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사군자 팔방미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 네부부가
2026년 여름 휴가를 계획했다.
본래 해외여행를 떠날 계획이었으나 중동 이란과 우크라이나 등
두개의 전쟁상황을 고려하여 해외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국내 여행지를 찾다가 평소에 방문하기 쉽지않는 여수 거문도,백도를 여행하기로 했다.
일정은 2박3일이며 첫날은 여수에서 만나 소노리조트에서 1박을 하고 여수 밤바다를 즐기며
둘째날은 거문도(巨文島)에 들어가 1박을 하고 백도(白島)를 다녀 올 계획이다.
사군자는 찬훈,제길,원서,그리고 남춘부부이다.
모두 시골 초등동창 친구이며 6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이에 결성된 여행 모임이다.
3부부는 광주에서 출발을 했고 한 친구부부는 수도권에서 출발하여 여수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친구의 리조트 회원권을 활용하여 소노캄 리조트에서 1박을 하며
오동도를 걷고 여수밤바다를 음미했다.
여수는 2012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했고 해양도시로써 드물게
관광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고속도로와 KTX, SRT등 고속열차가 운행하고 있어
관광객이 제법 많은 도시이다.
특히 여수에 오면 먹고가는 음식이 몇가지가 있다.
그것은 서대회무침도 유명하고,생선구이나 게장백반도 먹어 볼만하다.
또한 여수어묵도 가볍게 먹을만 하지만
여름철 통장어탕과 하모 샤브사브는 별미중 별미이다.
첫날밤 친구 문함장이 여수지인에게서 추천받은
국동항 "선경횟타운" 하모 샤브는
여수의 여름 음식의 끝판왕으로 잊을수 없는 행복한 맛이엇다.
그날밤 강샘과 나는 제법 많은 술잔을 비웠다.
이른아침 호텔에서 사우나의 열기로 지난밤의 숙취를 달랬고
냉탕에 들어가 달구어진 심신을 식히니 지친몸이 홀가분하고 시원했다.
그리고 아침과 점심을 겸해 늦은 시간에
호텔조식을 야무지게(?) 즐기고 나왔다.
둘째날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오후 1시40분 거문도로 출항하는 승선표을 매입하고
일행중 두사람은 65세이상 노인할인 요금을 적용 받았다.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나이는 노인세대로 접어 들었으니
때로 공공요금을 할인 받아도 마냥 즐겁지 않고 오히려 서글픈 마음이다.
세월은 참 빠르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어느새 건강을 우선으로 챙겨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챙기는것이 가족과 형제를 위하는 일이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는 일이니 늘 건강을 챙기면서
인생의 후반부를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일이다.
여수에서 거문도항까지 "하멜호" 쾌속정은 2시간만에 주파하였다.
뜨거운 열기가 내리쬐는 7월31일 바다는 온순하여 일행 모두 멀미없이
거문항에 순조롭게 입도(入都)했다.
거문도는 행정구역상 여수시 삼산면이고 여수항에서 거문도까지 거리는 약 100km이다.
그리고 고흥군 녹동항에서는 약 50km 지점이다.
여수항에서는 쾌속정이 2시간 걸려 다니지만
녹동항에서는 거리가 가깝지만 화물선이 3시간30분이나 걸려 운항한다고 했다.
거문도(巨文都)는 18세기 말에 영국의 함대가 가운데 섬,
고도를 2년간 접령했던 시기가 있었다.
한반도 먼바다의 섬이 세계열강들의 침략과 접령시기가 있었으니
힘이 약한 나라의 무력함이 격는 실제적 사실이 서글펐다.
그러나 현대에도 무역이나 외교에서
또는 종교적 문제로 전쟁중인것들도 비슷한데 국력(國力)이 약한 국가의 서러움 일것이다.
19세기 청나라 사람 "정여창" 은
이 섬을 찾았다가 이 섬 주민 김유(金유) 선생과 필담을 나누었는데
대화가 통하는 선생의 학덕을 보고 큰 학자가 살고 있다고 하여
거문도(巨文島)라 부르기로 건의하여
거문도(巨文島) 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다.(인터넷 자료 참고)
그 옛날 남해바다 작은섬에 큰 학식을 가진 사람이 제자를 양성하고 있었고
섬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학문을 깨우치고 있었으니 우리민족의 인문학적 성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날 그 후손들이 K문화를 일으킨 저력들이
이런 민족적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예약한 호텔에서 픽업차량을 보내주어서 쉽게
1.5km 떨어진 거문도 호텔에 도착하고~
곧장 거문도 등대 트래킹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호텔앞 작은해변은 다른 해변과 달리 물은 맑은데 사람이 드물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의 접근성이 한계인듯 하다.
