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을 지킨 소년
김상삼
하늘을 떠받친 높은 산줄기가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고 했습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높고 길게 이어진 산줄기란 뜻입니다. 백두대간에서 상주 쪽으로 세 개의 산줄기가 뻗어 내렸습니다. 그중에 가운데 줄기가 산중턱에서 바위 절벽으로 우뚝 멈추었습니다. 그 바위 모양이 호랑이 모습을 닮아서 ‘범바위’라고 불렀습니다. 그 바위 아래쪽에 산마을과 작은 들판이 있습니다. 학이 알을 품듯 두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찬이가 사는 산골마을입니다.
“아빠, 오늘도 산에 갈 거예요?”
찬이가 등산 배낭을 챙기는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가야지. 산은 내가 가야할 병원이고 약국이니까.”
찬이네 아빠는 폐암환자입니다. 의사선생님은 자연인처럼 깊은 산속생활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대구에서 이사 오면서 아빠는 건강을 찾았고, 찬이는 탐정가의 꿈을 버렸습니다. 산골 생활은 단순했고, 탐정에 관한 책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탐정가 대신 아빠가 캐온 약초와 버섯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빠, 오늘은 일요일이니 나도 따라갈래요.”
“찬이 넌 위험해서 안 돼.”
“저도 이제 6학년이라고요.”
“백두대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방송 못 들었니?”
“그렇다면 내가 아빠를 지켜드려야 하니까 더욱 가야지요.”
찬이의 말에 아빠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빠는 험한 산에서 멧돼지라도 만날까봐 찬이가 산에 가는 걸 꺼렸습니다. 그러나 친구도 없는 산마을에 혼자 있는 게 안타까워 모처럼 허락한 것입니다. 진돌이는 찬이랑 함께 산에 가는 게 신나는지 꼬리를 치며 앞서 달렸습니다. 찬이도 뛰었습니다. 진달래꽃이 빨갛게 웃으며 모처럼 산에 오른 찬이를 반겨주었습니다. 산비탈이 온통 진달래꽃으로 붉게 타고 있습니다. 우뚝 치솟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채운 푸른 숲이 파도처럼 일렁거립니다. 그 파도 속에서 울려나오는 뻐꾹새 소리가 신나게 들립니다. 작은 산새소리들도 잔잔하게 끼어듭니다. 바람결에 실린 폭포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옵니다. 산골의 봄은 자연의 노래와 빛깔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습니다. 잣나무 숲 사이로 범바위가 보입니다.
‘며칠 전만 해도 수복이와 저 범바위에서 놀았는데.’
범바위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추억으로 되살려주고 있었습니다.
“찬아, 우리 오늘 버섯도 따고 약초도 캐러 산에 갈래?”
수복이가 로프를 챙기며 말했습니다.
“버섯 따로 가는데 웬 로프니?”
“석이버섯은 바위 절벽에 있거든. 그래서 로프는 필수품이야.”
“로프로 뭘 하는데?”
“위험한 절벽에서 약초 캘 때도 필요하고, 석이버섯도 따지.”
수복이는 마치 전문가처럼 말했습니다.
“백두대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니 높은 산엔 가지 말자.”
“범바위까지만 가는 거야.”
수복이는 이렇게 말하며 범바위로 향했습니다. 범바위 아래쪽 바위틈에서 물이 퐁퐁 솟아났습니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솟는다는 ‘온샘 약수터’입니다. 수복이는 벌컥벌컥 샘물을 마시고는 범바위 위쪽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참나무가 있습니다. 수복이는 그 참나무 둥치에다 로프를 맸습니다. 그리고는 익숙한 몸짓으로 로프를 타고 범바위 절벽에 있는 석이버섯을 땄습니다. 찬이는 불안했습니다.
“위험하니 조심해.”
“걱정 마. 아빠한테 배웠으니까.”
수복이는 히죽이 웃고는 범바위 입에 쑥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범바위 입안에 뭐 있니?”
