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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군(1)_조지훈 문학관,서석지,산해리탑
️ [1] 구주령을 넘어서
(백암온천-> 영양군)
️[2] 조지훈 시문학관
️[3] 서석지
️[4] 국보제187호 산해리오층모전석탑
* 2023.05.28.
조지훈 시 <낙화> 9련 중 1~3련
<낙화>/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한양 조씨, 1920~1968년
향년 48세
️"시인이란 미의 사제요, 미의 건축사이다." (조지훈)
문학관 뒤, 산 쪽에 시공원이 조성되어 동상과 시비들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영양군 산해리 모전 5층석탑(국보 제187호)
이재익 시인(처가 고향에서)
[1] 구주령(울진,영양 경계)
구주령 전망대서 백암산을 바라본다.
구주령 전망대서 백암산을 바라본다.
구주령 전망대서 백암산(1004m)을 바라본다.
울진군 백암 온천에서 구주령을 넘으면 영양군 수비면에 이어진다.
[2] 조지훈 시문학관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한양조씨 호은 종택
2020년은 조지훈(본명 동탁)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코로나로 연기됐다가 올해 2023년 탄생 103주년에 행사가 막 지나갔네.
시문학관 주차장 가에 설치된 안내 석조물
시문학관 주차장 가에 설치된 안내 석조물
시문학관 주차장 가에 설치된 안내 석조물
시, 승무 삽화
돌에 새긴 승무
조지훈 시인 약력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단했다.
▪️고풍의상, 승무, 봉황수 등을 문장지에 기고함.
️정지용의 추천사 중
"매우 유망하시외다. 그러나 당신이 미인화를 그리시라면 이당 김은호 화백을 당하시게습니까?
당신의 시에서 앞으로 생활과 호홉과 연치(年齒)와 생략이 보고싶습니다."
청록파 시인 ;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 "정상에서 두 손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향해 서 있는 자세가 두진의 것이라면,
노송에 기대어 솔바람 소리와 개울물 소리에 눈을 감고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지훈의 자세다."
(정한모)
조지훈 선생의 처와 처가
김난희 여사
️조지훈 선생은 이미 55년전 1968년에 향년 48세로 기관지 확장, 폐 지병으로 아주 아까운 나이에 [서울 성북동 60-44 번지] 자택에서 돌아가셨다.
️당시 자택은 조지훈 선생이 30년간 사셨고, 지금은 다가구 주택으로 변화, 조지훈 집터 표지석만 있다고 한다.)
성북동 집터 근처에 [방우산장] 이라는 기념공간이 있다.
️방우산장(放牛山莊) 의미 ;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한 마리 키우는 것과 다름 없다. 放牛卽牧牛' 라는 의미로 선생 스스로 자신의 자택 당호를 그렇게 불렀다는데서 유래함.
️슬하에 3남 1녀 [당시 23세 광렬, 20세 학렬, 17세 혜경, 13세 태열(前 주 유엔대사)]
️부인은 올해 2023년에 백수, 99세로 생존해 계신다. 55년 간을 홀로 사신 것이다.
김난희 여사 서화 작품
그리움과 외로움을 서화로 부군의 시와 글을 그림과 글씨로 다듬어 그리고 쓰셔서 전시회도 가졌다.
김난희 여사 서예 작품
🟫 <매화송> / 조지훈
매화꽃 다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
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취나니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빈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
비단옷 감기듯 사늘한 바람곁에
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양자라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
보내고 그리는 정도 싫치 않다 하여라.
ㅡㅡㅡㅡ
️처 김난희 여사는 영주시 무섬마을 출신이다. 조지훈은 처가에 드나들면서 시심을 돋우기도 하였다.
조지훈이 처가 무섬마을에서 지은 대표적 시 <별리>
부인을 두고 혼자 멀리 일찌기도 영별할 것을 예견한 듯한 시상에 애절함이 배어난다.
조지훈 선생의 처가 영주시 무섬마을, 처 김난희 여사 고향.
