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68:4~10, 날마다 복 주시는 하나님 , 2011.1.9.
미국의 유명한 토요리뷰의 편집장 노만 카슨스(Norman Cousins)는 러시아에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온 몸이 마비되어 결국엔 죽는 병(강직성 척수염: 뼈와 뼈 사이에 염증이 생겨서 시멘트같이 콘크리트같이 굳어서 죽는 병)에 걸렸습니다. 나이 50에 죽는다고 새각하니 너무나 원통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한스 셀리의 <삶의 스트레스>라는 책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다’(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이라는 구절을 읽게 됩니다. “아!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약이 마음의 즐거움에 있구나”.
그 책에서 하라는 대로 매일 웃었습니다.
소리 내어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러자 놀라운 일이, 웃으니까 통증이 사라지고 단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손가락이 하나씩 펴지게 되었습니다.
마비되었던 손가락이 풀려지더니 결국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첫째, 고아의 아버지로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4~6).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노래”(4)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뛰놀 수만 있다면”(4)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될 줄을 믿습니다. 사람이 웃으면 . ‘엔돌핀’이 나오는데 돈으로 계산하면 20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이유도 없이 그냥 웃기만 해도 엔돌핀이 나와서 그 사람의 통증이 사라지고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 뛰놀며 찬양하게 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웃음은 단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엔돌핀이 나오게 하지만, 우리가 기뻐 뛰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우리 내면의 엔돌핀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은 “메마른 땅”(6)입니다. 잘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일과 수고는 혼자서 다 해 놓고서 칭찬과 그 결실은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가 버립니다. 그래서 수고하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따로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곧 하나님을 거역한 백성들에게 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렘 49:9)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뛰놀며 찬양하며 노래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처소’(5), 곧 교회에서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5)이 되시며, ‘고독한 자들에게는 집에 거하게 하시며’(6, 각주 2. 참조), 감옥에 ‘갇힌 자들은 기쁨으로 나오게 하셔서 형통하게’(6) 해 주십니다.
우리 가운데 고아가, 과부가, 고독한 자가, 감옥에 갇힌 자와 같은 억울하고 답답한 문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대로를 수축’, 4) 우리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며, 찬송하며, 기뻐 뛰놀아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흡족한 복을 주십니다(7~10).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갈 때에 하나님은 먼저 광야로 가셔서 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7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 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 잠깐 계셔요. 제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다 준비가 되면 그 때 뒤 따라 오셔요”라고 말입니다. 어떤 계획을 세울 때에도 하나님이 내 계획에 맞춰주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런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여자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내가 먼저 내 말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보다 앞서 가시게 해 보십시오. 우리가 복 주실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인생 광야의 모든 길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심을 믿습니다. 그 때에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9절에 “주께서 흡족한 비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비는 모든 축복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흡족한 축복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곤핍할 때에”(9) 견고하게 해 주셔서, 성도들을 “그 가운데 살게 하셨고”(10), 그리하여 “가난한 자”(힘이나 능력이나 재산이 부족한 자)를 위해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앞서가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셔서 사망에서 구원의 복을 주십니다(19~20).
인생 살다 보면 얼마나 무거운 짐들이 많습니까? 우리에게는 가난의 짐, 질병의 짐, 여러 가지 고통의 짐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러 가지 무거운 짐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이 우리 하나님임을 믿고 그를 찬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신다”(19)는 것입니다. 우리가 짐을 지고 힘들다, 못 살겠다, 고생이다 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 앞에 모든 짐을 내려 놓고 찬양하게 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짐을 날마다 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차를 타면 들고 있는 짐을 내려놓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무거운 죄의 짐, 인생의 고통의 짐을 예수님 이름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짐을 진다고 해결되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짐을 내려놓고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날마다 그 짐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20절에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에 사망, 곧 죽음의 짐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도 없고 활기도 없던 사람이 새 생명과 활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다시 살게 될 줄을 믿습니다(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새해에는 하나님을 뛰놀면서 기쁘게 찬양합시다. 복 주실 하나님이 앞서 가심을 믿으십시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형통한 복, 흡족한 복, 구원의 복을 받으시기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