“아니, 범바위 전설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범바위 전설이 뭔데?”
“범바위 입에 손을 넣으면 틀림없이 호랑이에게 물려간다는 전설이지.”
수복이는 이렇게 말하며 아래쪽을 보았습니다. 발자국 소리에 돌아보니 별장 사장이 오고 있습니다.
“범바위 전설처럼 호랑이에게 물려 가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요새 호랑이는 동물원에 있지 산에는 없거든요.”
“백두대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방송 못 들었니?”
“헛소문이라던데요.”
“아니야, 나도 며칠 전 잠결에 멀리서 들려온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어.”
“정말로요?”
수복이가 움찔 놀랐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찬이야, 엄마 아빠는 마을 회의에 갔다 올 테니 혼자 집에 있어라.”
“예.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찬이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혼자 있으니 낮에 별장사장이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수복이가 걱정되었습니다.
‘수복이도 혼자 있을 텐데 범바위 전설 때문에 엄청 떨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찬이도 모르게 자꾸만 범바위 쪽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범바위는 어둠 속에 묻혔고, 그 위로 별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으흐흥, 어흥.”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온 마을을 뒤흔들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전설 속의 호랑이처럼 문을 열 것만 같았습니다. 문고리를 잠그는 찬이의 손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가슴이 계속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찬이는 그 무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러나 호랑이 울음소리는 이불 속까지 따라왔습니다.
“찬아, 아빠 왔다.”
찬이가 호랑이 소리에 놀랄까봐 아빠가 회의 중에 온 것입니다. 무서움이 성큼 물러갔습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복아, 수복아!”
수복이를 부르는 목소리는 울음이었습니다. 아빠는 무서워하는 찬이를 한 팔로 싸안고 수복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수복이가 호랑이 울음소리에 까무러친 것입니다.
“119를 부를 게요.”
찬이네 아빠가 손 전화를 꺼내며 말했습니다.
“시내서 오려면 1시간은 걸리는데 그동안 수복이가 위험해.”
수복이 아빠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면사무소 옆에 있는 한의원에 가려고 해도 경운기로 반시간은 걸립니다. 산골 마을에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아, 그래. 낮에 별장 사장 차가 들어왔는데 사정해 보자.“
마을 이장님은 이렇게 말하며 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둠 속에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수복이는 몸이 축 처진 채 차에 실렸습니다. 모였던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백두대간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거짓말은 아닌가 봐.”
“그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불안해서 이사라도 가야겠어.”
“누가 아니래.”
산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깊지 않았습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탐정가의 꿈은 버렸지만 찬이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빠의 병을 낫게 해준 산마을을 꼭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다행이도 수복이는 가는 도중에 깨어났고, 별장사장은 놀란데 먹는 약까지 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수복이네 아빠는 자식을 살려준 게 별장사장이라고 여겼습니다. 더 고마운 것은 도시로 나가면 취직가지 시켜주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복이네는 도시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수복이는 별장 사장 때문에 까무러친 걸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일이 자구만 찜찜했습니다.
‘아무래도 별장 사장이 찜찜한데....’
찬이는 생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꼬마 탐정가답게 온샘과 범바위를 보며 상상의 날개를 한껏 폈습니다. 상상의 날개 안에서 범바위 전설, 온샘, 사장의 말, 호랑이 울음소리, 수복이, 마을의 자연환경 등이 한데 어울려 우글거립니다. 찬이는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하나 연결해봅니다. 연결고리로 엮어보니 뜻밖에도 모두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온샘은 온천이 됩니다. 절벽바위들이 곳곳에 둘러쳐진 비탈 밭은 숲속의 골프장이 됩니다. 폭포와 범바위를 품은 절경은 호텔의 조경이 됩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마을은 위락시설이 됩니다. 개울 막은 호수에 바위들이 거꾸로 박히고 울창한 숲이 물속을 수놓습니다. 밤이면 골프장 전등불이 호수를 꽃밭으로 만듭니다. 어둠 밝힌 전등불 사이사이로 초롱초롱 별이 내리고, 풀꽃 향기 퍼지는 물위로 소쩍새 소리가 그윽한 메아리로 내려앉습니다. 정말로 하늘 아래 제일가는 그림 같은 경치입니다.
