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속의 명산 백월산(白月山/428m) 산행
♣ 언 제 : 2007. 7.17(화) ♣ 누구와 : 산행친구 5명 ♣ 코 스 : 월산마을-마산리 갈림길이정표-백월산 정상-헬기장-백운암-월산마을 ♣ 시 간 : 2시간
7월16일 아버님 제사날이라 내고향 북면 시골집(월백리 월산마을)을 찾았다. 다음날인 7월17일(제헌절)이 공휴일이라 시골집에서 자고 집에 쉬고있으려니 창원 산행친구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제삿밥도 얻어먹을겸 백월산 산행간다며 기다리고 있으라 한다. 10:20분경 친구 일행이북면 집에 도착했다. 길도 안내할겸 등산준비도 안됐지만 허름한 차양모자 하나 눌려쓰고 함께 산행길에 나섰다. ↑ 백월산 전경 백월산(해발428m)은 오랜옛부터 산은 그리 높지않으되 삼봉이 태산을 압도하는 진산으로 알려진 신비의 명산이다. 경남 창원시 월백리,마산리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월산은 산의 명칭에 얽힌 당나라 황제와 궁궐속에 연못에 나타난 사자암의 신비로운 전설과,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양성 성불이야기는 신라경덕왕16년 (서기757년)창원최초의 가람인 백월산 남사(白月山 南寺)를 탄생케한 성서러운 불정토의 산이다
북면 마금산 온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완만한 능선으로된 작은산들이 이어지다가 우람한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산봉우리에 커다란 바위 세개가 자리하고 있어 삼국유사에서는 전하는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10:20분 집을 나서다 먼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산행하기 좋은 맑고 깨끗한 날씨다. 우리일행은 집을 나서 농로를 따라 5분여 만에 첫번째 이정표를 만났다. ↑ 백월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
↑ 산행길의 버섯 ↑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 우리가 잠시 쉬고있는 이곳은 그 당시에는 넓다란 잔디밭이였는데.. 그모습은 간데없고 나무들만 무성하구나.. 어릴적 백월산에서 나무한짐을 지고 내려오다 이곳에오면 어김없이 쉬어가곤 했었다. ↑ 마산리 갈림길 이정표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일명"독주골'능선 이정표에 도착했다. 이곳 또한 백월산에서 나뭇짐내려오다 지고 쉬어가는 장소였다. 감회가 새롭게 다가온다. 백월산은 어릴적 내 삶에 있어 빼놓을수 없는 동반자이다. 땔감이 없어 밥을 짖기힘든 어린시절 하루 한두번씩 땜감하려 백월산에 올랐으니..
↑ 창원시장을 만나.. 마산리 이정표에서 5분여 오르다 하산중인 박완수 창원시장을 만났다. 일행1명과 함께 백월산 정상갔다 내려오는 길이라 한다.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백월산이 전설속의 명산이란 의견을 교환한후 시장님께서 앞으로 더욱 많은관심을 가져줄것을 부탁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 정상을 향한 암응길
↑ 여기 저기 바위손이.. ↑ 잘 정비된 암릉길 ↑ 먼저 올라 우리를 내려다 보고있는 우리일행 ↑ 백월산 정상과 마주하고 있는 큰 암봉에서 바라본 정상 을 떠바치고 있는암벽 ↑ 자귀꽃과 암봉 ↑ 정상아래 암봉 ↑ 큰 바위봉에서 바라본 정상모습 ↑ 자귀꽃/백월산 정상과 아래 암봉 ↑ 어릴적 이바위를 칼바위라 불렸는데.. ↑ 정상직전 길목에 자귀나무 꽃이 군락을.. ↑ 정상아래 야생화/파랭이 같기도 하고.. ↑ 백월산 큰암봉과 정상부 암봉사이 이정표 11:20분 백월산 정상에 서다 큰바위사이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서 고향사람 만나 음식 나눠먹고 오래 수었던 탓에 산행한지 1시간 여만인 11:20분경 백월산 정상에 섰다. ↑ 백월산 정상 표지석 ↑ 백월산의 유래 안내판 정말 감회가 새롭다. 어린시절 동네근처 야산은 모두 나무한그루 없던 민둥산이였지만 백월산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잡나무로 그런대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백월산이 이렇게 명산인지는 몰랐었는데.. 삼국유사 기록에 남아있는 전설속의 명산임을 알고부터는 백월산 자락에서 태어난 것이 가슴뿌듯한 자랑으로 느껴진다. ↑ 백월산 정상에서..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남저수지와 정병산(우측멀리 뽀족한 부분)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월산마을과 월촌마을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우리동네(월산마을)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마산리와 북면 온천장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모래사장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남저수지 일부 ↑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면소재지와 온천장 ↑ 백월산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 천년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줄기.. 