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3.1절 연휴를 맞아
다시 3일간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세번째 길을 떠났다.
1월1일 새해에 걷고 나서 60여일이나 지났으니
이번 연휴에도 땀나게 걸어 보고 싶었다.
- 걸었던 날 : 2024년 3월 1일(금)
- 걸었던 길 : 해파랑길 9코스~10코스 (현대중공업정문-남목마성-주전봉수대-주전해변-정자항-하서해변)
- 걸은 거리 : 26km, (약41,000보)
- 누계 거리 : 168 km..
- 글을 쓴 날 : 2024년 3월 5일.
이른 새벽 광주에서 출발하여 8시무렵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근처에 도착하고 채비를 하여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을 향해 중공업 돌담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온도는 -5도 한 겨울이고 바람조차 세차게 불어 코도 시리다. 그래도 어떻하라 부지런히 걸어서 체온을 올려야지!
현대중공업 담장은 벽돌이나 블럭처럼 각지고 정형화된 모습이 아니며 자연스레 쌓아 올린 돌 담장인데 단아한 모습이다. 담장 아래에는 사철나무를 심어 놓아서 더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 이쁜 담장이다. 담장 길 옆 왕벗나무는 봄에 화사한 벛꽃 길이 될 것이고 담장 넘어 메타세과이어는 여름에 그늘을 만들어 시원한 돌담 길이 될 듯했다.
남목마성길을 오른다. 마성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로 해안가에 근처에 목장을 만들었는데 둘래에 돌을 쌓아 조선시대 목장의 담장이 있는 성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이런 말 기르는 목장을 전국에 200여개나 만들어 관리 하였다고 한다.(안내글 참조) 조선시대에는 말이 교통수단이었고 군사적으로도 많은 말들이 필요했을 것이며 당시 국가에서도 필수적인 것들이여서 말 관리가 중요했으리라 생각했다.
옛 시가 적힌 돌탑이 있었다.
저녁에 앉아서
서 산 흰 눈에 황혼이 빛나는데
외로운 성에 고각이 불면 다시 또 문을 닫네
겨울바다 포구마다 고기잡이 근심도 가득한데
추운 날씨 밤마다
배 짜는 마을은 어디인지 물어 보네
목관의 근심은 귀 밑머리 빠지듯
차갑게 떨어지는 마음인데
세월의 빛은 푸르게
한 잔 술잔 가득 넘쳐나네
갓난 아기 새로이 말 배우듯 기쁜것은
봄 바람에 입춘의 깃발 나부끼네...
그 옛날 목장을 관리하는 어느 목관이 추운 겨울에 쓸쓸하게 봄을 기다리며 고뇌하는 글 같았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짪은 시어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남아목성을 지나 봉태산에 오르니 산 봉우리에 이쁜 정자와 봉수대가 있다. 추위를 잊으려 쉼 없이 산을 오르고 정자에 도착했다.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트인 바다가 좋아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가져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그리고 정자 근처에 있는 봉수대 돌탑을 올라 불을 태워 연기를 피우는 화구를 보고 내려 왔다.옛날 울산의 봉수대는 해안가를 따라 6곳에 있었고 봉수대의 알림은 한시간에 50km까지 의사를 전달 했었다고 하니 나름 중요한 통신수단 이였을 것이다.(현판글 참조)
그리고 봉태산에서 해변을 향해 내려 간다.또한 4차선 너른 도로 아래 터널를 지나는데 어둡고 음침 할 것 같았으나 수로와 구분되게 타일길을 만들어 놓아 산뜻하고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해변으로 가는 좁은 산길에는 보라빛 진달래 꽃이 간간히 피웠는데 제철보다 일찍 피워 애처러운 모습이다.그러나 하늘거리는 나무가지는 마치 어린 여자아이 수줍은 미소처럼 싱그럽다. 산 진달래 모습을 아내는 카메라에 담는다. 그렇게 4차선 터널을 지나고 나니 주전마을과 이쁜해변이 기다리고 있엇다. 이곳은 작은 돌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자갈 해변이다.
