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당 중건, 이애자 보살의 위력
돌로 된 벽체를 허물고 언제 벽돌로 쌓았을까?
현재 마고당은 벽돌로 벽체를 쌓고 콘크리트로 지붕틀을 만든 뒤 그 위에 기와를 얹은 구조다. 마고당의 지붕틀과 기와 지붕은 지난 호 폭포사 주지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애자 보살이 리모델링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벽돌로 된 건물 벽체는 누가 새로 쌓은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지난 10월 12일 일요일 다시 폭포사를 찾았다. 마침 산신각을 헐고 새로 짓는 현장에 주지 스님이 보였다. 산신각이 낡아 비가 새는 통에 다시 짓기로 했다는 스님은 1980년대 당시 마고당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당시는 군부대 통제로 일반인들은 마고당에 접근조차 힘들었다. 현재 체육공원 아래 심우정 정자 자리에 장산 출입구 및 군초소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고당제 때는 출입이 가능해 천제단과 마고당에 올라 염불을 했는데, 주로 염불만 했던 터라 그때 당시 마고당제의 정확한 상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당시 마고당 건물을 비롯해 요사채도 있었는데 정월달에 제를 위해 마고당에 올라가면 너무 추워 요사채에서 잠시 몸을 녹이곤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요사채 벽면이 돌로 쌓은 것이라 바람이 ‘쑹쑹’ 들어왔는데 그나마 바깥보다는 한결 따뜻했다고. 당시 스님의 기억에 따르면 요사채 및 마고당 역시 돌벽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돌벽 위에 기와가 입혀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1924년 마고당을 중건할 당시에는 돌벽을 쌓아 그 위에 초가를 올렸고, 그후 1952년 초가지붕이 탄약고 폭발로 날아든 파편에 불타 버리는 바람에 지붕을 고친 것으로 보인다.
1952년 화재 시 한 주민이 어렵사리 군부대 허가를 얻어 마고당 지붕을 고쳤는데, 이때 초가 대신 기와를 얹은 것으로 추정된다.
◇ 86년 군사정권 시절 장산 통제선을 넘어
여기서 다시 주지 스님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애자 보살이 군부대와 어떻게 협의를 이끌어냈는지 화물차로 초소 앞까지 자재를 운반한 뒤, 자그마치 20~30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초소에서 마고당까지 건축 자재를 직접 짊어지고 옮긴 점이 참 궁금하다. 그렇게 돌벽체를 허물고 벽돌로 다시 쌓은 후, 콘크리트 지붕 위에 기와를 얹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것이다.
1986년 경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엄격하게 통제되던 장산에 이애자 보살은 어떤 경로로 출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 예성탁 발행인