조지훈 선생의 학문 연구
️학문연구 제1기
▪️1941 혜화전문학교(현동국대) 졸업
▪️1941 오대산 월정사 불교강원 외전강사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원
▪️<된소리에 대한 일고찰> (1938)
▪️<어원소고> (1939)
▪️<신라의 원의와 사뇌가에 대하여> (1940)
▪️<산유화와 서리리탄 기타> (1942)
️학문연구의 제2기
▪️해방이후~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부임 직전까지 20대
▪️한글지 속간호 편집
▪️조선어학회 <<중등국어교본>> 참여
▪️진단학회 <<국사교본>> 참여
▪️<민족문화의 당면과제>
▪️<민족성 개조의 방향>
▪️<한국 예술의 원형>
* 이러한 학문적 성과로 27세에 고려대 국문과 교수 부임.
️학문의 제3기
▪️고려대 교수 부임 이후에서 임종하기 전까지의 시기
▪️민족문화; 1964, 고려대 부설 민족문화연구소 초대소장 부임
▪️<한국민속학 문헌목록>,
▪️<신라가요연구논고>,
▪️<신라 국호 연구 논고>.
▪️<<한국문화사서설>>
▪️한국문화대계 첫권의 <한국민족운동사>
️멋의 미적 내용
▪️형태미 ; 비정제성, 다양성, 율동성, 곡선성
▪️표현미 ; 비규격미, 왜형성(歪形性), 완롱성(玩弄性)
▪️정신미 ; 무실용성, 화동성, 중절성
️자연
▪️해양성 ➡️ 낙천성 ➡️ 명상꿈 ➡️ 꿈
▪️반도성 ➡️ 평화성➡️ 격정성 ➡️ 슬픔
▪️대룍성 ➡️ 웅혼성➡️ 감상성➡️ 힘
️역사
▪️다린성 ➡️ 적응성 ➡️ 기동성 ➡️ 멋
▪️고립성 ➡️ 보수성 ➡️ 강인성 ➡️ 끈기
️문화
▪️변성 ➡️ 수용성 ➡️ 감각성 ➡️ 은근
▪️중심성 ➡️ 난숙성 ➡️ 조형성 ➡️ 맵짬
️<<한국문화사서설>> (1964)
"한국문화가 동양의 기초문화, 곧 북동아문화권, 인도 문화권, 중국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어느 한문화권의 연장 또는 속성으로서가 아닌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
"한국문화는 시베리아문화권에서 요람기를 보내고 중국 한문화권에서 배우고, 인도 불교문화권에서 성숙했다."
️조지훈 학문은 넓게는 국학 전반, 좁게는 한국민속학어었다. 신화, 민요, 원시종교, 민간신앙, 무속 등
️민족문화 연구소장 재직.
️민속자료 집성, 전국적 민속조사 계획, 민속학사전편찬, 민속학 개론 저술.
조지훈 선생의 가족
️집안의 우여곡절 비극
▪️할아버지 조인석은 사헌부 대간 지냄. 6.25 당시 주실마을이 좌우이념 갈등을 빚자 개탄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선친 조헌영은 신간회 총무간사 민족주의자, 한의학의 대가, 제헌국회의원 당선. 납북됨. 모친은 쇼크 화병 사망.
▪️형 동진은 21세 병사
▪️남동생 동위 서울대 재학중 학도병 전사.
▪️여동생 남편(매제)는 서울농대 교수 재직중 납북
조지훈시문학관 ㅁ자 건물안 마당
[3] 서석지(瑞石池)
; 상스로운 돌이 가득한 지당(池塘)
️조선 광해군 5년(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선생이 조성한 조선시대 민가의 연못이 있는 대표적 정원이다.
️담양 소쇄원, 완도 세연정과 더불어 조선의 대표적 연못 정원이다.
️위치 : * 소재 ; 경북 영양군 입암면 서석지1길 10.
* 국가 지정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08호(1979.12 지정)
* 연당 마을은 서석지 라는 연못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연못 주위 구조물과 연못 내에 돌들의 명칭이 다 있다.
우뚝한 은행나무 행단
연못 속에 서석들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건물 경정(敬亭)
경정의 내부
[4] 산해리오층모전석탑(국보 제18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