봐라볼뿐. 전통적 이벤트가 없으니 안타까울뿐..
    제천에 입석문화 축제를보면 우리단양은 답답하다 문화적가치나 입증되는 자취가 그쪽과 수준이다르다
    앞으로 문화보존회가 깊이 생각할 연구과제이다.잘보았읍니다...

  • 16.02.15 10:55

    훌륭한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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