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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안전보장 공로 대통령 표창을 받고, 해군함대 25전대 류진수 해군대위 (1984. 5)
사나이란 바다 같이 넓은 마음
신념을 버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
세상 두렵지 않는 인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요즘 유튜브 '가짜 사나이' 열풍은 날로 병약해지는 현대문화속에
강인하고 의지력 있는 남성상을 원하는것이 아닐까
'가짜 사나이' 주인공 이 근 대위(UDT /SEUL 54-1기)
'진짜 사나이' 주인공 류진수 대위(UDT /SEUL 21)기
국내외 대한민국 해군 UDT /SEUL의 우수성을 알리는 이근 대위
독도수호, 한반도 해양개척정신으로 3백km 독도바다 헤엄쳐 횡단한
유진수 대위의 기개는 이시대와 후대에도 귀감이 되리라 본다.
UDT 예비역 전국 회장 15년간 역임
♡내고향 청산 사랑♡ 장위리 동창모임시 항상식사제공도
청산별곡 싯귀에도 나오는 ‘청산에 살어리랏다’ 의 1천년 고장 충북 옥천 청산엔 조동호, 정순철, 류시화 등 근현대사에 길이 남을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했는데, 보청천을 끼고 있는 예곡과 한곡리, 장위리에서도 무과에 큰 인물들이 나왔다.
동학의 유적이 집약되어 있는 한곡리에서는 박준병 육군대장(육사12기), 보청천 칠보단장 관문 예곡에서는 한광수 해군 소장(해사24기)이 고향의 명예를 떨쳤다.
특히 우리 동창 중에 '사나이 중 진짜사나이' 해군특수전전단 UDT교육대장을 지낸 류진수 친구가 있는데 그의 투철한 사명감과 두둑한 베짱, 근성은 결국 청와대 경호실로 차출되어 오랜동안 나랏님을 보필했다.
▲청와대 경호실로 차출된 류진수 해군대위가 영빈관에서 노태우 대통령 내외를 영접하고 있다.
국가수반인 대통령과 악수 하면서는 대개 머리를 깊이 숙이는데 나랏님과 눈빛을 마주치는 친구의 매서운 눈매는 국가안전 위해 목숨도 불사하겠다는 숭고한 정신이라 보았다(1992.6.3)
유람선 구해 친구들과 전세계 바다여행하는 것이 꿈,
작년 4월 일시귀국한 도일주 친구를 만나 헤어지면서 ‘우리 친구들 유람선 한척 구해 전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 며 포부를 밝힐 만큼 친구는 바다에 대한 원대한 꿈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도일주 친구 일시 귀국 때 성산대교 인근서 근무하는 류진수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사진 왼쪽부터 도일주, 류진수, 안영구, 전대식 / 행주산성, 2019.4)
▲황봉규 친구의 건강회복을 빌며 위해 멀리 미국 이민간 도일주 친구와 안영구 회장과 점심을 함께 했다(2019.4 대방동)
전국팔도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충북 옥천 청산 장위리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수심 깊은 장위리 보를 내집 수영장처럼 헤엄쳐 다니더니 결국 유진수 친구는 고무 보트 한대타고 동서해를 종횡무진 누비며 나라를 지키는 해군특수전 전사로 고향의 명예를 떨쳤다.
또한 친구는 독도가 일본땅이라 우기며 한국바다를 욕보이던 시기, 상어떼가 종종 출몰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동해해상에서 그물을 사용하지 않고 오리발 하나로 독도해상 3백km를 수영으로 횡단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도해상 3백km 목숨건 맨몸횡단, 독도수호 결의 전국민이 박수
마침 친구와 UDT예비역 대원들은 제1회 바다의 날을 맞아 이를 기념하고 독도수호 결의와 해양개척정신을 널리 고취 시키기 위해 1996년 5월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경주 문무왕 수중왕릉 앞바다에서 독도앞 해상까지 역시 UDT대원출신인 산악인 엄홍길 등반대장과 UDT예비역 출신모임인 해마회 회원 30명과 함께 6일만에 횡단해 위대한 한국인의 투지에 국민들은 큰박수를 보냈다.