하늘을 날고 물 위에 떠 있어야 할 갈메기는 풍랑주의보에 피항한 어선들 마냥 돌 위에 가지런하게 앉아 쉬고 있었고 ᆢ
주전마을 해안가 마을에 몽돌여인 시인의 집이 있었다.김순연 시인은 본인의 작품을 집 벽면에 전시장의 작품 마냥 걸어 놨는데나는 자연스레 몇 작품을 읽었다.이 작품들은 때로 지나는 나그네의 한가함을 달래주고 잠시나마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 해줄 듯 했다.그러고 보면 쉬 가까이 접하지 않는 시어을 편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배려한 시인의 진정성이 느껴졌다.시를 쓰고 시집을 나누어 주는 친구가 있다.언젠가 그 친구와 소주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길들을 나눈적이 있는데 어느날 동료의 직장 숙소을 방문했더니 자신의 시집이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을 했엇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내가 대신 미안했었다.시인의 집 닫힌 창문 안쪽을 살폈으나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았고 책방이나 찻집은 아닌듯 했다.찻집이였으면 차 한잔 마시고 가려 했었다. 어느새 같이 걷는 여인은 저 만치 앞서 걷고 있다.
우리는
김순연
이 세상에 무늬 없는 사람 어디 있으랴
한 번도 꼬여 보지 않는 사람 어디 있으랴
얽히고 설키고 어룽지며 물이 들어 가는
같은 하늘 아래 모여서 사는 착한 사람들
중략 생략~
인생이란 이 세상 누구든 똑 같은 삶이 아닐 것이며 각자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꼬인 삶도 있을 것이고 실패한 인연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구든지 얽히고 설키며 적응하고 살아 간다는 인생관을 담담하게 쓴 시어다.시인의 나이나 연륜이 짐작이 된다.
잘 사는 생이고 싶다,
김순연
옥수수를 키우면서
옥수수와 사람의 인생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본다.
알찬 열매을 맺기 위해
때론 바람과 맹렬히 싸우고
강렬한 햇볕에 온 몸을 비비 꼬다가
겨우 심지만 남을 수도 있다.
세월이 갈 수록 생명력에 성숙함을 더 한다는게
얼마나 큰 경사인가
바람도 가르고 태풍도 뛰어 넘어
촘촘히 영그러진 옥수수 열매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
나에게 닥친 삶 포기하지 않고
일상을 즐기는 사람으로 살다보면
끝내 잘 익은 생이 되어 인생의 농부이신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거지.
주전해변은 가느다란 검은 돌 자갈 해변이다.밀려 온 바닷물이 자갈돌을 적시며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저렇게 깨끗해 지길 바랬다.나는 그런 모습을 보기 위해 도로길을 벗어나 자갈돌 위를 한참이나 걸었다.
이른 새벽길 나서면서 삶은 계란 하나와 커피 한잔 마시고 출발하여 3시간쯤 걸었다.나는 멀리 보이는 저 해변길에 붕어빵이나 호떡 파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아네에게 말하며 걸었는데 말처럼 주전해변 남쪽에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야채에 계란을 풀어 넣어 버터를 바른 토스트는 고소한 맛이었다.어묵 국물도 따뜻하고 너무 좋다.나는 자연스레 소주 한병을 시켜 꼬불 어묵을 안주 삼아 절반을 마시고 반병은 배낭에 넣었다.주변에 크고 멋 드러진 카페와 커피숍이 즐비했지만 이곳 포장마차 토스트와 소주가 나에겐 더 어울리고 맛났다.
경치가 좋은곳에 어김없이 자리 잡은 카페와 커피숍들
이곳 주전마을 지나 정자항으로 가는 길에는 옹녀과 강쇠길도 있다. 강동사랑길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어느날 커다란 옹기가 물 위로 떠 내려 왔고 옹기속에는 바다 공주인 여자가 있었다. 공주인 줄 모르는 강쇠가 집으로 데리고 갔고 강쇠는 옹기에서 나온 여인이라 하여 "옹녀"라 이름을 지었다. 옹녀를 하늘로 보내기 위해 강쇠는 산을 오르면서 여근과 남근을 닮은 노래를 주고 받으면서 산에서 옹녀와 운우의 정을 나눈다.