우리나리 철새도래지가 유명한 저남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병산,천주산을 비롯한 마산 무학산도 아련거리고,.. 군데군데 옹기종기 모여 시골마을들.. 지팡이릉 짚고와서 지팡이를 버리고 간다는 북면식염 온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전설이 어린 백월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가히 천하 일품이다. ↑ 하산길에 다시보는 암릉 ↑ 도토리가 사이좋게 조롱조롱.. ↑ 정상아래 이정표 ↑ 삿갓 버섯인가? ↑ 참나리꽃 ↑ 헬기장 지금은 헬기장으로 변해있지만 이곳 또한 추억이 어린 곳이다. 매년 10월이면 가을걷이를 끝내고 북면 월산,남백,월촌,마산리 동읍 봉강 등 이웃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하루를 즐기는 장소로 사용되던 터였다. 과자,단감,고구마 등을 여기까지 이고와 팔기도 했고.. ↑ 헬기장 주변의 물레나물 꽃술이 아름답구나.. 꽃잎도 예쁘더니 꽃술 또한 예쁘구나. 헹기장 곳곳에 물레나물 꽃이 피어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구나. ↑ 물레나물꽃 ↑ 헬기장 이정표 우리 일행은 여기서 화양고개쪽 까지 갔으면 좋으려만 다음을 기약하며 절골쪽(월산마을)으로 하산한다. ↑ 하산길의 돌탑1 ↑ 하산길의 돌탑2 ↑ 백월산 우측 바위릉 ↑ 칡과 어름,선머루 다래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산길.. ↑ 칡 능쿨을 헤치고.. ↑ 초라한 모습의 백운암 ↑ 백운암을 받치고 있는 주축돌이 눈길을 끌고..
↑ 백운암 마루기둥을 뜨받치고 있는 연화석 백운암 마루기둥 받침돌로 쓰이고 있는 백월산 남사 석등(추정)의 화사석과 연화대석, 돌에각과 돌에새긴 무늬가 예사롭지 않다.
↑ 수입 해바라기란다. ↑ 백운암 아래 이정표 ↑ 백운암과 관련이 있는 집인듯..지금은 폐옥으로.. ↑ 아래에서 바라본 백월산 암봉 ↑ 아래에서 바라본 백월산 암릉/우측봉 ↑ 백월산 남사 신축/복원사찰 백월산 남사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이 정유년(757년)에 사람을 보내 백월산 남사를 세우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은 764년에 완공되었으며,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모시고 "현신성도 미륵전"이라 하고, 아미타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시고 "현신성도 무량수전"이라고 하였는데 아미타상에는 금물이 모자라서 다 바르지 못해 얼룩진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 백월산 남사에서.. ↑ 꽃봉오리가 너무 아름답워..
↑ 백월산 남사 전경 ↑ 백월산 남사에서 바라본 백월산 정상부(1) 백월산 정상부 사자암은 와불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누워있는 모습같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좌측 봉우리가 머리 부분이며, 가운데 봉우리가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는 형상입니다.
↑ 백월산 남사에서 바라본 백월산 정상부(2) ↑ 북면단감 ↑ 도라지꽃 ↑ 월산마을 이정표 12:30 월산마을 도착(산행종료)
산행후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백월산을 찾았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창원시에서 등산로 곳곳에 이정표도 세우고 위험한곳은 난간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찾을수 있게 했다. 창원시에 감사드린다. 옛시절 흔적들은 많이 지워졌지만 백월산 정상부의 암봉(사자봉)은 옛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산행코스가 짧아 아쉬웠지만 뜻깊은 산행이였다. 다음에는 화양고개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탐방한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말 뜻깊은 산행으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백월산에 얽힌 전설
백월산과 노힐부득,달달박박 에 얽힌 전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두 사람은 백월산에 올라 먼 산에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때 부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갈 길 더딘데 해는 져서 먼 산에 어둠이 내리니 글을 읽은 박박이 생각할 여지도 없이 한마디로 거절했다. 해 저문 깊은 산길에 부득은 이 게송을 듣고 내심 몹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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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속의 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산과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