▲'헤엄쳐서 독도까지' 독도수호를 향한 UDT예비역 대원들의 굿굿한 의지가 프래카드에 새겨져 있다. 왼쪽에 엄홍길 등반대장(UDT28기), 상단 중앙 류진수 교육대장(UDT21기)사인이 있다
UDT가 예전엔 북파공작임무도 맡았던 바, 친구는 신분이 노출될까 우려해서인지 우리들 곁에 볼 수 없었지만 그를 다시 만난것은 40년 전 국방부 관련 취재를 하면서이다. 당시 친구는 해군특수전전단(UDT / SEAL)교육대장 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10여년 가까이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행사를 근접취재하면서 진수 친구를 가까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군부정권 당시 6촌 친인척까지 사상검증을 거친다는 신원조회를 마치고서야 청와대 출입기자증을 얻고 매년 대통령이 참석하는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취재 차 친구가 복무 중인 진해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서울로 휴가를 낸 친구가 특유의 팔자걸음으로 명동거릴 활보하는데 육해공 유명부대를 쏘다녔던 기자적 직감으로 '이세상 무서울게 하나없는 친구로구나' 새삼 느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거릴 활보하는 그의 두둑한 베짱이걸음(?)과 강단이 김두환과 주먹세계 쌍벽을 이루던 시라소니도 때려누일만한 기세가 숨어 있다고 보았다.
▲베레모 쓰고 고향 휴가 온 류진수 친구(사진왼쪽)와 고 김철구 친구
한동네서 자랐던 김철구 친구는 당뇨로 힘겨운 삶을살다 지천명 쉰 살에 목숨을 버렸다.
(이창하 친구 앨범에서)
▲군부정권 시대, 대통령 공식행사를 10여간 단골로 취재하며 친구를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대통령 해외순방 취재중인 전대식 기자 1983, 김포국제공항)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옥훈련과정을 거쳐 적을 죽이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지 못하는 고도의 살상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주먹세계와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 용맹성이 투지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고향 청산에 갈때마다 친구의 고향 장위리 일대를 다니며 살펴보곤 한다. 그런데 최근 나이가 조금 들어 산을 보고 자연을 이해하면서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산의 정기를 끊기 위해 명산을 찾아다니며 명혈을 찾아 그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산의 정기를 받아 큰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내가 살고 있는 관악산 기슭 호랑이 꼬리부분에 위치한 호암산은 조선시대 임금이 살고 있는 경복궁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 나라에서 호암산의 기가 너무 세어 호암산 산꼭데기 절을 지어 산기를 없애는 기원제를 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어머님과 고향방문을 하며 동학혁명이 일어난 한곡리 문바위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데 멀리 도덕봉과 덕이봉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순간 “아~ 친구들은 저산을 매일 바라보며 어릴적부터 큰 꿈을 꾸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산의 명산 도덕봉, 덕이봉 정기 받은 영향도..
지전리나 백운리, 교평리 가까이에서는 볼 수 없는 고향산의 멋진모습을 한참이나 음미해보았다. 특히 지난 여름 이상순 친구의 안내로 도덕봉, 덕이봉 산너머에 올라 신령스럽기까지한 고향산맥의 풍광을 보며 자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성 선생님께서도 이곳 도덕봉에 5번이나 올라 그 정기를 받으시고 불멸의 청산초 교가를 지으셨다 생각 들었다.
▲1천년 청산의 정기와 맥을 이어온 도덕봉과 덕이봉,
▲석환아! 고향을 든든히 지켜주어 참 고맙네~청산 신협이사장 김석환 친구와 함께,
류진수 친구와 같은 장위리 동리서 자란 이창하 친구는 진수 친구는 '멋진 친구' 라며 "UDT예비역 전국회장직을 15년간 역임했을정도로 해군UDT를 사랑했고 우리 장위리 친구들 모임때 마다 항상식사제공을 해오며 고향과 친구를 사랑하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고 귀뜸했다.
창하친구 역시 진수보다는 6개월 늦게 18살 해군에 지원해 해병대 차출되어 후방기 특수(해병대, UDT)교육을 같이 받았다.
‘내게 불가능은 없다’ 물에 빠진 친구생명도 구한
해병대 출신 장위리 이창하 친구도 함께 교육받아
이창하 친구 역시 해병대 입대사연은 지극히 순수하다. 폭설이 쏟아지는 대전 성남동 평화극장에서 ‘이 일병과 이쁜이’ 영화를 보며 팬츠차림의 군인들이 눈보라가 휘날리는데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통나무를 메고 남성다운 모습을 보곤 매료되어 다음날 바로 지원을 했다, 무작정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갔다 실컷 고생 했다고..
그러나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라는 해병대 군생활 3년간의 곤조가는 창하친구 인생에 나침판 역할을 했고 물에 빠진 동창친구의 생명을 구한 사례는 요즘도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그해 여름 경치 좋은 장위리 보 전주호 친구 산장에서 모임을 갖던 친구들은 술도 한잔 거나하게 먹고 더위도 식힐 겸 보로 내려갔는데 마침 고깃배가 한척 있어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뱃놀이를 즐겼다.