강쇠는 : 이상하게 생겼구나, 맹랑하게도 생겼구나
소나기를 맞았는지 언덕지게 패었구나.
옹녀 : 이상히도 생겼구나, 맹랑하게도 생겼구나.
칠팔월의 알밤인가, 두쪽이 한데 붙어 있네.
......강동 사랑길 노랫말이다(현판글 참조)
정자항에 도착한다. 정자항은 울산의 대표적인 항구인듯 하다.항구는 고래 등대가 불을 밝히는데 하얀 고래등대와 빨간 고래등대가 있었다.정오 12시가 지났다. 주전해변에서 토스트로 새참을 먹었지만 이미 소화가 되어 허기졌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고르다가 편안해 보이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생선구이를 시켜 먹으면서 쉬었다.
식당에서 창 밖으로 1톤차 화물차에서 고구마를 파는 아저씨가 보이는데 고구마를 사 가는 사람이 많아 신기하다.어촌 항구에서 싱싱한 생선을 파는 것도 아니고 이곳 특산품 건조 오징어도 아니고 재래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전남 영암 고구마를 저렇게 잘 파는 비결은 뭘까? 나름 비결을 생각 해 봤다.저분은 일단 시각적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듯 하다. 왜냐하면 손가락 만한 작은 고구마를 냄비에 쪄 내는데 냄비에서 솟아 나는 연기로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찐 고구마의 고소한 냄새로 향기를 피워 사람을 모이게 하고 맛을 보게 했으니 맛만 보고 갈 수 없어 한 봉지는 가볍게 사 갈 만 했다.그리고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소포장으로 1만원~2만원이니 쉽게 사서 가는데 내가 식사하는 시간에만 한 20여명이 고구마를 사서 갔고 그 모습을 볼수록 신기했다.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먼 바다를 보며 해안길을 걷는다. 아침과 달리 햇볕은 따뜻하지만 오후에도 바람은 세차다.그러나 든든하게 식사를 해서 다행이엇다.해안 주상 절리대 바위 위에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그렇게 "강동 화암주상절리대"를 만난다.단면이 꽃처럼 보여 화암이라 이름을 붙였다는데 이쁜 이름이다.통상 주상 절리대는 육각형이 많으나 때론 오각형과 사각형도 있는데 이곳은 꽃잎처럼 보인다는 "화암주상절리대"이다. 강동화암절리대는 동해안에서 가장 오래 되고 대표적인 절리대라는 현판글 안내가 있다.
드디어 오후 4시 즈음에 경남 울산 지역을 벗어나 경상북도 양남면 하서해안공원에 도착했다. 나머지는 내일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트레킹 첫날은 언제나 체력적으로 항상 힘이 든다.두달을 쉬었다가 먼 거리를 걸어서 더 그랬다.그러나 평소 전혀 걷지 않은건 아니다.수시로 무등산 서석대에도 다녀 왔고, 불갑산이나 너릿재도 다녀 왔었고, 광주 천변길을 걷다가 화순읍내까지 30km를 걸어 보기도 했다.세상사 다른 일들도 처음엔 힘들고 어색하고 당황하지만 두번째는 더 낫고 세번째는 더 쉬울 때가 있다.이번 여행은 숙박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출발했기에 이제는 숙박 할 곳을 알아 봐야 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알고 보니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온다는데 40여분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고 하여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탔다.그리고 숙소을 물색하여 울산 시내의 모텔을 예약 하고 찾아 갔다.새벽부터 긴 하루였다.이번 트랙킹 첫날은 체력적으로 막바지에 조금 힘들었다. 영하 5도의 해변 날씨에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걷는 걸음은 무겁고 추웠다.그러나 기분은 상쾌하고 좋았다.숙소에 짐을 풀고 모텔옆 식당에 들어 가 삽겹살에 소맥 한잔을 털어 넣으니 세상이 모두 내 것이다.그리고 세상 모르게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