거문도에서는 첫번째로 거문도 등대를 가 보고 싶었다.
거문도 등대는 1905년 세워진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며 대한민국 영해기준 표시점이 있는 등대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120여년 동안 꺼지지 않은 유인등대이다.
그래서 거문도 등대는 거문도을 찾는 관광객의 첫번째 코스이기도 하다.
7월 31일 한낮 태양의 뜨거운 열기는 한반도 전역을 달구고 있었고
어떤 지역은 40도가 넘는 기록적인 무더운 날씨였다.
등대까지 편도 2.5km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땀은 온 몸을 적시었으며
그래도 한발한발 걸어 등대를 향했다.
좁은 임도(林道)에서 승합차 한대가 조심스럽게 추월하더니
차에서 신사분 몇분이 내려 주변을 설명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나는 단번에 짐작할수 있어서 "혹 여수 시장님이신가요? 라고 물었다.
수행원중 누군가가 "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나요? 라고 하신다.
잠시 여수 시장님과 우리는 몇마디 대화를 더 나누었는데 큰 기억은 없다.
사실 오늘 "거문도 은빛바다 축제" 개막행사가 있어서
여수시 행정부수장과 시의원들이 거문도에 오셨던거다.
오늘 저녁 축제 개막식에도 참석 해 봐야겠다.
등대로 가는 길을 걷다가 거문항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태풍이 불어 오거나 큰 사리때에 파도가 치면 건너지 못할 바위 너널지역을 지나는데
햇빛에 달구어진 바위의 반사 열기가 대단하여 빠르게 벗어나고~
평소 차박여행과 트래킹을 즐기는 강샘부부는
동백숲 오르막길을 두손 꼭잡고 다정다감하게 오르고 있고
늘 용감한 은여사는 앞서 걸으며 이미 등대의 성(城)안으로 들어 가고 있다.
거문등대는 "이달의 등대"로 지정됐나 보다.
등대길 터널 동백숲과 등대 성안의 환경이 상상 그 이상으로 깨끗하다.
등대 아래 바위는 표현하기 힘든 절경이고
시멘트 팔각정에 올랐다.
뒷 따라 오는 강샘부부는 손을 흔들며 걸어 오고 있었고
마침내 모두 팔각정자에 올랐으며
드넖은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다.
나는 등대와 바다,그리고 시원한 정자에서 바라 본 절경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랬다.
남쪽 수평선 넘어 제주도 한라산의 능선이 히미하게 보였고
서쪽으로 나바론 절벽이 있는 추자도가 아스라히 보였다.
한손에 옥수수와 카스캔을 든 강샘부부도 즐거운 표정이고
바람에 머릿결이 산발한 문함장부부도 기분좋은 표정이다.
멋진 썬그라스를 쓴 정회장부부는
추억의 과자 맛동산을 손에 들고 포즈를 잡는다.
돼지친구 남춘부부도 다감한 포즈를 잡았고
단체로 사진도 한컷 찍었다.
등대를 벗어나기전에 셀카도 한컷!
등대 숙소앞 공터에 등대 기념탑과 대한민국 영해 기준점 표시점이 있었다.
그리고 "거문도 등대 노래비"가 있는데 그 가사(歌詞)는 생소하다.
나도 셀카 한방!
등대를 보고 돌아와 행복식당에서 자연산 회정식으로 저녁 만찬을 즐기고
"거문도 은빛바다 체험행사" 축제 개막식에 참석하여 행운권을 받았다.
식전 행사로 "거문도 뱃노래" 소리를 재현하고 있었는데
오래전 거문도 섬사람들의 "고기잡이 노동요" 같았으며 리듬은 제법 흥겹다.
상쇠가 선창을 하면 후렴구로 "에헤라미아~" 라고 했던것 같다.
거문도 뱃노래가 우리 민요나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전통이 내려오고 있어 다행인듯하다.