▲장위리 보에서 수영을 즐기는 친구들, 오른쪽 두번째가 친구의 목숨을 구한 이창하 친구
잠시 수영을 잘하는 이창하 친구가 웃옷을 벗어 재치고 다이빙 했다. 다시 배에 올라와 시원해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본 옆의 동창 친구가 자신도 해보겠다며 뛰어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허우적거리던 친구가 이내 물속에 가라앉기를 두 세차레, 술들이 거나한 친구들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이에 놀라 잡고 있던 노도 놓치며 저 멀리 떠내려가고 하필 그날은 물살이 세어 ‘친구 물에 빠져죽는다’ 며 다들 놀라 고함만 지르고 그야말로 아비규환 이었다.
친구는 이미 세 번째 물속에 가라앉고 네 번째 친구의 머리가 물밖에 드러났다. 네 번째 물속에 들어가면 부력이 없어져 그대로 가라앉아버린다, 불과 몇 분만에 생과사를 다투는 다급한 상황, 이때 창하 친구가 몸을 날렸다.
7m 거리라지만 이미 친구의 몸은 무거워지고 자신도 지칠대로 지쳐 배까지 구출해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창하친구는 다시 배를 잡아당겨 친구를 배에 실어 구해냈다. 이미 배가 남산 같이 불러 물을 빼내고 군에서 배운 인공호흡으로 한 친구의 생명을 구해냈다.
훗날 창하친구는 “흔히 물에 빠진 사람구하다 같이 빠져죽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자신의 생명도 위험 했을텐데 어떻게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냐,” 고 기자가 묻자,
“해병대서 익힌 전우애로 자신감을 얻었고 더욱이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동창친구의 모습에 우선 살려내야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고 술회했다.
▲유진수 친구 장가 가던 날 (1992년 4 이창하 친구 앨범에서)
▲나랏일 보다 늦장가 가는 유진수 친구♡신부 임혜경 양, 주례를 보시는 분은 바로 윗동네 한곡리 출신 박준병 육군대장으로 이등병에서 육군대장으로 오른 대한민국 국군사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92.4 서울 대방동 해군회관)
역경 딛고 우뚝선, 친구가정의 희망찬 내일을 축복하는 코로나 하객들
이토록 고향 청산의 명예를 높인 유진수 친구에게 얼마전 청첩메시지가 날라왔다, 아니 우리보담 두 살이 많은 친구가 왜이리 혼사가 늦은가 생각해보니 결혼도 나랏일 보느라 늦은 것을 잠시 잊었다. 친구는 우리보담 근 10년 늦게 결혼해 이제야 장녀 류고은 양♡사위 김남훈 군의 늦깍이 혼사를 치루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요즘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 비상이 다시 내려 짝꿍 로사가 “행동반경이 넓은 당신은 40명 넘는 잔치 집에 일체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는데 어쩌지 하며 며칠 동안 고민했다,
결국 안가고 축의금만 보내기로 했는데 어쩐지 맘이 편지 않았다. 그런데 혼사 날 새벽3시, 갑자기 눈이 뜨여지며 세상 두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야, 마스크를 몇 장 덮어쓰고서라도 내가 인륜지대사 이 소중한 날 친구의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 하며 급히 방송장비를 챙겨 원주 예식장으로 향했다.
지방서 올라오는 이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원주 톨게이트 입구에 식장을 마련해 들어서니 입구서부터 철저한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조쳐가 이뤄지고 있었다.
나도 마스크를 몇장 덮어쓰고 카메라를 들고 식장에 들어서니 수많은 축하화환들이 친구의 그동안 활발한 사회활동을 엿볼 수 있었다.
감색 예복정장의 진수친구 모습은 40년 전이나 변함이 없다. 내년 칠순을 바라보는데 주름살 하나 없이 날씬하고 아주 건강한 모습이다. UDT 지옥훈련으로 젊은 시절 고생은 많이 했지만 대신 명랑하고 성실 해보이는 짝꿍 임혜경 배우자의 내조로 평생 친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만 같았다.
청와대, 해군UDT 예비역 대원들, 사회각계각층의 수많은 하객들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회자가
"부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행진!" 하자, 새신랑♡ 신부가 식장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고은아 가자! 네! 여보”
코로나19로 어려운 발걸음을 한 하객들도 일제히 큰 박수로 화답하며 역경을 딛고 세상에 우뚝선
유진수 친구가정의 희망찬 내일을 축복했다. [글과 사진 전대식]
▲UDT교육대장 임무를 맡고 있던 류진수 친구와 전대식 기자 (1983. 4 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