“찬아, 범바위를 보며 뭘 그리 생각하니?”
뒤늦게 올라온 아빠가 물었습니다.
“산마을을 지켜야 합니다.”
“찬아, 그게 무슨 소리니?”
찬이는 상상 속의 산마을 미래를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어쩌면 찬이 네 생각이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 전화를 꺼냈습니다. 중학교 동창인 포수친구한테 사냥개를 몰고 와 호랑이를 잡아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아빠는 전화를 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호랑이 때문에 산에 오르지 못한 탓인지 곳곳에 탐스런 고사리와 곰치가 널려 있습니다. 금방 배낭을 채웠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아빠의 친구가 사냥개를 데리고 찬이네 집으로 왔습니다. 사냥개를 보자 진돌이가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꼬리를 내렸습니다. 겁먹은 눈으로 사냥개를 보며 비실비실 찬이네 아빠 뒤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길들여진 사냥개는 주인 한마디에 금방 친구처럼 어울렸습니다.
“아빠, 우리도 사냥개 키워요.“
“왜, 너도 포수되고 싶니?”
“그게 아니라 사냥개 세 마리가 호랑이를 잡는 걸 tv에서 봤거든요.”
“그래. 잘 훈련된 사냥개 3마리면 호랑이를 잡을 수도 있단다.”
“아빠, 내 말 맞죠? 그러니 우리도 사냥개 길러요.”
“길들여진 사냥개는 비싸니 당분간 우리 사냥개를 길러보렴.”
“아저씨는 어쩌고요?”
“지금은 사냥 금지 시기니까 괜찮아.”
아빠 친구는 먹이와 사냥개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사냥개를 쓰다듬어주고 눈 맞춤을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사냥개 에게 ‘공격, 기다려, 이리와, 물러나.’이런 말들을 되풀이하는 훈련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잠시 사이에 진돌이와 두 사냥개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리를 잘 아는 진돌이는 갑자기 안내하는 사냥개가 된 샘입니다.
그 다음 날부터는 아빠는 남몰래 사냥개를 데리고 산에 갔습니다. 사장이 오는 주말과 일요일엔 뒤뜰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잘 손질했습니다. 사람들 모르게 호랑이 잡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 뒤로 호랑이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집으로 간 박노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사글세로 어렵게 살아가는 수복이네도 돌아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이사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호랑이 무서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산에도 가고, 해질녘 산밭에서 별이 내릴 때까지도 일을 했습니다. 마을에 또다시 평화가 돌아왔습니다.
“아빠, 사냥개 덕택에 마을이 평화로워졌지요?”
“이게 다 찬이 네 덕택이지.”
“내가 뭘요?”
“찬이 네 추리력과 아이디어가 마을을 지킨 거니까.”
아빠의 칭찬을 들으니 찬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요일 한밤중에 또다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으흐흥, 으흥.”
그 순간 찬이네 아빠는 공격명령으로 사냥개를 풀었습니다. 온 동네에 불이 켜졌습니다. 또 다시 호랑이 소리가 나는 가 했더니 비명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사람 살려.”
어둠 속에서 다급하게 들려온 비명이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바로 녹음기를 든 체 사냥개 공격을 받은 별장사장의 비명이었습니다. 끝
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신춘문예동화 당선으로 문단에 나옴
낸 책으로 ‘김상삼 동화선집’외 50여권 있음
한국동화문학상, 계몽문학상, 대구문학상외 다수 수상
수필 ‘엄마의 자리’로 소태산문학 대상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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