행사장 곁에서는 즉석 갈치 소금구이를 만들어 주시니 받아 먹기도 하고
서너접시 받아 들고 숙소에 들어와 소주 안주로 먹기도 했으니 운수좋은 날이기도 하다.
거문항 강동식당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은갈치는 낚시로 잡은 고기이고
목포 먹갈치는 그물로 잡은 갈치인데 그물에 갈치 피부가 손상이 되니
먹갈치라 부르지만 갈치는 모두 한 종류의 갈치라고 설명을 하신다.
둘째날 오전 10시40분 서동항에서 백도 유람선에 승선했다.
백도(白島)까지 거리는 20여km,
유람선이 2시간을 달리니 백도의 바위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섬은 상백도와 하백도,그리고 나룻섬로 나누어 군락을 이루고
바위섬은 숫자를 셀수 없을 만큼 많았다.
백도의 유래를 설명하는 현판글을 보면
백도는 섬이 백개(百) 정도여서 일백 백도(百島) 였다가
섬 숫자를 해아려 보니 한개가 모자라 일백 백(百)자에서
한일 한획(一)을 빼서 백도(白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
말쟁이 들의 장난같은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백도의 유래"라는 현판글을 만들어 항구에 걸어 놓았으니 믿고 전달해야겠다.
이것은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바위섬은 여러 모양 형태로 파도와 해풍을 견디며 우뚝솟아 있었다.
백도의 바위섬은 홍도의 절경과 독도의 우뚝함이 혼재한 바위섬이다.
관람객들은 유람선의 안내 설명에 따라 시선을 변경하고 설명하는 바위를 찾는다.
나는 백도의 절경 매 바위 보는것을 놓쳐서 아쉽다.
사진으로 본 매 바위의 새부리가 날카롭고 절묘하여 매 바위는 꼭 보고 싶었는데
설명을 듣고 찾는순간 지나쳐 버리니 형상이 바뀌어 찾을수 없었다.
지금은 백도에 사람이 상륙할수 없는 국립공원이지만
한때 사람들이 상륙할수 있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낚시인이나 사진작가들이 많이 상륙을 하니
곳곳이 오염되고 백도의 명물 매 바위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백도의 상륙을 금지하고 매 바위 부리는 다시 인공적으로 부쳐 놓았다고 한다.
나는 40여년전 순천역 근처 허름한 변두리 다방 벽면에 걸린 매바위 사진을 보고 매료가 되어
그 사진 액자를 당시 2만원에 사서 가져와 보관하고 있었다.
그 사진은 지금도 나의 농장 사무실에 그 액자 그대로 걸려 있다.
젊은 시절 백도 매 바위 사진에 빠진 남자는 40여년 만에 실물을 보러 갔으나
못보고 왔으니 언제 다시 가야 하나?
은여사도 백도의 바위들을 즐겁게 보고 있었고
사군자의 배우자들도 백도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그리고 유람선 해설사님께서 단체 사진을 한컷 찍어주셨다.
거문도는 3개의 섬 동도와 서도,그리고 가운데 고도로 이루어진 섬이다.
거문도의 백도는 전설에 따르면
태초에 옥황상제 아들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받아 거문도에 귀양을 왔다가
바다용왕의 딸을 좋아하여 바다에서 풍류를 즐기고 세월을 보내며 살고 있었다.
수년후 옥황상제는 아들이 보고 싶어 신하를 100명이나 보냈으나 신하들 마져 돌아오지 않았다.
옥황상제는 화가나서 아들과 그 신하들을 벌로 모두 돌로 변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크고 작은 섬인 백도(白島)가 되었다.(거문도,백도의 유래 현판글 참고)
거문도와 백도는 살면서 한번쯤 가 보면 반할만한 아름다운 섬이다.
다만 해상 거리가 멀고 배의 승선 시간이 길어 멀미가 우려되니
일기예보를 보고 태풍이 없는 계절에 방문하시길 권장한다.
이번 거문도 백도를 방문한
사군자 팔방미인은 바다용왕의 도움으로 멀미없이 편안하게 다녀와서 감사하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 휴가를 다녀왔고
다시 다음 여행을 계획하기로 하고 여수역에서 헤어졌다.
2026년 7월 30일~8월1일까지 여행을 하고
2026년 8월 3일 아침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